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멸보궁 - 설악산 봉정암
이 홍 섭
젊은 장정도 오르기 힘든 깔딱고개를
넘어온 노파는
향 한 뭉치와 쌀 한 봉지를 꺼냈다
이제 살아서 다시 오지 못할 거라며
속곳 뒤집어 꼬깃꼬깃한 쌈짓돈도 모두 내놓았다
그리고는 보이지도 않는 부처님전에
절 세 번을 올리고
내처 깔딱고개를 내려갔다
시방 영감이 아프다고
저녁상을 차려야 한다고
* 이홍섭 시인. 1965년 강릉 출생. 1990년 <현대시세계> 시인 등단. 2000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문학평론가 등단. 시집 <강릉, 프라하, 함흥> <숨결> <가도가도 서쪽인 당신> <터미널>, 시와시학 젊은 시인상, 제17회 현대불교문 학상, 제10회 유심작품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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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의 적멸보궁 - 1전어치의 기름
1전어치의 기름으로 부처님에게 등불 공양한 난타라는 가난한 노파의 전설이 떠올랐다.
한 달 동안 일해서 모은 돈으로 1전어치의 기름을 사 부처님 설법을 들으러 간 난타의 볼품없는 등燈은 주위를 밝히지 못하였다. 갑자기 바람이 휘몰아치자 부자들의 휘황한 등불은 모두 꺼졌지만 오로지 난타의 초라한 등불만 꺼지지 않고 홀로 주위의 어둠을 거두고 있었다.
적멸보궁은/언제나/적막 꼭대기에 세운다
돌층계마다/고요가/한 계단씩 높아진다
―박현수 시인의 적멸보궁 중에서
십수 년 전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적멸보궁에 가 필자가 느낀 감상이 아마 이러하였으리라. 돌계단을 굽이굽이 올라 비로봉 오르는 길 7부 능선 산자락 끝에 있던 적멸보궁. 작은 절집이 간직한 고요, 그리고 손길을 스치는 바람에 느껴지는 숭엄한 기운….
그러나 시인이 간직한 부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관념의 부처님이 아니었다. “젊은 날의 한 시절이 묻힌 백담사 만해마을”, “내 거처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의 언덕 한켠”이라고 젊은 한 시절을 고백한 것으로 보아, 시인도 우리 문단에 영원한 경외감을 던져 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처럼 불교와 문학, 두 가지를 하나의 화두로 용맹정진한 시절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한다.
그렇지만 감히 생각하건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나 ‘칠조어론’은 이를 경전의 한 반열에 올리고자 하는 소수의 경배자들로 넘을 수 없는 벽에 갇혀 있지만, 이홍섭 시인의 시詩는 곡진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이러한 평을 받는다.
“고즈넉하고 극진한 시어로 생의 비애와 상실, 사랑과 연민을 노래하는 이홍섭은 시를 쓰되 시로써 무엇을 구하지 않고, 다만 지극히 간절하고자 한다.”(백원기 교수)
속곳 뒤집어 꼬깃꼬깃한 쌈짓돈까지 모두 바쳤지만, 당장은 아픈 영감의 저녁상이 더 중하다. 우리들 삶과 구도는 늘 평행성으로 마주 보고 길게 뻗어 있다. 서방정토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다.,고 시인은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