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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 |
주요 사건들 |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
33 |
회심 |
행 9:1-19a |
33 |
다메섹에서 전도함 |
행 9:19b-22 |
35 |
3년간 아라비아에 머물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옴 |
행 9:23-25; 갈 1:16-17 |
35 |
제1차 예루살렘 방문(15일간 머묾) |
행 9:26-30; 갈 1:18-20 |
35 |
길리기아에 있는 다소에 가서 머묾 |
행 9:30; 갈 1:21 |
43 |
바나바가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옴 |
행 11:25 |
46/47 |
제2차 예루살렘 방문(구제헌금전달, 이방인선교논의) |
행 11:30, 12:25; 갈 2:1-10 |
47-48 |
제1차 전도여행(안디옥-실루기아......더베-안디옥) |
행 13:1-14:28 |
48/49 |
베드로의 안디옥 방문 |
행 15:1-2; 갈 2:11 |
48/49 |
갈라디아서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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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49 |
제3차 예루살렘 방문(총회 참석) |
행 15:1-35 |
7. 갈라디아서의 구조
1) 황원하 목사의 구조분석20)
1:1-5 서두
1:6-10 다른 복음은 없음
1:11-17 바울의 사도권 변호
1:18-24 바울의 독자적인 활동
2:1-5 다시 예루살렘을 방문함
2:6-10 사도들이 바울의 사역을 인정함
2:11-14 바울이 베드로를 책망함
2:15-21 복음의 본질
3:1-5 갈라디아 교인들의 회심 방법
3:6-14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됨
3:15-22 율법과 약속
3:23-29 율법의 역할과 신자의 지위
4:1-7 하나님의 유업을 받음
4:8-11 과거로 돌아가지 말라
4:12-20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한 호소
4:21-31 하갈과 사라
5:1-6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
5:7-12 거짓 선생들을 물리침
5:13-15 사랑의 법
5:16-26 성령을 좇아 사는 삶
6:1-5 범죄한 자에 대한 자세
6:6-10 가르치는 자에 대한 자세
6:11-18 마지막 권면
2)
1:1-5 인사 및 편지의 서론
1:6-10 문제의 제기: 바울의 복음 vs “다른 복음”
1:11-2:21 바울의 복음: 사람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3:1-4:11 바울의 복음: 경험에의 호소와 성경에의 호소
a. 성령 경험에의 호소(3:1-5)
b. 성경 약속에의 호소(3:6-14)
c. 성경에의 호소 확장(3:15-4:11)
4:12-5:12 율법으로부터의 자유
a. 관계에의 호소(4:12-20)
b. 성경에의 호소(4:21-5:1)
c. 연속적인 권면(5:2-12)
5:13-6:10 그리스도인 자유와 성령으로의 삶
a. 그리스도인 자유와 사랑의 종노릇(5:13-15)
b. 성령으로의 삶: 성령의 열매 맺으며(5:16-24)
c. 성령으로의 삶: 공동체 안에서(5:25-6:10)
6:11-18 편지의 종결
8. 논쟁점
갈라디아서는 이신칭의 교리를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 20세기에 등장한 ‘바울에 대한 새 관점 학파’(New Perspective on Paul; 이하 ‘새 관점 학파’라 함)의 주장으로 인해 논쟁이 되고 있다.21)
갈라디아서 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의 ‘율법의 행위’(ἔργα νόμου)라고 번역된 말을 다르게 해석한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 ‘율법의 행위’가 할례, 음식법, 절기 등과 같은 유대인들의 의식을 가리킨다고 본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의식을 통해 자신들의 우월함을 드러내었으며, 바울이 그것을 비판한다고 본다. 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려고 한 것이 아니며, 바울도 율법을 통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과 달리 전통적인 입장에 따르면 바울은 ‘율법의 행위’라는 표현과 ‘율법’이라는 표현을 동일시했으며(갈 2:16,19,21; 5:4), 율법의 행위란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모든 노력들이다.22)
율법의 행위와 더불어 뜨거운 감자가 되는 문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πίστις Ἰησοῦ Χριστοῦ)이다. 그리스도의 믿음은 율법의 행위와 대조 속에서 읽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2:16이 칭의를 말하면서 율법의 행위와 그리스도의 믿음을 대조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를 인간의 공로적 율법 행함으로 이해했던 전통적 읽기는 대조적으로 그리스도의 믿음을 행함을 포기하고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읽었다.
그러나 라이트(Wright)는 그리스도의 믿음을 그리스도의 신실함으로 읽는다.23) 문법적으로는 두 가지 읽기 모두 정당하다. 라이트에 따르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핵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신실한 믿음에 기초해서 구원 얻는다는 말이다.
주요 참고문헌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WBC (Texas: Dallas, 1990), 이덕신 옮김, 『갈라디아서』(서울: 솔로몬, 2003).
Thomas R. Schreiner, Galatians, ZECNT, (Grand Rapids: Zondervan, 2010), 김석근 옮김,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서울: 디모데, 2017).
