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랭이가 물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고 했지.>
꾼은 무서운 생각을 떨쳐버고 흥분하거나 뛰면 피가 빨리 돌아 더 위험하다는 생각에 일부러 침착하게 큰 길 쪽으로 어슬렁 어슬렁 걸어나와 휴대폰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시간이 몇분이나 지났는데도 전처럼 어지럼이나 메스꺼움이 없었다.
물린 자리를 만져보니 아프지 않고 약간 피가 배어 있었다.
<거참 이상하네. 그러고 보니 벌이 아닐 수도 있어.>
다시 일하던 자리로 돌아가 보니 몸이 날씬하고 길쭉한 벌레들이 날아다니는데 녀석들의 소행인 듯 싶었다.
<또 물면 귀찮으니 어찌한담>
공구함을 뒤져보니 근사한 양파망이 있어서 뒤집어 쓰고 줄을 잡아당겨 묶었다. 진즉 생각했으면 깔다구 같은 녀석들에게도 자유로왔을 것인데 역시 돌머리는 잘 안 도는군.
“하하 재밌네요. 망 뒤집어 쓰고 뭐해요?”
개사장이 개밥을 주다말고 하하 웃었다. 목에 수건 두르고 녹색 양파망을 뒤집어 쓴 폼이 우스워 보였던 모양이었다.
“풀이 많아서 매고 있는데 무슨 벌레가 깨물어요.”
“콩이 아주 잘 나왔네요.”
“나오긴 잘 했는데 너무 약해서 큰일이에요.”
“콩 심어 봐야 큰 소득도 없는데 일을 열심히 하는군요.”
“평소에 속이 더부룩하고 소화도 안되었는데 틈틈이 나와 활동을 하니 좋던걸요. 취미삼아 운동삼아 하는 것이지요.”
꾼의 솔직한 이야기였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빼고는 별로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농부가 되어서도 그렇지만 학교시절 체육있는 날은 비가 내려주길 소망했었다. 운동신경이 따라주지 않아서인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축구, 배구에 끼려고 해도 공을 보면 헛손질 헛발질 하기 일쑤라서 그때 기가 죽어서인지 시합을 하는 것과 시합을 구경하는 것조차 싫어했다. 그러니 체육시간이 되면 딴 애들이 하는 것만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그냥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산책이나 가벼운 등산 정도이니 그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거의 숨쉬기 운동체질이 되었다. 나이 사십이 넘어서니 팔다리가 뻑적지근할 때도 있었고 관절에서 딱딱거리는 소리가 날 때는 움찔 놀라기도 했다. 다행히 체질에 맞는 사무직종을 천직으로 알고 이십여년간 근무했으니 그건 천행인 듯 싶었다.
주말농사를 시작하고부터 꾼은 자신이 움직일 수록 힘이 난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사람들은 격렬한 밭일을 하면 한 두시간 만에 녹초가 되어 나가떨어지는데 꾼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아주 힘들면 쉬고 잠깐 쉬었다 하면 그리 힘들지 않았다. 땀을 많이 흘리고 집에서 샤워한번 하면 별다른 피곤함이 없이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이십 몇 년간을 끼고 살았던 위장병이 없어졌다는 게 즐거웠다. 전에는 조금만 과식하면 소화제 없이는 견디질 못했으나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바로 소화되니 음식먹는 재미가 쏠쏠했다. 꾼에게 주말농사는 제2의 천직이랄까? 개사장과 담배한대 피고 호밀깎고 집에 돌아오니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이 돕는군.
에위니아 태풍이라고 했다.
간밤에 바람이 어찌나 세게 불었는지 3미터 높이나 되는 서까래 끝까지 올라갔던 능소화 덩굴이 자빠져 있었다. 꽃망울들을 많이 달고 있어서 조금 있으면 피어날 것들이라 꾼은 조심스럽게 다시 묶어주었다.
<태풍이 지나갔다고 했는데 웬 비가 이렇게 내리나?>
TV에서는 태풍이 가져온 장마비라고 떠들어댔고 전국의 물난리를 방송했다. 그 비가 삼, 사일은 내렸던 듯 싶다. 장마비가 그야말로 된통 내렸다.
<물구경이나 가 볼까?>
비가 삐즘한 틈을 타서 꾼은 트럭을 몰고 밭쪽으로 향하였다. 흥양천변에 주차장까지 성난 물이 펑펑소리를 내며 쓸고 내려가고 있었다. 밭에 도착하니 온통 물바다이다.
일주일 전 호밀을 베어놓은 자리에 콩이 곱게 서있질 못하고 이리저리 넘어져 있었다.
<콩도 목을 쳐 주어야 할 것을 쯧쯧 금년 농사는 이렇게 망해 먹는구나.>
혀를 끌끌 차보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어르신, 이 콩 가망이 있을까요?”
