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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일시: 2021. 12. 20.~21.(월,화) - 음력(11. 17.~18.), 일출 07:34~일몰 17:17
●산행지: 금오지맥 2구간 졸업(부상고개-합수점)
●산행코스: 부상고개-신4번국도-공장지대-금오산주차장갈림길-전망바위-암릉-돌탑-암봉-697m봉-임도합류점-760m봉-삿갓봉안부-선바위-제2전망대-826m봉-금오산성-전망바위-갈림길-무명봉-암봉-갈항고개-벤치봉-우장고개-332.3m봉-갈항터널위-366.4m봉-457m봉-395m봉-봉곡마을갈림길-수점마을갈림길-412m봉-456.7m봉-제석봉/ 효자봉-제석리갈림길-국사봉-백마산-중부내륙고속도로-금계마을입구-돌고개-경부고속도로-하송마을입구-142.2m봉-송천령-국사봉-397m봉-꺼먼재산-점터고개갈림길-북봉산-꺼먼재산-대망2리갈림길-294.2m봉-283.1m봉-177.8m봉-173m봉-신촌고개-133m봉-174m봉-산막고개-186m봉-187.4m봉-백마산-33번국도-73m봉-고아농공공단-대망천 제방-어강마을-합수점
●먹거리: 빵 2개, 생수1리터, 콜라, 약식2, 양갱2, 단백질바2, 자유시간, 사탕20, 게비스콘3
●준비물: 바람막이, 고아텍스, 스틱, 헤드랜턴, 버프, 장갑, 구급약, 피부연고, 부직반창고, 충전지, 충전짹, 손수건, 휴지, 물티슈, 스패츠, 말방울, 비닐우의, 안대, 귀마개, 마스크2, 양말, 여분의류, 띠지27
●거리: 약 46.5Km
●소요시간: 29.34h
●누구랑: 나홀로
●경비: KTX35,100, 택시12,600, 저녁29,000, 발리모텔30,000, 아침(한식뷔페)6,000, 친구선물30,000, KTX35,100
●날씨: -2~13, 약간 흐림
●산행경과:
* 12. 20.(월) :
- 08:26 : 부상고개
- 09:43 : 760m봉
- 10:00 : 제1전망대/ 삿갓봉
- 10:13 : 제2전망대/ 거북바위봉
- 10:16 : 826m봉/ 군계(김천시 남면 - 칠곡군 북삼읍)
- 10:46 : 삼시군봉(김천시 남면, 칠곡군 북삼읍 → 구미시 남통동)
- 10:34~11:49 : 금오산성(887.3m)/ 금오산 갈림길
- 11:17 : 금오산(金烏山, 976m)/ 현월봉, 1등삼각점
- 12:36 : 갈항고개(葛項峴)
- 12:48 : 우장고개(牛場峴, 180m)/ 쇠바탱이/ 2차선포장도로, 통신탑
- 13:26 : 시등봉(366.4m)/ 삼각점봉
- 14:10 : 오봉대교갈림길
- 14:54~00 : 제석봉(帝釋峰, 512.2m)/ 삼리봉(아포읍 대성리, 남면 오봉리 → 아포읍 제석리)/ 효자봉(孝子峰)/ 산불초소
- 15:19 : 국사봉(國士峰, 480m)/ 관리봉/ 아야봉
- 15:38 : 백마산(白馬山, 433.2m)/ 효자봉/ 헬기장
- 16:19 :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금계(金鷄)마을
- 16:24 : 돌고개(石峴)
* 12. 21.(화) :
- 06:38 : 돌고개
- 07:57 : 송천령(松川嶺, 251m )/ 삼리봉(아포읍 송천리, 아포읍 인리 →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시계(김천 - 구미)
- 08:21 : 국사봉(國士峰, 318m)
- 08:51 : 송천산(397.2m)/ 사리동봉(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 고아읍 내예리, 구미시 부곡동)/ 시계(김천 → 구미)
- 09:07~37 : 꺼먼재산(400.7m)/ 삼리봉(고아읍 내예리, 구미시 부곡동 → 고아읍 대망리)
- 09:20 : 북봉산(北峰山, 388.5m)/ 등골산
- 10:17 : 깃대봉(283.1m)/ 삼리봉(고아읍 내예리, 대망리 → 신촌리)/ 삼각점봉
- 10:58 : 신촌고개
- 11:27 : 황산(凰山, 174.3m)
- 11:43 : 산막고개
- 11:59 : 186.8m봉/ 삼리봉(고아읍 황산리, 파산리 → 고아읍 오로리)
- 12:19 : 백마산(白馬山, 188.2m)
- 12:47 : 제일병원 사거리
- 14:00 : 금오지맥 합수점(선산읍 원리)
- 14:45 : 선주교(善州橋)/ 감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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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부구간거리
부상고개(4번국도)-3km-제1전망대-2.5km-금오산갈림길-(금오산 왕복 3.8km)-2.68km-우장고개-5.9km-효자봉/ 제석봉-2km-돌고개(경부고속도로)-2.8km-국사봉-2.1km-꺼먼재산(북봉산 왕복 1.9km)-6.7km-백마산-6.9km-합수점
* 구간거리
- 부상고개~돌고개 19.9km (금오산 경유시)
-. 부상고개~우장고개 12km (금오산 왕복 3.8km)
- 우장고개~합수점 34.5km
-. 우장고개~돌고개 7.9Km,
- 돌고개~감천 26.6Km
-. 백마산~합수점 6.9km
-. 선주교~합수점: 왕복 8.7km, 2시간
* 서울에서 부상고개 가는 방법
- 서울역~김천구미역: 05:30, 06:05, 06:35, 07:30,~19, 19:37, 21, 31,600~35,100, 1.31h
- 서울역~김천역: 18:38, 19:27, 19:33, 20:25,~05:56, 06:16, 16,400~24,500, 2.31~3.11h
- 김천역에서 10분 거리 김천공용터미널 군내버스 김천버스(054-432-7601)
- 김천공용터미널(농협 앞)~부상고개: 7시, 08:20, 10:20
* 합수점에서 서울 올라오는 방법
- 합수점~오로리: 도보 4km
- 오로리~구미역: 170번 버스, 20분 소요
- 구미역~서울역: 19, 19:29, 19:57, 20:31, 21:10, 17,900~26,700, 2:47~3:20h
- 김천구미역~서울역KTX: 17:27, 17:33, 17:42, 18:25, 19:12, 19:52, 20, 20:36, 21:35, 35,100, 1.30h
- 구미시외버스터미널~동서울: 16:30, 18시, 18:50, 19:30, 2.40h, 21,900
* 식수 공급지 및 산행 정보
- 부상고개: 매식가능
- 김천공용터미널~부상리: 13-6버스
- 김천시 율곡동 김천구미역: 택시 054-430-1100
- 김천택시: 054-430-1100, 054-434-5681
- 금오산서봉~정상왕복: 3.5km
- 금오산: 현월봉 약사암 샘터
- 성주군 초전면 택시: 054-932-1799
- 돌고개: 아포읍 편의점, 음식점, 발리모텔(3만원)
- 꺼먼재산~북봉산 왕복: 1.9km, 약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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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지맥 2구간은 중간지점 아포 돌고개 모텔에서 하루 유숙했습니다.
바로 앞에 뒷고기집이 있어 참소주에 한잔~ 역시 술맛은 혼술이 최고네요.
친구를 부를 수도 있었지만 민폐 끼치지 않고 혼자가는게 홀대모의 기본 모토인지라~
홀대모는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구름에 달가듯이 그렇게 혼자서 가는 겁니다.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충분히 살았다고 생각드는 나이입니다.
예전엔 그래서 환갑에 잔칫상 받았죠. 그러나 지금은 제 나이가 청년입니다. 일상이 아주 가볍고 좋습니다.^^
우리 홀대모는 형이상학적입니다.
남 의식하고 신경쓸 필요도 없고, 굳이 나를 내보이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여느 산방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며 패거리를 짓거나 인생 사는데 어느 쪽이 유리한지 눈치보는 것도 없고,
말 한마디에 서운해하고, 막걸리 한잔에 헤벌어지는 오욕칠정 희노애락 어느 정도 초탈한 분들이 사는 곳입니다.
홀대모의 중심은 오로지 산입니다.
사람에 기대하는 것도 없고, 실망도 하지 않기에 사람관계는 뒷전입니다.
산을 쫒다보면 사람은 굳이 사귀려하지 않아도 내곁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없어도 그만이구요.
그게 홀대모의 매력입니다. 그래서 저는 홀대모가 좋습니다.^^
금오지맥 졸업은 백마산에서 오로리로 내려가 공단을 가로질러 대망천 뚝방길로 합수점에 닿았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산자분수령원칙을 억지스럽게 끌어당기는 그런 합수점은 아니었구요.
백마산 이후론 어느 곳에 닿든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단지 감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이 가까이 있고 그 나름 특별한 의미가 있기에 합리적으로 합수점으로 향한겁니다.
한달음에 합수점까지 달려나온 친구와 금오서원 둘러보고, 선주교에 들르고,
지났던 제일병원 사거리 가마솥곰탕집에서 간단하게 뒤풀하고, 드라이브 시켜줘 드라이브 하고...
