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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식의
클래식은 영화를 타고
<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 >
-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
"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았던,
또한 사랑을 원했던...
'마리아 칼라스, 그녀'가 담긴 아름다운 초상화이자
시간이 지울 수 없는 그녀의 궤적을 향한 오마주."
뛰어난 곡 해석력과 마음을 울리는 극적 연기로
전설이 된 ,
하지만 화려한 무대를 내려오면 연인에게
사랑받고 싶었던 '마리아 칼라스'...
'천상의 목소리', 또한 '천하의 속물' 사이의
양 극단을 오가며,
모두가 사랑했지만 끝내 버림받고 고독했던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의 서사가,
아트 다큐멘터리 <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 >
를 통해 공개되고 있지요.
영화는 푸치니의 오페라 < 나비부인 > 1막 중
신부 행렬의 합창 '바다와 육지에도 봄바람이
가득하고' 를 감싸안으며,
마리아 칼라스의 사망 3년 전인 1974년에
이루어진 인터뷰로 그 막을 열어갑니다.
"제 안엔 두 사람이 있습니다.
마리아로 살고 싶지만,
칼라스로서도 살아야 해요."
진행자는 짓궂게 꼬집어 묻습니다.
"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누가 이길까요?"
칼라스는 어렵사리 답합니다.
" 나는 둘의 모습을 모두 공유하고 싶어요.
내 노래와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신다면
진실의 마리아 칼라스를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
그녀의 본명은 마리아 아나 소피아 케킬리아
'칼로예로풀루'였으나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해 영어식인 '칼라스'로
줄였다고 그녀는 얘기합니다만...
그렇게,
무대 아래서 "나는 평범한 한 여성일 뿐" 이라는
말을 되뇌이며
무대 위 화려한 디바 '칼라스' 모습의 이면에
소시민적인 행복과 진정한 사랑을 갈구했던
'마리아'...
감독 톰 볼프는 '여신(디바)'이기 전에
'인간'으로서의 마리아 칼라스를 섬세하게
조명하며,
어린 '마리아'에서 말년의 ‘라 칼라스’가 되기까지
그녀가 어떻게 성장하고 변신해갔는지의
내밀한 열정의 이야기를 스크린으로 촘촘히
엮어 나갑니다.
칼라스의 실제 공연 영상에 더해 그녀가 생전에
했던 인터뷰 영상, 무대 밖의 개인적 삶을 촬영한
DVD, 희귀본 음반과 영상물,
그리고 미공개 편지와 인터뷰, 미출판 회고록의
일부 문장들을 통해서 말이지요.
마스카니 오페라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Cavalleria Rusticana > 속 산투차의 아리아
'어머니도 아시다시피(Voi lo sapete O mamma)'
가 상징적으로 흐르는 가운데,
'칼라스 , 그녀' 는 그토록 잊고 싶었던 옛 단상을
애써 소환합니다.
자신이 못이룬 성악가와 배우의 꿈을 딸을 통해 대신
이루기 위해 어린 마리아에게 아동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스파르타식 음악 훈련을 강요했던 '어머니 에방겔리아' 를
말이지요.
1937년, 13살의 마리아는 극성스런 어머니의
교육열과 큰 키(?) 덕분에 17살이 되어야 가능했던
그리스 국립 아테네 음악원에 입학하게 됩니다.
그녀는 뛰어난 스승인 스페인 출신 소프라노
엘비라 데 이달고와 마리아 트리빌라 들로부터
자신의 탁월한 재능에 걸맞는 지도를 받지요.
마리아는 오직 노래에만 매달렸던 소녀 시기의
아쉬움을 털어 놓습니다.
"어린 시절은 짧고 그 때를 맘껏 즐겼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지요."
레전드 소프라노 칼라스를 있게 한
스승 엘비라 데 이달고는 기억합니다.
" 같은 말을 두 번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똑똑하고 열정적였던,
가장 먼저 와서 가장 늦게까지 있었던 학생였어요.
하루에 10시간씩이나 강의실에서 유명 성악가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의 두드러지게 큰 눈과 입으로 고음 발성을
연마했습니다."
