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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24구간(버리미기재-곰넘이봉-촛대봉-대야산-밀재-고모샘-조항산-갓바위재-전망암-청화산-늘재).
1.일시: 2017년 6월 23일 금요일~ 24일 토요일.
2.참가인원: 전과동.
3.날씨: 아주 쾌청한 날씨, 뻥 뚫린 조망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 정도라도 어디인가 싶을 정도로 볼건 다본 능선 산행이었다.
힘들게 올라와서 아무것도 볼 수 없다면 그것처럼 비극은 없을 것이다. 지금도 이리 힘이 드는데, 나이들어 언제 다시 대간에 들겠는가! 이것이 우리가 마지막으로 조우하는 백두대간 아니겠는가?
그리 생각하고 지나오니 힘든 것도 오히려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정겹기까지 하다.
4.산행거리 및 시간:
쉬지않고 열심히 산행을 했건만 근 4시간을 능선에서 탱자 탱자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리고 운동한 거리도 너무나도 야박하게 나왔다 우리가 개고생한 것에 비하면...
우리는 능선상에서 날라 다니는 부류는 애저녁에 아닌 모양이다. 빨리가면 대간이 상주나?
얼마나 빨리 그리고 멀리 가느냐 보다는 누가 얼마나 오래 산에 머물러 있느냐가 산사랑의 잣대가 되야 하질 않을까! 이건 나의 변명아닌 핑계다.
고도 그래프에 파란 실선이 속도를 나타내는데 높은 봉우리 부분은 속도가 낮게 형성되어 있고, 내리막길 부분에서는 높게 형성이 되어 있다.
그런데 마지막 청화산 오름길은 어찌된 영문인지 오름길에서 속도가 높게 나타난다.
아마도 어금니 쎄려물고 쉬지않고 치고 올라 온 결과인 것 같다. 언제나 마지막 남은 산 하나는 염장 코스로, 아픈 상처에 소금을 흩뿌린다.
이번 트랭글 어플 사용은 공부를 한 덕분에 능선상에서 대간을 벗어나면 경고음이 울리도록 조치했는데, 대간을 벗어나면 울리는 경고음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나중에 알고보니 설정이 30m를 벗어나면 울리도록 되어 있었다. 지도상의 대간과 실제 대간과는 온도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해서 다시 100m로 변경했다. 이제 개고생 알바는 안해도 될 것 같다.
경고음이 나오는 지도를 얻으려면 백두대간이라는 아이템을 구매해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 돈이 어디서나 지고지선이다!
오늘도 점촌에서 찜질방 신세를 졌는데, 일어날 시간에 맞춰 예의' 그윽한미소' 의 알람 소리가 울린다. 평소 같으면 그 소리를 못 듣는데 그날따라 잠이 안와 뒤척이다 알람 소리를 들은 것이다. 알람이 꺼지고 10분이 지나고 15분이 지나도 일어날 생각을 안하는게 아닌가! 도저히 일어날 기미가 없어 흔들어 깨우니 화들짝 놀란다.
아마 그때 깨우지 않았으면 이번 산행 계획은 꽝꽝꽝이 될 뻔했다. 시간이 지체되었다면 여기 이 살벌한 출입금지 입간판을 어떻게 지날 것인가? 마치 감옥같이 철조망으로 물셀틈 없이 삥 둘러놨다. 그런데 동물들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어찌 건너 다니누?
건너 갈 길을 찾아 헤맬게 분명할텐데, 대간 보전 방법이 이것 밖에는 없는 건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아무튼 이 출입금지 입간판만 보면 산천초목이 부르르 떤다.
이곳으로 우릴 데려다 준 택시기사는 여기 버리미기재를 모른단다. 그래서 백두대간의 재나 능성이 공부 좀 하시라고 일갈했다.
공부하면 직업에도 도움이 될 테니깐! 택시비 4만냥(?)
우리는 이쪽에서 저쪽으로 휘리릭 날아갔다!
곰넘이봉은 능선길 머리 위에 있어 자칫 스쳐 지나갈만 하다. 이름에 걸맞게 표지석도 넘어갈듯 흔들 흔들거린다. 붙박혀있지 않고 떨어진 모양이다.
도착시간 6시 28분.
곰넘이봉에서 바라본 산주름들.
미륵바위.
촛대봉 도착 7시 35분.
나무들 사이로 언듯 언듯 대야산 깍아지른 암벽이 위압감을 주며 우리에게 다가온다.
자두도 잡솨주시고!
자두 뒷쪽이 대야산이다.
나무 숲을 벗어나니 온전한 대야산이 보인다.