여유있게 끝내고 여유있게 상경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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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지맥이 통과하는 동네
* 김천시
김천시는 경북 서부에 있는 시이다. 동쪽은 금오산, 서쪽은 황악산으로 백두대간의 일맥이 험준한 산악 지대이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며, 대전과 대구의 중간 지점에 있다. 율곡동 일원에는 한국도로공사 등이 이전하여 혁신도시가 조성되고 있다. 시청 소재지는 신음동이고, 행정구역은 1읍 14면 7동이다. 조선시대 김산군(金山郡)의 김천면·군내면·미곡면 일대가 시로 발전한 곳이다. 김산군은 신라 때 동잠현(桐岑縣)으로 이곳은 눌지왕대에 아도(阿道)가 직지사를 창건하는 등 신라 불교전래의 통로가 되었던 곳이다. 757년에 김산현(金山縣)으로 고쳐 개령군 영현이 되었다. 1018년에는 경산부(京山府:성주)의 속현이 되었으나 1390년(공양왕 2) 감무를 둠으로써 독립되었다. 조선에 들어 성주의 속현이었던 어모현(禦侮縣:지금의 김천시 어모면 일대)을 병합했다. 제2대 임금인 정종(定宗)의 태(胎)를 안치했다 하여 군으로 승격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다. 별호는 금릉이었다. 김산군은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3등군이 되어 대구부 관할이 되었다가,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북도에 속했다. 1914년 군면 폐합에 의해 김산군·지례군·개령군을 통합하여 김천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20개면으로 조정했다. 이때 김산군의 군내면과 미곡면이 금릉면으로 통합되고, 김천면은 그대로 존속했다. 예천과 안동을 연결하는 경북선이 부설되던 해인 1931년에 김천면과 금릉면을 합하여 김천읍으로 승격시켰고, 1949년 김천읍은 대구에 이어 경상북도에서 2번째로 시가 되었다. 이때 김천군의 나머지 지역이 금릉군으로 개칭되었다. 김천시는 고려시대부터 충청도에서 추풍령을 넘어 경상도로 통하는 김천역이 설치되어 교통의 중심지가 되었던 곳이며, 조선 후기에서 일제시대 초기에는 김천장이 대구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하여 활기를 띠었던 곳이다. 1905년 경부선, 1931년 경북선, 1918년 경부국도,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통과함으로써 더욱 교통의 요충지가 되었다. 그러나 김천시는 통과지역의 성격만을 지니게 되었고, 신흥도시인 구미의 그늘에 가려 도시 및 시장의 기능이 침체되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대대적인 전국 행정구역개편으로 농촌지역이던 금릉군과 하나의 도농통합시를 이루어 김천시가 되었다. 시의 동북부는 모두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에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추풍령(秋風嶺, 1,111m)·삼도봉(三道峰, 1,177m)·대덕산(大德山, 1,290m)·눌의산(743m)·황악산(1,111m)·천덕산(986m) 등의 높은 산이 솟아 있으며, 삼도봉은 충북·전북·경북의 경계가 되고 있다. 남쪽에는 대덕산에서 갈라져 나온 수도지맥이 뻗어 있고, 수도산(修道山, 1,317m)·단지봉(丹芝峰, 1,327m)·국사봉(875m) 등이 주봉을 이루며 경남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쪽에는 도립공원인 금오산(金烏山, 977m)이 솟아 있어 구미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영암산(782m)은 김천시·칠곡군·성주군의 경계가 되고 있다. 동남쪽에는 백마산(716m)·압속산(870m) 등이 솟아 성주군과의 경계가 되고 있다. 또한 추풍령·면목령(面目嶺)·주치령(走峙嶺)·우두령(牛頭嶺) 등의 고개는 높은 산지를 가로지르며 인접지역으로 통하는 주요 육로가 되고 있다. 직지천과 감천은 이 지역의 주요 하천으로, 직지천은 황학산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흐르며 금릉평야의 관개용수원으로 이용된다. 모암동에서 직지천과 합류하는 감천은 남서부에서 북동부로 이 지역을 관통하며, 직지천·아천·율곡천·부항천 등과 합류하여 개령평야를 이루고 구미시에서 낙동강으로 유입된다. 이들 하천에 의해 형성된 개령평야와 금릉평야는 넓고 비옥하여 예로부터 경북 남서부지역의 주요곡창지대가 되어 왔다. [포탈에서 발췌정리]
* 칠곡군(漆谷郡)
칠곡군은 경북 서남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으로 군위군, 서쪽으로 성주군, 김천시, 남쪽으로 대구광역시, 북쪽으로 구미시와 접한다. 경상북도의 군 중에서 인구가 가장 많으며, 대구광역시의 위성 도시 중 하나이다. 조선시대에는 칠곡읍(1981년에 대구로 편입)이 칠곡군의 중심지였으나, 1914년 4월 1일에 인동군을 칠곡군에 합치고 군청을 왜관읍으로 옮긴 후 왜관읍이 칠곡군의 군청소재지이자 중심지가 되었다. 행정구역은 3읍 5면이다. 동부는 가산, 황학산, 소학산,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팔공지맥의 서쪽 끝에 해당하며, 서부는 금오산, 영암산, 서진산이 있으며 남북방향으로 관통하여 흐르는 낙동강의 양안에는 북삼읍, 석적읍, 약목면, 왜관읍을 중심으로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남류하여 금호강으로 유입하는 팔거천과 이언천을 제외하고는 모두 낙동강으로 흘러들며, 동류하는 경호천, 두만천, 서원천과 서류하는 한천, 광암천, 반계천, 동정천이 있다. 1978년 2월 15일에 인동면이 구미시에 편입되고 1981년 7월 1일에 칠곡읍이 대구 북구에 편입됨으로써, 칠곡군의 행정구역 면적은 크게 감소하였다. 칠곡군의 동부(동명면·지천면 등)는 대구광역시의 영향을, 북부(북삼읍·석적읍 장곡 지역·가산면 중 유학산 북쪽 지역)는 구미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데, 인근 대구광역시와 구미시의 도시 확장에 따른 도시 연담화 현상은 칠곡군이 대구와 구미로 파편화되어 해체될 지도 모른다는 위기에 봉착시키는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칠곡군은 왜관읍, 북삼읍과 석적읍 장곡 지역(중리·남율리·성곡리)이 증가한 인구로 인하여 도시적 토지 이용과 행정 수요가 많고 칠곡주민의 환경 여건이나 생활 양식 등이 이미 시 수준에 이르고 있어서 칠곡군의 시 승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제7조)에 따르면 군이 도농복합시가 되기 위해서는 단일 읍의 인구가 5만명 이상이거나 군의 인구가 15만명 이상이어야 하는데, 칠곡군은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시 승격을 바라는 칠곡군의 입장과 달리 중앙 정부에서는 2010년대 초에 칠곡군과 구미시의 통합을 추진한 적이 있으며, 지역 주민들은 구미시 인근에 위치한 북삼읍과 석적읍 장곡 지역 등 북부에서는 구미시로의 편입을 바라는 의견이, 왜관읍 등 그 밖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대구광역시에 편입되어 '대구광역시 칠곡군'으로 칠곡군이 유지되길 바라는 의견이 대체로 많다. 특히, 북삼읍(인평리·숭오리)의 경우에는 본래 북삼면에 속해 있었던 구미시 오태동과 단일 주거권을 형성하고 있어서 구미시로의 편입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 대구와 구미 등 대규모 소비지를 접하고 있어서 주곡 농업 외에 근교농업이 성행하여 참외, 포도, 배추, 오이, 부추 등이 많이 재배되고 있다. 최근에는 한우, 닭 등의 축산 농업이 증가하고 있고 표고버섯 등도 다량 생산되고 있다. 낙동강 주변 평야는 참외 재배지로 유명하며 양봉, 양계와 비육우 및 유우도 사육되고 있다. 관광자원으로는 가산산성, 유학산, 영암산, 금오동천, 금화계곡, 도개온천, 다부동전적기념관, 낙동강왜관 구철교(호국의 다리), 칠곡보, 가실성당(신부수업 촬영지), 구상 문학관, 왜관수도원, 신유 장군 유적지 등이 있다.
