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산업의 초석을 놓다‐실업가 이한상
이한상은 1917년 경기도 개풍군 임한면에서 아버지 이태호, 어머니 이희전의 3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본관은 전의 이씨(全義 李氏)2)이고 태사공(太師公) 31대손이다. 시조의 종묘(宗墓)가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유천리에 있는데 1968년 3월 3일 문중에서 ‘종인한상송덕비(宗人漢相頌德碑)’라는 송덕비를 세웠을 만큼 이한상은 문중의 주요 인물로도 꼽히고 있다. 이는 그가 문중에서 단순히 부유한 실업가 정도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라 훌륭한 인품과 사회에 대한 공헌이 남달라 문중을 빛냈다고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고 국민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농사를 짓는 부모의 만류를 무릅쓰고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처음에는 용산구 용문동에서 지냈으며, 1938년 경기공립공업학교를 졸업했다. 경기공립공업학교는 1910년 개교한 공립어의동실업보습학교를 모체로 한다. 1944년 경성공립공업학교, 1946년 6년제 경기공업중학교, 1974년 경기공업전문학교, 1979년 경기공업전문대학, 1988년 서울산업대학 등의 개편 과정을 거쳐 2010년 지금의 서울과학기술대학교가 되었다. 1938년 경기공립공업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동안 사업 실무를 익힌 이한상은 1946년 비교적 젊은 나이인 29세에 풍전산업주식회사를 창립, 본격적으로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사실 이한상의 삶에서 불교를 떼어놓고 보면 그는 우리나라 굴지의 건설 사업가로 기억되어야 한다. 풍전산업주식회사가 번창하자 1961년 대한전척공사를 창업하여 직원 3,000명이 넘는 한국 최대의 토목건축회사로 키웠다. 이후 그는 사업가로서 전성기를 맞아 각종 건설사업을 성사시켰다. 광화문 네거리의 ‘랜드마크’ 중 하나인 정부종합청사를 비롯해, 서울 광교 옛 조흥은행 본점, 서울 인현동 풍전상가 같은 건물과 섬진강댐, 팔당댐, 경부고속도로 등의 건설이 대한전척공사가 시행한 건설사업이었다.
이 중 풍전호텔(현 호텔 PJ)을 포함한 풍전상가는 10층 건물로 세운상가 8개 동의 일부로 지어졌는데, 지금은 부근의 인현상가 등과 함께 서울 중구의 역사문화자료가 되어 있다. 그는 이 같은 성과와 건설업계에서 얻은 신망을 바탕으로 1964~1968년까지 대한건설협회 회장을 맡았고, 사업 공적이 인정되어 1966년 정부로부터 5 · 16 민족상(산업 부문), 1970년 고속도로 건설 유공자로서 석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출처] 이한상,불교현대화 초석 다진 실업가|작성자 수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