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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왔으면 좋겠는데 아침부터 비가 걸랑맞게 내리고 있습니다. 내란 재판은 13일로 연기되었고 고 안성기 가는 길에 갑장인 조용필이 <친구여>를 불러주었습니다. 1년 동안 사용하던 쳇 GTP(30.000)를 유료화 신청했어요. 불편한 건 없었는데 노블레스 노블리주의 마음으로 헌금한 것이니 번창하시라. <응쌍팔 4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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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차 엔딩에서 구박 덱이 정봉이가 복권에 당첨되는 시퀀스는 협찬을 받은 걸까요? 공중파에서 '인생 역전' 복권 당첨을 그렇게 많은 분량으로 실감 나게 연출하는 건 평생 처음 봅니다. 노무현의 <바다 이야기 2003-2008>가 사회적 이슈로 문제를 일으켰고, 이명박(2008-2013)-박근혜(2013-2017) 치세 때 단속의 칼바람이 쌩쌩 불던 시기였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고 <유전무죄 무전 유전>로 정면 돌파한 신현호를 리스펙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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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회수권과 토큰을 안다면 당신은 아날로그 세대가 분명합니다. 1988년 서울 도봉구입니다. 회수권 애매하게 자르는 건 범생이들의 일탈일까요? 에어 조던 신고 등교하는 정환이는 좋겠습니다. 20-2번 빨강 버스가 노스텔지아를 훅 치고 들어옵니다. "나 대학 갈게 오늘부터 공부할 거야!... 과외 시켜줘(덕선)" "이양 해 x 빼고 2x로 넘기라고... 아무리 돌대가리라도... 집중하라고... 머리를 쓰라고 머리를(덕선 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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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었지 나 언니한테 절대로 안 배워...나 독서실 다닐 거야(덕선)" 덕선이 대학을 가겠다고 선언을 하는 통에 그렇잖아도 바람 잘 날 없는 말괄량이 삐삐 덕선이네 집에 한바탕 태풍이 몰아닥칠 기운이 감돌고 있습니다. 처음에 나는 택이랑 덕선이가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선우-덕선 라인도 아니고, 정한이가 덕선 이를 차지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골목 어귀 귀퉁이에서 데칼코마니가 되어 숨죽인 몇 분 때문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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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매 죽것네 죽것어(동일)" 통 굴비를 얻어먹고 하는 리액션이 고급 집니다. 집중력을 배우기 위해 보검이에게 간 덕선은 소꿉장난인지 연애질인지 모르지만 열나 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덕선-보검 라인이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연애한 지 오래돼서 잘 모르겠습니다. 일화가 곤로에 불을 피우는 것도 오랜만에 봅니다. "오늘 집사람 생일입니다. 미역국 끓여 주려고요(성균)" 굴비 먹을 때부터 뽁짝뽁짝하던 일화가 아들과 자고 있는 웬수(서방) 배를 꼬집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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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 뭐냐?(덕선)" "에어 조던이다 빙신아!...너도 좋겠다 빙신아! 도시락 안 싸가도 되고(정환)" 통학버스에서 덕선이가 정환이 교복 셔츠를 뜯어 놓는 바람에 정환이 벽돌 복근을 다 보았습니다. 성균 네 둘째 아들 류 준열은 불만 가득하고 까칠한 쌍문동 개정팔 입니다. 축구에 죽고 사는 철없는 축구 파이자, 선우를 제치고 전교 1등도 한 번 했습니다. 실컷 딴 지 걸고 까칠하게 굴고 나서야 못 이기는 척해주는 전형적인 나쁜 남자, 물론 연애도 수준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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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적인 남자 성균이네 외식 시퀀스입니다. 돈가스 2-함박 1-비후 1을 주문했습니다. "가족끼리 요래 단란하게 외식하는 거... 한 판 찍자... 웃어라!" 과한 듯 재미있는 성균 캐릭터가 은근 중독성 있습니다. 자지 마 독서실에서 타임 체크하는 선우한테 누가 사탕&테이프를 주었을까요? 덕선 양인가. 최택 6단이 신인에게 패했다는 뉴스가 나옵니다."당신 오늘 행국이 밥 안 줬지?(라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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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에 내가 하리(성균)" "어디 갔다 오냐?(정환)" "독서실(덕선)" "덕선아! 샤프심 있어?(선우)" "자요... 택이는 자나... 그냥 모른척해라(선우 엄마가 택이 아빠에게)" 정환이 먹으라고 준 이따리아노 아이스크림이 다 녹아버렸네요. "달려온 어린이들... 명작 동화(진주)" "아! 싫어! 나 언니한테 과외 안 한다니까!(덕선)" "선생이라고 생각하고 해라(일화)" 나는 중3 때 딱 한 번 친구 형한테 과외를 해보았습니다. 그때 제대로 못해서 수학은 이차방정식에서 멈췄고, 영어는 동사 변형에서 끝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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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 진태, 형용이가 우리 과외 반 친구들입니다. 이놈들 어디서 뭐하고 사는지 궁금하네요. 보라가 과외를 시작했습니다. 자고로 선생님은 예뻐야 합니다. 수학은 논리고 영어는 암기랍니다. 보라가 아이들을 닭 잡듯 하지만 씩씩한 쌍문동 5인방은 디스 대스 댐 다스, 유 유어 유얼 쓰를 합창하며 마냥 즐겁기만 합니다. 벌써부터 5원소들이 화학 반응을 일으킬 조짐입니다. 