* 구미시(龜尾市)
대한민국 중남부에 있는 도시로 1970년 국가 수출정책을 바탕으로 내륙 최대 수출산업단지가 조성되어 발전했다. 주로 반도체·휴대전화·LCD·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 제품을 생산한다. 경부선 철도, KTX, 경부고속도로, 국도가 도시 안팎을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원활하다.동남쪽에는 칠곡군, 서쪽에 김천시, 북쪽에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을 접하고 있다. 백두대간 줄기의 군봉(郡峰)이 남쪽으로 흘러 뻗어 형성한 연악산맥(淵岳山脈)의 지맥인 수선산(修善山, 684m)·복우산(伏牛山, 509m)·원통산(元通山, 476m)·옥녀봉(玉女峰, 520m)·비봉산(飛鳳山)·삼봉산(三峰山, 448m) 등이 솟아 남쪽으로는 금오산(金烏山, 977m)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동쪽에는 팔공연산(八公連山)의 지맥인 유학산(遊鶴山, 839m)·청화산(靑華山, 701m)·냉산(冷山, 692m)·베틀산(369m) 등이 솟아 곳곳에 고산준령이 있다. 퇴적암으로 된 천생산(天生山, 407m), 응회암질 암층으로 구성된 봉두암산(鳳頭岩山, 327m)과 유학산으로 이어지는 산계가 급한 경사와 상당한 기복량을 나타내며, 그들 사이를 이계천이 동서로 개석(開析)하면서 충적층을 이룬다. 또한 북서부지역의 중앙부에는 감천(甘川)·해평천 등 크고 작은 지류를 합치면서 낙동강이 남류하고, 유역에는 기름진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선산분지를 이루어 농경지로 이용된다. 도문리의 냉일재에서 발원해 남서류하면서 해평면 도문리·월호리·낙성리·해평리를 관류하는 습문천(習文川)은 해평면 부근에서, 장천면 오로리·금산리·상림리를 흐르는 금산천과 여남리·상장리를 남서류하는 한천이 도심지에서 낙동강에 합류한다. 이 지역은 전근대사회에서 선산·인동의 두 지역으로 발전해 왔다. 이들 지역의 초기 역사는 분명히 알 수 없지만, 임수동·인의동, 선산읍 생곡리 등지에서 청동기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 이후 인간의 거주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회분화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삼국시대에 들어서는 백제와 신라의 영토확장으로 인한 각축장이 되었다가 점차 신라의 영역에 편입되어 일선군(一善郡: 선산지역)과 사동화현(斯同火縣: 인동지역)이 설치되었다. 후삼국시대에 들어와서 이곳은 후백제와 고려의 각축장이 되었는데, 907년(효공왕 11)견훤이 일선군과 그 남쪽 10여 성을 점령한 이래 후백제의 영역에 들어감으로써 후백제가 경상도 북부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936년(태조 19) 양국의 군대가 선산읍 동쪽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여 여기서 승리한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하게 되었다. 이때 이 곳의 호족 김선궁(金宣弓)이 왕건에게 귀부해 큰 공을 세워 중용되었고, 이후 그의 후예들이 이 지역의 대표적인 가문이 되었다. 995년(성종 14)선주(善州)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상주의 속현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일선현으로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어 해평군·군위현·효령현·부계현을 속현으로 거느리다가 지선주사(知善州事)로 승격되었다. 인동현은 1018년 경산부(京山府: 지금의 성주)의 속현이 되어 고려 말까지 계속 유지되어 오다가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어 독립행정단위가 되었다. 한편 1235년(고종 22)이유정(李裕貞)이 군대를 이끌고 해평에서 몽고군과 싸우다가 크게 패했고, 1380년(우왕 6)과 1383년에는 왜구의 침입을 받아 크게 피해를 입기도 하였다. 이 때 금오산성(金烏山城)과 선주 읍성(邑城)이 축조되어, 백성들이 안주하게 되었다. 1413년(태종 13) 지방제도 개편시 선주는 선산군으로 개명되었고, 인동현은 현명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각기 군수·현감이 파견되었는데, 선산군은 2년 뒤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당시 이 곳의 토지는 선산지역이 비옥한 반면 인동지역은 비옥·척박이 반반이며, 풍속은 선산은 화려하고 학문을 좋아한 반면 인동은 검솔하고 양잠에 힘썼다고 한다. 한편 고려 후기 이래 이곳의 선산김씨·해평윤씨·인동장씨들이 명문으로 등장했고, 길재(吉再)의 성리학이 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으로 이어지면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어 ‘인재(人才)의 부고(府庫)’인 영남지방 중에서 “영남의 인재 가운데 반은 선산에 있다(嶺南人才 半在一善).”라는 말도 나오게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장현광(張顯光)과 같은 성리학자가 배출되었다. 1895년 지방제도의 개편에 따라 선산군·인동군이 되었으나, 1914년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구미시는 과거 선산도호부 및 인동도호부의 일부 지역이 시로 발전한 곳이다. 구미라는 명칭은 조선시대에 이곳의 이름이 선산도호부의 상구미면과 하구미면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선산과 인동이 군이 되었으며, 1896년에는 경상북도에 속했다. 1914년 상구미면·하구미면이 구미면으로 통합되고, 인동군은 폐지되어 칠곡군에 병합되었다. 1963년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구미가 현재와 같은 공업도시로 발전하게 된 것은 1969년 경상북도가 지방공업 개발장려지구로 지정, 섬유단지인 1단지와 전자공업단지인 2단지를 조성하면서부터이다. 그후 1977년에 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인동지역이 개발되면서 1978년 구미읍과 인동면이 통합, 구미시로 승격되어 국내 최대의 내륙공업도시로 성장했다. 1995년 지방자치선거를 앞두고 국가경쟁력강화와 도시와 농촌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실시된 전국행정구역개편으로 선산군과 통합되어 새로운 구미시가 되었다. [통합포탈에서 발췌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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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오동천(金烏洞天)/ 지경리
금오산 하면 흔히 구미시를 떠올린다. 금오산 정상이 구미시에 속해있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산행이 구미시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금오산은 3개 시군인 구미시,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 있는 큰 산이다. 금오산 정상의 서남쪽 해발 800m 주변에 평탄한 지형을 성안분지라고 한다. 금오동천은 성안분지에서 산 아래로 이어지는 경북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 금오산도립공원에 속해 있는 계곡을 일컫는다. 금오동천은 총 4개의 폭포로 이루어져 있다. 계곡의 네 번째 폭포인 벅시소 주변의 암벽에 금오동천(金烏洞天)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동천이란 산 속의 골짜기가 크고 깊다는 뜻이다. 금오동천은 산성 내지 중성 마그마의 분출암인 유문암 내지 안산암으로 이루어져 있어 깊고 험준한 모습을 보여 준다. 계곡의 곳곳에는 웅장한 기암괴석과 아름다운 폭포 및 담(潭)이 연이어 발달하여 있다. 폭포는 계곡 위로부터 제1폭포인 선녀탕, 제2폭포인 구유소(소구유의 형태를 닮음), 제3폭포인 용시소(용이 살고 있다고 알려짐), 제4폭포인 벅시소(금오동천이라는 글자가 각인되어 있음) 등이 있다. 계곡을 따라 등산로로 올라가면 금오산의 상징인 약사암과 범종각도 만날 수 있다.
사모실교차로를 지나고 부상리 안내판과 금오산 등산로 이정표가 보이면서 도로 위에 올라선다. 김천시가 만든 들머리 주차장이 있다. 입구 컨테이너 뒤가 들머리다. 들머리는 두세 명이 나란히 걸어도 될 정도지만 산자락에 들어서면 가파른 오르막이다. 공장지대와 M모텔을 왼편으로 우회하여 금오산 등로를 따라가다 조그만 데크목 다리를 만나면 바로 오른쪽의 희미한 숲길을 밀어 올라간다. 산자분수령원칙에 의해 산줄기를 물을 건너지 않으므로 지맥은 이쪽 길이 맞지만 대부분의 산꾼은 육교를 지나 전망대 있는 곳으로 바로 올라간다. 등로 없는 길을 약 1시간 빡시게 올라친다.
부상고개에서 올라서서 지맥은 김천시 남면 부상리에서 남면 오봉리를 만나 760m봉으로 오른 이후 오봉리는 우장고개를 넘어 제석봉까지 같이하는군요.
♤ 760m봉
남면 부상리 금오산 등산로 주차장에서 출발해 사면을 따라 지그재그로 30여 분을 가파르게 올라 능선에 닿으면 벤치 두개와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있다. 그러나 대부분 산꾼들은 주차장 가기전 목조데크 다리 직전에서 물을 건너지 않고 직상하는 고단한 길을 선택한다. 빡신 오름으로 바위 전망대도 두어 군데 지나고, 암벽위도 아슬아슬 지나며 1시간을 올라서야 능선에 이른다.
♤ 금오산 제1전망대(삿갓봉)
암산 머리에 왕관을 쓴 모양인 제1전망대(삿갓봉)가 바로 앞에 나타나는데 마치 마이산의 암봉에 와있는 착각을 일으킨다. 제1전망대는 바위 아래로 크게 돌아 뒤편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길이 마련되어 있으며 제1전망대는 그야말로 조망의 끝판왕이다. 북쪽으로는 황악산을 비롯한 김천의 백두대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며 가까이는 남면은 물론 김천혁신도시와 김천시가 눈 앞에 펼쳐진다. 서쪽으로는 영암산을 비롯한 금오지맥과 가야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칠곡군 북삼면 일원을 내려다 볼 수 있다.
♤ 금오산 제2전망대/ 거북바위봉
칠곡군 북삼읍의 모습이 내려다 보이고 김천으로 이어지는 KTX철도가 보이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826m봉은 법광선배님 띠지가 지키고 있더군요. 이정표랄지 특이한건 없습니다.
♤ 826m봉/ 군계(김천시 남면 - 칠곡군 북삼읍)
이 봉우리 아래로 경부선 KTX 경부고속철도가 지나간다. 김천시 남면 오봉리와 칠곡군 북삼읍 숭오리의 경계이다. 여기부터 지맥은 칠곡군을 만나 김천시와 칠곡군 경계를 따라 약 500m 타고 오른다.
♤ 칠곡군 북삼읍(北三邑)
경북 칠곡군 북서부에 있는 읍으로 1896년(고종 32) 대구부 인동군 북삼면으로 지정되었으다. '북삼(北三)'이라는 지명은 인동군에 인접한 낙동강 건너 3개면 북삼·약목·기산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인동군이 칠곡군에 통합되면서 칠곡군에 속해졌다. 1973년 7월에는 낙계동이 선산군 구미읍으로, 1983년 2월에는 오태동이 구미시로 편입되었다 북삼면이 2003년 7월 1일 북삼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서부와 남서부 일대는 200~800m의 산지이며, 그밖의 지역은 대체로 100m 이하의 평야를 이루고 있다. 낙동강이 동쪽 면계를 흐르며, 소규모의 관개용 저수지가 많다. 쌀·보리 외에 참외·사과 등의 생산이 많으며, 특히 북삼참외가 유명하다. 경부선이 면 중앙을 남북으로 지난다.
♤ 금오산성(887.3m)/ 금오산 갈림길
금오산성은 조선초에 인동의 천생산성과 같이 낙동강을 낀 영남의 전략적 요충지로써 3,500여명의 군병으로 선산, 개령, 김천, 지례 등 4군을 관할하였으며 특히,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에는 정기룡장군이 왜적을 맞아 이 산성을 지켰던 곳이기도 하다. 이 산성의 축성과 규모는 1410년(태종 10)과 1595년(선조 28)에 축성하였으나 그 규모는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고, 1639년(인조 17)에 수축한 내성은 둘레 7,644m(척 2,316m), 높이 7척(2.1m)이고 자연절벽이 661m로 보이며 외성은 둘레 4,135m, 높이 14척(4.2m)이고, 성 안에는 못 7개소, 샘 8개, 1개의 걸(개천)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1868년(고종 5) 11월에 산성을 정비 보수하였으며, 이때 세웠던 금오산성 중수 송공비가 성 내에 현존하고 있다.
