뜰에 매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옛날의 시인들이
매화꽃 시를 많이 읊었으니
나도 한 편 쓸까 합니다.
하얀 꽃송이가 하도 매력이 있어
보기만 하여서는 안 되겠기에
매화꽃과 친구가 되고 싶구나!
친구보다
내 마누라로 삼고 싶구나!
지금은 92년 4월 30일인데
봄을 매화꽃 혼자서
만끽하고 있는가 싶구나!
한들한들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천사와도 같구나!
오래 꽃피어서 나를 달래다오!
-천상병 '매화꽃'
대나무가 많아 竹谷인가!
연화리 대밭께 흐르다가
더 파래진 강물 따라가
수묵화처럼 먹먹한
백운산지리산 쳐다보다
다압면 그 설중매 찾아가
새소리 펼쳐놓고 잠시
매화 향에 마음 절인 어제는
03년 3월2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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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04
흐린 아침
"숲은 미래의 희망입니다"
약수터 가는 산길에 내 걸린
현수막이 자꾸만
"술은 미래의 희망입니다"라고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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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05
나도
한 마리
까치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 속에 깃들이어
새벽마다 그의 나뭇가지 끝에서
파아란
그의 아침을 열어 주고 싶다.
- 변준석 시인 '까치'중에서
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길을 건넙니다.
아직 여린 햇살도, 꽃샘 추위 바람도
플라타너스 가지의 까치도
잠시 멈춰 부신듯 아이들을 바라봅니다.
하얀 카라가 눈부신 세라복 여학생들
깔깔거리는 웃음에 봄이 묻어납니다.
말, 쏟아내고 쏟아낼 수록 왠지 쓸쓸해지는 말
가까운 벗일수록 말을 삼가야겠습니다.
무심결에 상처를 주는 칼 같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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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06
흙 묻은 속옷 바람으로 누워
아내는 몸을 떨며 기침을 했다.
온종일 방고래가 들먹이고
메주 뜨는 냄새가 역한 정미소 뒷방.
십촉 전등 아래 광산 젊은 패들은
밤 이슥토록 철 늦은 섰다판을 벌여
아내 대신 묵을 치고 술을 나르고
풀무를 돌려 방에 군불을 때고.
볏섬을 싣고 온 마차꾼까지 끼어
판이 어울어지면 어느새 닭이 울어
버력을 지러 나갈 아내를 위해 나는
개평을 뜯어 해장국을 시키러 갔다.
경칩이 와도 그냥 추운 촌 장터.
전쟁통에 맞아 죽은 육발이의 처는
아무한테나 헤픈 눈웃음을 치며
우거지가 많이 든 해장국을 말고.
- 신경림 시인 '경 칩'
뺨에 부딪는 진눈깨비가
사르르 녹으며 겨울의 마침표를 찍듯
입춘우수 지나 진눈깨비 나리는 驚蟄
경칩날 아침입니다.
봄기운에 놀라 개구리도 깨어나고
버드나무 싹도 깨어나는 날
그대도 지금 으랏차차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시작해보시죠..
하동에서 보내온 고로쇠 한 통
다 마시고 따스한 마음만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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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0
우리 아랫것테 아이들은 주로 장터거리나 앞산에 올라가서 놀았다. 우리는 고자배기를 캐려고 앞산에 올랐어도 고자배기 캐는 건 다 잊고 진달래를 따 먹으며 빨찌산 토벌대 놀이를 하며 놀았다. 눈이 큰 승우는 손바닥만한 마을의 개미만한 사람들을 잘도 알아보았다. 쩌기가 지서고 그 옆이 두기네 집잉게 그 앞이 이발소집이여. 거그서 나오는 사람이 곽센이고 그 옆에 옆에 집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순만네 할머니여. 순만네 개가 그 옆에 있자녀. 그랬다. 보이지 않아도 보였다. 잉어명당 도래솔 옆에는 산지당이 있고 그 산지당 샘가엔 조팝나무 하얀 꽃들이 흐드러졌을 것이고 당집 안에는 할매중이 낮잠을 자고 있을 것이다. 웃것테 아이들은 주로 학교운동장이나 뒷산 대감 묏동에서 놀았는데 우리가 앞산에서 괜히 '야이 새끼덜아' 하고 한 목소리로 소리지르면 어쩔 때는 대감 묏동 쪽에서 '뭐이 새끼덜아' 하고 웃것테 애들의 대답이 바로 왔다.
