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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복음의 기초에서 온전함으로: 믿음과 사랑과 순종의 완성
1.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고 그리스도께로 인도한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의롭게 여기시고 무엇을 죄라고 말씀하시는지 보여 줍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려는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됨이니라.”
로마서 3:20
율법은 죄를 드러내고, 인간에게 자신의 힘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즉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3:24
우리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율법을 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오히려 우리가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로마서 3:31
믿음은 죄를 죄가 아니라고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에, 이제 우리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게 됩니다.
2. 예수님의 피와 물로 우리의 양심과 육신이 깨끗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구약의 제사와 희생 제물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가리켰지만, 예수님께서는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드리심으로 죄를 위한 완전한 제사를 이루셨습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히브리서 9:14
예수님의 피는 죄 사함의 근거이며, 우리의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움을 내세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히브리서 10장 19–22절도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며,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에 뿌림을 받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일을 말합니다.
이와 연결하여 성경은 물과 말씀과 성령의 씻음에 대해서도 가르칩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에베소서 5:2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분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디도서 3:5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죄인을 깨끗하게 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이 과정은 단지 겉모습을 종교적으로 바꾸는 일이 아닙니다. 양심과 마음과 삶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일입니다.
3. 거듭남은 하나님 나라를 보고 들어가는 데 필수적이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의 필요성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3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복음 3:5
두 말씀은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생명은 인간의 육체적 출생만으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이 필요합니다. 이 새 생명은 인간의 노력이나 종교적 외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로 주어집니다.
따라서 복음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으로 태어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4. 물침례와 성령침례,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삶
성경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는 일을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신 것같이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속에서 걸으려 함이라.”
로마서 6:4
또한 갈라디아서 3장 27절은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자들이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고 말씀합니다.
침례는 단순히 종교의식을 치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고, 옛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 믿고 침례를 받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성경은 물침례뿐 아니라 성령침례도 가르칩니다. 성령께서는 믿는 자 안에서 역사하시며, 하나님께 속한 새로운 삶을 살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물침례와 성령침례는 성경에서 구분되는 표현이지만, 둘 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합니다. 침례를 받았다는 외적 사실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곧 모든게 자동적으로 되는게 아닙니다. 모든게 자동적으로 되었다면, 아나니아 삽비라, 데마처럼 온전한 복음을 듣는 사람들도 타락하거나 세상으로 다시 떠난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실일과 우리가 의지로 순종해야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서 4장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결부시키라고 말합니다.
복음을 전해 들은 것은 그들이나 우리나 마찬가지나, 전파된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 것은, 그것을 들은 자들이 믿음을 결합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
히브리서 4:2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 연합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우리가 더 이상 죄를 섬기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
로마서 6:6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은 죄를 계속 따라 살아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위해 살아가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5. 새 창조와 자기 부인: 내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을 따르는 삶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들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이 새로운 삶에는 자기 부인이 포함됩니다.
“또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가복음 9:23
자기 부인은 날마다 해야하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거나 자신의 존재를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내 욕심이 충돌할 때 내 욕심을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살고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살고 계시느니라.”
갈라디아서 2:20
또한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1절에서 자신이 날마다 죽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이는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실제로 위험과 고난을 감당했다는 문맥에서 나온 말씀입니다. 그 고백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자기 보존과 자기 욕심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도록 요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내가 따르는 삶입니다.
6.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죄의 욕망에 내맡기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런즉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성령 안에서 걸으라. 그리하면 너희가 육신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육신의 욕심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정욕과 이기심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령을 따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은 성령의 열매로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친절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를 제시합니다.
이 열매들은 단지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성령님을 통해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빌립보서 2장 13절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며 자기의 선한 기쁨을 위해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신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욕망을 무조건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7. 율법 아래의 옛 관계에서 벗어나 성령의 새로움으로 섬긴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속하게 된 목적을 설명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로마서 7:4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붙잡혀 있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것은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율법 조문의 낡은 것으로 섬기지 아니하려 함이라.”
