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개모차’ 때문이라니…일본, 요즘 한국이 만만하다는데
[한중일 톺아보기]
신윤재 기자(shishis111@mk.co.kr)입력 2024. 3. 10. 17:06
[한중일 톺아보기-123]
◆ 저출산 대책 ◆
“출산율 0.72...출생아수는 5년새 30% 줄어든 23만명”
지난 28일 한국의 2023년 합계 출산율이 ‘0.72명’ 이라는 초유의 숫자를 기록했다는 소식이 전하여지자, 일본 언론들은 일제히 속보 처리하였습니다.
바로 전날 일본에서도 지난해 합계 출산율이 1년전 보다 떨어진 1.20 전후에 출생아수도 역대 최저인 75만명을 기록할 것이라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에 우려스럽다는 반응을 보이던 일본 네티즌들은 한국에서의 출산율 소식에 “그나마 위로가 된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저출산 이슈는 최근 일본 정부는 물론 기업 및 국민들 사이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사안중 하나입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서의 상황은 일본에서도 높은 관심의 대상입니다.
저출산 추세가 선진국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라곤 해도 현재 OECD 회원국중 출산율 1.0을 밑도는 나라는 이웃나라인 한국 뿐인데다, 매년 최저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韓 인구 50년뒤 반토막 가능성...日기업 “더 이상 라이벌 아닐 것”
지난 12월 한국 통계청은 한국의 총인구가 2022년 5167만명에서 50년 뒤인 2072년이면 30% 가량 줄어든 3622만명이 될 것이라는 추계를 내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추계는 출산율이 2025년 0.65까지 떨어진 뒤 2036년 이후 1.0 대로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론을 전제로 할 때입니다.
한국의 출산율은 그동안 전망치 평균 보다 줄곧 낮게 나타났고, 지금까지 대책이라고 내놓았던 것들이 큰 효과를 거둔 적은 없는 상황입니다.
실제로 1971년 4.25에 달했던 한국의 출산율은 지난해 0.72를 기록하며 83%가량 폭락하였는데, 이는 전망치를 크게 하회한 것입니다. 해당 기간 출산율 하락폭이 80%를 넘은 나라는 전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합니다. 한국에 이어 중국, 홍콩, 부탄 정도가 79% 가량 하락률을 보였습니다.
이에 일본 경제지 ‘도요게이자이’는 “서울의 출산율이 0.55인데 1.0대 회복은 장밋빛 전망”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한국의 출산율이 향후 크게 반등되는 일 없이 0.7~0.8 수준에 머물면서, 50년 뒤 인구가 거의 반토막 수준인 3000만명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지적 입니다.
인구급감에 따른 노동력 부족과 수요 부족은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면서 결국 기업경쟁력도 갉아 먹을 공산이 큽니다.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한 일부 일본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동안은 한국기업들과 경쟁해 왔지만 앞으로 더 이상 우리의 라이벌이 아닐 것”이라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유모차보다 개모차 더 팔려...“육아로 고생하기 보다 반려동물 키우며 즐겁게 살자는 ‘미이즘’ 영향”
지난해 한 국내 전자상거래 업체에서 반려견을 태우는 개모차 판매량이 유모차 판매량을 앞질렀다는 소식은 일본에도 전해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출생아수는 감소일로인 한편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대는 늘다보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지만, 전례 없던 현상이다 보니 한동안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습니다.
일본 TBS 방송은 관련 뉴스를 전하며 유독 낮은 한국의 출산율 배경으로 ‘학원 뺑뺑이’ 와 ‘미이즘(Meism)’ 두 단어에 주목하였습니다.
학원 뺑뺑이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 어릴때부터 학원 여러개를 경쟁적으로 돌려대는 현상 입니다. 대학진학, 취업 등을 위해 일본을 압도하는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고 이를 위해 부모가 져야하는 경제적 부담, 과도한 수도권 집중도, 높은 부동산 가격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저출산을 부추키고 있다고 이 매체는 소개하였습니다.
경제적 요인 이외에 다른 요인은 청년층의 의식변화와 관련이 있습니다. ‘미이즘’ 은 ‘나’를 중심에 두고 개인적 가치와 행복을 무엇보다 우선시 경향입니다. 세대가 바뀌면서 전통적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 약화되고,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자리 잡으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보입니다.
다만, 국내에서도 논란을 일으킨 개모차 소식은 결과적으로 일본에 “한국은 사람보다 개가 먼저인 사회가 되었다”는 인상을 안겨준 것 같습니다. TBS는 출산에 따르는 책임과 육아과정에 수반되는 희생이 부담스러워 “자녀를 키우며 고생하는 것보다 개, 고양이 등이나 키우며 즐겁게 살자는 젊은이들이 늘었다”고 꼬집었습니다.
한국 ‘인구 소멸국 1호 전망’ 불명예 ...“북한 변수 있어”
전세계에서 고령화율이 가장 높은 일본은 이미 지난 2005년부터 인구가 줄어들어 왔습니다. 한국의 경우에도 일본에 비하면 한참 이후이긴 하나, 2021년 부터 인구가 감소 중입니다.