칼라스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극적인 감흥이 가득한, 사나운 폭포 같은 음성”
이라고 평했던 이달고...
스승은 칼라스에게 성악적 기교뿐만 아니라
성악의 철학과 예술의 숭고함을
가르쳤습니다.
무대 위에서 여신처럼 걷는 법, 작은 손동작
하나만으로 극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키는 법도
역시 이달고 선생님에게서 배운 것이었죠.
칼라스는 회상했습니다.
“당시에 저는 근육을 쓰는 걸 즐기며
발전해 가는 체조 선수,
또는 춤 자체를 즐기며 춤 솜씨가 늘어가는
무용수 같았어요.”
아침 10시에 시작해 저녁 8시에 끝나는
긴 레슨 시간 동안, 칼라스는 늘 스승 곁을
지켰습니다.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에서의 잇따른
오페라 주역 계약을 성사시켜준 마에스트로
툴리오 세라핀과의 만남 또한 그녀에겐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지요.
칼라스가 라 스칼라와 로열 , 메트로폴리탄 등
전 세계 최고의 오페라 극장에서 여신처럼
군림하게 된 뒤에,
비평가들은 칼라스의 목소리를 두고
“낯선 은하계에서 길을 잃은 별 같다”고
칭송했습니다.
'천 가지 음색으로 연기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오페라 가수였다는 게지요.
천부적인 재능에 스스로의 열정적인 노력까지
더해져 당대 최고의 가수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47년 베로나 음악제에서 폰키엘리의 오페라
< 라 지오콘다 >의 타이틀 롤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후,
칼라스의 놀랍고도 독보적인 행보는 유럽과
미국을 가로지르며 찬연하게 이어집니다.
한때 영화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와 사랑에
빠졌으나 곧 결별하였던 칼라스는,
그녀의 열렬한 팬이자 후원자요, 매니저가 된
28년 연상의 조반니 바티스타 메네기니와
1947년 결혼하게 되지요.
이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과 런던 로열오페라
에서 '노르마'와 '청교도', '토스카'와 투란도트' ,
그리고 '아이다' 주역을 탁월하게 소화해냈던 그녀는,
1954년 시카고 리릭 오페라에 이어 1956년
뉴욕 메트오페라 극장에서 그녀의 분신이 된
'노르마' 역으로 화려하게 데뷔합니다.
뉴욕 필하모닉의 예술감독이자 작곡가인
레너드 번스타인은 그런 마리아 칼라스를 일컬어
‘전율’이자 '오페라의 성서'(Bible of Opera)라고
극찬했지요.
1953년 < 로마의 휴일 > 에 출연한
오드리 헵번의 매혹적인 미모에 반해 버린
칼라스는,
혹독한 다이어트로 8개월만에 30킬로를
감량, 환골탈태하는데 성공하지요.
그녀를 "괴물처럼 뚱뚱하다"고 무시했던
메트의 루돌프 빙 단장이,
"놀랍도록 날씬하고 눈부신 여성으로 탈바꿈했다"고
극찬했듯이,
초라하고 미운 오리새끼에서 일약 부와
명성을 함께 거머쥔 백조로 떠올랐던
칼라스...
그렇게,
그녀는 풍부한 성량과 격정적인 음색,
무대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완벽한 프리마돈나
화신으로 자리했습니다.
호사다마라 할까요.
1958년 1월 2일, 이탈리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유명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전석 매진된 로마 오페라극장에서의 < 노르마 >
공연에서,
심한 기관지염으로 도저히 노래를 계속할 수
없었던 칼라스는 40분에 걸친 1막 공연 후
무대에서 내려옵니다.
공연 취소를 알리는 안내 방송의 순간 극장은
격분의 항의와 절망어린 탄식의 아수라장에
빠지고 말지요.
그녀는 나름 거침없는 해명을 건넵니다.
"미안하지만 난 형편없는 공연은 안해요."
유수 언론들은 국제 정치기사도 아닌 칼라스의
공연 취소 이슈를 1면 헤드라인으로
장식했습니다.
기다렸다는듯이 맹비난하며, 사냥개처럼 그녀를
잔인하리만치 물어 뜯어대는 악의적인 보도는,
'청중을 조롱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는 칼라스의
마음에 깊디 깊은 상흔을 남겼지요.
