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 김소진, 문학동네
민홍은 부엌에서 태어났다. 새로 이사간 집에서는 방에서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미신으로 부엌에서 낳은 것이다. 민홍은 '태어나자마자 도마 위에 누워 있었어'라는 말과 함께 강원도 외딴집에서 태어나게 된 경위 등등을 누나로부터 세세히 전해 듣는다.
그의 아버지는 군부대에서 빼돌려지는 군수품을 받아 시중 가게에 넘겨 이문을 보는 장사를 했다. 그러던 중 사일구 이후 동업자(박동세)에게 사기를 당하고 오일륙 이후 장사가 되질 않아 거덜났다. 그후론 경기가 좋았을 때 사두었던 사천 여 평의 텃밭을 팔아가며 노름방에서 소일하게 된다.
민홍은 태어날 때 울음소릴 내지 않았고 자라면서 잔병 치레도 잦다. 민홍은 체질적으로 부엌을 편안하게 생각한다. 국민학교 4학년때 태어난 집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온다. 그는 숨박꼭질할 때도 부엌에 숨곤했다. 아무도 그를 찾지 못했다. 한번은 엄마에게 들켜 혼나 중학교 1학년때까지 부엌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된다.
중학교 1학년 여름, 민홍은 만성 장염으로 장기 결석을 하게 된다. 집에는 다락이 하나있었는데 누나가 쓰고 있었다. 그 다락방은 누나가 봉제 공장 기숙사에 들어감에 따라 민홍의 차지가 되었다. 다락방은 부엌위에 자리하고 있었기에 민홍은 다시 부엌과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는 다락방에 누워 책을 읽기도 하지만, 엄마의 밥 짖는 소리, 누나의 목욕하는 장면, 필례와 털보의 정사 장면 등을 구멍을 통하여 보게 된다. 민홍의 생활은 다락방에서 전부 이루어진다. 책을 읽는 것도, 심지어 오줌 누는 것까지.
한편, 민홍이 제대로 클지, 사내 구실을 할지 걱정이다. 민홍은 다락방이 편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성장이 멈춰버렸음 좋겠다고 생각도 한다. 민홍이
구멍을 통하여 들여다보는 부엌은 그가 누리는 생활의 전부였다. 어느날, 이웃집 아주머니 필례와 털보와의 싸움과 싸움에서 정사로 이어지는 광경까지 보게 된다. 그 순간 민홍은 야릇한 감정과 야릇한 경험을 한다. 갈수록 민홍의 몸은 약해져간다. 그런 민홍을 위해 엄마는 오리 한 마리를 사들고 부엌으로 온다. 이웃집 필례, 째보 아주머니, 엄마 셋은 오리를 잡는다. 엄마는 오리피를 민홍에게 억지로 먹인다. 그 일이 있은 후, 민홍은 심한 열을 내며 앓는다. 이런 민홍을 보며 엄마 아버지는 사람 구실 못할 거라며 낙담을 한다.
민홍은 다락방을 내려갈려고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고소 공포증'을 느낀다.
겨울이 왔다. 밖엔 눈이 오고 있었다. 이때 자고있는 민홍의 다락방 창문에 눈덩이가 던져진다. 민홍은 창밖을 통해 눈이오고 있음을 알고 의식이 확 달라진다. 민홍은 다락방을 내려와 엄마에게 밥을 달라고 하여 밥을 먹는다.
이상의 스토리로 꾸며진 이 단편소설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성장기 체험 소설(성장소설) 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 과정에서 각 단계(프로이드식 구분을 기준으로 하여)를 거치게 된다. 그 거치는 과정은 저마다의 고통을 크게, 혹 작게 수반하기 마련이다.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은 '나'로 지칭되는 민홍의 그런 특별한 통과 의례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살펴보는 관점을 이렇게 가설정하고 민홍이 경험하게 되는 통과 의례의 과정과 그 과정을 이겨 나오는 인과의 매개를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민홍은 부엌에서 태어났다. 여기에서부터 민홍과 부엌의 관계는 형성, 시작된다. 작품을 통하여 드러난 민홍의 생활을 보고 그를 판단하자면, 연속적인 성장의 단절, 또는 지체라고 본다. 그것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는 것은 부엌이고, 도마 위에 올려졌던 간난아이, 그 자신이다.
