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7월 9일 토요일.. 오전에 비. 차차 개이고 맑아짐..
어제 금요일 오후, 친구도 보고 황학동 도깨비 시장도 구경할 겸 반바지 차림에 슬리퍼를 끌고 외출을 했다.
한참을 걷고 피로가 느껴질 쯤 동창에게서 전화가 온다. 합정동 모 족발집에 친구들이 모인다고 나를 부르는 전화다.
육신에 도달한 피로보다 친구들을 보겠다는 정신적 욕구가 컸는지 사양하지 못하고 동네 구멍가게에 막걸리 사러가는 차림으로 지하철에 올랐다.
친구 네 명이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행복한 추억으로 세월을 채운 후에야 새 날을 맞으며 집에 올수 있었다.
그의 취기가 미처 깨이지 않은 이른 새벽
오늘을 기약하고 맞춰놓았던 핸드폰의 울부짖음으로 일어나긴 했으나 한동안 자리에 주저앉아 제정신이 돌아오기까지 몽롱한 공을 들여야 했다.
빗소리가 노래처럼 들려오는 아침..
내심 아예 폭우로 쏟아져 오늘 등산이 포기되기를..
그래서 그동안 알코올도수로 묵혀진 이 몸뚱아리를 좀 편히 눕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때마침 아침 운동을 함께하는 교회 형님의 차를 가지고 온다는 연락에 오늘 동문회 등산을 핑계로 미루고 영례 후배에게 산행이 실행될지를 문자로 재차 확인하니 무조건 오란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택시로 목적지에 도착을 하니 낯익고 반가운 얼굴들이 식당 처마 밑에서 안쓰럽게 비를 피하며 서성인다. 정감어린 인사를 나누고 비로 인한 방황을 잠시 할 때 저만치서 학구후배가 걸어오고.. 어쩌다 같잖게 정이 들어버린 우리는 속초팅 이후 두 번째 만남을 뜨거운? 눈물의 상봉?? 으로 대신하고 조금 더 기다린 후 집결이 마무리 되자 오늘 산행의 산악대장 대행 조상선 친구의 지휘 아래 18명의 동문들이 산으로 산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일을 함께 공유하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어떤 일인들 좋지 않을 수 있겠으며 또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함께 해줄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약간은 억지스러운 변증을 떠올릴 때 나의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것은 교회와 동네가 나누어 감당해왔던 나의 인간관계와 그로인한 시간과 물질의 투자가 동문회라는 곳으로 수평이동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전혀 어색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는 것이었다.
잘나가는 것, 어려움, 빈부나 능력의 차이 같은 것을 드러낼 이유나 필요도 없으며 그냥 동등한 위치의 동문들..
그래서인지 편안함을 주고 얘기를 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어떤 이의 처한 사건에 공감하고 이해해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대단한 장점으로 자리하지만
그렇다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도 있는 깊이 있는 교제와 세밀한 친밀감마저도 만남이 거듭되거나 서로의 필요에 따라 얻어질 수도 있다는 확신 같은 것이 우리의 만남에 있음을 자부심으로 충분히 승화할만하니 행복할 뿐이다.
각자의 남편과 아내로부터 당할 쿠사리를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건지 하산 후에도 이어지는 2차 3차까지의 동행들..
이처럼 동문들이 집에 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된 것은 나마저도 그날 하산 이후 어머니 생신 때문에 모인 가족들과의 식사를 위해 집에 갔다가 다시 2차 모임 장소로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택시를 잡아타고 돌아오는 꼴을 보면서 뭔가 우리의 만남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흡입력 같은 것이 있음을 알게 했다.
산행을 시작하며 참석한 여자 동문들의 가방을 대신 짊어지는 남자 동문들..
처음으로 등산을 한다면서도 전혀 처음 같지 않았던 정광석(26기)후배는 속초에서의 만남을 기억해내는 놀라운? 기억력을 보여주었는데 사실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이기는 했으나 먼저 기억하지 못한 것이 미안할 다름이다.
처음 등산하는 남자는 내팽개치고 ㅋㅋ..
이주영(27기) 후배는 앞에서 잡아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치사한 남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조상선(25기), 이규월(25기)이었다는 전설이~ 믿거나 말거나~
등산 마니아들도 있었지만 대열의 느린 진행에도 이탈하지 않고 보폭을 맞추며 도움을 주는 모습에서 서로를 아끼고 보호하는 동문의 정을 찾아 볼 수 있었다.
정상에 올라 맞이한 점심은 거의 만찬 수준이어서 준비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얼마나 감동적이었는지 모른다.
더욱이 빈손으로 올라와 잘 받아먹은 이규월(25기), 주교중(27기)등.. 도 있었으니 그 무거운 배낭을 가볍게 해준 그들의 공로역시 반드시 인정해주어야 할 것이다.
식사 후 바위산 비봉 정상에 오르며 만끽한 그 쾌감이란..