한국의 고령화율은 지난해 기준 약 19%로 초고령사회(고령화율 20% 이상)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2007년에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 고령화율 30%에 육박한 ‘세계 최고령 사회’ 일본 보다는 꽤 낮습니다. 문제는 추세대로라면 2045년 전후에 역전된다는 겁니다.
주지하다시피, 고령화율이 높아질수록 의료 및 연금 등 현역세대들이 짊어져야 할 사회보장 부담은 눈덩이 처럼 불어나게 됩니다. 또 무엇보다 인구 급감은 국가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습니다.
영국 옥스포드 인구문제연구소 데이비드 콜먼 교수가 처음으로 한국을 두고 “추세대로면 지구에서 소멸되는 1호 국가가 될 것” 이라고 지목한 때가 벌써 2006년 입니다. 이후 UN, 삼성경제연구소 등 다른기관들도 속속 유사한 전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한국이 일본에 앞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소멸하는 나라가 되는 수순에 있다는 건데, 다만 ‘도요게이자이’는 한국에는 일본에 없는 한가지 변수가 있다고 짚었습니다. 바로 북한의 존재입니다.
최근 북한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저개발지역 치고는 출산율이 매우 낮다는 소식이 전해진 바 있지만, 그래도 지난해 기준 합계출산율이 1.8로 0.72인 한국에 비하면 매우 양반입니다. 때문에 만에 하나 미래에 통일이 된다면 북한 여성과 남한 남성들간 결혼 붐이 일어날 수 있고, 한국의 저출산과 인구감소 추세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는 겁니다.
김씨 왕조가 지배하는 북한이란 존재는 한국에게 크고 작은 문제점을 일으켜 온 골칫덩어리 입니다. 하지만 인구문제에 관해선 일본에겐 없는 하나의 ‘비장의 카드’ 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이 매체는 지적하였습니다.
“한국 끝났다? 당장은 아니고 30년 정도는 버틸 것”
또 이 매체는 국가소멸급 위기가 예상되는 건 맞지만 한국이 본격 쇠퇴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뒤의 일로 내다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일단 한국에서 인구 감소로 인한 일손 부족 영향이 현저히 나타나려면 2050년은 지나야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현상이 없었던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는 현재 40세 전후입니다. 이들이 향후 최소한 25~30년은 더 일할예정인 만큼 2050년 까지는 한국내 일손 부족현상이 지금보다 그리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물론 지역 및 업종에 따라 이미 심각한 곳들도 있습니다. 인구 감소 영향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 서비스·소매업과 같은 노동집약형 업종들은 젊은 인력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인구 감소로 가장 파괴적 영향을 받게 될 분야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제조업의 경우 인구 감소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은 산업에 있어 이중구조가 뚜렷한 편입니다. 생산성이 높고 글로벌하게 사업을 전개하는 제조업 중심 대기업과 생산성이 낮고 국내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소매·서비스업 중심의 중소·영세 기업이 병존하고 있습니다.
도요게이자이는 “일본 기업들과 경쟁하며 승리했던 분야가 있는 한국 제조기업들은 경쟁력이 있다. 적어도 향후 30년간 일본기업들에게 계속 강력한 라이벌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였습니다.
제조업 경쟁력 이외에 그동안 한국이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에 아낌없이 투자해왔다는 점도 거론하였습니다. 한국의 연구개발비는 2021년 기준 100조원이 훌쩍넘어 10년새 2배가량 늘었습니다.
이는 절대액수로 보면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액수 이며, GDP 대비로는 4.93%로 이스라엘에 이어 전세계 2위입니다. 이 덕분인지 지난해 일본 문부성 집계 과학기술 논문 인용도에서 한국의 순위는 일본 보다 높았습니다.
과학기술 발전이 국가 및 기업 경쟁력에 반영되는데에는 보통 20~30년 시차가 있습니다. 따라서 연구개발비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지속될 경우 2050년 전후 인구감소로 인해 하락하는 한국의 국가경쟁력을 어느정도 상쇄해 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현금성 지원, 출생아 62만 증대 효과 불렀다지만...근본적 대책은 못돼
지난 7일 한국 조세재정연구원은 2011~2020년까지 10년간 이뤄진 자녀·출산 관련 현금성 지원이 약 62만명의 출생아 증대 효과를 발생시켰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해당 기간 출생아수의 16% 수준입니다. 지난해 1.65 로 출산율 5년 연속 전국 1위인 전남 영광군도 지자체 차원에서 자녀 출산시 파격적인 양육 지원비를 지급해 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순 현금성 지원이 장기적으로 한국에게 지속가능한 저출산 대책이 되기에는 부족해 보입니다. 저출산과 직접 관련 없는 ‘허수 예산’까지 포함했다는 지적이 있긴 하나, 지난 20여년간 쏟아부은 예산이 수백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작금의 출산율은 낮아도 너무 낮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결국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교육과 노동, 집값 안정 등 사회구조적 개혁과 함께 무엇보다 지나치게 남들과 비교해 과당 경쟁에 빠지기 쉬운 사회풍토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만약 이번 정부에서도 출산율 반전을 이루어내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향후 30년은 어떻게 버티더라도 이후 급속도로 붕괴될 공산이 큽니다. ‘망국병’이라 불리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골든타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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