마지막 끝에 암봉이 직벽에 가까운 80m 절벽이다.
"이걸 보고도 안내려 갈거야?" 하듯이 대놓고 엄포를 놓는다. 이곳에 경험이나 정보가 없는 사람들은 이걸 보고 진짜 내려갈 만하다.
무셔 무셔!
'그윽한 미소'는 직벽 구간에서 바위에 낑겨 얼굴이 벌게지면서 어쩔쭐을 모른다.
그림에서는 그리 가팔라 보이진 않은데 실제는 옴찔하며 똥고가 오므라든다.
엇잡은 '바람' 의 장갑낀 손이 위험을 감지케 한다.
위에서 내려다 본 직벽 구간.
안전사고 예방 차원에서 정비를 해놓고 단속을 하더래도 해야하지 않을까 한다. 단속보다는 인명이 우선 아닌가!
줄이라도 끊어지면 즉사다 이곳에서는...
직벽 구간을 오른 후 뒤돌아 본 촛대봉 곰넘이봉 그리고 이전 구간 장성봉 악휘봉등이 보인다.
저 멀리 속리산 산군들이 어서오라 손짓하고 청화산과 조항산 능선길이 확연하다.
직벽구간을 오른 후에 출입금지 표지가 있는 곳으로 지나니 갑자기 경고 안내 방송이 나오는게 아니가!
직벽구간을 오르면서 쪼그라든 똥꼬가 갑작스런 경고 방송에 몸안으로 빨려들어가 나올 생각을 안한다.
내 똥꼬 돌리도!
여기서부터는 법정 탐방구간으로 똥꼬를 헬렐레 풀어놔도 될듯 싶다.
대야산의 경치를 못본 분들은 이 입간판 그림을 보시며 솟증을 푸시길...
아침 동영상!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산군들이다. 저 끝 청화산 자락에 난리를 피할 수 있는 우복동이 있을까?
차례대로 맨 앞쪽 산이 조항산이고 제일 뒷쪽산이 청화산 그리고 흐릿하게 길게 누운 산군이 속리산 능선길이다.
곰바위!
코끼리바위, 거북바위, 집채바위등 바위 이름들이 많은데 이 바위 이름이 뭔지 모르겠다.
그냥 내가 붙여 부른다 곰바위라고!
왜 뜳어유?
카메라 앵글이 자꾸 탁트인 곳으로만 집중된다. 앵글도 감정상 그리 끌리는가 보다.
문바위, 집채바위?
이것도 이름이 있을텐데 알 수는 없고 어마 어마하게 큰바위가 공중에 떠있는 착각이들 정도다.
조항산 가는길은 아직 멀고도 먼 상상속의 땅이다.
오른쪽 앞 쪽으로 마귀할미통시바위와 손녀마귀통시바위가 보이고 그 뒷쪽면이 폐광된 고모치 광산이다. 이 능선길은 밀재와 고모재 사이에 있는 능선길이다.
왼쪽끝 산이 둔덕산(969)이다.
밀재를 지나 나무 데크가 끝나는 지점에서...
멀리서 봤던 조항산 능선길이 눈앞으로 가까와지면서 속살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털중나리가 활짝 만개했다. 얼레지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다른 종이다.
간당 간당했던 '바람 의 물통이 샘을 발견하자 주인은 내팽개쳐 버리고 샘물로 쌩하고 달려간다.
반대 방향에서 넘어 온 부부팀이 진을치고 이병 저병에 물을 가득 받고 있다. 졸졸 흐르는 석간수이지만 1리터 물통이 금방 찬다.
자기네는 놀면서 와서 그렇지 서둘러 가면 늘재까지 3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는 거리란다. 산꾼들 말은 믿을게 못된다는 걸 알면서도 '바람' 은 그 소리를 믿는 눈치다. 도대체 6시간 거리를 어떻게 3시간에 간단 말인가?
대충 여기가 버리미기재와 늘재의 중간 지점 같은데 말이다.
배에서 물소리가 나도록 배터지게 마셨다. 한글 고모샘 밑에 쓴 한자를 나는 생전 처음 보는 한자로 착각했다.
저렇게 생긴 '고' 자도 그렇고 '모' 자도 처음 본다고 생각했는데, 순간 닝기리 '석간수' 아닌가!
착각은 자유라더니 어찌하야 그런 발상을 했을까!
아무튼 고모샘은 백두대간 꾼들에게는 꿀과 같은 생명수다. 달작지근하면서도 청량한 물맛, 신기하게도 바위속에서 쉼없이 계속 나온다. 어느 지나가는 길손이 나뭇잎으로 대롱을 만들어 물줄기가 흩어지는 것을 막았으니 인류애의 발로가 아니고 무엇인가!