“괜찮을 거요. 키큰 거 살짝살짝 베어주면 다시 일어나던데.”
처음에 밭구경왔을 때 조언을 많이 해준 따발이 박노인이었다. 노인도 밭의 안위가 걱정되어 나왔던 모양이었다. 이천 오백평이라고 하는데 그 곳도 물난리가 났다. 평탄작업을 했는데도 가운데 부분은 우묵하여 물이 출렁출렁했다. 골을 만들고 옥수수를 심었다. 꾼의 밭에 인접한 곳은 서리태를 심어 놓았다.
문제없다는 따발이 박노인의 말에 적이 안심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형 모레 토요일이지? 콩밭 매러 와.”
동생이다. 불세례로 풀을 다스린지 한달 정도인데 또 밭을 매야 한다고 했다. 불맞은 바랭이는 죽었는데 여뀌풀이 장난아니게 돋아나서 일꾼사서 매야 한다고 한다.
꾼은 토요일 아침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어제와 그저께는 화창했는데 토요일 아침은 좀 꾸무럭했다.
꾼이 산밑 밭에 도착하니 난장판이었다. 산을 타고 내려온 물이 흘러내려 정강이 깊이만큼 골을 파내렸고 골마다 호박돌과 자갈들이 흉하게 깔려 있었다. 골에는 먼저 보았던 바랭이풀을 대신하여 키가 크지는 않아도 여뀌가 깔려 있었다.
할머니 일꾼이 열 명정도는 된 것 같았다. 쪼그리고 앉아 풀을 매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였는데 해가 간간히 비치더니 점심 때부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작업을 중단하려고 생각하면 그치고 다시 시작하면 내리는 여우비였다. 비를 맞으며 저녁까지 열 명이 작업했는데도 반 정도 했다. 장화 속에 들어있는 발이 팅팅 불어 있었다.
가렵고 따가왔다.
발가락 사이가 갈라져 있었고 위쪽에 수포가 돋아나 있었다. 며칠 전부터 괴롭혀 온 무좀 때문인가 싶었다. 더운 여름날 장화를 신고 작업할 때 땀이 채여서인지 발가락 사이가 가려웠다. 민간요법을 보니 쇠비름 삶은 물에 담근다는 얘기도 있었고 목초액에 담가서 없앴다는 이야기를 접하고는 그대로 실행했었다. 식구들이 냄새 때문에 아우성치는 가운데 목초액에 담갔을 때는 시원한 것 같다가도 완치가 되지 않더니 비오는 날 풀뽑았다고 발가락 사이가 갈라져 조금만 건드려도 참기 힘들 정도로 쓰렸다. 급기야 왼쪽 발가락에 콩알만 한 물집이 잡히고 발가락 사이가 갈라지니 절룩거리는 신세가 되었다. 아이고 아파라.
<이거 안 되겠네. 병원 가봐야지.>
꾼은 다음날 바로 피부과 의원에 직행했다.
“이거 이렇게 되도록 어떻게 참았어요. 앞으로 한달간은 바깥에서 활동하지 마시고 실내에서도 맨발로 지내세요?”
“한달씩이나요? 바빠서 안되는데요.”
“지금 저와 타협하자는 겁니까. 타협할 일이 따로 있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치료기간이 더 오래 걸릴 거요.”
<지가 뭐 검찰서기인가, 으르딱딱거리는 의사는 이곳에서 첨 보겠군. 환자도 손님인데 내 참>
의사는 상처에 소독하고 주사주고 한번 먹으면 보름 후에 다시먹는 약을 처방해 주었다. 그러면서 내일 또 와서 상처소독하라고 했다.
“상처소독은 병원가지 않아도 돼요. 내가 해 줄게요.”
아내가 치료를 해 주겠단다. 꾼에게는 아내가 천사였다.
그 흉측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소독하고 작은 알약을 꺼내 가루로 만들어 솔솔 뿌렸다.
“그건 무슨 약이오?”
“엄마가 주신 나병환자약인데 무좀에 좋다는군요.”
으윽 나병환자약이라니, 무좀에 무슨 나병환자약을 바르나? 아침저녁으로 나가던 일터에 한달이나 나가보지 못하니 꾼은 몹시 안달났다.
16부에 계속합니다.
첫댓글 제2의 천직~~~~~그래서 일을해도 피곤함이 없는거지요. 저도 일하고 집에와서 수확한거 아니 새싹만 봐도 피로가 없어지는걸보고 전생에 농부가 아니였나 그런생각했어요.
아마 주인장님도 전생에 농부였을꺼에요.
열심히 하세요...
ㅎㅎㅎㅎㅎㅎㅎ
서정남님이 재밌는 말씀하셨군요
전생에 농부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