달라스에서의 오페라에 출연한 칼라스는
둘러쌓인 기자들에게 메트오페라 단장
루돌프 빙과의 불화설에 대해 해명합니다.
" 나는 그가 '노르마'와 '토스카',
'세비야의 이발사'나 '루치아' 같은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어요.
왜 달라스에 왔냐고요?
바로 '새롭기' 때문이지요! "
결국 메트오페라단과의 계약은 최종 해지되고
맙니다.
" 마리아 칼라스를 해고하신 겁니까? "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루돌프 빙은 한마디로 잘라 말하지요.
" 해고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잘라낸 겁니다."
1965년, 7년 여의 해묵은 갈등을 뒤로 하고 다시금
뉴욕으로 되돌아와 메트오페라 무대에 다시 선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팬들은 '토스카' 공연 티켓을 구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밤낮으로 노숙하며 기다리지요.
" 이렇게 줄 선 이유가 뭐죠?"
칼라스가 담긴 입간판을 들고 다니며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른바 '칼라스 여신의 포로들'은
환호하며 답합니다.
" 마리아 칼라스 때문이죠.
그녀는 최고의 디바에요! "
" 칼라스의 공연을 놓치는 건 범죄에요.
이 시대 최고의 가수잖아요!
기교도 뛰어나고 연기 또한 말로는 표현 못하죠.
쉼표, 음표 하나 하나에 그녀의 영혼이 깃들여
있어요.
그녀는 진정 천재에요!"
1962년 몬테카를로,
" 2년 여의 휴식기 이후 노래의 품격이 눈에 띄게
달라진거 같습니다" 라는 기자의 질문에,
칼라스는 흔연스레 화답합니다.
" 초창기에는 본능(Instinct)에 따라 노래했지요.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목소리가 성숙하게 '
길들였졌다'고 할까요.
우리는 배우고 아프며, 또한 성장하니까요.
누가 뭐라 해도 난 내가 직접 느껴야 해요."
인터뷰 중 화면엔 역설적으로 비제의 오페라
< 카르멘 > 속 1막의 아리아 '하바네라(Havanera)'
로 잘 알려진,
'사랑은 길들지 않은 새'(L'amour est un
oiseau rebelle)가 흐릅니다.
자기만의 길을 당당하게 걸어가는 자유로운
영혼 칼라스를 은유하는 걸까요...
아울러 그녀만의 벨 칸토 스타일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는 칼라스.
" '롯시니', '도니제티'와 '벨리니' 의 벨 칸토 오페라
작품에 출연할 때마다 좀 더 극적인 연기가 더해져
차별화된 나만의 목소리를 낼려고 노력했지요."
'연기와 노래'라는 오페라의 필수불가결한
두 유기적 요소가 미학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연결돼야 한다는 그녀의 철학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연기가 뒷받침되지 않는 오페라는
우스꽝스럽지 않을까요?
물론 아름답지도 않고요. "
이토록 불꽃같은 삶을 태우고 떠나간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년 여의 공백
끝에 세간의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엘리자베스 여왕 자매도 참석한 1964년 1월
런던 코벤트 가든 로열오페라의 컴백 무대에서
푸치니의 오페라 < 토스카 > 로 센세이셔널한
대성공을 거둡니다.
오페라 음악사의 가히 '마법과 같은 음악적 순간
(Magic moment of music)'이었죠.
마리아는 혼자서 행하는 기도에 대하여
쑥스러워하며 밝힙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원하는 대로 주소서.
대신에 나쁜 일은 그것을 감당할 힘도 같이
주소서."
매혹적 외모와 특별한 목소리로 최고의 가수로
인정받으며,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던 디바 ‘칼라스’의
삶과 달리,
여자 ‘마리아’로서의 삶은 그리 평온하지 않았던
게지요.
무대에선 불같이 뜨거웠고 한없이 도도했음에도,
거리를 쾌활하게 걸어가던 일상에서 알아보는
행인을 마주치면 자못 민망해했던, 그 순수함의
일면을 지녔던 마리아 ...
그녀는 '가정과 일의 양립'에 대해 얘기합니다.