로마서 7:6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죄를 지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바로 앞 절에서 하나님께 열매를 맺는 것을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로마서 6:1-2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제사 제도가 가리키던 실체를 이루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절은 율법이 장차 올 좋은 일들의 그림자라고 설명하며, 10장 10–14절은 예수님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심으로 죄를 위한 완전한 제사를 이루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구약의 희생 제사를 반복함으로 죄 사함을 얻으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완전한 희생을 믿고 그분 안에서 살아갑니다.
동시에 새 언약은 하나님의 뜻을 폐하는 언약이 아닙니다.
“내가 내 법들을 그들의 생각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속에 그것들을 기록하리라.”
히브리서 8:10
예레미야 31장 33절과 히브리서 10장 16절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법을 마음과 생각에 기록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새 언약의 삶은 외적인 규정만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록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율법의 조문만을 외적으로 지키려는 태도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새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8. 그리스도인은 무법한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사람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법 없는 자가 아니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법 아래 있는 자라고 설명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로서”
고린도전서 9:21
갈라디아서 6장 2절은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법은 사랑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자유를 얻었다고 해서 자기 욕심대로 살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나 그 자유를 육신의 기회로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
갈라디아서 5:13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죄를 마음대로 짓는 자유가 아닙니다.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섬길 수 있는 자유입니다.
9.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가장 큰 계명이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을 물었을 때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성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고 또 자기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은 모든 온전한 번제와 희생제보다 더 크니이다.”라고 하니,
예수께서 그가 지혜롭게 답변하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아니하도다.”라고 하시니라. 그후에는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마가복음 12:33-34
예수님께서는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 22:40).
마가복음 12장 28–34절과 누가복음 10장 25–28절에서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거나 예배에 참석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이웃의 기분을 항상 맞춰 주거나 그가 원하는 일을 무조건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이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걷도록 돕고, 그에게 필요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 8–10절에서 사랑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율법을 성취한다고 설명합니다.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계명들은 이웃을 사랑하는 삶과 연결됩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되지 않으며, 이 두 계명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이끌어야 합니다.
왕이 그의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라,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자들아,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그 왕국을 이어받으라.
이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으며, 내가 목마를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대접하였고,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혀 주었으며, 내가 병들었을 때에 문안해 주었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 주었음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25:34-36
잔치를 베풀려거든 가난한 자들과 불구자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부르라.
그러면 네가 복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에게는 네게 갚아줄 것이 없으므로 의인들의 부활 때에 네게 갚게 될 것임이라.”고 하시니라.
누가복음 14:13-14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저주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9,
10. 진정한 사랑의 모습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베푸신 그 사랑을 먼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희생하는 사랑을 보여주시고 바로 분노하시지 않고 오래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오히려 우리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시고, 악인에게도 하나님의 자비로 해를 비쳐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시며 하나님이 만드신 것들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타난 사랑의 원어적 의미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등장하는 사랑의 헬라어 원어적 의미와 각각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래 참고 (마크로뒤메오, Makrothymeo): 분노를 터뜨리기까지 마음의 조급함을 버리고 인내하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유예하시며 오래 참으십니다(시 103:8, 롬 2:4).
친절하며 / 온유하고 (크레스튜오마이, Chresteuomai): 상대방에게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유익을 주는 적극적인 선행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베푸시며 가장 선하고 친절하게 대우하십니다(시 34:8, 딛 3:4).
시기하지 아니하며 (젤로오, Zeloō): 타인의 소유나 성공을 보고 악의적으로 시기하거나 질투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으시며,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충만하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고 베푸십니다(시 84:11).
자랑하지 아니하며 (페르페루오마이, Perperuomai): 자신의 잘난 체를 하거나 우월감을 드러내며 뽐내지 않는 겸손한 태도입니다. 온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가장 높으신 하나님은 스스로를 낮추어 종의 형체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빌 2:6–7).
교만하지 아니하며 (푸시오오, Phusioō): 바람이 들어 부풀어 오른 것처럼 교만해지거나 거만하게 행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시며 그들의 영을 소생시키십니다(사 57:15).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메 지테이 타 헤아우테스, Mē zētei ta heautēs): 오직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만을 챙기지 않고 타인의 유익을 먼저 배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포기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롬 8:32, 딛 2:14).
