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티키타카
::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강인 신드롬, 어디까지 기대해도 될까?
FC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자라고 있는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 알메리아에서 만 18세의 나이로 1군에 데뷔한 김영규, 레알마드리드 유소년 팀 최초의 한국인 선수 출신으로 알메리아 유소년 팀에서 성장하고 있는 김우홍에 이어 발렌시아 유소년 팀의 10번 이강인이 화제의 중심에 섰다. 세계 축구의 엘도라도(El Dorado, 황금의 땅)로 불리는 스페인 무대에서 자리고 있는 한국 유망주들에 대한 관심이 꽤 폭발적이다.
2013년 12월 29일자 수페르 데포르테 1면을 장식한 이강인 |
스페인에 한국인 유망주가 연쇄 출몰한 이유
지난 일주일 동안 한국의 축구신동 이강인의 이름이 해외축구 주요 소식을 점령했다. 2008년 KBS ‘날아라 슛돌이’ 3기 멤버로 출연해 유상철 전 대전시티즌 감독의 지도를 받은 이강인은 당시 7세의 나이로 믿기지 않은 탁월한 기술력과 킥력을 선보이며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 만난 유상철 감독은 여전히 이강인이 가진 잠재력에 강한 인상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강인이는 정말 물건이다. 내가 본 어린 선수들 중에 단연 최고였다. 골 포스트 맞추기 내기에선 오히려 나 보다 더 정확하더라.”
만 10세의 나이로 스페인으로 건너간 이강인은 명문클럽 발렌시아CF의 유소년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 알레빈C팀에 들어갔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지금 알레빈A팀의 10번이 된 이강인 신드롬의 진원지는 한국이 아닌 발렌시아 현지다. 발렌시아 출신 공격수 로베르토 솔다도는 이강인이 유소년 대회에서 뛰는 경기 영상을 본 뒤 등번호 10번의 플레이를 트위터를 통해 극찬했고, 이에 전 발렌시아 골키퍼 산티아고 카니사레스가 “이강인이다. 함께 뛰는 아들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며 그에 대한 기대감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어 발렌시아 지역 스포츠지 ‘수페르 데포르테’가 29일자 신문 1면에 “우리 선수다”라며 이강인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국내 언론만의 호들갑이 아니다.
최근 스페인 유소년 무대에 한국 유망주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은 한국유소년축구연맹의 정책적인 지원 덕분이다. 유소년축구연맹은 과거 브라질과 독일 등으로 유소년 축구 유학을 진행해왔으나 유로2008 대회를 기점으로 스페인 축구의 전성시대가 열리자 지체없이 방향을 선회했다. 신체 조건에서 한국 선수들이 적용하기 좋은데다 아기자기한 패스 축구의 세련미가 현대 축구의 트렌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 유망주들이 대거 스페인에 소개될 수 있었던 것은 유소년축구연맹이 직접 스페인 각 지역의 축구연맹과 협력해 유소년 국제 대회를 개최하고, 한국 유소년 선발팀을 출전시켜 경기를 치를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꽤 큰 규모의 유소년 대회라 많은 빅 클럽의 유소년 팀이 참가했고, 여기서 두각을 보인 한국 유망주들이 여러 스페인 주요 클럽의 유소년 팀으로 스카우트됐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FC바르셀로나로 향한 삼총사다.
"리오넬 메시도 1군 데뷔전에는 신문 1면을 장식하지 못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
스페인 스포츠지 1면을 장식, 정말 의미 있나?
발렌시아 유소년 이강인의 경우는 특별하다. 유소년 선수의 소식이 1면을 장식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대표 스포츠지 중 하나인 ‘문도 데포르티보’의 베테랑 기자 로헤르 토레요는 “지금은 프리메라리가의 경기가 없는 휴식기간이기 때문에 더 중요한 소식이 없기 때문”이라며 1면까지 장식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고 1면 장식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할 필요도 없다. FC바르셀로나 전담 기자지만 유소년 축구 취재 현장도 자주 찾는 토레요 기자는 “이강인의 경기도 직접 봤다. 정말로 잘한다”며, “스페인에서도 유소년 선수가 이토록 크게 보도된 것은 매우 예외적인 일이다. 메시 조차 1군 선수가 되기 전까지는 1면에 나온 적이 없었다”고 전했다. 발렌시아가 이강인에게 보내는 기대가 실제로 굉장히 크다는 이야기다.
발렌시아 소식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수페르 데포르테’의 보도에는 의도성이 있다. 지난 수년간 팀의 핵심 선수 및 유소년 출신의 유망 선수들을 빅클럽에 빼앗겨온 발렌시아는 이강인을 지키기 위한 전쟁을 공개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다비드 비야, 다비드 실바, 후안 마타, 로베르토 솔다도 등 팀의 대표 공격수들이 매년 떠났고, 이스코의 경우 유소년 팀에서 자라 1군 선수로 본격 데뷔를 하기도 전에 말라가로 이적했다.