Matthew Poole, 『갈라디아서』, 김용훈 옮김 (수원: 그 책의 사람들, 2014).
이한수, 『복음의 정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서울: 솔로몬, 2009).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평택: 교회와 성경, 2014).
1) 바울 서신의 기록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갈라디아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고린도전후서, 로마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디모데전서, 디도서, (히브리서), 디모데후서.
오늘날 신약 성경 바울 서신의 배열순서는 그 분량에 따른 것일 뿐이다.
2) 루터의 탁상담화 (Table Talk);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WBC (Texas: Dallas, 1990), 이덕신 옮김, 『갈라디아서』(서울: 솔로몬, 2003), 73.
3)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의 사도직분에 관한 논의를 위하여 다음을 참고하라. B. C. Lategan, “Is Paul defending his apostleship in Galatians?,” NTS 34 (1988): 411-430; R. Jewett, Paul’s anthropological terms: a study of their use in conflict settings, Leiden: Brill, 1971.
4) Longenecker, 『갈라디아서』, 79.
5)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설에 관하여, Richard N. Longenecker, Galatians, WBC (Texas: Dallas, 1990), 이덕신 옮김, 『갈라디아서』(서울: 솔로몬, 2003), 79-81을 보라. 슈라이너는 굳이 변증하지 않고 바울이 저자임을 분명히 한다. Thomas R. Schreiner, Galatians, ZECNT, (Grand Rapids: Zondervan, 2010), 김석근 옮김,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서울: 디모데, 2017), 24.
6) Longenecker, 『갈라디아서』, 79-80;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평택: 교회와 성경, 2014), 20. 하지만 19세기에 튀빙겐 학파의 바우어(F. C. Baur)가 아닌, 브루노 바우어(Bruno Baur)를 필두로 하여, 로만(A. D. Loman), 피어슨(A. Pierson), 나버(Naber), 루돌프 슈텍(Rudolf Steck), 대니얼 폴터(Daniel Volter), 밴 마넨(W. C. Manen), 바이세(C. H. Weisse), 제임스 크라머(James Cramer) 등이 바울 저작설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늘날도 소수의 급진적인 학자들이 바울 저작설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학계에서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갈라디아서의 바울 저작설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Longenecker, 『갈라디아서』, 80.
7) Matthew Poole, 『갈라디아서』, 김용훈 옮김 (수원: 그 책의 사람들, 2014), 20.
8) Longenecker, 『갈라디아서』, 83; 이한수, 『복음의 정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서울: 솔로몬, 2009), 18.
9) 자세한 논의로 Schreiner,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 25-32; Longenecker, 『갈라디아서』, 88-98을 보라.
10) William. M. Ramsay, The Church in the Roman Empire before A.D. 170 (London: Hodder & Stoughton, 1893).
11) Ralph P. Martin, 『신약의 초석 II』, 원광연 옮김 (고양,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223.
12) 갈라디아 민족에 대한 설명은 Longenecker, 『갈라디아서』, 85-88을 보라.
13) 남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증은 다음을 보라. Rainer Riesner, Paul’s Early Period: Chronology, Mission Strategy,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98), 286-291; F. F. Bruce, The Epistle to the Galatian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NIGNT (Grand Rapids: Eerdmans, 1982), 43-56. 남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Herman Ridderbos, Stamm, F. F. Bruce, Donald Guthrie, Thomas R. Schreiner 등이 있다.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이들의 논증은 다음을 보라. Philip F. Esler, Galatians (New York: Routledge, 1998), 32 등이 있다. 북갈라디아설을 주장하는 학자로는 R. E. Brown, H.D. Betz, U. Borse, J. Roloff, J. Becker, J. L. Martyn 등이 있다.
14) Schreiner,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 26.
15) Schreiner,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 25, 32.
16) Schreiner,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 33; Longenecker, 『갈라디아서』, 102.
17)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 22. 참고. John M. G. Barclay, “Mirror-Reading a Polemical Letter: Galatians as a Test Case,” JSNT 31 (1987): 73-93.
18) 갈라디아서가 회람서신이라는 사실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생긴 문제가 어느 한 개체교회에만 생긴 것이 아니라 그 지역의 교회들 전체 혹은 상당 부분에 생긴 것임을 암시한다. 즉 갈라디아 교회들은 집단적으로 잘못된 가르침에 넘어간 것이다.
19)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 23-24.
20)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 24.
21) 새 관점 학파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E. P. 샌더스(Ed Parish Sanders), 제임스 던(James D. G. Dunn), N. T. 라이트(Nicholas Thomas Wright) 등이 있다.
22) 칼뱅 주석 갈라디아서 2장 15절 부분; 황원하, 『갈라디아서 주해』(평택: 교회와 성경, 2014), p.93, n.62; 토머스 R. 슈라이너, 『오직 믿음』, 박문재 옮김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7), 439-444; Schreiner, 『강해로 푸는 갈라디아서』, 164-168.
23) N. T. Wright, 『톰 라이트 칭의를 말하다』, 최현만 옮김 (평택: 에클레시아북스, 2011),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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