선우가 덕선이를 자주 찾는 건 덕선이 아닌 보라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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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회장 선우는 모든 동네 학부모들의 워너비요, 쌍문동 엄친아입니다. 친구들과 선생님 모두에게 인기 많은 젠틀맨인데 누나, 누나 하면서 보라를 가져갈 생각을 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용감한 자가 미인을 차지한다고 어쩌면 보라 누나를 각시로 삼게 되지 않을까요? 하여튼 범생이들이 호박씨 까는 일은 늘 경계하는 거지만 또 당했습니다. 고 경표 녀석 공포, 멜로, 시트콤, 스릴러까지 정말 안 되는 거 빼고 다 되는 필모그래피를 가진 배우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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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절에도 '야자' 타임을 했는데 <응쌍팔> 5인방들이 모여 슬럼프에 빠진 택이 놈 위로한다며 '욕-타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씨발 좆같네(보검)" 동일이와 이화가 진학 상담 차 학교를 방문했습니다. "덕선이가 다 좋은데 성적이 999등입니다(담임)" "여기 칼국수 두 개만 주쇼(동일)" "내가 진작부터 덕선이 과외 시키자 그랬지(이화)" 무드-능력-자녀 교육-자상함 어느 것도 없는 서방을 바라보는 일화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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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못 바꿔도 우산 한 번 바꿔 볼까?... 아이고 야 남의 우산을 누가 갖고 갔나... 여기요... 이 우산 주인 없습니까?... 그래 내 복에 무슨... (일화)" "남의 것이 좋아 봬도 다 허탕인 것이여 이 사람아!... 따라와!(동일)" "정봉아 정환아! 김치 전 먹어" 이번엔 성균이가 삐쳤습니다. "우리 아빠가 며칠째 말이 없어... 어떻게 해야 하냐?(정환)" "간단해! 받아 주면 돼!(동용)" "아이고 김 사장!... 이거 정말 반갑구먼 반가워요. 반갑습니다!(정환이가 성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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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화가 진행하는 “토토즐”에 조용필 노래가 잔잔히 흘러나옵니다. "최고의 인기 가수 조용필입니다. 부탁해요!(덕화)" 오래된 내 것만큼 지겹고 초라한 것도 없다(내레이션). "비도 오는데 소주나 한잔할까?(라미란이 서방에게)" 오래된 내 것만큼 지겹고 초라한 것도 없다. 하지만 익숙함과 편안한 내 사람들 만이 진심으로 날 알아주고, 안아주고, 토닥여 줄 수 있다. 때론 꼴도 보기 싫지만 we can't halp loveing... 그래서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내레이션)" "선우야! 밖에 비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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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예술의 카테고리를 문학, 미술 음악으로만 본다면 내게 있어서 가장 취약한 것이 음악인 것 같습니다. 나는 노래방 가는 것조차도 질색하지만 조용필 씨 노래는 가끔씩 즐겨 듣는답니다. 작은 거인 조용필이 2005도에 평양 유경 정주영 체육관에서 펼친 대중가요 공연을 통해 그의 음악 인생의 꽃을 피웁니다. 물론 저도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경직된 분위기가 서서히 풀리면서 7천 관중이 기립박수를 치고 환호하는 것을 보는데 가슴에서 뭉클한 것이 올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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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를 듣다가 울어보기는 처음입니다. 대중음악이 이념과 이데올 기를 뛰어넘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어쩐지 화려하다 했더니 이번 무대 장치를 위해 5톤 트럭이 38대가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내게 있어 조용필은 마이클 잭슨을 능가합니다. 나는 용필이 형이 좋습니다. 그는 인생의 희. 노. 애. 낙을 아는 남자입니다. 그는 사랑을 압니다."사랑 눈 감으면 모르 리~ 사랑 내 오늘은 울지만 다시는 울지 않겠다." 그는 고독도 압니다."사랑이 고독한 이유는 운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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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가끔 쓰는 이니셜은 자기 Q를 내 Q로 착각하게 만들더니 나를 영락없이 푸른 시절로 데려다주고 말았습니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아, 지금 나는 지천명의 꼰대가 아닌 윤 초시 댁 증손녀를 사랑한 소년이고 싶습니다. 아무래도 올 겨울엔 피터 팬 증후군으로 심한 몸살을 앓을 것만 같습니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중략)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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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 없이 혼자 굴비 뜯어 먹은 동일이가 일화의 대 반격을 받았고, 좀생이 금성전자 사장이 궁상떨다가 요절복통 바가지를 긁혀 삐쳤지만 일화도 성균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캐릭터가 분명합니다. 아, 나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생각해 보니 오랜 시간이 만들어준 익숙함과 내 것과 편안한 내 사람만이 때론 지겹고 초라해 꼴도 보기 싫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나를 신뢰해 줄 있는 유일한 그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2.