- 박두규 시인 '고향이야기 12-앞산' <사람의 깊이 6집 중에서>
일주일 동안 누이집에 계셨던
어머니를 모시고 서울로 오는 길
운전석 뒷자리의 팔순 어머니는
나 몰래 자꾸만 눈물을 훔칩니다.
마음만 먹으면 오갈 수 있는 나이가 아니라고,
이제 가면 또 언제 오겠냐고..
어머니, 말을 다 못하고 또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旅毒이 풀리지 않은 아침입니다.
허나, 싫지 않은 旅毒입니다.
꽃향내에 사람향내에 취한 시간들..
회원들끼리 조촐하지만 새벽까지 뜨겁게 치룬
순천작가회의 <사람의 깊이> 출판 기념회를 마치고
선암사 숲길을 돌아
섬진강 길까지 먼 길이었습니다.
산도, 들도
근질거리는 봄을 품은 날들
마음에도 한껏 봄을 품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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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1
梅
매화
얼음 뼈
옥 같은 뺨.
섣달 다 가고
봄 오려 하는데
북쪽 아직 춥건만
남쪽 가지 꽃 피웠네.
안개 아침엔 빛 가리고
달 저녁엔 그림자 배회하니
찬 꽃술 비스듬히 대숲 넘나고
暗香은 날아서 금 술잔에 드누나.
흰 떨기 추워 떠는 모습 안쓰럽더니
바람에 날려 綠笞에 지니 애석하도다.
굳은 절개 맑은 선비 견줄만 함 이로 아니
우뚝함 말할진대 어찌 보통의 사람이라 하리.
홀로 있음 사랑해도 시인이 보러감은 용납하지만
들렘을 미워하여 狂蝶이 찾아옴은 허락치 않는도다.
묻노라, 廟堂에 올라 높은 정승의 지위에 뽑히는 것이
어찌 옛날 林逋 놀던 西湖의 위, 孤山의 구석만 하겠는가.
- 권필(權 ) '매화'
시의 모습이 마치 탑을 쌓아놓은 것 같다해서 寶塔詩라는
이름 가진 조선 선조 때의 시인 권필의 매화 시입니다.
요즘은 매화도, 소나무도 무더기로 피어있는 것보다
저만치 홀로 피어있는 매화나 들판의 소나무에게
눈길이 갑니다. 무리 속에 들어 뼈저림 모르고
흐벅진 매화밭, 흐드러짐 없이 곧은 솔숲은
그냥 지나치지만 고목의 가냘픈 숨결에
피어난 두 어 송이 매화나 저 들판
홀로 시린 바람맞아 뒤틀렸지만
기상 잃지 않은 솔 의연함에
자꾸 뒤돌아보게됩니다.
마음, 눈이 갑니다.
홀로 피어나는
사 람 들
에게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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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3
얼음 풀린 강을 끼고
앓고 난 누님을 모시고……
이 두 가지를 겸하면
아리아리 저승도 가까운가.
아득한 강 건너 마을엔
복사꽃도 피어나는지
시방 잉잉거리는 벌떼소리
아지랑이 흐르고
산(山)이마엔 눈녹는 기척
보얗게 안개 서리고
나는 차마 손짓할 수 없다
봄이 오는 완연한 저 길을.
-박재삼 시인 '봄이 오는 길'
살이 썩어들어 가는 두려움에 어머니, 어머니를 외치던 이도,
주사 바늘을 통해 스미는 약 기운에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가끔씩 손을 저어 누군가를 부르던 이도,
돈이 없으면 아프지 말아야 한다며 돌아눕던 이도
나름대로 세수를 하고 맞는 1203호 병실의 아침
퇴원하게 된다는 이는 환한 웃음으로 병실에 온기를 불어넣고
병실 밖 철쭉 가지 끝으로 돋은 새잎들이 파랗습니다.
