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꽃들이 눈을 찔러댔다. 아카시아, 찔레꽃, 큰애기 젖가슴 같은 불두화까지. 한국화의 한켠을 걸어 들어갔다. 신선들은 만나지 못하고 훠이훠이 계곡과 들판을 지나 낡은 정자와 고택 속에서 정갈한 나를 발견한 시간이었다. 경남 함양, 떠나기 전 나비 축제로 유명한 함평인지 함안인지 그저 지인을 따라 흔쾌히 대답을 한 길 떠남은 경상도 억양의 곱상한 해설사를 만나고 나서야 덕유산, 백운산 물 거느린 지리산 아랫동네라는 걸 실감했다.
임진왜란 때 적장과 함께 진주 남강 촉석루에 몸을 던진 논개의 무덤을 찾아 참배했다. 전쟁 황망한 시기라 고향인 장수까지 가지 못하고 이곳 함양에 묻었다는 함양 문화원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논개의 무덤을 성역화 한 2년이 지나서야 논개의 남편이었던 최경회 장군 묘입을 알리는 표석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피라미드 모양의 묘역 중앙으로 대리석 계단이 가파르다. 큰 논개의 묘에 비해서 남편인 최경회 장군묘가 작고 뒤쪽에 있다는 것이 영켕기는 몇 분 원로 작가들은
“남자 입장에서 두고 가기가 영 그러네요.”
하며 정작 논개의 묘보다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살았다면 백살이 넘은 유관순이 누나라 불리는 역사책을 나는 꼬박꼬박 유관순 의사라 고쳐 가르치는 나의 열패감을 만회하며 토끼풀 꽃에 슬척 기분 좋은 웃음을 날리며 차에 올랐다.
쓰레질하고 있는 농부가 신고 있는 노랑색 장화와 청보리 밭. 흰 감자 꽃이 수더분하게 피어있는 길을 따라 한적한 용추계곡으로 들어섰다. 8Km나 이어지는 계곡엔 군자정과 농월정이란 정자가 꼿꼿한 선비의 모습으로 풍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름 10m의 거대한 몸집을 돌리며 함양을 대표하는 물레방아 공원은 우리나라 방아의 역사까지 설명되어 있었다. 물레방아가 옛날부터 있지 않았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물방아였고 물레방아는 실학자이자 열하일기의 저자 연암 박지원 선생이 청나라에 가서 기술을 배워와서 이곳 함양에 현감으로 5년동안 재직하는 동안 보급시켰다 한다.
초등학교 안에 연암 박지원의 묘가 있다.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서민으로서의 삶을 살았고 인본주의에 입각한 실학으로 산업사회를 지향한 실사구시의 합리적 가치관을 이루었던 연암 박지원. 그는 문장에 기술을 부리는 것을 경계하고 끊임없이 쓰고 또 그것을 현실에 반영하여 사회를 비판하고 올바로 세우는 것이 문학 본령의 길임을 열하일기와 소설에서 역설하였다.
솟을 대문 현판에 효자 정여 이름이 수북한 정여창 고택은 사랑채에 올라서면 온 마을이 다 보였다.
기와와 기와 상이 물 모으는 공간이 절묘한 지붕과 한판 판소리 장단이 펼쳐지면 좋을 장소인 누마루의 연륜이 고택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깊은 우물과 물에 패인 돌박의 시간을 지나 광과 아래채에 채워진 문고리에 쇠로된 무늬들이 살아 내리고 있었다.
시간은 쇠마저 바스러지는 낙엽으로 만든다. 오늘 내가 돌아보았던 기간, 함께한 사람들도 그러하리라.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돌아본 상림 숲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이 태수로 내려와 있을 때 최초로 심었다는 세계 최대의 인공 숲. 120여종은 활엽수로만 구성되어 있는 숲은 오리나 이어진다.
곳곳에 물이 흐르고 돌다리가 꼬불꼬불한 길이 이어지고 정자와 맨발로 걷는 자갈길이 오종종 예쁘다. 하늘이 초록으로 덮여있는 길 끝에 이 지방이 낳은 의병과 인물들의 두상이 청동으로 조각되어 나란히 서있다.
나라의 위기에 의연히 맞섰던 뜨거운 피의 고장인 이곳엔 걸출한 의병장들이 많았다. 일두 정여창을 기리기 위한 남계서원과 김일손을 기리는 청계서원이 나란히 서 있는 고장. 경상도 쪽 지리산 끝자락에 포근히 감싸있는 함양은 학문과 함께 올 곧은 정신의 뼈대가 탄탄한 곳이었다.
오도재를 넘어 서암정자를 찾았다. 화강암 굴에 부처와 보살들을 조각했다는 설명으로 들어간 입구부터 사방천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불심 깊은 조각가가 10년 동안 식솔들 식비만 받고 제작했다는 공력 앞에 그저 넙죽 넙죽 절을 했다.
부처님에게 보다 예술혼을 불태웠던 조각가에게 머리가 저절로 숙여졌다. 기둥과 천장과 바닥 그 모두가 조각으로 되어있었다.
인간의 위대함을 마음 모으는 일의 놀라움을 체험하고 나니 소름이 온 몸에 돋았다. 몇 년만의 전율인지 몸을 떨었다. 내려오는 길 지리산 높은 봉우리 청색을 눈에 담았다.
다 자라면 사방으로 넘어지며 고개 숙인다는 양파 밭을 지나며 겸손함을 배웠다.
이틀씩이나 해박한 지식과 열정으로 우리를 지리산 정취에 빠져들게 해주었던 김성진 문화원장님의 활기에 참 행복했다.
굽이굽이 물도 산도 흐르는 함양. 이틀을 같이 보내며 바람도 눈빛도 같이 나누었던 추억도 말랑한 쇠붙이가 되기 전에 인연으로 새겨두자. 사암정자에서 가져온 꽃 잔디 보라색 빛은 그대로 내 책갈피에 살아 있다. 그 떨림과 전율로 사람들을 만나고 또 길을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