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소폰의 눈물
효동어린이집원장, 수필가 배영희
오렌지빛 드레스를 입은 30여명의 합창단이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른다.
입을 크게 벌리는 사람, 작게 벌리는 사람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악보를 들고 있는데 어쩜 저리 각각의 입 모양과 표정이 다를까 생각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꽃다발을 들고 있는 가족들하며, 약속이나 한 듯이 동영상 촬영을 담는 남편들하며 모두가 진지한 모습이었다. 김천교육지원청 어머니 합창단 해단식 그리고 색소폰 교장선생님의 퇴임식.
내빈으로 오신 분 중에는 같이 퇴임하시는 몇몇 교장선생님들이 계셨는데 누구라 소개하지 않아도 세월의 흔적으로 ‘나 교장’이라 쓰여 있어 크크 웃음이 나왔다.
청산은 나를 보고, 찔레꽃, 엄마야 누나야 등의 합창이 이어지고 지휘자는 온 힘과 감정을 실어 한 곡 한 곡 지휘를 한다.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지, 왠지 손끝이 떨리는 것 같았다. 노랫말 하나하나에 그 어떤 의미를 담고 있어 나 또한 가슴이 먹먹해진다. 마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42년 된 기차의 기적소리 같았다.
교직생활 42년!
첫 발령 받은 그 날은 아마도 푸른 와이셔츠를 입으셨겠지. 처음 아이들 앞에 섰던 그 모습은 마치 풋사과 향이 날 만큼 청순했을 것이다. 똑같이 체육복을 입고 호루라기 휘휘 불며 운동장을 달렸을 것이고 와글와글 떠드는 교실에서 어쩌면 하나라도 더 가르칠까 그 누구보다도 목소리 높이셨겠지. 그 세월이 42년.
얼마 전에 초등학교 2학년인 우리아이가 동시를 지었는데 재미있는 학교, 재미없는 학교에는 시끌벅적한 아이들이 새장처럼 얽어놓은 창문으로 웃음을 보내고, 교장선생님은 색소폰을 연주하신다 라고 썼었다.
늘 그랬으면 참 좋으련만 싶다. 아이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고 교장선생님도 그대로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은퇴. 정년퇴직!
어디 학교만 그러할까, 공무원이든 정치인들이든 그 누구든 간에 공연이 끝나면 연극무대에서 내려와야만 하지 않겠는가
어제 저녁 식사모임 때 “평생 바쁘게 출근을 했고 여기저기 시간이 모자라게 살았는데 당장 3월이면 넥타이 매고 출근할 곳이 없다”라는 말씀을 듣고 코끝이 찡해왔다. 어느새 “떠나는 그 마음도 보내는 그 마음도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는 없겠지만...”하고 마지막 곡으로 석별의 정을 부른다.
그렇다. “서로가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음악만 흐를 뿐 합창단들도 더 이상 노랫말을 잇지 못했다. 그렇게 커보였던 교장선생님이 색소폰 위로 눈물을 보이신다. 지난날들이 구름처럼 스쳐간다. 인생이 구름 같다.
미련도 아쉬움도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그래도 교장선생님은 참 잘 사신 것 같다. 이렇게 멋진 합창단이 ‘스승의 은혜’를 불러주지 않는가
생각해보니 나도 그리 먼 세월이 남지 않은 것 같다.
힘들다. 어렵다. 바쁘다 해도 할 일들이 있을 때가 참 고마운 것이다.
봄이 온다. 새내기들이 또 입학을 하고 신입교사들이 또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겠지. 마치 교장선생님의 씨앗이 새로 돋아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인생은 1막만 있는 것이 아니라 2막도 있다.
제2막의 무대를 준비하는 인생의 선배들께 큰 박수를 보낸다. 더 힘차게, 더 웅장하게 우리는 어쨌거나 계속 공연 중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