아직 마른 가지의 나무들도 제 몸을 뒤척여보는
희망의 봄입니다.
사랑과 인내로 환한 웃음을 잃지 않은 많은 사람들을 봅니다.
신새벽 고통으로 일그러진 병자들의 분노를 미소로 녹여 내는
하얀 천사들, 아무런 대가없이 병자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자원봉사자들.. 그들이 있는 병원은 푸른 보리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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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4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나니
- 남구만 시조 '동창이 밝았느냐'
모 심을 논
세 번은 갈아엎어야 하는데
낮이면 구름 잡는 투망질로
밤이면 바람 잡는 그물질에
텅 빈 외양간
독새풀 돋아나는 마음 논
나, 무엇으로 갈아 엎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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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5
천상의 어딘가에서
참새 한 마리 묵직이 내려와 앉는다
나와 온 우주가 팽팽해진다
사람들 바쁘게 걷는다
- 이시영 시인 '순간들'
아침 8시, 좀 늦은 날이면 8시 30분
광장에 울리는 사열병들의 착착 발자국 소리 같기도 하고
로마 말발굽 소리 같기도 한
8호선과 2호선을 바꿔 타는 긴 터널을 울리는 발자국 소리들
그 푸른 소리들은 저마다의 출구를 통해
지상으로 빠져나가 도시에 생기를 불어넣습니다.
하늘을 봅니다.
여느 날보다 포근해 보이는 하늘
토요일의 하늘답습니다.
주말입니다.
푸릇푸릇한 시간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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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7
우리 어머니 나를 가르치며
잘못 가르친 것 한 가지
일꾼에게 궂은 일 시켜놓고
봐라
공부 안 하면 어떻게 되나
저렇게 된다
똥지게 진다
-심호택 시인 '똥지게'
첫 詩集 보여 드렸더니
그렇게 工高 안 간다 할 때
안 보낼 걸 하시던 어머니,
어머니 이젠 다 괜찮습니다.
공부만으로 되는 글 같으면
글 못쓰는 이 어디 있겠습니까.
평생 일궈오신 무등산 자락
땅재 화전 밭 같은,
굽은 어머니의 등 같은
글을 쓰고 싶습니다.
봄입니다.
5평 임대 밭이지만
갈아엎고 거름 주어
씨앗 뿌릴 채비해야지요.
얼른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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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19
즐거운 봄날 아침이 되면, 모든 사람들은 죄를 용서받는다.
어제까지도 그대는 이웃사람을 주정뱅이, 도둑으로 여기며 그를
동정하거나 멸시하며 세상을 한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봄의 첫
아침에 밝고 따뜻한 빛이 내리비칠 때면 그대는 그가 조용하고 차
분하게 어떤 일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과 만나게 되리라. 그의 고갈
된 핏줄과 신경은 조용한 기쁨으로 충만해져 새날을 축복하고 순수
하게 봄기운을 느끼게 되리라.
-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소로우의 노래> 중에서
어머니의 고갈된 핏줄과 신경도 조용한 기쁨으로 충만해져
순수하게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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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20
순진무구한 소년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아무 이유 없이 목숨 있는 동물을 죽이지는 못하리라
인간처럼 목숨이 있는 동물을.
- 소로우의 노래 중에서
미국이 일방적으로 통첩하고,
전 인류가 숨죽이며 주시하는 시간
한 시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전쟁반대를 위해 이라크로 달려가
인간사슬이 된 사람들.
