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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댕강나무 가지치기 / 노소연8
1도로 한쪽 가로수 아래 가지치기 작업이 한창이다. 두 사람이 그물망을 세워서 양쪽에서 잡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기계로 가지를 자르고 있다. 무성했던 나뭇가지가 정리되자 꽃댕강나무는 한결 단정한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2 '내 삶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오 년 전 온라인으로 영어 회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매일 다섯 문장을 외우고 영상을 찍어 SNS에 인증했다. 혼자 하던 공부는 새벽 영어 모임으로 이어졌다. 네 명이 모여 주 3회 공부했다. 한 사람은 영어를 읽고, 한 사람은 우리말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3시간이 흐르면서 한 명, 두 명이 떠났다. 결국 두 사람만 남았다. 남은 우리는 실력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영어 원서도 읽고 한 페이지 정도 외웠다. 단톡에 녹음한 것을 올렸다. 격려의 하트를 누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공부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4 하지만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금요일 수업이 다가오면 부담이 되었다. 알람이 울리면 5분만 더 자야지 하면서 알람을 껐다. 임박하셔야 후다닥 일어났다. 줌 링크를 보내고 수업 준비를 했다.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 오히려 부담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날 용기를 내어서 모임 횟수를 줄이는 이야기를 꺼냈다. 여러 의견 끝에 주 2회로 정했다.
5신기하게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공부가 다시 즐거워졌다.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갈 수 있는 속도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6 비슷한 경험은 운동에서도 있었다. 아침 영어 공부를 마친 뒤 거북목 예방 요가를 매일 20분씩 했다. 몸이 피곤해도 쉬지 않았다. 빨리 효과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몸에 무리가 왔다. 아무리 좋은 운동도 지나치면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주말에는 쉬기로 했다. 오히려 월요일 운동이 훨씬 가볍고 즐거워졌다.
7가지 치기는 나무에만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삶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했다.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낼 때 공부도, 운동도, 마음도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8 창밖을 바라본다. 가지치기를 마친 꽃댕강나무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으로 길가에 무리를 지어 서 있다. 이 길을 지나는 시민들에게 쉼을 선물한다. 오늘도 나는 꽃댕강나무를 보며 생각한다.
잘라내는 용기가 때로는 인생이라는 장거리 경주에서 필요하지 않을까?
온라인의 가까운 거리 / 노소연 9
1버스의 종점은 간절곶이다. 시내에 볼일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로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좌석이 거의 차 있다.
"다음은 서생포 왜성입니다."
안내 방송이 나오자 한 여성분이 졸고 있는 남편을 깨웠다. 아내는 분홍색 점퍼를, 남편은 연한 파란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두 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자 버스 안에서 누군가 말했다.
"부부가 참 어울린다."
나는 차창 밖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걷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며칠 뒤, 여성질환으로 병원을 찾았다. 10년 만에 방문한 병원이다. 초음파 검사 후 의사는 오른쪽 가슴에 1.5cm 크기의 양성 종양 세 개가 모여 있다며 수술을 권했다.
3일주일 뒤 오전 9시 30분까지 병원에 오라고 했다.
입원실에는 깨끗한 시트와 환자복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이 옷을 입으면 누구나 환자가 된다.
같은 병실의 다른 환자는 보호자와 함께였다. 친정어머니가 곁을 지키고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이럴 때 조금 서럽다.
4수술실 문이 열리자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긴장하지 말라고 했다. 국소 마취를 할 때도 아프지 않은지 세심하게 살피며 안심시켜 주었다.
5수술이 끝나고 붕대를 감은 모습을 보니 마치 럭비선수 같았다. 순간 어지러웠지만 심호흡을 하니 괜찮아졌다.
오후에 수납을 하러 갔다.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 복도를 걷는데 누군가를 의식하게 된다.
6아들에게 카톡을 했다. 근무 중이라 센터장의 허락을 받아야 온다고 했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택시 타고 가면 되니까. 퇴원 시간이 맞춰 병실로 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은 여자친구가 아플 때는 병원비를 아끼지 않았고, 여자친구의 반려묘가 아플 때도 정성껏 돌봤다. 그런데 엄마가 아플 때는 왜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서운한 마음이 스쳤다.