- 좌틀하여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제2전망대를 지나 금오산성의 산성 석축들이 나타나며 870m 우장고개 분기봉에 이른다. 금오산성을 넘어 몇백 미터의 평탄 길을 걷다 보면 금오산 서봉 표지판이 반긴다. 지맥은 가파르게 왼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된다. 김천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하면서 안전바와 로프를 설치했다. 금오산성 내부는 대체로 완만하다. 약간의 내리막길을 내려가면 금오산성안의 분지에 도착한다. 산성 안에는 물이 있어 이전에는 사람들이 거주했다고 전한다. 오른쪽으로는 금오산 정상 현월봉으로 오를 수 있고 왼쪽 시 경계를 따라 다시 오르막을 오르면 금오산 성안전위봉 표지판이 반긴다.
♤ 삼시군경계면(칠곡군 북삼읍, 김천시 남면 → 구미시 남통동)
826m봉을 지나 금오산성 석축을 만나 산성으로 올라서면 우장고개와 금오산 정상으로 나뉘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우장고개 갈림길은 김천 남면과 칠곡군 북삼면의 경계이고, 금오산성 서봉을 지나 남봉으로 오르기 전에 금오산성(지경리갈림길) 안내표지판이 서있는 곳이 삼시군 경계면이다.
금오산정상갈림길-금오산서봉(887.3m)-금오동천갈림길-금오산남봉(873m)-전망대-헬기장-현월봉(976m)-약사암갈림길-칼다봉갈림길-성안갈림길-금오동천갈림길-금오산서봉(887.3)-금오산정상갈림길은 왕복 약 4km입니다.
♤ 금오산(金烏山, 976m)/ 현월봉, 1등삼각점
금오산은 경북 구미시와 김천시, 칠곡군에 걸쳐있는 산으로 정상은 현월봉(顯月峰)이다. 본래 이름은 대본산(大本山)이었으며 금오산의 지명은 태양속에 산다는 세발 달린 황금까마귀, 금빛 태양새(三足烏)가 노을속에 금빛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형태처럼 보인다고 해서 유래되었으나, 시대에 따라서 이름을 달리 해왔다. 고려 초기에는 남숭산(南崇山)으로 불렀다가 고려 후기부터 금오산으로 불렀다. 남숭산으로 불리게 된 연유는 중국 황하강 유역 하남성에 있는 중국 오악의 하나인 숭산에 비유하여 생김새가 비범한데서 유래되었으며(북한 황해도 해주에는 북숭산이 있다.) 이 산은 경북 칠곡과 인동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거인이 누워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거인산(巨人山)이라고도 했고, 또한 귀인이 관(冠)을 쓰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귀봉(貴峰)이라고도 했고, 부처님이 누워있는 형국처럼 보인다고 해서 와불산(臥佛山)이라 불렀으며, 선산 방향에서 금오산을 바라보면 산정이 뾰족하여 붓끝처럼 보인다고 해서 필봉(筆峰)이라 불렀는데 선산지방에는 문인과 명필가들이 많이 배출되기도 했으며, 조선시대의 문인 성현은 그의 저서 '용재총화'에서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했다. 김천 방향에서 바라보면 부잣집의 노적가리 같다하여 노적봉(露積峰)이라 불렀고 실제로 이 지역에는 큰 부자들이 많이 났다고 하며 또한 김천 개령 방향에서 보면 큰 도적이 숨어 노려보는 모습과 닮았다하여 적봉(賊峰), 성주 방향에서 보면 머리를 풀어헤친 여자 모습을 닮았다하여 음봉(淫峰)이라고도 불렀다. 이 금오산 아래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부녀 대통령이 태어났고, 장택상, 신현확, 김덕, 서석준, 이수성, 김만제 등 6명의 총리가 배출되었다.
- 1등삼각점(구미 11/ 1981 재설)이 있다.
♤ 박정희대통령
고령 박씨(高靈 朴氏)는 비록 수는 많지 않아도 64본의 박씨 가운데서 주축을 이루는 밀양, 반남, 고령, 함양, 죽산, 충주, 순천, 무안 등 소위‘8박’의 하나로 꼽힌다. 조선 영조 때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직계 선대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비롯 박재홍.박태완 등이 있다. 고령박씨는 조선조에 58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고, 그 중에 정승 1명(철종조 좌의정 박영원), 청백리 4명(박처륜, 박영준, 박장원, 박선)을 내는 등 밀양, 반남에 버금가는 세력을 누렸다. 역사상 고령박씨를 대표하는 인물은 아무래도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1691~1756)와 박근혜 후보 아버지인 제3공화국 18년의 대통령 박정희(朴正熙)일 것이다. 박문수는 훗날 도승지, 어영대장, 병조판서 등 문무의 높은 벼슬을 두루 역임했지만 으레 ‘암행어사 박문수’로 통용될 만큼 많은 일화를 남긴 한 시대의 인물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 선조는 성주에서 오랫동안 살다가 칠곡 약목으로 이사한 뒤 1916년 구미 상모동으로 옮겨 살았다고 전해진다.
♤ 갈항고개(葛項峴)
금오산 서쪽에 있는 김천시 남면 오봉리 갈항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인데 뚜렷한 임도가 있고, 좌측에 왕릉 형태의 납골묘인 '전주이씨 정석군파' 숭조당(崇祖堂)이 있고 우측은 그와 대비되는 초라한 묘지 한기가 고개를 지키고 있다. 갈항의 지명 유래는 약 1600년 전 김상집이라는 선비가 마을을 개척할 당시 칡덩굴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며 또한 신라시대 갈항사(葛項寺)라는 절의 이름에서 얻은 지명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갈항사는 신라 32대 효소왕 때 승전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현재 절터의 보호각에는 보물 제245호인 오봉동 석가여래좌상과 맞은편에 비로자나불이 남아있다.
- 잔디없는 묘 지나, 길항고개에 큼직한 가문납골묘 숭조당이 있다. 지맥은 직진이고 고개 좌측 아래로 갈항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우장고개에서 대성리 저수지로 나가면 구미시 선주원동에서 구미역으로 가는 가까운 길입니다.
♤ 우장고개(牛場峴, 180m)/ 쇠바탱이/ 2차선포장도로, 통신탑
김천시 남면 오봉리에서 아포읍 대성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중앙선이 없는 포장도로에 이동통신탑이 서있다. 옛날 금오산성을 보수하거나 군수품을 운반할 때 이 마을까지는 소로 운반하고 여기서부터 산성까지는 사람이 등짐으로 지고 나르면서 몰고온 소는 이곳에 매어두고 갔다해서 생긴 지명이다.
- 이정표(→금오산 정상 2.58km, ↑우장마을 0.58km, ←제석봉 5.94km)가 서있다. 우장고개에서 제석봉까지는 약 두시간 거리이다.
♤ 321.3m봉/ 읍면 경계(남면 → 아포읍)
우장고개에서 올라 유인 밀양박씨 묘지를 지나 오른 야트막한 봉우리이며 남면 오봉리 내를 통과하던 지맥은 여기서 김천시 아포읍 대성리와 만나 제석봉까지 같이 한다.
♤ 경북 김천시 아포읍(牙浦邑)
김천시 동북부에 위치해 동북쪽으로 구미시와 경계를 이루고 서북쪽은 감천을 경계로 감문면, 개령면, 서남쪽으로는 남면과 접한다. 아포읍은 감천이 휘돌아 낙동강에 합류하며 평야가 발달한 대신 산지가 적은 지역이다. 아포라는 지명은 고대 삼한시대에 제석리 일대에 아포국이라는 소국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삼한시대 아포국의 흥망성쇠를 지켜본 산으로 아직도 그 지명이 남아 전해진다. 제석봉을 ‘제석궁帝錫宮’이라고도 하는데 ‘제帝’는 임금을 뜻한다. 또 주변의 관리봉(官吏峰, 국사봉)은 관아의 벼슬아치를, 삼태봉(三胎峰)은 옛날 제석궁 왕자의 태가 묻혀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산자락의 제석리와 국사리는 제석봉과 국사봉의 이름을 따서 1914년 지명을 바꾼 마을이다. 감천이라고 하는 큰 하천을 끼고 있어 예부터 배가 드나들었는데 그중 지금의 의리 공쌍마을 앞에 지역에서 가장 큰 포구가 있어 크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어금니 아(牙)자에 물가 포(浦)자를 써서 아포라 했다는 설도 있다. 동남쪽으로는 효자봉, 국사봉, 제석봉 등 높은 산이 감싸고 있고 감천이 동서쪽으로 흐른다. 고려 말 서북방면병마부사(西北方面兵馬副使)를 지낸 송월당(送月堂) 이사경(李思敬)이 고려가 망하자 다섯 아들을 데리고 낙향해 은거한 곳이 아포 지방이다. 송월당은 서당을 열어 후학을 양성했는데 명성을 듣고 전국에서 인재가 몰려들어 당시 가구 수가 300호에 달할 정도로 마을이 크게 번성했다고 전한다. 이때부터 아포는 학문과 예를 아는 고장으로 명성을 얻었고, 인의예지(仁義禮智)라는 유학의 도리가 마을 이름에 정착돼 현재도 인리, 의리, 예리, 지리 등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 시등봉(366.4m)/ 삼각점봉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갈항터널을 지나 올라선 봉우리이다. 잔잔한 능선을 따르면 좌측으로 오봉저수지가 보이고, 뒤쪽으로 지나온 금오산도 바라본다. 봉곡마을, 오봉대교, 대성리 수점마을갈림길을 지나고, 쉼터 의자도 자주 보인다.
가야할 국사봉과 북쪽으로 김천혁신도시가 조망되고, 감천 일원과 농소면, 멀리 바라보이는 기양지맥과 오른쪽 낙동강의 합수점이 금오지맥의 합수점이기도 합니다. 또 가깝게는 금오산을 비롯해 오봉저수지 뒤로 운남산, 노고봉, 절골산이 보이고 멀리 영암산, 김천시가지 뒤로 고성산, 황악산도 어렴풋이 바라다 보입니다.