그 얘기를 들을 때면 나는 꾸뻑 기가 죽었다.
너는 그때 도마 위에 누워 있었어.
도마!
도마라니! 갓 태어난 아이가 도대체 그 위에서 무슨 볼 일이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이상하게 온 몸에 닭소름이 좍좍 끼치고 염통에 모인 피가 빠지질 않아 터질 듯 팔딱거렸다.
부분 225p
이것이 민홍의 성장에 강박관념(obsession)으로 다가온다. 반면에 이것은 지체된 그의 생활 속에서 하나의 의식체계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것은 알레고리(allegory)다. 자가가 인위적으로 설치한 내부구조로서 훌륭한 알레고리인 것이다. 문학에서 알레고리는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 비판하는 동시에 현실과 밀접한 관련를 맺으며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이런 견지에서 '부엌'이란 공간은 역할을 다하는 알레고리가 되는 셈이다. 민홍의 생활은 부엌(물론, 저변의 기억과 후천으로 재인식하게된 사실이지만)에서 시작된다.
나는 부엌의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 나보다 다섯 살 많은 누나가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그러니까 누나는 그때 겨우 여섯 살이었고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오는 찢어진 문창호지 틈새로 징그러운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는 새빨간 몸뚱어리의 아기가 ~.
부분 225p
그리고 다락방으로 옮겨진(다락방은 곧 부엌이다.외부와의 접촉은 구멍으로 내다보는 부엌이 전부이므로) 부엌에서 끝이 난다.
그런 나를 다락방에서 끌어내린 건 대낮부터 질퍽하게 내리기 시작한 첫눈이었다.
부분 241p
이로써 민홍은 고질인 성장의 지체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상과 살펴 본 인과는 이 작품의 기본 구조이기도 하다.
이어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또 다른 구조를 살펴보자. 서술자이면서 주인공인 '나' 즉, 민홍의 통과의례를 벗어나려했던 노력의 흔적들을 살펴보자. 민홍은 끊임없이 부엌(내적 강박관념인)과 싸웠다. 그의 그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지체된 삶의 형태는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을 지도 모른다.
첫 번의 것으로 유년 시절에 부엌을 놀이의 공간으로 활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억에도 없을 때부터 무의식에 자리잡은 강박관념과 대결하는 또다른 무의식(초자아)의 행위라고 보아진다.
어두운 부엌 안까지 둘어온 어느 술래 아이들도 나를 찾아내진 못했다. 심지어 밤 눈이 턱없이 어두워서 그러긴 했지만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끝내 못찾겠다 꾀꼬리를 다섯 번이나 외쳐야만 했다. 한 번은 그 틈새에서 웬일인지 몸이 ㅃ져 나오질 않아 술래가 못찾겠다 꾀꼬리를 외치는데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무릎이 잘못 끼인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당황해하거나 울지 않았다. 오히려 물항아리에 이마를 대고 깜빡 잠까지 들었다가 결국 엄마한테 들키고 말았다.
너 사내자식이 거기서 뭐하고 있니?
어, 엄......마, 지금 몇 시야요?
엄만는 한참 동안 내 시야를 가린 채 서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에 들고 있는 냉수 대접에 입을 대 볼을~
부분 231p
이는 안타깝지만 다시 엄마의 호된 꾸지람으로 통과의례를 벗어나는 결정적인 계기는 되지 못했다.
둘째 번의 것은 다락방에서 끊임없이 독서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독서 행위는 외부와 단절된 실생활의 대리충족으로서 정신의 부분적인 왕성한 활동을 전개함으로 볼 수있다.
나는 밖에 나가봤자 어울릴 친구도 없는지라 주야장천 다락방에 이불을 깔고 뒹굴며 문고판 책이나 읽거나 공상을 즐기기 일수였다.
부분 232p
나만 다락방에 누워 이빨 나간 책받침으로 슬렁슬렁 부채질을 하며 <호밀밭의 파수꾼>인가 뭔가 하는 문고판 책을 읽고 있었다.