" 나도 평범한 여성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가정을
꾸리고 소박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커리어 우먼으로서 시간을
쪼개어가며 살기란 매우 어려웠지요.
행복한 삶을 위해 기꺼이 음악을 포기할 수
있었지만
'삶이 노래 자체'인 제 운명의 덫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죠."
하지만 완벽을 추구한다는 미명하에 잇단
공연계약 파기와 공연 직전 또는 공연 도중
출연 포기는,
극장 측과의 불협화음은 물론, 관객들의 실망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지요.
이처럼 목소리의 이상과 질병으로 인한 잇따른
공연 취소로 쏟아졌던 맹비난과 함께,
'목소리가 한물 갔다는 혹평'에 시달리던
칼라스는,
결국 1965년 코벤트 가든 로열오페라에서의
< 토스카 > 를 마지막으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합니다.
시간이 흐르며 마리아의 이야기는,
그녀에겐 '사랑'였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스캔들'
로 여겨졌던 그리스 선박왕 아리스토틀 오나시스
와의 사랑과 이별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1950년대 후반 절정의 전성기를 갓 지난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본인 표현대로라면) 삶의 열정을 가진
매력남 오아시스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되지요.
오페라 역사에 새로운 페이지를 써가며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던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음악 역정을 폭풍 속의 격랑으로 몰아넣은
것은 다름아닌 오나시스와의 사랑이었지요.
1959년 7월,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가
칼라스 부부를 호화 요트에 초대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겉잡을 수없는 사랑에 빠진 오나시스와 칼라스는
항해가 끝나갈 즈음에 이미 연인이 돼 있었으며,
이미 사랑이 식었던 칼라스와 그녀의 조강지부
메네기니와의 결혼 생활은 결국 파경에 이르게
되지요.
칼라스는 애둘러 얘기합니다.
" 스크린 밖의 세상을 보게 해줬던 남편
메네기니...
그러나 그는 머지않아 돈과 명예욕, 그리고
나, 마리아 칼라스의 유명세에 사로잡힌 속물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들 사이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았지요."
오나시스와 함께 화려한 상류사회의
사교계에서 활약하며,
칼라스는 본인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무대에 서는 것을 등한시하게 됩니다.
데뷔 때부터 그녀를 괴롭혔던 고.중.저음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예술적인 표현력과
뛰어난 연기력으로 극복했지만,
정작 사랑 앞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던,
목숨보다 소중했던 '벨 칸토(Bel Canto:
아름다운 노래)'마저 던져 버렸던 칼라스...
“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아리스토틀, 당신'은
내 삶과 자존심, 또한 숨결이에요.”
그리스 음악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희랍인 조르바의 춤' 선율은 깨어질
오나시스와의 비련을 애둘러 암시해주고
있습니다만...
오나시스는 1968년 재클린 케네디와
전격 결혼함으로써,
칼라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은 채,
절망과 고통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했지요.
피아노 버전으로 변주된
마스네의 '비가(Elegie)'와 함께,
일생에 단 하나의 사랑이었던
오나시스에 대한 칼라스의 진심은
월터와 줄리, 그레이스 켈리 등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오나시스를 향해 쓴 러브레터를 통해
엿보여집니다.
칼라스의 실황 영상으로 플래시 백되는
벨리니의 오페라 < 몽유병의 여인 > 속
아미나의 카바티나 '아 믿을 수 없어라
(Ah non credia mirati)'는
노래를 떠나보낼 만큼 믿고 매달렸던
오나시스의 배신에 치를 떨며,
진정한 사랑을 갈구하는 마리아의 안타까운
심정을 애잔하게 대변해주고 있지요.
1973년 마리아 칼라스는 그녀의 예술적
파트너였던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테너
주제페 디 스테파노와 함께
함부르크에서 부터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도쿄로
이어졌던 '리턴 투 마리아 칼라스' 순회 투어를
합니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여신이 다시 나타나셨다"
는 청중들의 뜨거운 환호성과 갈채는 그녀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지요.
칼라스는 감사어린 앙코르 곡으로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
를 헌정하겠다고 화답합니다만...
