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주의 고장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를 찾아가는 길은 설레였다. 흑석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형적인 시골마을인 덕정리는 그 이름 德鼎에서 보듯 흑석산을 떠받치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 취재팀이 이 곳을 찾아가면서 유독 설레였던 것은 기자의 고향이 바로 이 곳이기 때문이다. 덕정리 둔주부락이 고향이다. 둔주포는 덕정리와는 500여m 떨어진 곳으로 지금은 행정구역상 마을이 나뉘어져 있다. 국민학교 시절 날마다 덕정리 앞길을 거쳐 혹은 마을을 거쳐 십리가 넘는 등하교를 했다. 그러니,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 것인가.
각설하고, 진양주 기능보유자인 최옥림 여사를 찾아가자 최씨 보다 먼저 우리팀을 반긴 것은 그의 부군인 임한모 선생이었다. 대뜸 "누구 누구 왔냐. 어릴 적 얼굴이 그래도 많이 남아있네, 아버님은 건강하시냐"며 안부를 물었다. 부친의 친구분 되신다니, 임 선생도 반갑기는 마찬가지 였으리라. 내 기억에는 별로 없으신 어르신이지만, 나 역시 편안했다. 하긴, 진양주 역시 어린날 내 기억에는 없는 술이었다. 철들고, 또 전통주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들은 이름이다. 임 선생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왜 어린시절 기억에 진양주가 남아있지 않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궁중에서 마시던 술, 어주
찹쌀과 누룩을 주 원료로 하는 진양주는 옛날 궁중에서 임금이 마시던 어주다. 대부분의 특산품이나 명주가 궁중에 진상했다는 이유만으로 명주의 반열에 오르지만, 진양주는 이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어주가 반가의 가양주로 전승돼 내려온 것이다. 그 내력은 이렇다.
조선 헌종 때 궁중에서 어주를 빚던 궁녀 최씨가 영암으로 낙향한 김권의 소실로 들어와 본처의 손녀 김씨에게 비법을 전수해줬다. 김씨는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 장흥임씨 집안으로 출가하면서 임씨 집안 며느리들에 의해 제조비법이 이어져왔다. 김권의 손녀는 친정에 갈 때마다 자신이 빚은 진양주를 가지고 갔는데 할아버지는 "니가 만든 술맛이 그 어떤 술보다도 좋다"고 칭찬했다. 임씨 집안의 술맛이 친정집 술 보다 맛이 뛰어난 것은 바로 흑석산의 맑고 깨끗한 암반수 때문이고, 오늘날 진양주의 탁월한 맛도 여기서 나온다.
쌀 한되를 담그면 술 한되가 나오며 은은한 황색의 고운 술 빛깔이 황제의 품격을 닮았다는 평을 듣는 진양주는 전통 약주로 찹쌀과 누룩으로만 빚는다. 맛이 진한데도 부담을 주지않으며 단맛이 난다. 물론 뒤끝 역시 개운하다. 입안에 머금고 술맛을 오래도록 음미하며 마실 수 있다. 가장 한국적인 술이다.
■덕정리 물로 빚어야 제맛
"이 진양주는 덕정리 물로 빚어야 지 맛이여. 알다시피 덕정리도 바닷가 아닌가. 그래 물에 쪼금 짠맛이 들어 있어. 아마 그게 맛을 독특하게 만드는 지도 몰라."
진양주 맛의 비결을 덕정리 물맛이라고 설명한 임씨와 최씨는 이어 고생이 철철 넘쳐나는 옛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자네도 고향이 여그라해도 진양주 맛을 제대로 보지 못했을 거여, 또 어렸을 때 잘 듣지 못한 것도 이유가 있제. 이 술맛을 지켜내느라 얼마나 힘들었는데……아, 지금이사 이렇게 진양주를 내놓고 자랑도 하지만, 어디 옛날에야 그랬간디, 그저 집안 대소사에 쓰기 위해 술을 빚었지만, 밀주단속이라는 그물에 걸려 고생 많이 했제. 술을 빚다가 단속이라도 나오면 그 무거운 술독을 들고 냇가 다리 밑에 숨기기도 하고 아예 텃밭에 파묻기도 했당께. 그래도 한해도 거르지 않고 술을 빚긴 빚었제, 이게 벌써 6대째 내려오는 술인디, 우리 대에서 끊기면 조상님들 얼굴을 어떻게 볼 것이여."