조상선,이규월,이창연,신명순,박세의,노상래,한찬수,이주영,백승권등이 그 대열에 함께 했다.
북한산 날다람쥐 노상래(27기)님의 아슬아슬한 장기를 본 것도 수확이지만,
오늘 산행이 처음이라는 이주영(27기)님은 감히 비봉정상까지 도전하는 무모함을 안전하게 성공하며 베이스캠프에서 기다리던 대원들에게 "혹시 1년동안 몰래 열라 연습하고 온거아냐?" 하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으나 어쨌든 하루아침에 영락산우회의 중심 산악인으로 서게 된 것이야 말로 기억할 만한 사건일 것이다.
그리고 비봉 바로 아래에서 이재혁(23기)선배님을 우연히 만난 것도 그날의 백미가 아닐 수 없다. 우리들이 목에 걸친 수건에 쓰여진 "영락~~" 그 글자가 계기가 된 만남!
영락의 동문들이 세계 어느 곳에서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영락" 이라는 이름이 수치가 아닌 영광스런 이름이며 자랑이길 그래서 당당히 만날 수 있는 이름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사실 많은 인원이 움직였던 5월 속초 여행은 동문 모임이 처음이었던 어색함까지 더해져 나에게 관심을 보여준 몇 사람과의 인사밖에는 나눌 수 없었으며 깊이 있는 대화는 불가능했었다.
그 후 행복하게도 불러주는 동문들 덕에 대학로에서 그리고 인천까지 달려가 선후배를 만났고 최근에는 25기 동기들이 만남의 지경을 넓혀가는 과정에 있다.
이번 등산은 함께 한 동문들의 삶과 인생을 조금 더 나누고 맛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이것이 부모형제 만큼의 관심과 사랑이야 되겠냐마는..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한번 두번 반복되는 우리의 만남을 통해 지금 보다 더 나아지고 깊어지고 아껴주고 생각해주고 심지어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결실이 맺힌다면 축복일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생각해주고 나아가 축복을 빌어주는 것처럼 행복한 일이 있을까?
나는 산길을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그의 현실이 만족하든 어렵든 잘되기를 빌었다.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상대역시 나의 앞길이 잘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과 그 진심을 마음으로 눈으로 입에서 나오는 말로 볼 수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작은 여하튼 속초였다.
이름도 이쁘고 얼굴과 마음까지 이쁜 후배 "이 현주(30기)의 문자로 시작된 만남...
자주 만나야 한다. 많은 동문들이 만나야 한다. 정기모임이든 벙개든..
어떤 방법과 수단을 쓰더라도 우리 동문회를 살리고 활성화 시켜 이제는 조금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유익하고 유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야 하고 그 기회와 시점이 왔다고 본다.
얼마 후면 나는 이억만리로 떠나갈 것이다.
가뜩이나 외로운 땅에서 이 알뜰한 행복을 뒤로 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영락고등학교 동문들은 나에게 만남의 행복과 이별의 아픔을 함께 가져다 준 정말 미스테리한 존재이며 참 좋은 벗이다.
첫댓글 규월친구 한편의 소설을 읽은듯 여튼즐거운 산행이었고 소록소록 기억의 한편을 상기시켜보네 수고했어
친구덕분에 좋은 산행을 했으니 그것이 감사하지..
선배님.....
네~ 불렀어요?
선배님 할말이 헉~~~~~~ 짱입니당이~~~잉
에~~~엥.. ㅋㅋ
두번의 북한산 등반을 심한음주후에 하셨군요.. 음....... 아무래도 제가 단속에 나서야할 듯 하네요~~ 선배님의 글을 읽으면서 마치 저도 그날 같이 등산을 한 듯....... 그런데요.. 선배님.. 너무 달리지마세요.. 건강 생각해서 잠도 좀 주무시면서 달리세요^^*
너무 걱정마세요. 나 아주 쌩쌩해요.. 건강검진 결과도 아주 A급으로 나왔으니까.. 총각같았으면 잘 팔렸을텐데..ㅋㅋ
선배님 글 읽다보니 마치 짧은 수필 단편집을 읽는듯 합니다. 그 내용속에 담겨있는 뜨거움과 따스한 열정을 느낍니다. 아마 우리 동문들 한분 한분의 마음도 분명 그럴것이라 믿고싶군요.
동문들의 마음.. 동의합니다. 후배님..
선배님에 멋진 글이 안가도, 간 듯합니다.^^ 글구 재미있습니다.
금요일에 드뎌 우리 후배님을 보겠네~~ ^^ 조심해서 잘 오셔~~ 주안에서 수남후배님을 축복합니다.
하여간 말씀도 잘하시고 글도 잘쓰시고 인간성은 잘모르겠고 다리는 좀 짧아보이고.ㅎㅎ
산행의 즐거움이 또 생각나네요..이러다 캐나다 가기 싫어지면 어쩌시려고.^^*
가기 싫어지면 그냥 살면되고.. 그런데 나 다리 안 짧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