♤ 제석봉(帝釋峰, 512.2m)/ 삼리봉(아포읍 대성리, 남면 오봉리 → 아포읍 제석리)/ 효자봉(孝子峰)/ 산불초소
제석봉은 아포읍의 진산鎭山이며 해발이 가장 높은 산이기도 하다. 김천시 남면 오봉리와 아포읍 제석리, 대성리와 경계에 있는 삼리봉이다. 영진지도에는 효자봉으로 되어 있으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 모립곡(현재 구미시 상모동)에서 살던 한 젊은이가 병석에 누운 앉은뱅이 홀어머니를 위해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이 봉우리에 올라 지성으로 기도를 올려 어머니의 병이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후 젊은이의 효성을 기려 효자봉이라 하였다. 제석봉으로 바뀐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이 봉우리 북동쪽에 위치한 제석리와 연관있는듯 하다. 이 산은 아포읍의 진산으로 고대 삼한시대에 개령을 중심으로 한 아포국이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소국으로 감문국, 아포국, 어모국, 문무국 등이 있었으며 추풍령을 지나 금오산으로 뻗어내린 산줄기 가운데 솟아오른 봉우리가 제석봉이다. 김천의 곡창지대인 원장 가운데 솟아 올라 있으며, 삼한시대 아포국의 흥망성쇠를 간직한 산이다. 금오산에서 효자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외곽보는 비탈면 전체가 급경사를 이루며 좁고 긴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효자봉 북쪽 비탈면에서 발원한 하천은 구미시를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효자봉 남쪽에서 발원한 하천은 경호천(鏡湖川)으로 흘러들어 칠곡군 북삼읍 약목면을 지나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 정상석이 4개나 있다. 제석봉에 돌탑을 쌓은 사람의 사연이 어느 TV방송국 프로그램에 방영되면서 전국적인 명소가 됐다. 사연인즉 제석리에 거주하는 한 노인이 허리 디스크 수술 이후 건강 회복을 위해 늘 20kg 정도의 돌을 짊어지고 올라 14년에 걸쳐 쌓은 돌탑이라는 것이다.
♤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帝釋里)
김천시 아포읍 제석리는 제석봉에서 지명을 따왔다고 하며 제석리에는 삼한시대 국가설과 역모를 꾀하다 처형된 길운절(吉雲節)과 관련된 길지(吉池)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온다. 제석리는 삼한시대 성립한 아포국의 도읍으로 추정되는데 마을 뒷산인 관리봉(官吏峰)과 제석봉, 왕자의 태를 묻었다는 삼태봉 등지에서 관련 정황이 발견되고 있다. 사서에도 "반란을 한 아포를 정벌하기 위해 군사 30명을 동원하였으나 김천 냇물이 불어 되돌아왔다"라는 가록이 있다. 아포가 반란을 도모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감문국과는 대등한 관계는 아니었다손 치더라도 일대의 드넓은 평야를 기반으로 일정 형태의 소국을 유지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제석(帝釋)이란, 불교의 제석천에서 나온 용어로 불법과 이에 귀의하는 자를 수호하며,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하는 하늘의 임금을 말하는데 이와는 다소 동떨어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한 아포읍 제석3리 진등마을에는 길지로 불리는 연못이 이다. 이 연못은 진등마을에 살던 길운절의 집터였다. 길지는 길운절의 집터로 1600년(선조 33년) 정여립의 처남 소덕유와 역모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그의 출생 가택을 헐고 연못을 판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제석동 출신 길운절이 심성이 곱지 못해 선산으로 쫒겨나 살던 중 정여립의 난으로 인해 연좌제에 몰린 정여립의 사촌 처남 소덕유가 중으로 변장해 길운절의 집에 머물다가 서로 의기투합해 제주도로 가서 난을 일으키기로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역모는 발각되었고 이 사건으로 길운절의 출생지가 선산으로 잘못 알려져 선산이 현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하지만 개령현 제석동이 길운절의 고향인 것으로 드러나 개령현이 폐현되고 김산군으로 합병되었다. 마을에서 쫒겨난 길운절은 연못으로 고향에 돌아와 마을 앞 들판의 중요한 수원(水原)이 되었다.
제석봉에서 국사봉으로 내려서면 구미시가지 뒤로 팔공지맥의 냉산과 천생산, 유학산의 모습이 희미하게 조망됩니다.
♤ 국사봉(國士峰, 480m)/ 관리봉/ 아야봉
국사봉은 다시 오던 길로 돌아서 능선을 타고 진행하다 보면 정상 표지석을 볼 수 있다. 경북 김천시 아포읍 국사리와 대성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정상석, 돌탑이 있다. 국사봉 정상은 나무로 가려져 볼거리가 없다.
- 정상에는 돌탑과 오석의 표석이 자리한다. 지맥은 우틀한다.
♤ 아포읍 국사리(國士里)/ 읍소재지
아포읍 국사리는 예부터 미곡 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에는 사과와 포도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북쪽으로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가 가로지르는 교통의 요지이며, 2008년에 중부내륙고속도로 김천-현풍 구간이 개통되고 인터체인지도 연결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송천리 대지 앞부터 국사리 일대에 걸쳐 한못 또는 대지(大池)로 불리던 광활한 못이 있었다고 하며 이곳은 판서 벼슬을 지낸 한씨(韓氏)의 집터로 국사봉과 효자봉의 정기를 이어받은 명당터로 알려졌다. 그 때문인지 한판서의 아들 8형제가 과거에 급제하는 등 집안이 승승장구하기 시작했고, 장차 한씨 집안이 반역을 도모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자 이를 두려워한 나라에서 집을 헐고 그 자리에 못을 팠다고 한다. 또 다른 자료에는 한판서가 주위의 모함이 있자 멸문지화를 피하고자 스스로 집을 헐고 떠났다고도 한다. 이 못 때문에 마을도 대지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1970년대 경부고속도로가 놓이면서 마을 대부분이 개발되어 한못은 완전히 없어지고 지금은 택지로 개발되어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신시가지가 조성되었다.
♤ 백마산(白馬山, 433.2m)/ 효자봉
국사봉 정상을 지나 완만한 내리막길을 따라 진행하다 보면 효자봉 정상 헬기장이 있다. 효자봉을 지나 소나무 숲사이로 하산길이 이어진다. 넓은 헬기장과 국사리 1900km, 제석봉 2180m, 국사봉 1200m 이정표가 서있는 곳이다.
- 지맥은 좌틀한다. 내림길 중간에 국사리 갈림길, 시멘트블럭 참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길주의 지점) → 묘지 좌측으로 내려서 잡목과 폐 창고에서 우틀 → 송암사입구 삼거리 좌틀, 양회임도를 따라 도로에 내려선다.
백마산에서 내려서며 아포읍 송천리로 들어서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하단으로 통과하고 도로를 따른다. 금계마을 입구를 지나 역C자 형태로 걷는데 경부선 철도와 김천JCT를 따라 지맥길을 우회한다. 경부선 철길지하차도를 빠져나오면 돌고개가 나온다.
♤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금계(金鷄)마을
국사봉 자락에 있는 김천시 아포읍 송천3리에 있는 금계마을은 풍수지리로 볼 떄 마을 지형이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어서 붙은 이름이다. 금계포란형은 마을 앞이 개방되면 닭이 알을 편히 품을 수가 없어 마을에 우환이 드는 지형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들이 1710년 마을 입구 땅을 공동 매입하여 마을앞이 가려지도록 소나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앞숲으로 불리는 약 500여 평의 송림을 마을 공동 소유로 관리하고 있으며 숲 옆으로는 마을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대지(大池)는 마을 옆에 커다란 연못인 한못이 있어 붙은 이름이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가 마을 한가운데를 관통하면서 사라졌다.
♤ 돌고개(石峴)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 있는 고개로 경부선 철도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가 만나는 김천JCT와 김천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906지방도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이다. 도로 서북쪽으로는 국사리에 아포읍사무소가 있다.
♤ 송천리 하송마을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 있는 하송마을은 송내마을 아래쪽에 위치하여 붙은 이름으로 상송과 금천의 이름을 따서 송천리라 하였다.
906번도로를 보턴 누름식 횡단보도로 건너고 주유소를 끼고 돌아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지하차도 암거를 통과하여 우틀하면 하송마을 입구이고 여기서 또다시 좌틀하여 능선으로 올라서서 과수원을 지난다. 아포읍 송천리를 지나온 지맥길은 인리와 만나 경계를 잠시 따르다 구미시와 경계인 능선에 올르고 왼쪽으로 삼리봉인 송천령에 잠깐 다녀온다. 여기서 까만재산 방향으로 우틀하여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와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의 시계를 따른다.
♤ 송천령(松川嶺, 251m )/ 삼리봉(아포읍 송천리, 아포읍 인리 →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시계(김천 - 구미)
김천시를 지나온 지맥이 금오산성에서 잠시 구미시와 만나기도 했지만 여기서 다시 구미시와 만나는 지점이다. 산이지만 고개로 표시했다. 지명의 유래는 우측 능선 아래에 있는 송천리에서 따온듯 하며 이곳에서 좌측으로 1분 정도 가면 지도상에 송천령이란 봉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더 가면 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가는 길에 진짜 송천령이 있다.
♤ 경북 구미시 고아읍(高牙邑)
고아읍은 경북 구미시의 서부 지역에 위치한다. 옛날에는 평성방, 망장방, 서내방으로 일제시대인 1914년 면 통폐합으로 인하여 고아면으로 개칭하였다. 그 후 1997년 11월 1일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때 지군사가 있었고, 구미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해평면과 접하고, 남쪽으로 지산동, 서쪽으로는 김천시 아포읍, 북쪽으로 선산읍과 접한다. 읍의 중앙과 남쪽은 접성산(374m)·다봉산(366m) 등의 산지를 이루며, 북쪽은 감천이, 동쪽은 낙동강이 읍계를 따라 흐르고 있다. 이들 하천 연안 곳곳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구미시의 주요 농업지대로 무·배추·인삼 재배가 활발하며, 참깨·참외·수박 등도 생산된다. 오로리에는 농공단지 중 가장 규모가 크며 경북지역 농공단지의 거점 역할을 맡고 있는 구미고아농공단지가 있다. 고아농공단지를 중심으로 경북 서남부권에 있는 25개의 농공단지가 연계되고 있다. LCD·반도체·전자부품·금형 등 첨단장비 사업체 공장들이 제품을 생산한다.