쉽게 성내지 않고 (메 파록쉬네타이, Mē paroxynetai): 날카롭게 자극을 받아 발끈하며 격분하거나 화를 품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에 대해 쉽게 진노를 발하지 않으시고 긍휼과 은혜를 베푸십니다(시 103:8).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으며 (메 로기제타이 토 카콘, Mē logizetai to kakon): 상대방이 저지른 잘못을 마음속에 장부처럼 기록해 두고 앙갚음하려 계산하거나 품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불법을 마음에 기록해 두거나 셈하여 계산하지 않으시고 용서하십니다(시 130:3, 히 8:12).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메 카이레이 에피 티 아디키아, Mē chairei epi tē adikiai): 거짓과 죄악, 부당한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거나 방관하지 않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시며, 죄를 방치하지 않으시고 진리 안에서 우리를 돌이키게 하십니다(시 5:4).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쉬네카이레이 데 태 알레데이아, Synechairei δὲ tē alētheia):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의로운 일과 진실이 바로 세워질 때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은 공의와 진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사 33:15, 요 14:6).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은 우리에게 율법적인 짐을 무겁게 지우는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보여 주신 그 사랑의 성품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삶을 통해 어떻게 열매 맺는가를 보여 주는 그림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그 사랑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보여 줍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기를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린도전서 13:4)
사랑은 자기 유익만을 구하지 않으며, 쉽게 성내지 않고,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린도전서 13:5–6).
특히 고린도전서 13장 6절은 사랑이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말씀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언제나 사랑은 아닙니다.
잘못을 지적할 때도 미움과 복수심으로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잘못을 깨닫고 바른길로 돌아오도록 돕기 위해 진리를 말해야 합니다.
진정한 사랑은 진리를 버리지 않고, 진리를 사랑의 방식으로 실천합니다.
11.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계명을 지키는 것을 분리하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들을 지키라.”
요한복음 14:15
“나의 계명들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한복음 14:21
요한일서 5장 3절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며, 그분의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계명을 지키는 행위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거나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셨으므로,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삶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고 순종하기를 거부한다면, 그 고백과 삶은 서로 모순됩니다.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에게 다가오고, 또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여도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태복음 15:8
만일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분을 알고 있음을 아는 것이요
“나는 그분을 아노라.” 하면서 그의 계명들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쟁이니, 진리가 그 사람 안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 2:3-4
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나니, 가증한 자요, 불순종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에 버림받은 자들이라.
디도서 1:16
믿음은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정하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따라가는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12.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
요한일서는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의 관계를 매우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누구든지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니 이는 자기가 본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
요한일서 4:20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이웃을 대하는 태도에서 실제로 드러나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은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으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거한다고 할 수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랑의 실천을 구체적으로 요구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실제로 도와야 합니다.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고도 외면하면서 마음속으로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사랑이 아닙니다.
이웃 사랑에는 물질적인 도움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거짓말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고,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에게 바른길을 알려 주며, 위험에 빠진 사람을 보호하고, 죄로 향하는 사람에게 회개를 권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물론 상대방을 비난하고 모욕하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바라며 진실을 말하고, 필요한 도움을 실제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13.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에게 회개를 권하는 것도 사랑이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으며, 회개를 촉구하셨습니다.
“내가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누가복음 5:32)
예수님의 사랑은 죄를 모른 척하는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죄인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명백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그 사람이 계속 잘못을 행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반드시 사랑은 아닙니다. 죄를 죄라고 알려 주고 회개하도록 권하는 것도 사랑의 실천입니다.
너는 네 마음속에 네 형제를 증오하지 말며 너는 어떻게든지 네 이웃을 책망하여, 그에게 죄를 짓도록 허용하지 말라.
너는 복수하지 말며 네 백성의 자손에 대하여 원망을 품지 말고,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할지니라. 나는 주니라.
레위기 19:17-18
갈라디아서 6장 1절은 어떤 사람이 잘못에 빠지면 영적인 사람들은 온유한 영으로 그를 바로잡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잡되 온유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5절은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고 가르칩니다. 진리만 내세우며 상대방을 함부로 대하는 것도 잘못이고, 사랑을 내세우며 진리를 숨기는 것도 잘못입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진리를 말하되 온유하게 말하며, 상대방이 회개하고 회복되기를 바라는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웃이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데도 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진실을 숨기고 죄를 계속하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본질을 놓치는 것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이 당장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실제로 유익한 진리를 전하는 것입니다.