부분 236p
작가가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도출해낼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보는 것이 무리일 성 싶으나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육체는 성장을 멈추지 않았음을 들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생리적 현상으로 파악할 수도 있겠지만은, 생리적 현상조차도 정신에 기인한 것임을 감안할 때 그의 육체 스스로의 노력인 것이다.
이번엔 작품의 스토리 라인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한 부분을 지적하여 보고자한다. 먼저, 내재된 기억과 누나로부터 전해 들은 후천의 사실이 민홍으로 하여금 사람 구실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는 요인이 되는가하는 점이다. 약간 지나친 설정인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또, 이제까지 다락방에서 스스로 갖히다시피 생활해오던 민홍을 밖의 세계로 끌어내린 계기가 '눈'이라는 것, 역시 억지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곁들이자면, 작품에 드러나는 시간의 경과만 따져보더라도, 어려서부터 갗힌 생활을 하던 민홍이 맞게 된 겨울이 처음은 아닌 듯 싶기에 더욱 그러하다.
※김소진 프로필
1963, 강원도 철원 출생
1982, 서울대 영문과 입학
1990,『한겨레신문』 기자로 입사
1991,『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쥐잡기」로 등단
1993, 소설가 함정임과 결혼
1996, 제4회 오늘의젊은예술가상을 수상
1997, 췌장암으로 사망(35세)
※주요 작품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솔, 1993
『고아떤 뺑덕어멈』 솔 1995
『장석조네 사람들』 고려원, 1995
『자전거 도둑』 강, 1996
『눈사람 속의 검은 항아리』 강, 1997
『아버지의 미소』 솔, 1998
※문학평론가 김남석의 그에 대한 평 - 과거와 현실의 연관 속에 겸손하고도 당당한 작가
김소진은 과거와 현재의 겹쳐 읽기에 능한 작가이다. 그래서 김소진의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새 기억의 문 안에 들어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기억의 창고에는 누추한 아버지와 가난한 유년 생활과 가열차던 학생 운동 시절이 쌓여있다. 아버지는 주로 아들의 등록금을 창녀에게서 구걸하거나 쥐 한 마리 제대로 잡지 못하거나 아들을 노름판의 속임수나 도둑질의 공범으로 활용하는, 결코 긍정적일 수 없는 인물이다. 아버지는 연약하고 무능하며 무엇보다도 정당하지 못해서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던 존재이다. 부정적인 아버지의 곁에는 억척스러운 어머니가 동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정서적 친밀감을 느끼기 어려운 존재로 그려져 있다.
이들과 함께 보내야 했던 유년 시절은, 비참하고 어려운 시절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화자로 설정되는 아들은 어릴 적에 일찌감치 비행을 저지르거나 강렬한 반항심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은데, 이는 이 가족을 둘러싼 가난에서 그 원인을 캐낼 수 있다. 그런데 화자는 어릴적 가난을, 현재의 산동네에서 발견하고 기지촌에서도 발견한다. 선술집과 대학가 주변의 지저분한 여관과 신변의 위협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하숙집에서도 발견한다. 이러한 발견은 그릇된 사회 질서에 대한 용감한 저항으로 작품 속 화자를 내몬다. 김소진의 소설에서 종종 발견되는 80년대 학생 운동에 대한 반추는 이 시절에 대한 회고에 해당한다.
그러나 김소진은 이러한 과거적 요인을 과거의 문제로만 남겨두지 않는다. 그렇다고 잔뜩 과장하여 일방적 피해의식이나 낭만적 회귀의지를 피력하지도 않는다. 여전히 초라한 아버지일 수밖에 없는 자신과, 가난한 환경을 헤매야 하는 자기 가족의 처지, 그리고 변절자의 화려함과 대비되는 일상인으로서의 초라한 위치를 자각시키는 데에 전력한다. 이처럼 김소진의 소설에는 이러한 현재의 상황이 과거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전언이 숨어 있다. 아니 김소진은 자신이 회고하는 과거적 상황에서 현실의 상황과의 연관성을 찾고, 그 연관성에서 조용히 문제의식을 내비친다. 이러한 측면에서 김소진은 겸손하면서도 당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그의 소설을 신뢰하게 만드는 가장 커다란 요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