고모샘은 대간에서 10m 거리에 존재하는 생명의 샘인 것이다. 이 갈수기에도 저렇게 물을 내뿜고 있다니 희한하고 희한한 일이로고!
조항산 도착 오후 1시 28분.
아무튼 정상 표지석에 '조' 자가 들어가면 일단 험하다고 봐야 한다.새들이 노니는 곳이니 어련하겠는가!
'鳥項山' 새의 목덜미를 닳은 산이란 뜻이니, 얼마나 가파르겠는가!
조항산에서 바라 본 고모치 폐광산과 그위로 마귀할미통시바위, 손녀마귀통시바위가보인다.
다른 산악회 산행기를 보니 밀재를 거쳐 둔덕산까지 가는 능선길이 열려있고, 마귀할미통시바위, 손녀마귀통시바위라고 지칭되는 거대한 바위가 정상 부근에서 뒷간의 디딤판처럼 벌어져 있다.
'통시' 라는 말은 전라도 경상도와 제주도의 뒷간의 방언이니, 아마도 이 바위들을 보며 뒷간 디딤판으로 연상했을 수도 있겠다.
조항상 동영상!
이 팻말에도 봉우리가 새의 목처럼 생겨서 붙여졌다고 한다.
조항산 바로 밑 전망대 바위에서 본 청화산까지의 능선 파노라마!
제일 끝 봉우리가 청화산이다. 그 뒤로 속리산 능선길이 가물가물하다.
전망대 동영상!
대야산 직벽 구간을 경험한 뒤로는 이까짓 직벽 자일 길은 그저 질겅 질겅 씹는 껌이다.
큰기린초!
뒤돌아 본 조항산 정상 부근.
이리보니 정말 새의 목처럼 생겼다!
이런 암릉길은 껌이라며 도도하게 올라오는 '바람'!
17년전 진부령까지 북진할 때 이곳에서 하루를 기탁했던 갓바위재 바로 위 헬기장이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간만이 늙는구나! 감회가 새로워 한컷 했다.
지금도 나무에 휩싸여 바람 한점 안들어오는 최적의 야영 장소다!
우리가 지나 온 조항산 능선길.
문경시 농암면 방향.
의상 저수지가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서...
원추리!
조항산을 배경으로...
지나온 조항산 능선길!
드디어 청화산 도착 5시 17분.
청화산(靑華山, 984m)은 경상북도와 충청북도 3개 시군의 경계를 이루며 괴산군에 위치해 있다. 조릿대 군락과 소나무가 많아 겨울에도 푸르게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수십리 밖 어디에서 바라보아도 산 모양이 맑고 깨끗하며, 항상 화려하고 푸르게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산이라 하여 청화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훌륭한 인문지리 학자였던 이중환(李重煥)이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금강산 남쪽에서는 으뜸가는 산수'라고 말했다고 하니 청화산과 이 일대의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청화산은 빼어난 경관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복된 땅(福地)을 품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전란(戰亂), 질병(疾病), 기근(飢饉) 등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땅이다. 이른 바 십승지(十勝地) 가운데 하나인 땅이다. 바로 청화산 아래 마을인 상주시 화북면 용유리가 그곳이다. 실제 그 마을은 소의 배속(牛腹洞)처럼 안온한 형상을 하고 있다. 시루봉, 청화산, 문장대, 천왕봉, 형제봉, 갈령, 도장산으로 이어지는 둥근 산줄기 안의 분지에서 바깥세상으로 트인 곳은 시루봉과 도장산 사이 용유리의 병천 뿐이다. 참으로 우복동의 형세라 아니할 수 없다.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십승지나 우복동은 힘없어 이리저리 내몰리며 살아온 가난한 민초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는 공간이다. 가진 것 없는 고단한 그들의 현실이 산을 보고 땅을 보게 만든 것이다. 산이나 땅은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결코 배신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은 산을 보고 땅을 찾아 십승지를 말하고 우복동을 꿈꾼 것이다. 전쟁, 질병, 기근 등의 삼재 뿐 아니라 어떤 천재지변에도 피해를 입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안전한 땅, 복된 땅이다. 바로 그들의 이상향(理想鄕), 희망의 땅이었던 것이다.
-출전 모름-
이중환은 자신의 호를 청화산인이라 칭할 정도로 이곳을 매우 사랑했다고 한다!
청화산 전경!