실제 화면 속엔 대가없는 사랑에 살다 스러져간
카멜리아 레이디 '비올레타 발레리'를 투영하듯,
베르디의 < 라 트라비아타 > 속 아리아
'지난 날이여 안녕(Addio del passato)'가
비감의 선율로 풀어지지요.
칼라스는 비극의 헤로인 비올레타를
오마주합니다.
" 되찾을 길없는 비참한 영혼,
덧없이 사라져버렸네..."
영화 종반,
푸치니의 오페라 < 나비부인 > 속 '허밍 코러스'
(Humming Chorus)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오나시스와의 밝혀지지 않은 사랑 이야기'가
무연히 풀어집니다.
병이 심해져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듯 초췌한
몰골의 오나시스가 불현듯 칼라스를 찾아오지요.
그들은 확인하게 됩니다.
진심어린, 진정성있는 애정, 아니 우정을
말이지요.
오나시스는 고백합니다.
"재키와의 재혼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고요.
"모두가 자기 잘못이었다"고...
마리아가 그런 오나시스를 다시 받아주는 모습은
사랑 앞에서 품어지는 그녀의 순수성과 무모함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지요.
1976년 마이애미 팜 비치에서의 마리아 칼라스.
그녀는 더 이상 레전드 소프라노가 아닌,
소박하고 평범한 중년 여성으로서 지난 시절의
영광과 상처를 오롯이 추억합니다.
칼라스가 곧 마주할 죽음의 그림자를 암유하듯,
화면엔 조르다노의 오페라 < 안드레아 셰니에 >
속 3막 아리아
막달레나의 '내 어머니는 돌아가셨소
(La mamma morta)'가 처연히 흐르지요.
어느덧 피날레,
관현악과 피아노 버전으로 바리아시옹된
오페라 아리아들...
벨리니 오페라 < 노르마 > 2막 도입부,
푸치니의 오페라 < 토스카 > 속 카바라도시의
'별은 빛나건만(E luchevan le stelle)',
마스네 오페라 < 베르테르 > 중
'가라, 눈물을 흐르게 하라
(Va, Laisse couler mes larmes)',
베르디의 '지난 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을 배경으로,
마리아 그녀의 회한어린 고백, 또한 아직도
강렬하게 살아 숨쉬는 노래를 향한 갈망이
애틋하게 풀어집니다.
프랑스 파리 시 외곽의 작은 아파트에서 외로이
은둔해오다 1975년 오나시스의 사망 소식을
접했던 칼라스,
그녀는 크나큰 충격으로 고독과 우울증에
괴로워하다
1977년 9월 14일, 끝내 심장마비로 세상을 뜨고
말지요.
못다한 마리아 칼라스의 이야기들은 그녀의
다음 말처럼,
영화 너머의 어딘가에 담겨져 있을런지요.
"내 비망록은 노래 안에 담겨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니까요."
정적(靜寂)의 엔딩 크레딧...
스테파노와 함께 했던 리턴 투어에서 칼라스가
앵콜곡으로 불렀던
푸치니의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O mio babbino caro)'가 숙연하게 풀어지지요.
그렇게, 가장 밝은 곳에 선 칼라스의 숨겨진
마리아의 전설,
<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 >는
그 막을 내립니다.
- 李 忠 植 -
1. 영화<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 -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 예고편
https://youtu.be/np0uKLPJ3O0
마리아 칼라스가 5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지
40년이 넘게 흘렀지요.
한국에선 ‘마리아 칼라스: 세기의 디바’라는
타이틀로 상영됐지만,
원제는 ‘Maria by Callas: In Her Own Words’
입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음악, 사랑에 관한 서사인
게지요.
(인터뷰 외 칼라스가 남긴 비망록이나 편지의
나레이션은 그녀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2007)에서
칼라스 역을 맡았던 프랑스 배우 '화니 아르당'의
우아한 목소리로 실려지고 있습니다.)
행복하지 못했던 가정, 운명이 되었던
음악으로부터,
일생일대의 사랑이었던 오나시스와의
러브스토리에 이르기까지
마리아에게 직접 듣는 그녀 자신의
'화양연화'(花樣年華),
그리고 불멸의 전설이 된 칼라스의 숨결이
오롯이 스며있는
'음악이 곧 언어'였던 아리아들...
