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속뜻 논어
【국역 후기】
논어를 읽지 아니하면 지성인이 될 수 없다. 중국에서는 1990년부터 논어를 초중고 학생들의 필독서로 삼고 있다. 논어에 대한 주석 작업이 수없이 이루어졌다. 한나라 때부터 청나라 말까지만해도 총 1,1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論語注疏≫ 7쪽). 근현대 저작을 합치면 2,000종이 훨씬 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논어를 국역하는 일은 조선 선조 21년(1588)에 시작되었다. 그 때 나온 ≪논어언해≫(論語諺解)를 필두로, 지금까지 약 300여 종의 논어 번역서, 해설서가 줄이어 나왔다.
그러나 논어 전문을 우리말로 하루 이틀 만에 줄줄 다 읽을 수 있도록 편찬된 책이 없다. 그럼에도 논어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다. 그래서 이 책을 엮게 되었다. 우리말로 속뜻을 깊이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기에 『우리말 속뜻 논어』라고 이름 하였다. 498장의 대화록을 드라마 대본처럼 인물, 사건, 배경이라는 3대 요소에 입각하여 간단한 지시문을 첨가하였다. 그래서 ‘전광진교수가 드라마로 엮은’이라는 말을 앞에 덧붙였다.
논어 국역의 역사는 400년이 넘는다. 오랜 역사에서 처음 시도된 네 가지 특징을 간단하게 소개해 본다. 【일러두기】와 중복을 피하기 위하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첫째, 처음 입문하려는 분을 위하여 가급적 쉬운 우리말로 옮겼다.
둘째, 전후 상황을 이해하기 쉽게 드라마 대본처럼 엮었다.
셋째, 국역한 논어만 읽어도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더 깊이 알고 싶은 분을 위하여 원문을 찾기 쉽게 배치하였다.
중국 언어학, 문자학, 훈고학, 음운학 등을 예전에는 소학(小學)이라고 하였다. 필자는 소학을 전공하였지만 대학(大學) 분야에 속하는 논어에 대하여 남다른 사랑과 애착을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 지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런 것처럼! 필자의 논어 사랑은 고등학교 3학년(1973) 때 한문 시간으로 소급된다. 한문 시간에 논어 원서를 완독한 것은 아니었다. 짧으면서도 깊은 의미가 담긴 중요 명언을 중심으로 선정하여 풀이해주신 선생님의 예지 덕분에 한문 과목을 특별히 좋아하게 됐다. 그런 싹이 있었기 때문에 남들이 어렵다고 피하는 한문학, 중문학 공부에 남다른 재미를 느끼게 됐다.
이 책을 엮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1999년 1학기로 소급된다. 경희대학교에서 6년간 재직하다가 모교인 성균관대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97년 3월이었다. 유학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학교에 재직하다보니 유학 경전의 으뜸인 논어에 관심을 지닌 교수님들이 많았다. 그래서 10명이 뜻을 모아 논어 스터디를 하게 됐다. 매주 목요일 아침 8시부터 10시까지 독회를 하였다. 유학과 김성기 교수, 문헌정보학과 신승운 교수, 사학과 박기수 · 하원수 교수, 중문과 김경동 · 변형우 교수, 가정학과 조희선 교수, 사회복지학과 박승희 · 이혁구 교수 이상 10분이 『논어 부언해』(論語 附諺解, 全三冊, 1990, 學民文化社)를 텍스트로 삼았다. 돌아가며 발제 발표를 하고, 난제는 좌장을 맡은 신승운교수가 풀어주었다. 신 교수님은 서지학이 전공이지만, 사서오경을 거의 외울 정도로 해박할 뿐만 아니라 주자(朱子) 주는 물론 세주(細注)도 줄줄 읽고 바로바로 해석할 수 있을 정도로 한문 해독력이 대단히 뛰어났다. 현재는 한국고전번역원 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스터디 그룹 활동은 2학기 만에 중단됐지만 논어 사랑은 끝없이 이어졌다. 2010년 2학기에 새로운 인연이 싹텄다. 유학대학 박사반 학생 2명이 나의 대학원 수업(중국어음성학)을 들으려 왔다. 그 중 한 학생인 윤상철 박사는 출판사 대유학당을 직접 경영하면서 『손에 잡히는 논어』 를 2009년 4월 5일에 출간하였다며 나에게 한 권을 주었다. 이 책을 받아든 순간 보물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번역을 알차게 잘 하였고, 특히 손에 들고 다니기에 좋은 수진본(袖珍本)이라서 더욱 좋았다. 그래서 여러 권 더 구입하여 승용차, 연구실, 집, 포켓, 등산 백에 한 권씩 따로 넣어 두고 짬만 나면 읽었다. 그리고 식구, 제자, 친구, 지인들에게도 선사하였다. 특히 며느리에게 한 권을 따로 주어 읽어 보다가 마음 드는 글자를 하나 골라두게 하였다. 그래서 ‘온화할 은’(誾)자가 손녀 이름에 쓰이게 됐다.
2013년에서 2014년까지 2년간은 강의와 연구 외에 문과대학 학장이라는 행정업무까지 맡게 되어 논어 공부에 할애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조금 적었다. 다행히 2015년부터는 여유 시간이 생겨서 교내 교수님들과 논어 독회를 다시 결성하였다. 문헌정보학과 신승운 교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경제학과 김준영 교수(제20대 성균관대 총장, 현 성균관대 이사장), 법학과 박광민 교수(법학대학원장 역임), 경영학과 차동옥 교수(국제처장 역임), 이상 5명이 매주 수요일 오전 10시에서 12시까지 『손에 잡히는 논어』를 공부하였다. 논어의 대가인 유천(有泉, 신승운 원장의 아호) 선생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참 많았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해 본다.