俗離之東山似甕(속리지동산사옹) : 속리산 동편에 산이 항아리 같아
古稱中藏牛腹洞(고칭중장우복동) : 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감추어져 있다네
峯回磵抱千百曲(봉회간포천백곡) : 봉우리는 돌고 골짝물은 천 구비 백 굽이 둘러
衽交褶疊無綻縫(임교습첩무탄봉) : 여민 옷섶 겹친 주름 터진 곳도 없네
飛泉怒瀑恣喧豗(비천노폭자훤회) : 나는 샘과 성난 폭포가 마음껏 떠들며
壽藤亂刺相牽控(수등난자상견공) : 다래덩굴 가시나무가 얼기설기 막고 있네
洞門一竇小如管(동문일두소여관) : 출입문은 대롱만큼 작은 구멍 하나라네
牛子腹地纔入峒(우자복지재입동) : 송아지가 배를 따에 붙여야 들어갈 정도라네
始入峭壁猶昏黑(시입초벽유혼흑) : 들어서면 가파른 절벽이 깜깜해도
稍深日月舒光色(초심일월서광색) : 조금 깊이 들어가면 해와 달 천천히 빛나고
平川斷麓互映帶(평천단록호영대) : 평평한 시냇물에 끊어진 산자락이 비쳐 흐르네
沃土甘泉宜稼穡(옥토감천의가색) : 기름진 땅 맛있는 샘물 농사짓기 알맞아
仇池淺狹那足比(구지천협나족비) : 얕고 좁은 구지와 어찌 비교가 되리오
漁子徊徨尋不得(어자회황심불득) : 어부가 아무리 돌아다녀도 찾아낼 수 없다네
玄髮翁嗔白髮兒(현발옹진백발아) : 머리 검은 영감이 백발 된 자식을 꾸짖고
熙熙不老眞壽域(희희불노진수역) : 백 년 가도 늙지 않는 정말 장수의 고장이라네
迂儒一聞心欣然(우유일문심흔연) : 멍청한 선비 소문 듣고서 마음이 흔연하여
徑欲往置二頃田(경욕왕치이경전) : 빨리 가서 두어마지기 밭이라도 차지하였다네
竹杖芒屩飄然去(죽장망교표연거) : 죽장망훼 차림으로 훌쩍 찾아떠나니
繞山百帀僵且顚(요산백잡강차전) : 백 바퀴나 산을 돌다 지치고 쓰러졌다네
天晴疑聞風雨響(천청의문풍우향) : 멀쩡한 하늘에서 비바람소리 들리는 듯하고
世晏如見干戈纏(세안여견간과전) : 편안한 세상에 전쟁이라도 난 것 같았다네
爭投茂朱覓山谷(쟁투무주멱산곡) : 무주구천동 달려가서 골짜기 찾아 헤매다가
幸與此洞相接連(행여차동상접연) : 다행히도 우복동과 서로 연결되었다데
三韓開國嗟已久(삼한개국차이구) : 삼한이 개국한 지가 얼마나 오래인가
如蠶布紙蕃生口(여잠포지번생구) : 종이 위에 누에 깔리듯 인구가 너무 많아
樵蘇菑墾足跡交(초소치간족적교) : 나무하고 밭 일구고 발 안 닿는 곳 없는데도
詎有空山尙鹵莽(거유공산상로망) : 남아 있는 빈 산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藉使寇來宜死長(자사구래의사장) : 적이 쳐들어와도 마땅히 나라 위해 죽어야지
汝曹豈得絜妻子(여조기득혈처자) : 너희들 처자 데리고 어디로 갈 것인가
且督妻舂納王稅(차독처용납왕세) : 아내가 방아찧어 나라에 세금 바치게 해야지
嗚呼牛腹之洞世豈有(오호우복지동세기유) : 아아, 우복동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정약용 우복동가-
정약용의 우복동가에서는 전란을 피해 도망가지 말고 적과 싸우다 죽으라면서 이상향인 우복동은 없다고 극구 부인한다.
권문세가와 민초들이 바라 본 세상은 이처럼 하늘과 땅 차이다.
정국 기원단 앞에서 바라 본 속리산 산군들.
정국이라는 단어는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세운다는 뜻인데 일본어로는 '야스구니' 라고 하니 어찌 기분이 꺼림칙하네! 야스구니신사(靖國神社)라고 표기하니 한자로는 같은 음이고 같은 글자다.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정국이라는 글자도 우리은 잘 안쓰는 글자이고...
이 동네 조회장이라는 사람이 개인적으로 조성한 것이라는데, 좌우에는 白衣民族 聖地, 不失基祖 三巴水와 白頭大幹 中元地라고 표기되어 있다.