영화는 화려함 뒤에 가려졌던 그녀의 인간적인
면모를 볼 수 있게 해주지만,
삶의 고비 고비마다 흘러나오는 그녀의 실제 공연
장면과 노래들 또한 너무도 매력적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폰키엘리 오페라 < 라 조콘다 > 속 '시간의 춤
(Danza delle ore- Dance of the Hours)' 과
어우러지며,
칼라스의 굴곡진 음악 여정은 펼쳐지지요.
푸치니 오페라 < 나비부인 > 의
‘바다와 육지에도 봄바람이 가득하고’ 로부터
벨리니 오페라 < 노르마 > 중 '정결한 여신'과
< 몽유병의 여인 > 속 '아, 믿을 수 없어라',
비제의 오페라 < 카르멘 > 중 ‘하바네라’,
베르디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중
‘지난날이여, 안녕’과
< 멕베스 > 중 '어서 내게로 오세요' ,
푸치니 오페라 < 토스카 > 속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와 < 잔니 스키키 > 중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등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빛나는 오페라 아리아들은 도입부의
전주부터 관객의 환호성까지 그대로 담아냅니다.
하여,
전율을 느끼지 않을수 없는 처절한 비극적 표현 등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
연기는,
말그대로 가장 위대한 '노래하는 배우'로서의
'칼라스, 그녀'의 천재성과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나타내주고 있지요.
2. 비제의 오페라 < 카르멘 - Carmen > 중
1막의 아리아 '하바네라(Habanera)'
- '사랑은 길들이지 않는 새'
: Hamburg 1962
https://youtu.be/EseMHr6VEM0
3. 푸치니의 오페라 < 토스카 - Tosca > 중
2막의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Vissi d'arte , vissi d'amore)
- 1964년 1월 로열오페라 하우스
https://youtu.be/NLR3lSrqlww
4. 벨리니의 오페라 < 노르마 - Norma >
1막의 아리아 - '정결한 여신(Casta Diva)'
https://youtu.be/TYl8GRJGnBY
- 2막의 아리아 '마침내 그대는 나의 수중에'
(In Mia man alfin tum sei) :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Maria Callas)와
테너 프랑코 콜레리(Franco Corelli)
/ 툴리오 세라핀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
1960 밀라노
https://youtu.be/MdzYl-puiw0
5. 롯시니 오페라 < 세비야의 이발사 - Barbiere
di Sivigila > 1막 로지나의 아리아
'방금 들린 그 음성(Una Voce Poco Fa)'
https://youtu.be/kG0BIOgl-aQ
6. 벨리니 오페라 < 몽유병의 여인 -
La Sonnambula > 중 2막 아미나의 카바티나
'아, 믿을 수 없어라(Ah, Non Credia Mirati)'
http://naver.me/51cdN9m9
7. 베르디 오페라 < 라 트라비아타 - La Traviata >
3막 비올레타의 아리아 '지난 날이여 안녕
(Addio del passato)'
: 1953년 라 스칼라
https://youtu.be/CmcG8fcVWkk
8. 푸치니의 오페라 < 잔니 스키키 - Gianni
Schicchi >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O Mio Babbino Caro)'
https://youtu.be/3v2jP7_OaMc
9. 베르디 오페라 < 맥베스- Macbeth > 1막
레이디 맥베스의 아리아 '어서 내게로 오세요
(Vieni, t'affretta)'
-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
: 2014 ~15 메트오페라 아드리안 노블 연출
/파비오 루이지 지휘
https://youtu.be/_ogsDRwTxoQ
10. 도니제티 오페라 <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Lucia di Lammermoor > 1막
루치아의 아리아 '주위는 침묵에 잠기고
(Regnava nel silenzio)'
https://youtu.be/BpJ2u1MiE7E
11. 푸치니 오페라 < 나비부인 - Madame
Butterfly > 2막 초초상의 아리아
'어느 개인 날(Un bel de vedremo)
- 카라얀 지휘 라 스칼라 오페라
https://youtu.be/tmfw17L_Deo
- 2막 허밍코러스(Humming Chours
: Coro a boca cerrada)
https://youtu.be/4rV0y4syKvQ
첫댓글 ‘디바(DIVA)’는 ‘여신’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로
오페라에서 최고 인기를 누리는 소프라노 가수,
특히 천부적 자질이 풍부한 여가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모두가 찬양했으나 그 누구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했고,
하여, 오페라 역사상 가장 악명높게 회자되었던
고독한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삶과 노래...