땅의 흙 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2-3
14. 자녀를 때에 맞게 징계하는 것도 사랑의 책임이다
자녀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행동을 허용하면 자녀는 잘못된 행동과 올바른 행동을 분별하는 법을 배우기 어렵습니다.
잠언 13장 24절은 징계를 아끼는 것과 자녀를 사랑하는 것의 관계를 다룹니다. 히브리서 12장 6절은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징계는 부모의 분노를 자녀에게 쏟아붓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잘못을 깨닫고 바른길로 자라도록 책임 있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4절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훈계와 권고로 양육하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징계에는 분명한 기준과 이유가 있어야 하며, 자녀를 모욕하거나 분풀이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자녀가 잘못했을 때는 잘못을 알려 주고, 왜 잘못인지 설명하며, 다시 바른 선택을 하도록 훈련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는 연령과 상황에 맞는 합당한 결과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매를 때릴수도 있으나 그러나 폭력이나 학대는 사랑의 징계가 아닙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전부 들어주는 것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자녀가 바르게 성장하도록 한계를 세우고 책임을 가르치는 것도 사랑입니다.
이 원리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적용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무조건 편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선과 진리 안에서 살아가도록 돕는 것입니다.
15.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사랑과 순종을 구체적으로 보여 준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을 구체적으로 가르칩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과 선지자들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17)
예수님은 살인이라는 외적인 행위만 다루지 않고 형제를 향한 분노와 모욕도 다루셨습니다.(마태복음 5:21–22)
간음이라는 외적 행동뿐 아니라 음욕을 품는 마음도 다루셨습니다(마태복음 5:27–28)
이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보시는 분이 아니라 마음의 동기까지 살피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원수들을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악의적으로 다루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또한 황금률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사람들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모든 것을 너희도 그들에게 그대로 해 주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들이니라.”
마태복음 7:12
이 가르침은 사랑이 단순히 상대방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선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내가 받고 싶은 선한 대우를 먼저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것입니다.
다만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악을 악이라고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악을 행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복수하는 대신, 진리를
지키면서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며 선을 행하라는 뜻입니다.
산상수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말에 머무르지 않고 마음과 행동 전체에 나타나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16.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친다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들이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17
그리고 26절에서도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위들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 2장 15–16절은 형제나 자매에게 입을 것과 일용할 양식이 필요한데도, 그저 평안히 가서 따뜻하게 하고 배부르게 하라고 말만 하고 필요한 것을 주지 않는 상황을 예로 듭니다.
그런 말이 실제로 굶주린 사람을 먹이거나 추위에 떠는 사람을 따뜻하게 해 주지는 못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나지 않는 믿음입니다.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구원을 돈처럼 사는 대가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믿음이 실제 삶에서 맺는 열매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그 사랑은 실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17.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행함으로 드러난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에는 앞서 살펴본 모든 내용이 연결됩니다.
사복음서에서 말하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중요성
에스겔, 예레미야,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법을 생각과 마음에 새기는 것
마태복음에 마음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법을 지키라고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설교
로마서 3장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가르칩니다.
로마서 3장 31절은 믿음은 율법을 폐하는게 아니라 굳게 세운다고 말합니다.
요한복음 14장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그분의 계명을 지킨다고 말씀합니다.
요한복음, 요한일서에서는 새계명 서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의 제자인줄 안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의 성품과 행동을 보여 줍니다.
요한일서 3장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일서 4장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 2장은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6절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치 있다고 합니다.
로마서 13장은 사랑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율법의 완성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말씀들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믿음과 사랑과 순종이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참된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그 순종은 실제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라.)
고린도후서 5:7
그렇다고 모든 행위가 자동으로 사랑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선행할 수도 있고, 자기 의를 드러내려고 종교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
그리하면 너의 자선 행위가 은밀히 되어져서 은밀히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친히 너에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마태복음 6:3-4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 없는 행동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또 내가 내 모든 소유를 주어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준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린도전서 13:3
사랑 없이도 위 같은 일을 할수 있다고 말합니다.
