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병 일기(11)
-0.19입니다
양성자 치료를 마친 이후 처음으로 나서는 병원 길이다. 시험을 치러 가는 기분이라 할까, 합격자 발표를 보러 가는 마음이라 할까. 궁금하기도 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 한 마음으로 차를 타고 내려서 또 타고 병원에 이르렀다.
의사를 만나기 전에 채혈 검사가 먼저 예약되어 있었다. 해당 의학과에서 필요한 항목만 표출되면 되기 때문에 금식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채혈실로 가서 키오스크에서 접수표를 뽑아 차례를 기다렸다. 채혈 대기자가 많았다.
병원에 웬 사람들이 그리 많은가. 병원 복도가 피켓만 안 들었다뿐이지 군중들이 대오를 지어 무슨 시위를 하는 곳인 것 같기도 하고, 우리나라엔 모두 이 병원 이 병동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만 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으로 채혈 순서를 한참 기다려 채혈했다. 이 검사의 결과를 잠시 후 의사가 말해 줄 것이다. 그동안 공을 들인 일들이 어떤 결과로 나타날 것인가. 다시 키오스크에 접수하여 의사의 판단을 들을 차례를 기다린다.
의사의 진단을 고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또 어찌 그리 많은지, 대기실 의자가 빌 틈이 없었다.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차례를 기다리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동병상련을 같이할 사람들이 많다는 게 위안거리가 될 것 같기도 했다.
드디어 의사 옆에 오늘 나의 보호자로 나온 딸과 함께 앉았다. 의사가 모니터 속의 차트를 이리저리 뒤지듯 한참 살펴보더니 비로소 입을 뗐다.
“예, 경과가 좋습니다. PSA 수치가 0.19로 나왔네요,”
채혈실에서 넘어온 혈액 검사의 결과를 말하는 것 같았다. PSA가 21~25로 고위험 상황에 있었지만, 호르몬 치료와 방사선 치료 후 PSA가 0.19로 크게 감소했다며. 현재 결과는 좋은 반응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했다.
“그러면 다 나아 가는 겁니까?” 딸이 밝아진 얼굴로 물었다.
PSA란 병소에 생기는 단백질의 일종으로 정상적으로도 혈액 속에 소량 존재하지만, 병소에 이상이 생기면 이 수치가 상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것은 이상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뜻이지만, 수치가 정상 범위라고 해서 병인 세포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라 했다.
딸이 나보다 의사의 설명을 더 열심히 듣고 있는 것 같았다. 의사는 또 치료 후 병 세포가 완전히 없어졌는지, 일부 남아 있는지, 재발이 있을지는 앞으로의 PSA 추세와 영상 검사 등을 통해 판단해야 할 일이라 했다. 그 판단을 위해 MRI 검사하고 방사선학과 진단을 받아야 할 것이라 했다. 그건 이미 양성자 치료 마칠 때 예약했었다. 간호사와 향후 치료 일정 정하고, 약 처방전 받고, 주사 치료하고 가라 했다. 진료실을 나오는 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다음 일정은 방사선학과 진단을 받는 날, 그 진단에 이어 진료를 받기로 일정을 잡았다. 그 일정 속에는 8시간 이상 금식하고 와서 진료 2시간 전에 채혈 검사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 혈액 검사를 통해 PSA와 함께 테스토스테론 검사를 한다 했다. 나중에 들으니 테스토스테론 검사란 혈액 속 남성호르몬 양을 측정하는 검사라는데, 치료 중에는 그 수치가 낮을수록 치료 목적에 맞는다 했다.
키오스크에서 처방전을 뽑아 딸은 약국으로 약 지으러 가고, 나는 다시 주사 치료 접수하여 차례를 기다렸다가 엉덩이에 주사를 맞았다. 주사실에도 많은 사람이 주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의사에게 어떤 말을 듣고 와 주사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까. 나처럼 PSA 수치가 많이 낮아졌다는 희망적인 진단을 받고 온 걸까. 아니면 그 수치를 낮추기 위해서 힘겨운 주사를 맞으려 하는 걸까. 나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만,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고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해 보호자의 부축을 받거나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다행인 것 같았다. 혼자서 차례를 기다려 주사를 맞을 수 있고, 먼 길 차도 혼자서 타고 오가며 치료를 받을 수 있지 않은가. 특히 0.19라는 그 수치가 빛이 되어 나에게 안겨 오지 않았는가. 주사를 맞고 나와 그런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에 딸이 약을 지어 왔다.
오늘도 네가 애를 많이 썼구나. 내가 빨리 나아야 너희들 수고를 덜 수 있을 텐데, 너희들이 이리 애를 써주니 잘 낫겠지. 제 일에 바쳐야 할 시간을 나를 위해 이리 쓰고 있다. 병원을 나와 딸은 택시를 불렀다. 귀갓길 터미널로 가야 하는 나를 위해서다. 차비는 자동 결제될 거라 했다.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며 잘 모셔 달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다.
그래, 다음에 병원 길에는 오늘 의사가 한 “0.19입니다.”라는 말보다 더 기쁜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보자. 약 잘 챙겨 먹고, 식보食補도 잘하고 운동도 적절히 하면서 잘 조섭할게. 멀어져가는 차를 보며 섰을 딸이 떠오르는 순간 콧마루가 시큰해 왔다. ♣(2026. 9. 15)
첫댓글 선생님, 기쁜 소식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쭉 기쁜 소식만 이어지길 함께 기원하겠습니다. 어려운 치료 받으시느라 근념하셨습니다.!!!
염려해 주신 분들께서 보내주신 기원 덕분인 것 같습니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애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