♤ 국사봉(國士峰, 318m)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와 구미시 고아읍 예외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이 국사봉 북동쪽에서 발원한 봉곡천이 구미천과 합류하여 구미 시가지를 지나 비산동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김천 지역에 속하는 부분은 상류부로 2.3km 정도 구간이며 하폭과 유량이 적다.
♤ 송천산(397.2m)/ 사리동봉(구미시 고아읍 외예리,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 → 고아읍 내예리, 구미시 부곡동)/ 시계(김천 → 구미)
지맥 능선의 위쪽(왼쪽)이 고아읍 외예리에서 내예리로 바뀌고 지맥의 아래쪽(오른쪽)이 김천시 아포읍 송천리에서 구미시 부곡동으로 바뀌는 지점이다. 지맥은 여기서부터 김천시를 벗어나 온전하게 구미시로 진입한다.
동쪽으로 0.85km 떨어진 지점에 북봉산(다봉산)이 있습니다.
♤ 꺼먼재산(400.7m)/ 삼리봉(고아읍 내예리, 부곡동 → 고아읍 대망리)
산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전국에 꺼먼재산이 몇 있다. 과거 어느 시절 대형 산불이 일어 산 전체가 꺼멓게 재가 된 모습으로 비쳐져 꺼맨재산이라 부르지 않았나 추측된다. 구미시 부곡동과 고아읍 내예리, 대망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 가운데에 2등삼각점이 있고 구미시에 설치한 북봉산(388.5m) 등산안내도가 있다. 고아읍 대망리 남서쪽의 꺼먼재산에서 대망천이 발원하여 북쪽으로 대망리를 통하여 흐르다가 파산리에서 동진하여 관심리에서 낙동강 본류에 합류된다.
♤ 점터고개
접성산(374.5m)으로 이어지는 고개로 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의 웃골 서쪽 점터마을에 있는 고개로 이 점터마을 옛날 옹기점이 있던 곳의 고개를 점터고개 또는 점티고개, 점현령 등으로 불렀다. 예전에 원호리 사람들이 선산부를 오갈 떄 점현령을 넘어 대망리로 나갔으며, 대망리에서는 점현령을 넘어 옛 구미를 거쳐 경상감영이나 대구부(大邱府)를 오갔다. 점현령을 오가는 길은 산골 오솔길이었으나 그때는 지금의 국도처럼 사용하였다. 점현령은 2000년에 평지처럼 낮추어졌으며, 지금은 국도 33호선에서 이례리를 지나 대망리로 진입한 뒤 점현령을 지나서 구미역이나 고속도로를 이용하기도 한다.
♤ 북봉산(北峰山, 388.5m)/ 등골산
경북 구미시 봉곡동 뒷쪽에 자리잡은 북봉산의 예전 이름은 등골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구미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이다. 영진지도를 비롯한 지형도에는 다봉산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구미시가 많이 커지면서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다봉산이 전체를 아우르는 산이 되었고, 실제로 영진지도를 비롯한 지도책에도 이곳이 다봉산이라 표기되어 있다. 그러다가 이 산의 소유주인 벽진이씨 종회에서 원래 이름인 북봉산을 되찾고자 그 유래를 조사하고 자료를 만들어 국토지리원과 구미시에 건의하여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산 정상에는 헬기장과 이정표, 선주청년회에서 세운 표시석, 벽진이씨 북봉공종회 안내판, 팔각정인 북봉정 등이 있다. 벽진이씨 북봉공 종회 안내판에 북봉산 지명 유래를 살펴보면 조선조 광해군 8년(1616년) 벽진인 이민선(1546~1626)은 가선대부 병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행통운대부를 지내고, 낙심하여 정착한 곳이 멱우골이며 현재 별남고을로 알려진 곳인데 조선조 선조실록 1594년 2월 이민선은 임진왜란때 성균관 대성전이 왜적들에 소실되자 이에 국란을 극복하려고, 국왕에게 중수할 것을 상소하여 국왕(선조)이 기꺼이 윤허하였으며 중수를 마친 후, 난세를 떠나 이곳 북봉산 아래 성남촌으로 이주한 기록이 있다.
우회길이 있는 항골봉(294.2m)에는 법광님과 도요새님 띠지가 지키고 있고, 깃대봉에서 지맥의 왼쪽이 고아읍 내예리에서 신촌리로 들어섭니다. 깃대봉을 지나 망정봉(177.8m)에 도착하면 j3띠지가 오른쪽 능선으로 잔뜩 있네요. 지맥은 왼쪽으로 꺽어 급내림길로 내려섭니다.
♤ 깃대봉(283.1m)/ 삼리봉(내예리, 대망리 → 신촌리)/ 삼각점봉
대망2리갈림길을 지나고 294.2m봉(항골봉)을 지나 만나는 삼각점봉이다. 우틀하여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면 177.8m(망정봉)을 만난다. 지맥길은 망정봉에서 뚜렷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틀하여 내리막으로 내려선다.
♤ 신촌고개(新村峴, 61m)
구미시 고아읍 파산리에서 신촌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916번지방도가 지나며 고개 좌측에 신촌마을 있어 신촌고개로 불리는데 정상에는 통신탑이 보인다. 남쪽으로 깃대봉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북쪽으로 덤바위산이 가로놓여 있고, 서쪽에 흐르는 낙동강 지류 감천이 농경지의 젖줄 구실을 한다. 고개를 가로질러 밭가운데로 오르면 유인 인동장씨 묘지가 나온다.
우틀하는 지점에서 직진, 묘지 뒤로 올라서서 왕산골의 뒷산 황산을 왼쪽으로 약 400m 다녀옵니다.
♤ 고아읍 황산리/ 황산(凰山)
고아읍 황산리는 왕산리라고도 부르며 왕산골이라고도 한다. 서북쪽에서 동남쪽으로 감천이 흐르고, 마을 앞에는 비옥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 뒤쪽은 산들이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배산임수 지형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에는 비봉산의 봉황과 관련한 전설이 전해 온다. 비봉산의 수컷 봉(鳳)과 황산(凰山)의 암컷 황(凰)은 서로 마주 보는 형상인데, 두 마리의 봉황이 날아가지 못하도록 그물을 친다는 뜻에서 이름을 망장방(網張坊)이라 하고, 오로리 뒷산에 매(鷹)를 두어 잡새들의 침입을 막는다는 뜻에서 매방골(鷹放山)이라 이름 지어 봉황을 보호했다고 한다. 그 후 선산읍 앞들 동산걸(冬至山)의 숲을 베어 냈을 때 다섯 개의 동산이 마치 봉황의 알처럼 드러났는데, 이에 두 마리의 봉황이 알을 보호하기 위하여 다른 곳으로 날아가지 못하고 둥지를 틀고 있는 것이라 하여 이곳을 명당이라 하였다. 뒷개고개 마루와 봇돌고개 밑 약샘 앞에 성황당이 있었으나 뒷개고개 성황당은 고개가 시멘트로 포장됨에 따라 흔적이 없어졌고, 봇돌고개 성황당은 밭으로 개간되고 통행하는 사람들이 없어지면서 소실되었다.
지맥은 고아읍 신촌리를 지나 파산리로 진입합니다.
♤ 산막고개
파평윤공 묘지 뒤쪽 174m봉을 오르고 우틀하여 내려서서 임도를 만나 잠시 임도를 따르면, 구미시 고아읍 파산리에서 황산리로 넘어가는 포장도로를 만나 절개지로 내려선다.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고개를 오르면 파평윤공 묘지가 나온다.
능선 아래로 파산리가 바라보입니다.
♤ 고아읍 파산리(巴山里)
고아읍 파산리는 조선초기 김해허씨 일족이 처음 정착하여 살 때 마을 뒷산의 모습이 뱀과 비슷하여 마을 이름을 사미동(巳尾洞)이라 하였다. 그러자 집에 뱀이 너무 자주 들어오므로 못 들어오게 하기 위하여 뱀의 눈을 뺀다는 의미로 뱀사(巳) 자에 점을 찍어 파토리(巴吐里)라 하였고, 후에 파산리가 되었다고 한다. 원래 파산은 중국의 지명으로, 마을을 개척한 김해허씨와 연관이 있는 지명이어서 파산동리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자연마을로는 봇들(일명 파산, 파토동), 화개동(일명 하망정) 등이 있다.
♤ 186.8m봉/ 삼리봉(고아읍 황산리, 파산리 → 고아읍 오로리)
금오지맥의 마지막 행정구역에 진입하여 끝이 보이기 시작하는 지점이다. 186m봉(봇들봉)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직진하여 삼리봉(황산리, 파산리, 오로리)인186.8m봉 능선에 올랐다가 정상까지 가지 않고 좌틀로 꺽어지며 고아읍 오로리에 진입한다. 오른쪽 아래로 지장사가 보이는 안부에서 파평윤씨 묘지들이 나오면 묘지를 오른쪽에 두고 가파른 경사를 오른다.
금오지맥에 백마산이 세개입니다만 양반고을 선산의 지명도가 높고, 그에 따라 산은 낮아도 족보가 있는 백마산입니다.
♤ 백마산(白馬山, 188.2m)
구미시 고아읍 황산리와 오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 (선산)에 "백마산은 선산도호부의 동쪽 25리에 있다,"로 처음 등장하며 그 위치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표기자의 변화없이 『여지도서』 (선산)와 『대동여지도』에 "백마산"이 기재되고 있어 강한 지명의 존속성과 주민들의 지명 인식을 알 수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백마산(白馬山) : 오로촌 서쪽에 있는 산 (중략) 모양이 백마처럼 생겼다 함."이라는 기록이 있어 지명 표기자를 뜻풀이한 지명 유래의 일설을 확인할 수 있다.