눈 대신 비가 내린다. 걸랑맞게 내리는 비는 계절의 결단을 유예시키고, 사람의 마음을 과거 쪽으로 기울게 만든다. 내란 재판이 연기되고, 장례의 길 위에서 노래가 불리고, 나는 별 불편도 없이 1년 치 유료 결제를 한다. 노블레스 노블리주라기엔 소박하고, 헌금이라기엔 사적이지만, 어쨌든 이 모든 선택은 ‘익숙한 것에 대한 신뢰’에서 비롯된다. <응답하라 1988〉은 바로 그 신뢰를 다룬다. 이 드라마는 서사를 밀어붙이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늘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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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회수권, 토큰, 빨간 20-2번 버스, 애매하게 잘린 회수권의 일탈, 에어 조던 하나로 계급이 나뉘던 교실, “오늘부터 공부할게”라는 선언이 곧 집안의 태풍이 되던 시절에 이 모든 것은 사건이 아니라 생활의 잔여물이다. 그래서 강하다. 정봉이의 복권 당첨 시퀀스는 노골적일 만큼 길다. 이게 협찬이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공중파가 ‘인생 역전’이라는 신화를 이토록 집요하게 재현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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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이야기, 유전무죄 무전유죄, 단속의 칼바람을 다 지나온 시대임에도 인간은 여전히 “한 방”을 꿈꾼다. 그 욕망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끌어안은 연출은, 불편하지만 정직하다. 쌍문동의 어른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다. 동일은 철없고, 성균은 과장되며, 일화는 늘 참다 터진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다. 남편은 못 바꿔도 우산은 바꿔볼까 하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는 일화의 독백은 이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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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것이 좋아 보여도, 결국 내 몫은 내 삶 안에 있다. 아이들은 더 복잡하다. 덕선의 선언은 용기이자 무모함이고, 정환의 까칠함은 보호 본능의 변주이며, 선우의 젠틀함은 어른 흉내와 외로움의 합성이다. 택은 늘 늦고, 늘 조용하며, 늘 상처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라인을 헷갈린다. 선우-덕선인가, 정환-덕선인가, 택-덕선인가? 물론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된다. 사랑의 서사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골목 어귀에서 몇 분간 숨죽이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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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후반부, 조용히 흘러나오는 노래는 결국 <조용필〉이다. 나는 음악에 약하다. 노래방도 싫고, 유행에도 둔감하다. 그런데 조용필의 노래 앞에서는 무장해제가 된다. 2005년 평양 공연에서, 경직된 7천 명이 서서히 일어나 박수를 치던 장면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대중가요를 들으며 울었다. 그건 음악이 아니라 통과 사건이었다. 이념과 체제를 건너, 세대를 건너, ‘나’라는 개인의 푸른 시절로 나를 데려다 놓는 힘. 사랑이 고독한 이유는 운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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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장을 이해하게 되는 나이가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이 노래를 들을 자격을 얻었는지도 모른다.<응답하라 1988〉이 결국 말하는 것은 이것이다. 오래된 내 것만큼 지겹고 초라해 보이는 것도 없지만, 익숙함과 편안함을 통과한 관계만이 끝내 나를 안아준다. 그래서 우리는 돌아간다. 쌍문동으로, 비 오는 날로, 그리고 아직은 어린가 봐라고 말해도 괜찮았던 시절로. 이 서평을 쓰는 당신의 성격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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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nostalgia에 취하지 않는다. 대신 기억을 현재의 윤리로 다시 써낸다. 그래서 이 글은 회상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견디기 위한 사유의 기록이다. 비가 와서 다행이다. 눈이 왔다면, 아마 너무 깨끗해서 이만큼 솔직해지진 못했을 테니까. 오래된 것들은 왜 늘 초라해 보이는데, 결정적인 순간마다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가?
2026.1.11.sun.악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