중국 속담에 “半部論語, 治天下(반부논어, 치천하)”란 말이 있다. “논어, 반만 읽어도 천하를 다스린다.”는 뜻이다. 실제로 그렇게 한 인물이 있었다. 송나라의 개국공신이자 유능한 재상이었던 조보(趙普 922-992)이다. 그는 송나라 태조(960-974), 태종(975-996) 2대에 걸쳐 재상을 지내면서 많은 업적을 올렸다. 어렸을 때 가난하여 많은 책을 읽을 수 없었다. 오로지 논어만 열심히 읽었다. 두 임금을 모시고 태평천국의 기반을 닦은 그가 겸손하게 이렇게 말했다. “논어 20편 가운데 나는 반 밖에 읽지 못했소! 그래도 태조 임금이 천하를 평정하는 일을 보좌할 수 있었소!”(論語二十篇, 吾以一半佐太祖定天下). 그래서 “半部論語, 治天下”란 말이 생겨났고, 유학 통치의 명언으로 지금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1900년 이후 중국 정부가 논어를 초중고 학생들의 필독서로 지정한 것도 이런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책을 백번 읽다보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이 말은 본래 “讀書百遍, 其義自見”(독서백편, 기의자현)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고, 송나라 주자(朱子, 朱熹 1130-1200)의 글(<訓學齋規讀書寫文字>)에서 나온 말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때만 해도 논어 원문을 수백 번 읽어서 완전히 외우는 선비들이 참으로 많았다. 그것이 학자로 가는 필수 코스였다. 그런데 서당 교육이 학교 교육으로 바뀐 요즘은 그렇게 할 여건이 못 된다. 하지만 논어에 대한 열혈 팬이 의외로 많다. ‘논어를 백번 읽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讀論百遍, 治天下)’ 국가적 인재를 양성하는데 이 책이 일조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글을 쓰는 일은 재미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동반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편찬하기 위하여 교정하는 작업은 참으로 따분하기 짝이 없다. 그런 어려운 일을 도와준 두 분이 있다. 1차 교정 및 교열 작업을 도와준 전 동아일보 교열기자 최영록 선생, 2차에서 5차까지 교정 작업을 함께 하며 오타와 오류를 찾아내어 한 없는 기쁨을 안겨준 민기식 선생, 두 분의 고마움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특히 민 선생님의 따님(고3, 민현지)이 고전에 관심이 많아 바쁜 학업에도 이 책의 초고를 완독하며 젊은이로서 참신한 반응과 소감을 여과 없이 알려준 것이 필자에게는 천군만마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국내 굴지의 북디자이너인 조의환 선생(전 조선일보 편집위원)에게도 고마움을 표한다. 덕분에 표지는 물론 본문의 서체도 현대적 미감을 지니게 되었다. 논어라고 하면 꼬리 타분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산뜻하고 말끔한 디자인으로 깨끗이 씻어주었다.
우리나라 지성인의 논어 입문에 ‘디딤돌’이 되고자 원문을 새롭게 엮은 신편(新編)이자, 드라마 대본처럼 실감나게 새로 옮긴 신역(新譯)이 되도록 애썼다. 그러나 완전무결한 완역(完譯)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강호 제현의 많은 질정으로 거듭거듭 새로 나게 되기를 소망해본다. 이 달 말로 정년을 맞아 교수 생활은 끝이 난다. 하지만 논어 사랑, 논어 공부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논어를 1번 읽으면 지식인이 되고, 10번 읽으면 지성인이 되고, 100번 읽으면 지도자가 된다. 논어 애독자 여러분이 지도자가 되어 앞으로 우리나라가 더욱 크게 발전하기를 빌고 또 빈다.
2020. 8. 19
全 廣 鎭
【주요 참고 문헌】
1. 『손에 잡히는 논어』, 대유학당 편역, 대유학당 발행, 2009.
2. 『論語譯注』 楊伯峻, 中華書局(北京). 2017.
3. 『新完譯 論語』 張基槿 譯著, 明文堂(서울). 1985
4. 「공자세가」(『史記世家(下)』 417-455, 정범진 譯), 도서출판 까치, 1994.
5. 「중니제자열전」(『史記列傳(제7)』 59-88, 이성호 譯), 도서출판 까치, 1994.
6. 『懸吐完譯 論語集註』, 成百曉 譯註. 전통문화연구회. 1998.
7. 『논어』 유교문화연구소 옮김,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12.
8. 『譯註 論語注疏』 鄭太鉉 譯註, 전통문화연구회. 2013.
9. 『懸吐完譯 論語集註』, 鄭太鉉 譯註. 전통문화연구회. 2018.
10. 『譯註 孔子家語』 許敬震 責任翻譯, 전통문화연구회. 2018.
11. 『論語 附諺解』(全三冊, 影印本) 學民文化史. 1990.
12. 『희곡창작의 실제』, 이재명·이기한 편역. 평민사. 1997.
13. 『희곡작법』, 레이조스 에그리/김 선 옮김. 청하(출). 1995.
※ 추신: 늘 휴대하여 짬 날 때마다 읽기에는 1번 책이 안성맞춤이며, 학술적으로 입문하기에는 9번 책이 최적격 임. 12번과 13번은 논어와는 무관하지만, 드라마 대본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말로 옮기며 지시문을 설정할 때 참고한 것임. 희곡 작품 가운데 지시문이 가장 많이 달려 있는 헨리크 입쎈의 「인형의 집」, 「유령」 등도 참고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