♤ 고아읍 오로리(吾老里)
고아읍 오로리의 옛 이름은 오을고개로, 외부에서 마을로 들어가려면 모두 고개를 넘어서야 했기에 올라가는 고개, 즉 오을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오로리의 지명과 관련하여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한다. 조선시대 태종이 세종의 장인인 심온(沈溫)의 아들 심회(沈澮)가 유모의 헌신으로 오로리 가좌골로 와서 강거민의 도움을 받아 삼밭에 피신하게 되었다. 아들이 없던 강거민은 어린 심회를 양자로 거두었다. 뒷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심온의 결백이 밝혀지고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러 양부(養父)인 강거민에게 벼슬길에 나오기를 권하였으나 강거민이 "오로사(吾老死: 나는 이곳에서 늙어 죽을 것이다)"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조선 세조의 양위 찬탈을 부당하게 여긴 세력들이 단종 복위운동을 할 때 생육신 이맹전의 장인인 직제학 오로재(吾老齋) 김성미가 관직을 버리고 사위 이맹전과 함께 낙향하여 오로리 뒷산인 직학곡(直學谷)에 올라가서 단종을 사모하며 매일 단종이 유폐된 영월을 향하여 곡하며 절을 하였다. 이후 매방골에 오로재(吾老齋)를 짓고 많은 후학들을 길러낸 데서 훗날 사람들이 그의 충절을 높이 사 마을 이름을 오로동이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대부분 산꾼들은 백마산 정상에서 만나는 이정표에서 좌측 에덴아파트로 내려가 고아읍 오로리와 선산읍을 잇는 선주교 아래에서 산행을 마무리 한다. 금오지맥은 백마산에 이르면 그 이후는 어디로 내려가서 끝을 맺어도 무관하다. 다만 가까운 곳에 감천과 낙동강의 합수점이 있으니 오로리로 내려서서 고아농공단지를 지나 백마산에서 약 6.9km 정도를 더 연장하여 선산읍 원리 어강마을 합수점으로 향해본다. 지맥의 끝을 억지스럽게 합수점으로 대는 문제가 아니라 합수점이 가까이에 있고, 합수점도 그 나름 의미가 있는 곳이니 합리적인 생각으로 합수점에 대기로 한다.
♤ 가좌골(佳座谷)/ 응방곡(鷹放谷)
오로리에 내려서면 등로 우측에 보이는 마을이 오로리 가좌골이다. 가좌골은 영남의 거유로 유명한 직제학 김성미가 낙향하여 임진왜란 때인 1582년 소실된 오로재를 지어 제자들을 기른 곳인데 당시 김성미의 문하생이 되기 위해 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었는데, 이 학생들이 오로재를 가리켜 "즐거움을 더해주는 영광스러운 자리"라고 말하므로 이에 오로재가 있는 마을을 한자로 가좌골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매방골이라고도 하며, 매를 놓았다 하여 응방곡(鷹放谷)이라고도 기록되어 있는 역사적으로 매우 유서깊은 곳이다.
제일병원이 있는 33번국도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 골목으로 들어서면 대진석공예 건물이 보이고. 제일병원 옆 골목에서 과수원을 끼고 우측 임도로 접어든다. 묘지 사이로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곧 고아제2공단이 들어선다고 한다.
♤ 73m봉
금오지맥의 마지막 봉우리이다. 우틀로 내려가는데 등로가 전혀 없다. 밭을 지나 농로를 따라 고아농공공단으로 내려선다. 맞은편에 엠에스나노(주) 공장이 보이는 곳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다 (주)그린팩 공장에서 좌틀한다. 좌측으로 야산을 바라보고 고아농공공단을 직선으로 가로지른다. 고아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대망천 제방길을 따라 걷는다. 제방둑에서 관심리 들판이 바라다 보인다.
♤ 고아읍 관심리(官心里)/ 고아읍 소재지
관심리 지명과 관련한 기록을 보면, 고려시대 이전에 관심(觀心)과 관심(官心)으로 표기하고 있으나 이유는 알 수 없고 다만 고려후기 기록부터는 모두 관심(官心)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신라시대에 행정관청이 이 마을에 많이 있어 '관의 중심지'였으므로 관심이라 불렀다 한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길게 흐르고 서쪽으로는 감천이 낙동강에 합류하면서 넓은 평야를 형성하였다. 동,서,북 3면은 거의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 지형이며, 남쪽은 완만한 경사를 이루면서 화개산 기슭에 연결되어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 관심리는 지형상 외적의 침입을 막는 천연의 요새인 동시에 풍부한 수자원과 비옥하고 넓은 농경지를 가지고 있어 쌀과 보리를 중심으로 농경사회에서 더없이 좋은 마을 형성 요건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 고아읍 소재지가 있는 곳이다.
대망천을 따라 걸어가며 관심1교에서 고아읍 → 선산읍으로 경계가 바뀐다.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합수점 바로 전에 있는 어강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강마을 뒤쪽으로 선산에서 구미로 이어지는 우회도로 다리(남산교)가 가설중이다.
팔공지맥을 하며 다녀와야할 냉산이 바로 저 태조산입니다. 태조산에 다녀와야할 이유도 하나 추가, 태조산에서 필히 확인해야할 금오지맥, 기양지맥의 합수점이로군요.
♤ 태조산 도리사
어강마을 뒤편으로 보이는 산너머의 태조산에는 아도화상이 신라시대 최초로 창건했다는 신라불교 발상지인 도리사(桃李寺)가 있는 곳이다.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서라벌에 다녀오는데 겨울인데도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만발하여 있음을 보고 그곳에 절을 짓고 도리사라 하였다.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이 절이 신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어강마을 원리는 감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기양지맥과 금오지맥 두개의 지맥이 마주하는 곳이네요.
♤ 선산읍 원리(院里) 어강마을
원리는 조선시대 동내방에 속한 마을로 서원, 강창, 웃마(일명 어강), 아랫마(일명 새도방), 연수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원은 마을의 명당자리에 금오서원을 이건한 뒤 많은 선비들이 모여 글공부를 하였으므로 붙여진 이름이고 강창은 낙동강을 따라 각종 곡물과 소금을 운송하면서 창고가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웃마는 서원 위쪽에 있는 마을이고, 아랫마는 서원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연수는 맑은 연못이 있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 구미시 선산읍(善山邑)
경북 구미시 서북부에 있는 읍으로 선산은 신라시대에는 일선군(一善郡), 일선주(一善州), 숭선군(崇善郡) 등으로 불리었으며, 조선 태종때 선산부(善山府)로 개칭되었으며, 고종 23년 선산군으로 변경되었다. “선산”이란 이름은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경상북도의 중서부 지방에 위치하여 남쪽에는 금오산(金烏山) 영봉이 솟아 있고, 낙동강(洛東江)이 북에서 남으로 선산의 중심부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고 감천(甘川)이 서남에서 흘러 합류하여 감천과 낙동강의 줄기 따라 넓고 기름진 옥토가 평야를 이루었다. 민심은 소박하며 학문을 숭상하여 많은 인물이 배출되니, 옛부터 이르기를 조선 인재의 절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의 인재의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하였다. 그리고 면식리가 있다. 하천유역을 제외한 면의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형제봉(531m)·월류봉(340m) 등이 솟아 있다. 단계천·감천 등의 지류가 동부경계를 흐르는 낙동강에 흘러들며, 이문리·원리 일대에 넓은 평야가 발달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을 경계로 도개면·해평면과 접하고, 북쪽으로는 무을면·옥성면, 남쪽으로는 고아읍과 접하며, 서쪽으로는 김천시와 경계를 이룬다. 읍내 전역에서 쌀 재배가 활발하다. 유물·유적으로는 죽장리 5층석탑(국보 제130호)과 선산향교, 금오서원, 선산객사, 독동리 반송(천연기념물 제357호), 단계 하위지 선생 유허비 등이 있다.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읍내 중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한다.
백두대간 국수봉에서 출발한 실거리 약 51km의 기양지맥이 감천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마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 금오지맥 합수점
수도산 사면에서 발원하여 헤어졌다 만났다 여기까지 같이 온 감천, 이제 금오지맥의 맥이 이곳 감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곳에서 입수를 하면서 산행을 종료한다. 한자로 풀이하면 '감천(甘川)'의 어원은 단샘, 달래라는 설이 있다. 감천의 '감'을 한자형을 떠나 '검'으로 통한다고 본다면 '감내'는 '검내'로, 다시 이것을 '금내'로 관련지어 보는 것도 타당할 수 있다. '감'은 검이란 뜻도 되나 '임금'의 금이 위대하고 크다는 의미로 새겨본다면, 오늘날 금오산의 '금'이나 김천의 '김'이나 감천의 '감'이나 모두 같은 '김,금,감'의 어음을 넘나드는 것이다. 이렇게 옛사람들이 자기 고장의 지명, 수명, 산명을 위대하게 부른 데서 감천을 '감내' 혹은 '검내'라고 주장하는 설도 있다.
흥선대원군 시절 훼철되지 않은 서원 가운데 하나인 금오서원을 방문합니다.
♤ 금오서원
경북 구미시 선산읍 원동에 있는 서원으로 1570년(선조 3)에 창건되었으며, 길재의 위패를 모셨다. 1575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곧바로 복원되어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사액을 받았다. 그뒤 김종직·정붕·박영·장현광이 추가 배향되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남아 있었다.