믿음은 사랑의 근거가 되고, 사랑은 순종의 동기가 되며, 순종은 삶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18. 사랑은 율법의 목적을 이루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죄를 허용하지 않는다
로마서 13장 10절은 사랑이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므로 사랑이 율법의 완성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사랑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행동까지 허용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선하다고 말씀하신 길을 따라갑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거짓말과 부정직으로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있다면, 그 행동을 그대로 허용하는 것이 사랑은 아닙니다. 그 사람에게 잘못을 알려 주고 바른길로 돌이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자녀가 잘못된 행동을 반복한다면 아무런 기준 없이 허용하는 것보다 사랑과 책임을 가지고 훈육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웃이 죄에 빠져 있다면 회개를 권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다면 실제로 도와야 합니다. 누군가 진실을 알지 못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진리를 사랑 안에서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 모든 행동의 기준은 내 감정이나 개인적인 취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진리와 분리되지 않고, 진리는 사랑과 분리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6절이 말씀하듯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19. 복음의 기초에서 온전함으로 나아간다는 것
히브리서 6장 1–2절은 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기초를 떠나 온전함으로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그 기초에는 죽은 행실에서의 회개, 하나님을 향한 믿음, 침례들에 관한 교리, 안수, 죽은 자들의 부활, 영원한 심판이 포함됩니다.
이 말씀은 기초를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기초 위에 서서 계속 성장하라는 뜻입니다.
회개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새 생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죽은 자들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일깨웁니다.
그러나 기초적인 교리를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신앙의 성장이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진리가 우리의 성품과 선택과 행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고, 물과 성령으로 새 생명의 필요성을 배우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여 옛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부인을 통해 내 뜻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고, 성령을 따라 행하며,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서 사랑으로 서로 섬겨야 합니다.
그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이 보여 주는 사랑이며, 요한복음이 가르치는 예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또한 요한일서가 강조하는 형제 사랑이며, 야고보서가 가르치는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한다면서 그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을 무조건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회개하도록 권하며, 필요한 도움을 실제로 제공해야 합니다. 자녀를 사랑한다면 바르게 가르치고 합당하게 훈육해야 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한다면 말만 하지 말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나누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사려는 노력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은 생명이 사랑과 순종과 행함으로 열매 맺는 것입니다.
결론: 믿음에서 사랑으로, 사랑에서 순종과 행함으로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우리를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새 생명을 말씀하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의 지배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도록 부르십니다.
그 새로운 삶은 자기 부인과 성령을 따르는 삶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자기 욕심을 중심에 두지 않고,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율법의 조문만을 외적으로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음에 기록하신 뜻을 따라 성령의 새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 뜻의 중심에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가장 큰 계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며, 이웃을 사랑한다면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은 사랑이 오래 참고 친절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한다고 가르칩니다. 요한일서는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고 말씀합니다. 야고보서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죄를 무조건 허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에게 회개를 권하고, 자녀를 바르게 훈육하며, 궁핍한 이웃에게 필요한 도움을 제공하고, 진리를 사랑 안에서 말하는 것이 참된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사랑의 열매를 맺습니다. 그 사랑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이웃에게 선을 행하며, 진리를 지키고,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도록 돕는 실제적인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이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법을 따라 사랑으로 율법의 목적을 이루는 삶입니다. 복음의 기초 위에 서서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삶은 바로 이러한 삶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의 선행을 보게 하고, 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
마태복음 5:16-17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느니라. 이 일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어 우리로 그것들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신 것이라.
에베소서 2:8-10
땅의 흙 속에서 잠자는 많은 사람들이 깨어날 것이며, 얼마는 영원한 생명을 얻겠고, 얼마는 수치와 영원한 모욕을 받으리라.
현명한 자들은 창공의 광명처럼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의로 돌이키는 자들은 별들처럼 영원무궁토록 빛나리라.
다니엘 12:2-3
그분께서는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리니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하시고
다투고 진리에 복종하지 아니하며 불의에 복종하는 자들에게는 분개와 진노로 하시리라.
로마서 2:6-8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더라.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누구든지 생명의 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
요한계시록 20:1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