이강인은 최근 스페인 아로나에서 열린 BLUE BBVA 12세 이하 국제 유소년 축구대회에서 보루시아도르트문트, FC바르셀로나를 차례로 탈락시킨 골을 터트렸고, 비록 레알마드리드에 패했지만 유벤투스를 제압하고 발렌시아를 3위로 견인한 이강인의 활약에 레알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맨체스터유나이티드 등 주요 명문클럽의 이적 제안을 받으면서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이강인은 이번 대회 이전에도 꾸준히 스페인 유소년 대회 및 유럽 국제 유소년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연한 드리블과 탁월한 왼발 결정력에 프리킥 능력을 겸비해 현지 언론에서 “마라도나의 발을 가졌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현재 발렌시아 유소년 팀 내에서 발렌시아가 키워낸 특급 미드필더 다비드 실바와 가장 닮은 선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수 년간 스페인 각급 대표팀과 레알마드리드를 취재한 카데나 코페의 미겔 앙헬 디아스 기자는 보다 냉정한 자세를 유지했다. “특출 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키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얼마나 좋은 지도를 받을지가 중요하다. 큰 가능성을 지닌 것만은 사실이나 아직 꽤나 많은 시간이 남았다.”
아직 만 12세에 불과한 이강인이 성인 선수로 데뷔하기 위해선 아무리 빨라도 5~6년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지나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을 치른 뒤에도 1군 팀에서 뛸 기회를 받을지 여부가 불확실한 매우 긴 기간이다. 이강인이 순조롭게 잘 성장하더라도 월드컵에서 뛰는 모습을 보려면 빨라도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다. 8년 뒤에 열릴 대회다. 그 어떤 일도 보장하기 어려운 미래다.
한국인 삼총사 영입을 결정한 FC바르셀로나 유소년 담당자 푸이츠와 김영균 유소년연맹 부회장 |
될 성 부른 떡잎, 이강인에게 필요한 것
이강인은 지금 매우 중요한 시기에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 양성소로 불리는 FC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코디네이터 알베르트 푸이츠(Albert Puig)는 자신의 저서 <꿈의 힘 La Fuerza de un sueno>에서 “축구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10세부터 13세 사이”라고 말했다. 푸이츠는 이 저서에서 수많은 연구 그리고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유소년 시기의 화두인 승리와 육성, 참여와 경쟁 중 승리와 경쟁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어린 나이에는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우리 유소년 축구의 통념과는 다소 다른 이야기다.
주제프 과르디올라 현 바이에른뮌헨 감독도 “승리가 주는 효과는 좋은 육성 방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전술적인 규율, 질 좋은 훈련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승리하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말했다. 물론 여기에는 조건이 따른다. “유소년 단계에서 가장 좋은 교육법은 좋은 축구를 하면서 항상 승리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 본인도 인정 하듯 모든 경기를 다 이길 수 없는 법이다. FC바르셀로나의 첫 유러피언컵 우승의 주역 알레산코는 유소년 축구 교육에서 “경쟁하는 법과 승리하는 법도 중요하지만 패배하는 법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회에서 의미 있는 세 번의 승리, 그리고 눈물을 흘린 레알마드리드전 패배는 이강인에게 매우 큰 배움이 됐을 것이다.
FC바르셀로나B팀 감독으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한 루이스 엔리케 현 셀타비고 감독은 “8살에서 12살에 이르는 시기의 아이들이 보인 재능이 평생을 간다. 지도자가 해야 할 일은 이 재능에 팀 플레이에 맞춰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고, 이 선수들이 하나의 팀으로 뛰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다”고 말한다. 진부할 수 있는 기본에 대한 이야기지만, 정답이다. 이 나이대에 있는 이강인에겐 분명 한국의 메시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기술력 부족으로 아직 한국 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무대에, 몇 년 뒤면 한국인 스타들이 줄줄이 쏟아질 수 있는 가능성에 많은 축구 팬들이 기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과한 기대와 관심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조금 시선을 거둘 때다.
유소년 시기에 중요한 또 다른 것은 경기장 밖에서의 마인드 컨트롤과 인격 형성이다. 겸손하고 차분한 자세로 지금 해왔던 것처럼 몇 년의 시간을 더 정진해야 한다. 꾸준함을 놓치고, 경쟁심과 열정을 놓치는 순간, 도태 되는 것은 순식간이다. 어린 나이에 스타의식을 느끼고, 자신감이 자만으로 이어진다면 지금의 가능성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그 환경이 형성되는 과정에는 언론의 힘도 적지않다. 응원하고 성원하고 격려하는 것은 좋지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정도로 과해선 곤란하다. 우리 스스로 될 성 부른 떡잎의 성장에 장애물이 되어선 안된다.
글=한준 (풋볼리스트 기자, tvN 축구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