삼파수는 속리산 문장대에서 흘러내리는 한줄기는 동쪽으로 들어가 낙동강이 되고, 한줄기는 남쪽으로 흘러 금강이 그리고 나머지 한줄기는 서쪽으로 흐르다가 북으로 가서 달천이 되어 남한강과 합류한다고 한다.
여기서 파자는 꼬리 巴자를 쓸것이 아니라 물결波 자를 써야 맞을 것 같다.
지금에사 생각이지만 이곳에서 받은 최초의 느낌은 일본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햐! 백두대간에 이런게 있다니 꺼림칙하네 그려!
문짝이 떨어져 나간 성황당 모습!
지자체에서 관리 좀 하지 을씨년스럽기 한량이 없다!
성황당 유래비는 윤기가 번지르르한데 말이다.
유래비 내용
백두대간의 정기받은 늘재에 당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래 탑의 신앙과 삼신사상을 혼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때는 횡액 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란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서 성황신을 백신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신앙으로 승화하여 당도 지지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유적과 사실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조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장군과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과 명장이 수련한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후에 의사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 대장 이강년 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놀티에 전상석처사가 우국 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여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이 유지를 받들고 이상배국회의원과 김근수 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배에게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이 되게 하여 백두대간의 영기를 살감나게 하였다. 이에 그간의 유래와 성황당 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는 바이다.
국회의원 시장 이런 분들 이름 좀 집어넣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 그리 세세손손 이름을 날리기 바라는 지...
유래비에 이름을 넣을 생각하지 말고 성황당이나 개보수했으면 좋겠다.
동네에 비해서 너무 비석이 거대하다. 전시 행정의 징표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도 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었을텐데 말이다.
자기들 주머니에서 돈이 나온다면 이렇게 크게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조촐하고 아담하게 기념비 세우면 안되나?
백두대간 표지석 뒷면에는 영조시대 문인 백남 김시빈의 속리산이란 시가 있다.
'백두산 큰산맥이 동으로 뻗어와서
금강산 먼저 서고 속리산 뒤에 섰네
미륵관음 양봉높아 자비세계 너그럽고
충청 경상도의 경계한산 장엄하도다!'
청화산 꼭대기에서 미리 택시를 호출하여 6시 10분까지 도착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지금 사진에서 보듯이 예정시간을 훌쩍 넘긴 32분이다.
강남터미널 가는 버스가 괴산에서 7시 10분에 있다는데 여기서 괴산까지 거리 30km를 고려하면 제시간에 가긴 틀려 먹은 것 같다.
그러나 조금 있자니 호출한 택시가 오는데, 연신 미안하다며 우리가 고모샘에서 만났던 부부 산행객을 버리미기재에 내려주고 오느라고 늦었다는 것이다. 부부 산행객이 약속 시간을 어겨 이렇게 늦었다면서 미안해 한다.
그러더니 택시를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괴산터미널에 도착하니 7시1분이다. 15분 상간에 30km를 주파한 것이다.
아직도 덜 풀린 똥꼬가 원상복구되는 순간이다.
택시 기사왈 "세수할 시간은 되네요!"
헐 하고도 허거걱!!
버스를 타면서 맥주 한켄에 안주 한봉다리씩 '그윽한 미소'에게 배급을 받고 불이나게 입에 털어 넣고는 취침!
강남터미널에서 '딱선생' 과 조우하여 산천초목이 떨 만큼 값싸고 맛있는 강남터미널 2층 고속버스기사 식당으로 직행했다.
여기서는 밥 무한리필, 반찬 무한리필, 게다가 얼굴만한 해물파전 만냥, 두부 김치만냥, 네명이서 아무리 때려먹어도
5만냥이 넘지않는다.
양만 많은 것이 아니라 맛이 보장되는 양이라는 것이다.
강남에 이런 곳이 있다니 매번 올때마다 놀란다!
오늘도 우리의 똥꼬들 고생했다 옴찔 옴찔하느라고...
다음에도 잘 써먹으려면 집에가서 마사지 정성껏 해주도록!
나의집 도착 시간 12시.
첫댓글 이번 구간도 고생들 많았다.
청학! 산행기 쓰느라 애썼다..
대간 끝나면 네 산행기 책으로 한번 엮어봐라..
걸죽하고 담백하면서 야들야들한 대간 산행기가 나올듯하다...
그래! 고생했다! 나보다 훨 윗길의 글쟁이들이 산재해 있어 언감생심이다! 유홍준님이 하신 말 "인생도처유상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