7 다르게 생각을 해 봤다.
내 몸이 아프니 내가 나를 위로하고 돌보면 된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내가 나를 데리고 가서 사 먹으면 된다. 기다릴 필요는 없다. 이제는 오래 사는 시대다. 각자 자기 몸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
8며칠 뒤 월요일 줌 모임이 있었다. 평소와 달리 내가 참석하지 않자 친구들이 이유를 물었다. 수술 후 일찍 잠들었다고 하자 걱정의 말들이 이어졌다.
"어디가 아픈지, 충분한 휴식과 건강하게 회복하시길 기도합니다." 라는 고마움을 전달한다.
서울과 울산은 따뜻한 밥 한 끼를 나눌 만큼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하지만 매일 주고받는 톡 속에서 우리의 마음은 가까이 있었다. 어떤 분은 한우 사골 선물세트까지 보내 주셨다. 그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7버스에서 보았던 노부부가 다시 떠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알게 되었다. 꼭 누군가가 곁에 있어야만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8아들이 조금 더 살갑게 챙겨 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서운함에 오래 머물고 싶지는 않았다.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내느라 바쁘기 때문이다.
9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날, 나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친구들의 안부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일으켜 세웠다.
10생각해 보면 돌봄의 끝은 자립이다. 누군가를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아프면 내가 나를 돌보고, 힘들면 내가 나를 위로하며 살아가야 한다.
11버스에서 보았던 노부부처럼 둘이면 둘이서 잘 사는 것이고, 혼자면 혼자서 잘 사는 것이다. 자립의 끝은 내가 나의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이번 수술은 그 사실을 다시 한번 가르쳐 주었다.
<도서관(圖書館)과 인연> --이영수6--
1. 맹모삼천지교란 고사성어가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워낙 유명한 말이고 고사성어로서도 유명하다. 보통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고는 있으나 깊이 생각하지 않고 별로 관심이 없다. 맹자는 기원전 사람이고 동양에서는 중국의 공자와 맹자 두 분을 성인으로 추앙하고 받든다는 정도로 알고 있다.
2. 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이사를 세 번 했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절실하게 반성하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 맹모삼천지교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도 나온 내용으로 알고 있으나 현대인들은 너무나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3. 맹모삼천지교를 오늘날 현대 과학사회에서도 한번 깊이 생각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 맹자는 어릴 때 어머니만 계셨고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 맹자와 그 어머니는 가난하여 공동묘지 근처에서 살았고 맹자가 매일 장례 행사와 상여놀이 행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맹자의 교육을 위해 그 어머니가 시장 근처로 이사를 했고 다음은 학교(서당) 근처로 이사를 했다는 것이다. 결국 맹자가 주변 분위기에 따라서 공부 흉내 행동을 했고 그것이 공부라는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4. 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교육열이 강한 나라다. 특히 지방에 비해 서울이 더욱 그렇고 서울에서도 명문학교가 위치하는 곳이나 명문 학원이 있는 곳이 유독 그렇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유독 그 곳으로 이사를 가곤 한다. 왜냐하면 자녀들이 그곳으로 옮겨가서 살면 그 지역 분위기에 휩쓸리고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은 자기가 속해 있는 환경 분위기 영향을 받는 것은 확실하다. 나도 도서관과 특별한 인연이 있고 그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 된다. 그 덕분으로 오늘의 나도 있는 것 같다.
5.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내가 Y중학교 신입생 때였다. 요즘은 학교에서 학생 간에 학폭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지만 내가 중, 고등학교에 다닐 때도 학폭은 더러 있었다. 그때는 워낙 먹고 살기 바빠서 사회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먹고 살기 바쁜데 학교 선배나 동료 학생들에게 폭행 쫌 당하기로 그게 뭐 별것이냐 하고 그냥 지나쳤다. 많이 다치거나 큰 피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문제가 되었겠지만, 특히 중학교 선배들은 하급생들의 규율을 바로 잡는다는 핑계로 틈만 나면 야만적인 폭력 행사를 많이 가했다. 시골 출신이고 마음 약하고 어리숙한 나는 많이 당했던 경험이 있다.