♤ 선주교(善州橋)/ 감천교
경북 구미시 고아읍 오노리와 선산읍 이문리를 잇는 다리로 선한 고을에 있는 다리라는 뜻으로 선주교라고 하는데, 예전의 감천제방 및 감천가 등의 장소 이름을 적용해 감천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1923년 나무로 가설되었다가 1939년 3월 7일 1차선 콘크리트 다리를 준공하였다. 다리의 노후가 심해지자 1984년과 1994년에 총 40억 원의 예산을 투입하여 각각 편도 2차선 다리를 세웠다. 선주교가 세워진 감천은 해발고도 40m가 되지 않는 낮은 충적지와 잔구(殘丘) 사이를 굽이쳐 흐르면서 주변에 침식 지형과 범람원을 형성하고 있다. 선주교의 북쪽은 감천의 왼쪽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고, 남쪽은 백마산 구릉과 구릉 동쪽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구미시 선기동에 같은 이름의 고가교가 있다.
첫댓글 졸업 축하 드립니다. 긴긴 거리 넘 수고 많으셨습니다.
무릎보호차원에서 도가니 푹 삶아 드셔요.
자문위원장님! 감사합니다.^^
금오지맥은 길이 너무 좋았습니다.
1구간 분기점에서 부상고개까지 60.67km,
2구간 부상고개에서 합수점까지 46.5km 도합 실거리 107.1km로 졸업하였습니다.
1구간은 비실이부부대선배님 택비로, 2구간은 돌고개 유숙으로 아주 쉽고 편하게 진행했습니다.
무릎은 지맥 진행을 더할수록 이상하게도 점점 더 단단해지고 좋아지는것 같습니다.^^ ㅋ~
폭라라님 금오지맥 졸업을 축하 축하드립니다~
추운날씨에 고생하셨습니다~
대부분 선죽교에서 마무리을 짖는데
선죽교에서 함수점까지 거니는 것도 힘이든 기억이 생각나내요~
금오지맥 합수점은 모래밭이 보기가 참 좋은 곳이지요~
맞은편은 기양지맥 합수점이고요~
수고하셨습니다~
법광선배님!
글찮아도 60 넘으면 닉을 포옹으로 바꿔볼까 생각중입니다.^^
법광선배님 2020. 10. 23.일 띠지 계속 확인하며 걸었습니다.
첫날에 바람이 불어서 약간 추웠을 뿐, 둘쨋날에는 봄날씨인 양 따뜻해서 바람막이 조끼만 입고 진행했습니다.
백마산에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했습니다. 그런데 합수점이 더 멀어보이더군요.^^
선주교는 나중에 찾아보기로 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합수점 은모랫빛 모래백사장 걷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기양지맥 금오서원에서 봉수대 다녀올까 하다가 참았답니다. 감사합니다.^^
금오지맥졸업이 궁금했었는데 500원 벌었이요.
금오선원에서 드라이브까지 잼 있었다는 상상에 히히~~해 봅니다.
이런 맛이 지맥줄기탐방하는 핫하는 재미라면 재미죠?
비실이의 방식이였다면,
아마도 풍광좋은 강변에 스타렉스호텔을 개업했었겠죠?
금오지맥줄기탐방완료 축하드립니다.
비실이대선배님!
어제 전활 드린다는게 깜박했습니다.^^ 500원이 뭔지.. ㅋ
구미 도량동에 사는 고딩친구가 난함산 아래에 2천평 포도밭을 일군답니다. 농막이 있다는군요.
그래서 그쪽으로 상주 법장산을 보고오자며 청리까지 드라이브를 시켜주네요.^^
수도암 갈때 연락을 하지 그랬냐는데.... 졸업하고 34년 되었는데 다급한 일로 연락하기도 그랬습니다.
이번에 막걸리나 한잔 할까 하고 가볍게 연락했는데 쏜살같이 달려와 주네요. 고마웠습니다.^^
기양지맥을 하게된다면 걱정없을것 같습니다.^^ ㅋㅋ 금오지맥 택배 감사했습니다.^^
궁금할때 500원
이틀에 걸친 금오지맥 마무리를 축하드립니다.
이틀동안 46km면 적당한 거리인 셈이죠?..
몇해 전인가 구미쪽에 일로 잠시 올랐던 금오산에서 약사암 쪽으로 내려서던 기억이 납니다.
선주교를 지나 합수점에 이른 감회도 느껴집니다.
거침없고 열정적인 답사로 또 하나의 산줄기를 뒤안길로 두셨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네, 방장님!
어제 밤늦게까지 후기 올리느라 오늘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비몽사몽 지나갔습니다.^^
이틀에 46km는 너무 가볍고 부담되지 않았습니다. 배낭도 물론 가벼웠구요.
금오산 정상에서 물이 필요하다면 약사암까지 내려가서 구경하겠는데 돌고개까지 시간을 예상할 수 없었고
물도 충분하였기에 굳이 내려가보질 않았습니다.
다만 금오산성 성안마을까지 두루 넓게 둘러보았음 좋았겠는데 원을 그린다고 그렸는데 조금 작게 그렸습니다.
마지막 고아공단을 지나는데 마지막 공장에서 탱자나무 울타리때문에 내려서질 못해 조금 헤매야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천을 매주 산행지 찾아갈 때마다 지나치는 도시라 그런지 유심히 읽게 됩니다.
이전에 올린 산행기에 비해 덜 팍팍하게 읽히는 것이
점차 지맥과 친해져가려 그러나?
그럼 아니되옵니다 곡소리 나는데... ㅋ
이번 산행은 그리 길이 나쁘거나
큰 어려움은 없어 보이네요.
수고하셨습니다.🙋
송년과 새해맞이를 묶어 준비하는 다음 산행에
응원 보냅니다.👏👏👏
이슬하선배님!
김천-구미간 고속도로가 유난히 반듯하고 길다는걸 느끼셨는지요.
거기 비상활주로라고 하더군요. 대구비행장 이전할 때도 원평뜰이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을 정도였답니다.
김천혁신도시라고 아주 큰 신도시가 하나 만들어졌네요.
ktx역도 서고, 도로공사가 이전하여 고속도로 IC도 만들어지고 한전 자회사도 큰 건물이 있더군요.
김천구미역엔 예약이 필요없을 정도로 KTX가 자주 있었습니다.
반면 기존 김천역과 구미역은 ITX새마을호가 서는 역으로 작아졌습니다.
그런데 공용터미널에서 각 면소재지로 가는 버스가 오방난장이라 도무지 정리가 되지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천에선 이상하게 서울행 고속버스나 시외버스가 없는것 같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퐁라라 운영자님 금오지맥 완성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항상 응원합니다
화이팅입니다 ~~~
세르파대장님!
지금은 구미가 면적상으론 서울보다 크지만 예전엔 선산읍 구미리였습니다.
생육신, 사육신의 반이 선산 사람이었을 정도로 선비의 고장, 유림의 고장이었다고 하네요.
반골의 기질이 강한 학풍이 있었던가 봅니다.
박정희도 선산사람, 김재규도 선산사람입니다. 김재규와 김영삼대통령은 같은 종씨라고 하더군요.
팔공을 하면서 냉산을 방문하고, 다른 각도에서 선산을 내려다보며 조금 더 포스팅을 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틀동안 나머지 금오지맥 산행도 무탈하게 마무리하고 금오서원까지 들렸다 오셨군요
금오산 오름길이 조금 힘들었고 제석봉 능선이 지루했다는 기억입니다
마지막 고아공단으로 내려가며 탱자나무 울타리로 어려움도 겪었구요
이틀동안 금오 마무리 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칠갑산선배님!
지나고보니 금오지맥에서 금오산 오름 1시간 남짓이지만 그게 제일 힘든 구간이더군요.^^
제석봉 능선이 지루하던데 중간중간 고도를 나타낸 준희선생님 산패가 자리해 확인하며 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456.9m 그리고 456.8m... 456.9m봉이 유독 뾰족하게 높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금오산 칼다봉 능선이 절벽 사이에 숨은 폭포도 보이고 멋지게 바라다 보였습니다.
금오지맥은 정상을 다녀오며 금오산성을 한바퀴 원을 그려 둘러본 것하고,
마지막 합수점에서 금오서원에 들른 것이 잘했다고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 구간을 보통 돌고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합수점을 다녀와 금오서원을 둘러볼 시간이 충분히 될것 같습니다.
금오지맥의 마지막 금오서원... 어쩐지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선산에는 금오서원도 있지만 선산향교도 있었습니다.
서원과 향교 둘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인데 서원은 사립이고, 향교는 국립이네요. 감사합니다.^^
긴 산줄기 하나, 멋지게 무탈하게 매듭지으셨습니다.
산자락에 묻혀 있는 동안, 오로지 산만 생각하는 정신세계가 돋보입니다.
시계가 완전하지 못하여 조망이 아쉽긴 했지만
그런대로 눈이 호강을 한 멋진 구간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금오산 전망대(삿갓봉, 거북바위봉)는 그 독특한 모양새가 인상적이네요.
설명없이 사진만 보았을 땐 마이산인 줄 착각했습니다.
멋지고 독특한 모양새가 어떤 공통 연관성을 생각하게 만듭니다.
백마산이 셋이나 등장하는 금오마루금이다 보니,
마이산과는 말과 연관되는 공통성을 유추해 보게 됩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구름에 달가듯이 혼자서 가는,
오로지 산 중심의 산행을 추구하는, 홀대모 예찬론에 전적으로 공감을 합니다.
퐁라라님이 추구하는 그 산행 스타일이
더 많은 공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수고하신 흔적, 즐감했습니다.
범산선배님!^^
공감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세상이 만만치 않다고 하는건 고고하거나 별난 삶을 가만 놔두지 않으려 하는데 있습니다.
뭇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삶을 동경하기도, 시기하기도, 폠훼하기도 하니깐요.
세속적인 재미에 빠져 세속적인 감정에 쩔은 구차스런 삶을 홍진이라 한다면,
더 큰 불행은 다른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고 좀비처럼 전염시키려 한다는데 있습니다.
격을 두고 멀리 하려면 멀리 할수록 말이죠.^^
세상 이치가 그런가보다 할 때도 있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홀대모는 혼탁함을 들이지 않고 그야말로 산을 가운데에 두고 산만을 생각하는 순수함을 추구하는 그런 모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