어머니의 혹독했던 강압으로 오직 음악만을
해야했던 어린 시절,
성공적인 데뷔 이후 이어졌던 승승장구의 음악
여정 속 갈등과 좌절,
파경에 이른 첫 결혼,
그리고 인생 일대의 사랑이었던
오나시스와의 러브 스토리까지,
오페라보다 더 드라마틱했으며,
아리아보다 더 애절했던 칼라스의 예술과 인생이,
음악이라는 운명을 결코 벗어날 수 없었던
그녀의 진솔한 언어를 통해 아트 다큐 영화
로 재탄생됐지요.
마리아 칼라스에게 바치는 러브 레터이자 ,
세기의 노래는 물론 고혹적인 목소리에 오롯이
감춰진 그녀의 내면을 들려주는 초대장과도 같은
이 영화는,
칼라스를 잘 몰랐던 이들에게는 그녀가 왜
불후의 소프라노로 불리워지는지 확인시켜주는
시간이 되는 동시에,
아울러 그녀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팬들에게는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선물같은 시간을
헌사해줍니다.
오페라 세계에선 'B.C'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기원 전을 뜻하는 B.C(Before Christ)?
물론 아닙니다만...
오페라 역사에서의 'B.C'는 'Before Callas
(칼라스 이전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칼라스 이전과 이후로 오페라의 세기가
나뉜다는 거죠.
헤밍웨이는 그녀를 '황금빛 목소리를 가진 태풍'으로
불렀습니다.
마리아 칼라스의 오랜 공연 파트너였던
주제페 디 스테파노는 그녀의 죽음 이후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칼라스는 노래 잘하는 여자였지,
노래에 예속된 여자는 아니었다.
사랑과 성공의 인생을 살다
그걸 잃고는 세상을 떠난 것이다."
마리아 칼라스, 그녀의 불멸의 목소리는
좀 섬뜩하면서도 곱지많은 않은 느낌의 철성(鐵聲),
이른바 'Strange Voice' 로,
비극을 껴안은 처절함에
고귀한 품위와 절제를 잃지 않는,
선이 굵으면서도 정열과 신비로움이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멜로디뿐 아니라 목소리의 색깔,
곧 '음색'으로도 연기했으며,
표정과 눈빛, 발걸음과 손짓으로도 노래했던
전설의 디바 마리아 칼라스...
그녀 특유의 극적이고도 처절한
색채가 온전히 느껴지는 아리아들...
도니제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속
'광란의 장면 아리아 - 그대의 다정한 음성이 들린다',
벨리니의 '노르마' 속 '정결한 여신',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중
'지난 날이여 안녕',
카탈리니의 '라 왈리' 중
'난 멀리 떠나야 해',
비제의 '카르멘' 중
'하바네라 - 나는 길들여 지지않는 새',
조르다노의 '안드레아 세니에' 속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셨소',
푸치니의 '토스카' 속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 와
'잔니 스키키' 중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
마치 그녀 자신의 굴곡진 격정의 사연이
절절히 깃들여 있는,
사랑의 배신과 절망이 아우러진 곡들이라
그럴까요.
그렇게, 오직 '사랑만이 삶의 전부'라며,
구구절절 사랑으로 넘쳐흐르는 칼라스의 노래는
이 오페라 아리아들을 오늘날의 명곡으로
재탄생시켰습니다.
오롯이 마리아 칼라스의 언어로 쓴
< 마리아 칼라스 - 세기의 디바 >에 대해 ,
미국 잡지 롤링 스톤(Rolling Stone)은
평가했지요.
"이 다큐멘터리에는 내레이터도,
사회자도 없다.
그저 칼라스가 무대에 오르고,
내려오는 것을 허락할 뿐이다.
그렇게,
가까이에서, 사적인 마리아 칼라스를
담은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