6. 특히 내가 다닌 Y중학교는 학교가 역사와 전통이 있었고 학생 수가 많은 중학교였다. 그 당시 다른 학교에는 없었던 크고 훌륭한 학교도서관도 있었고 장서가 많았다. 특히 점심시간 동안에 교실에 그냥 앉아 있으면 교도부 선배들이 와서 복장 검사를 한다는 핑계로 별것 아닌 티를 잡고 구타를 가하고 폭력을 행사 했다. 점심시간 동안이나 학교를 파한 후 도서관에 가서 책을 보고 있으면 그곳에는 일체 그런 간섭이 없었다. 도서관은 완전한 치외 법권 지역이었다. 나는 교도부 선배들의 폭력을 피하려고 일부러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 읽는 시늉을 했다. 도서관에는 폭력은 고사하고 절간 같이 조용하고 엄숙했다. 나는 초등학교 다닐 때 교과서 외에 독서, 어떤 책이라곤 읽어 본 적이 없다. 독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엇을 읽을지 몰랐다. 그냥 학교 선배들의 폭력을 피신하기 위해 학교도서관에서 이것저것 읽어 보고 책을 뒤적거리곤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아주 쉬운 책 몇 권을 읽었던 기억도 있다. 사육신, 사씨남정기, 장화홍련전, 성웅이순신 ... 아주 쉽고 통속적인 오래된 고전 소설이다
7. 습관이 운명을 좌우 한다는 말이 있다.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계속 가니까 익숙해지고 도서관 가는 것이 생활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 지금도 공공도서관에 자주 가는 것도 그때 습관이 시초가 된 것이다.
8.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란 고사 성어에 보통 사람들은 그냥 웃고 지나친다. 그렇지만 나는 그 말에 공감하고 실행 하려고 노력 한다. 맹자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이고 중국 춘추전국시대이다. 현대 시대와는 많이 다른 사회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진리는 <사람은 자기가 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고 지배당한다는 원칙이다>. 맹자는 자기가 속한 분위기에 적응하였고 많은 공부를 했다. 공자와 맹자는 동양 최고 성인으로 추앙 받는 이유다. 맹자의 어머니가 오직 맹자의 교육을 위해서 3번이나 이사했고 그 깊은 뜻을 오늘날 우리들도 꼭 배워야 한다는 말이다. 어린 맹자는 단순히 주변 분위기에 따라 그냥 행동했던 것이고 그 습관이 맹자라는 성인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물론 처음 생각은 맹자의 어머니 생각이고 맹자는 그냥 따라서 행동 했고 습관이 되었다. 요즘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사회에서도 그것은 변함없는 원칙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주변 분위기 환경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어린아이는 말할 것도 없고 어른인 나도 마찬가지로 실감 한다.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공공도서관에만 입장하면 책을 읽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기분이 저절로 난다. 왜냐하면 그 곳에는 전부 책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만 앉아 열심히 책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자연적으로 그 분위기에 빠져들고 만다.
9. 중학생 때 처음으로 공부와 독서를 위해 도서관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곳에 자주 계속 가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 분위기에 빠져들고 습관이 되었던 것이다.