전통주를 빚고 지켜내려오는 곳의 경우 어디나 비슷하지만, 진양주 역시 밀주 단속의 칼날을 피하진 못했다는 설명이다.
"진양주를 빚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룩과 찹쌀, 물의 비율을 잘 맞춰야 혀. 특히 발효 기간 중에는 온도를 20∼25도로 유지해야 하지. 더 올라가면 술이 아니라 식초가 돼불제. 또 밑술을 담글 때 찹쌀로 죽을 쒀서 넣어. 이렇게 저렇게 술을 만드는 기간이 한 보름 쯤 걸려. 그래서 보름술이라고도 하고, 너무 맛이 좋아 한없이 앉아서 마시다 일어나지 못해 앉은뱅이 술이라고도 혀."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는 임씨와 최씨의 진양주 사랑은 끝이 없었다.
■무형문화재 지정된 명품술
한참 어려움을 겪던 진양주 제조가 비교적 자유스러워진 것은 90년대 들어서면서 부터다. 94년 1월31일 진양주가 전라남도 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이처럼 진양주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데에는 임씨의 남다른 노력이 있었다.
"1986년 우연히 민속주가 무형문화재로 등록됐다는 신문기사를 보았제. 그래, 진양주도 무형문화재로 등록시키기로 결심하고 관계기관을 문턱이 닳도록 찾아다녔어. 그러다 마침내 1994년 지방무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받았는데, 웃기는 것은 제조면허가 없어서 밀주라는 것이여. 한쪽에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전승시켜야 된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선 단속을 한다니……결국 1999년 2월26일 제조면허를 받았는데, 그 다음엔 또 상표등록이 문제가 됐어. 이미 진양주라는 상표가 등록돼 있는 것이었지. 그 뒤 3년간의 소송 끝에 2002년 1월11일 상표를 등록하고, 오늘에 이르렀어. 진양주가 온전히 제 모습을 찾은 것이제. 그 뒤로는 좋은 일도 많았어. 2004 전통식품 베스트 5 선발대회서 전통주류부문 상을 받았고, 20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OECD 각료회의에서 만찬 건배주로 사용돼 세계인의 호평을 받았지. 이것 말고도 자랑할 게 더 많지만, 이만 할라네."
참 곡절 많은 진양주의 역사다. 애환이 서려있고, 희노애락이 교차하는 게 딱 우리네 삶과도 닮았다.
"전통주 산업은 지역에서 생산된 친환경 농산물의 소비 증대 뿐 아니라 남도 맛 산업 발전과 남도음식 세계화를 위해 적극 발전시켜나가야할 산업이다. 따라서 전통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고 국내외 관광객을 통한 홍보 강화가 필요하다. 남도 전통술의 세계화를 위해 남은 여생을 바치겠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지만, 지자체도 보다 적극적으로 나섰으면 좋겠다. 바람이라면 문화재로 지정돼 학생들이 견학을 많이 오는 데 술 빚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으면 한다. 내가 못하면 지금 전수받고 있는 큰 딸이라도 이 꿈을 이뤄줬으면 좋겠다."
임씨가 우리 취재진에게 건네준 자전적인 글인 '진양주는 나의 동반자'라는 글의 요지다. 그의 꿈이 꼭 이뤄지기를 바라며 진양주 한잔을 가득 채워 입안에 머금었다. 진하고 부드러운 향이 온 몸을 적시는 듯 했다.
감미로운 진양주 향취를 뒤로하고 주조장을 나서는 데 "우리집 전화번호도 꼭 좀 적어줘요" 최씨가 등 뒤에 숫자 몇개를 얹어줬다. 061-532-5745. 해남군 계곡면 덕정리 진양주가 살고 있는 곳이다. 글·사진=이종주·김옥경기자
첫댓글 다음 산행때 맛 한번보세 자랑만하지말고
오매---그랴 그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