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안전사고 투자엔 인색
인간은 손실의 상황 닥치면 언제나 모험을 감수하려해 이득보는 상황과는 정반대
안전사고 예방 위한 투자 손실이라는 인식을 바꿔야
예견된 사고는 없다
나쁜 일이 만약 예견됐다면 그 사고, 절대 안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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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태균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
최근 몇 주는 뉴스를 보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여수와 부산의 유조선 기름 유출 사건, 이집트 폭탄 테러, 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등 경제적 손해나 피해를 떠나 너무나 많은 사람이 다치고 생명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의 연속이었다.
그런 불행한 사고가 그냥 우연히 일어났다거나, 어느 누구도 아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더 불안해지고 분노를 풀 대상이 없기에 당황스럽다. 이런 불안과 분노는 사고를 일으켰거나, 막을 수 있었지만 막지 않았던 누군가를 밝혀내서 매도하고 처벌함으로써 완화된다. 그리고 기사엔 '예견된 사고였다'는 제목이 달린다. 그런데 과연 그런 사건들은 진짜 예견되었을까?
실제로 어떤 나쁜 사건이 일어날 것이 확실히 예견됐다면 대부분 그 사건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이코패스가 아닐 바에는 대부분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죽거나 큰 피해를 볼 가능성이 100%라고 확신하는 일을 고의로 저지르지는 않는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이상화 선수나 김연아 선수가 한창 스케이트를 타고 있는 그 순간에는 우리 모두 긴장하고 흥분하면서 지켜보지만, 금메달이 확정되고 나면 외친다. "내 그럴 줄 알았어! 금메달 따는 건 당연하지"라고. 하지만 진짜 결과를 미리 알았다면, 그리 긴장하지도 재미있지도 짜릿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착각을 심리학에서는 '사후 예견 편향'이라고 부른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마치 그 사건이 일어날 줄 알았다는 듯이 착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행한 사건을 막지 못한 사람도 마치 미리 다 알고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에 진짜 나쁜 놈으로 여겨진다.
유조선이 항만에 충돌할 줄, 폭탄 테러를 당할 줄, 체육관이 무너질 줄 미리 알았던 사람은 없다. 다만 그들은 그런 위험(그 당시는 가능성)을 인식했을 때, '설마 충돌할까? 우리가 테러를 당할까? 진짜 무너질까?' 하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알면서도 그랬을까?'가 아니라 '왜 뻔한 걸 몰랐을까? 왜 그 가능성을 낮게 판단했을까? 왜 바보같이 그 위험을 감수했을까?'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카너먼 교수는 한 실험에서 사람들에게 ①50만원을 100% 받는 것과 ②100만원 받을 확률이 50%이고 돈을 전혀 못 받을 확률이 50%인 것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두 상황 모두 확률적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 금액은 50만원으로 동일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50만원을 반드시 받는 확실한 상황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①50만원을 잃을 확률이 100%인 경우와 ②100만원을 잃을 확률이 50%이고 돈을 전혀 잃지 않을 확률이 50% 경우 중에 선택하라고 하면, 이번에는 반대로 불확실성이 큰 후자를 더 선호한다. 두 상황 모두 확률적으로 손해 볼 수 있는 기대 금액이 50만원으로 동일한데도 말이다.
이렇게 뭔가를 얻는 상황과 뭔가를 잃는 상황에서 선호가 바뀌는 비합리적 성향을 '전망 이론(prospect theory)'이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이득 상황에서는 안전한 선택을 하고, 손실 상황에서는 모험을 감수하려 한다. 자기가 운이 좋다고 믿는다면 이득이건 손실이건 모험을 걸어야 하고, 운이 나쁘다고 믿으면 두 경우 모두 안전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사람들은 이런 일관성을 보이지 않는다.
유조선이 충돌 가능성이 높은 경로와 낮은 경로 사이에서 어디로 갈까, 테러 위험이 있다는데 성지순례를 갈까 말까, 눈이 많이 와서 체육관이 무너질지도 모르는데 학생들을 대피시켜야 할까 말까. 이 순간에 그들은 잘못된 선택을 했다. 바로 모험적인 선택, 위험을 감수하는 선택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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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러스트=정인성 기자
왜? 수많은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최소한 부분적으로는 충돌, 테러, 붕괴와 같은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는 앞의 카너먼 실험처럼 위험을 감수하려는 심리적 경향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선 '아무 일도 안 일어날 거야, 괜찮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이다.
기업들이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투자에 인색한 이유도 비슷하다.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큰돈을 들여서 사고 위험을 낮추는 방안과 비용을 적게 들이고 사고 위험이 큰 방안 중에 (위험도를 감안한 전체 기대 비용은 같아도) 후자를 선택하기에 여전히 수많은 안전사고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원래 그러니 이런 비합리적 선택과 불행한 사건을 그냥 내버려두자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은 흔히 안전사고와 같은 손실 상황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소극적 방안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기에, 소극적 방안에 대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는 안전사고 예방을 손실로 보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 생명을 구하고, 환경을 살리고, 미래에 큰 이익을 보장하는 이득의 관점으로 인식해 스스로 안전한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막아야 한다고 백날 외쳐도 안 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