10. 성인이 되고 공무원 직장생활을 하면서 수험 공부할 때도 틈만 나면 공공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다. 직장에 근무할 때는 피곤하여 쉬고 싶고 놀고 싶었다.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었다. 솔직한 내 마음이었다. 조용한 집에서 해도 될 것인데 굳이 도서관에 뭐 할라고 가느냐 하고 말하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고 나는 생각 된다. 그 분위기 효과 원칙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갔고, 쉬고 놀고 싶어도 도서관에 가서 논다는 생각을 하고 도서관에 계속 자주 갔다. 도서관에 가면 일간신문 각종 잡지도 있고 컴퓨터도 있고 내 마음대로 인터넷 검색도 해보고 온갖 책도 다 볼 수 있다. 정말 좋은 환경이다. 사시사철 냉 온방 장치가 되어 있고 깨끗하고 정말 천국 같다. 특별히 돈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일체 간섭도 없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만 해도 학생들은 많고 도서관 수가 적어서 수험생들이 자리 잡기 위해 좌석 쟁탈전이 엄청 심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개관시간에 가서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던 기억도 있다. 선착순으로 좌석을 잡기 때문이다. 지금은 학생들이 많이 줄어서 언제 어느 때 가도 늘늘 하고 좌석도 마음대로 앉아 공부도 하고 밀린 일도 혼자서 꼼꼼하게 할 수도 있다. 요즘은 더러 나이가 들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사람들 노인들도 많이 보인다
11. 나는 이상한 버릇도 하나 생겼다. 오래전부터 실행하고 있는데 지금도 계속 실행하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웃을 일이지만 내 나름대로 기쁨을 느끼고 계속 실행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독서를 하면서 보낸 시간을 누적 기록해가고 있다. 일만 시간 달성 목표이다. 오래전 수험공부 시절에도 일만 시간을 달성했고 지금도 직장 일을 하면서 일만 시간 목표 달성했고, 재차 일만 시간을 목표로 누적 기록해가고 있다. 그 기록 숫자가 쌓여갈 때 마다 남들은 모르지만 내 삶의 지혜 마일리지가 쌓여가는 것 같다. 내 자신만이 기쁨을 느끼고 있다. 어느 신문에서 보았다. 무슨 일이던지 하나의 일에 일만 시간 이상 투자하면 그 분야 최고 전문가가 된다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나도 전문 직업인으로 전문분야 책을 틈만 나면 계속 보고 또 보고 반복 습관을 한다. 많은 보탬이 되고 있다.
12. 논어에 성상근야(性相近也) 습상원야(習相遠也)란 말이 있다. 사람은 태어날 때는 서로 비슷비슷 하다고 한다. 그러나 성장해 가면서 현재 무엇을 계속 반복습관 하느냐에 따라서 먼 훗날 미래가 달라지고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는 말이다. 내가 도서관에 가서 계속 책을 읽고 나 자신을 갈고 닦으면 먼 훗날 내 미래는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틈만 나면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는데 도서관과 나는 우연히 좋은 인연을 맺은 것 같다. 맹모삼천지교란 말은 결국 사람은 주변 분위기의 영향을 받는다는 뜻이다. 내가 자주 가는 울주도서관 현관 앞 창문에는 이런 큰 글귀가 적혀 있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것은 우리 마을 도서관 이었다—빌게이츠-->
13. 솔직히 나는 남보다 특별히 머리가 뛰어난 것도 없고 어려서 가정 형편이 좋았던 것도 아니다. 단지 도서관과 인연이 조금 있었다. 오늘도 즐거운 마음으로 도서관에 가서 독서를 하곤 한다!
말 한마디의 무게 / 남경수 8
1. 무심코 한 말 때문에 오랜 친구를 잃어 본 적이 있는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데, 그 말 때문에 친구 관계가 끝났다.
2. M은 대학교때 잠시 같이 살았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이다. 울산에 같이 발령을 받았고 결혼하기 전까지 둘이 붙어 다니며 놀았다. 남자 친구를 따라 전라도로 옮기게 되었고 광양에서 한 결혼식에도 참석했다.
3. K는 교지 편집장을 하며 글도 잘 쓰고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으로 학생운동을 같이했던 친구다. 마산에서 근무하다가 공무원인 남편을 따라 울산으로 오게 되면서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K와는 육아휴직을 같이 하면서 자주 어울리게 되었다.
4. 방학을 맞아 M이 멀리서 아이를 데리고 놀러왔을 때이다. 그즈음에 K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 같다. 공무원이던 남편이 퇴근 후에 술자리 때문에 자주 귀가가 늦어지면서 술집 여성과의 불륜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K집에 가면 불륜 드라마에 빠져 있었고, 불륜에 관련된 이야기만 했다.