그들의 외침이 헛되지 않아
전쟁을 향해 가는 시계바늘이
멈췄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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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21
촌집에 노니는 닭 몇 마리
그렇게도 뜰 방을 더럽힌다고
앞 뒷마당
무지하게 쫓기고도
날만새면
새록스레 솟아나는
배고픔의 똬리가
부엌데기 밥 안치는
키질소리 반가워
모로 눈 촉촉이 뜨며
다가서는 두 발 총총 걸음에
속 아린
아낙 손에 담긴 쌀 한 줌
마당에 뿌려진 것을 줍고도
꼿꼿이 선 닭벼슬 붉다
- 박철영 시인 '닭 모이'
삐약 병아리 한 번 만져볼까
구구구 한 줌 쌀 다 뿌려도
햇살 좋은 돌담 밑 병아리 품고 조느라
들은 척도 않는 어미 닭
할 일 없는 장닭들은
모이 든 손까지 쪼을 듯이 달겨들고..
참 오랜만에
시골집 마당에 쪼그려 앉아 보는
마음의,
어머니의 챙이질(키질) 소리도 들리는 듯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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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24
오랜 비 끝에 촉촉한 땅을 갈아 씨앗을 뿌린다
잘 묻히지 못한 씨앗도 너무 깊이 묻힌 씨앗도
싹을 내지 못한다던
어머니의 오랜 말씀을 떠올리며
서투르게 씨앗을 묻다가
나도 하나의 씨앗으로 묻히고 싶어졌다
묻혀
메마른 껍질을 벗어버리고
싹을 틔워 내서는 세상 고통과 억압의
모진 바람 맞서서 푸른 깃발 휘날리는
참으로 빛나는 사람들 밥상에 놓인
싱싱한 풋고추로, 조선상추로, 물기를 반짝이며
된장 고추장에 찍혀 질끈 씹히는
그런 날을 위해 오늘
나도 하나의 씨앗으로 어둔 땅에 나를 묻는다.
- 김인호 시집 '땅끝에서 온 편지'중에서
작년 이맘 때, 어머니와 함께 씨앗을 뿌렸던
네 평 주말농장 밭
어제는 혼자서 고랑을 파고 씨앗을 뿌렸습니다.
상추, 봄무우, 쑥갓, 시금치 씨앗을 묻으며
누워 계신 어머니 몸에도
새 기운의 싹들이 돋아났으면,
내일이라도 밭에 나와보고는
'아이고, 이놈아 씨를 이렇게 묻어서 싹이 난다냐'
헛살았구나, 헛살았다고 나무라기라도 해주셨으면..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월요일 아침입니다.
'우리끼리 잘 살고 있는데 지들이 와서
왜 나가라 마라 합니까..'
눈물 글썽이던 이라크 난민,
담배 행상 아주머니의 마음에도,
조금은 지쳐 보이는 그대 마음에도
새 희망의 파란 순들이 움트는
그런,
한 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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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27
발길에 걸리는 모난 돌멩이라고
마음대로 차지 마라.
그대는 담을 쌓아 보았는가
큰 돌 기운 곳 작은 돌이
둥근 것 모난 돌이
낮은 곳 두꺼운 돌이
받치고 틈 메워
균형 잡는 세상
뒹구는 돌이라고 마음대로 굴리지 마라.
돌담을 쌓다 보면 알게 되리니.
저마다 누군가에게
소중하지 않는 이 하나도 없음을
- 김기홍 시인 '돌담'
누가 있어
자꾸 노란 물감을 덧칠하는 것일까
그제께 보다, 어제께보다
나날이 노래지는 산수유화 보다보니
딱, 一泊, 구례 산동 상위마을 민박집
자꾸만 자꾸만 가슴 파고들던 물소리도
돌담도, 까맣던 밤도 다들 잘 있는지,
허기사,
지들이 나 같은 것 생각키나 하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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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띄우는 아침 편지 -0328
言語에 칼질을 잘해서
詩 비슷한 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
詩人이 아닙니다.
사람의 길을 찾아
그 사람의 길에서
가장 아름답게 사는
그런 사람이 바로
진짜 詩人입니다
그런 詩人의 삶이
바로 진짜 詩입니다
나는 지금 이어도에서
그런
영혼이 맑은 당신과 함께
가장 향기로운
詩 한편으로 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