“ 요즘 K가 불륜 드라마만 보고 불륜 이야기만 한다. 애가 좀 이상해졌어”
나는 M에게 무심코 말하고 잊어버렸다.
5. 어느 날, K에게서 서슬퍼런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 너 안 보고 살아도 돼, M한테는 말하지 마라”
M에게서 내 이야기를 전해 들은 K는 친구 관계를 끊겠다고 했다. 망치로 한 방 맞은 듯 멍해졌다. 내가 한 말이니 변명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잘못한 일인가 싶었다. 심한 욕을 한 것도 아니고, 친구 사이에 그 정도 말도 못 하는 걸까. 내 말을 그대로 옮긴 M이 원망스러웠고, 단 한 번의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관계를 정리해 버린 K에게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6. 하루아침에 가장 가까웠던 친구 둘을 모두 잃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엄청난 고통 속에 빠졌다. 섭섭함과 서운함이 뒤섞여 마음을 짓눌렀다. 나는 M과 내가 더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가 모르는 사이 둘은 더 친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7. 혼자서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너무 힘들었다. 몇 번을 망설이다 밤늦게 M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M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소와 같은 태도였다. 그 순간 준비해 두었던 말들이 목구멍에서 멈춰 버렸다. 묻고 싶었던 것도, 따지고 싶었던 것도 끝내 꺼내지 못한 채 전화를 끊었다.
8. 결국 잊어버리기로 했다. 계속 붙들고 있어도 내 마음만 더 아플 뿐이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M 역시 남편의 외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어쩌면 K와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8. 그 후로도 가끔 학교 행사에서 K를 마주칠 때가 있었다. 우리는 예전처럼 편하게 대화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받았다. K는 여전히 M과 가끔 어울리는 듯했다. 가족끼리 겨울방학에 함께 스키를 타러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둘은 아직도 서로 연락하며 지내는구나. 나만 빼고.’
그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마음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이미 끝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만 관계 밖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9. 오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M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며, 문득 내가 보고 싶어졌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미 잊혀진 줄 알았던 감정들이 다시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동안 묻어 두었던 울분을 쏟아내듯 오래전의 일을 꺼냈다. K가 관계를 끊게 된 이유와 그 과정에서 내가 얼마나 서운했고 상처받았는지를.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이야기였다.
10. 그런데 M의 반응은 예상과 달랐다. M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11. 그 말을 듣는 순간 묘한 허탈감이 찾아왔다. 나는 그 일로 두 친구를 잃었다고 생각하며 오랫동안 상처를 품고 살아왔는데, 정작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12. 지금도 가끔 K를 마주친다. 만나면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지만, 예전처럼 가까워질 수는 없다. 너무 오랜 시간 침묵이 이어졌고, 그 사이 풀지 못한 감정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반가움과 함께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이 공존한다.
13. 가끔은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왜 그렇게까지 단호하게 관계를 끊어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묻는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시간은 많이 흘렀고, 우리는 이미 너무 멀리 와 버렸다.
14.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리 가까운 친구 사이라도 상대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있는 법이다. 가벼운 푸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K에게는 친구에게조차 보이고 싶지 않은 상처였을 수 있다. 나는 그 경계를 알지 못했고, K는 그 경계가 침범당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말이 K의 자존심이나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게는 갑작스럽고 가혹했던 단절이, K에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15. 물론 그렇게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당시의 상처와 서운함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 역시 비슷한 상처를 겪으며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기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때 친구가 보였던 반응과 선택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6.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그렇게 단순한 사이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해를 풀기 위해 먼저 손을 내밀 만큼 가깝고 단단한 관계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서로를 충분히 안다고 믿었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친구라는 관계 역시 끊임없는 이해와 노력이 있어야만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17.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오랜 친구를 잃게 만들었다. 그 말은 한 사람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상처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일이었다. 어떤 관계는 끝내 이유를 다 설명하지 못한 채 멀어지고, 아쉬움으로만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