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로 통하는 빨간 우체통
이강촌
짙은 초록색 소나무에 빨간색 우체통을 걸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들, 그를 향하여 적어 놓은 편지들을 그에게 보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갚아야 할 빚이 많은데~~’
사년 전, 생전의 옆지기는 통원치료차 방문한 서울삼성병원 대기실에서 바로 곁에 앉아 있는 나에게도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혼잣말처럼 말했다. 나를 바라보지도 않고 허공에 시선을 둔 채~ 그의 손에 들린 병원의 진단서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와 자녀들은 그해 겨울을 서울삼성병원 입원실에서 혹독하게 보냈다. 고통 속에서 검사와 치료를 병행하고 삶과 죽음의 공간을 넘나들다가 병원의 탁월한 기술과 의술 덕분에 일단 자기 스스로 몸을 가누면서 살아 돌아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손에 들려진 진단서는 힘들고 아픈 앞날, 시한부 삶을 예고하고 있었다.
그해 가을에 나는 ‘삼대가 만들어 가는 전원일기’ 출간을 준비하고 있었다. 전원주택을 떠나 아파트로 거처를 옮기면서 전원에서의 그리움을 정리하고 또 가족들의 삶과 추억을 남기고자 출간을 서두르고 있었다. 준비 도중 그의 병원 출입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 다리가 좀 아파서 ~~ ’
사실 다리가 아프다는 말은 오래전부터 자주 해 왔기 때문에 한의원에 물리 치료를 받고 정형외과 치료를 받았다. 골프 연습장에서 운동하는데 무리를 했는지 약한 뼈에 금이 간 것 같다는 정형외과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두어 달 치료를 받은 후 차도가 없자 그것이 오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전원일기가 출간되고 미니 출판기념회 기념사진을 촬영해 놓고 돌아 온 날, 그는 큰 병원에 가 봐야 할 것 같다고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토록 아팠으면 진즉에 큰 병원 가자고 해야지~~’
‘출판 준비 중인데 중한 병이다 싶으면 출판 중단할 까 봐 ~’
‘생명이 오락가락 하는데 그 깐 출판이 뭐 대수라고~ 에구 참 ’
사실 우리 부부가 대구에서 멀리 물 맑고 공기 맑은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 오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큰 병으로 수술을 두 번이나 받은 그의 건강을 보살피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나쁜 병 인자는 어디엔가 꼭꼭 숨어 있다가,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병원에서 겨울을 보내고 그는 모진 앓이를 하는 동안 10 kg 이나 빠져버린 아슬아슬한 체중으로 퇴원을 하고 통원 치료를 하게 되었다. 그래도 퇴원 후 마지막 남은 자존심과 강단으로 몸의 중심을 잡고 바둑제자의 케어를 받으면서 문화센터를 드나들었고 다소나마 병세가 가라앉아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기력을 회복하여 사람노릇 하면서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오로지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며 식단을 잘 짜고 본인이 의지를 보여야 할 일이었다. 아침마다 문화센터로 가는 그의 간식 가방을 챙기는 손이 바르르 떨렸다. 얼마나 더 오래 이 간식 가방을 챙길 수 있으며 언제 어떤 모양으로 우리는 헤어져야 하는 걸까.
나는 매일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간식가방을 만들 이유가 있음에 감사하고 그가 음식을 먹을 수 있고 두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음에 감사하며 바둑알을 제 자리에 놓을 수 있는 정신력에 감사했다. 내일을 기약하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그를 바라 볼 수 있고 한 공간에서 살아 숨 쉬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가 아픈 만큼 나도 아팠고 그가 신음하는 소리를 내는 날이면 내 가슴은 더 따가웠다.
그러나 결국 그는 떠나버렸다. 더 이상 기다려 주지 못하고 가버리고 난후 나의 삶도 거기서 멈추어버렸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그가 가버리고 난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마지막 말처럼 했던 말이 떠올랐다. ‘갚아야할 빚이 많은데~’
그는 내게 왜 무슨 빚을 졌다고 말했던가. 경제적으로야 모든 살림을 내가 맡아서 했으니 빚 질 일이 없고 골프나 바둑 두는 일도 함께 했으며 여행을 좋아했지만 그 또한 대부분 함께 하지 않았던가. 우리나라의 산이나 바다, 이름 있는 섬들은 낯선 곳이 없을 정도로 여행을 다녔으니 원도 한도 될 것이 없다.
나는 그때 왜 물어보지 못했을까. 갚을 빚이 무엇인지 물어 볼 것을 ~ 그가 가고 난 다음에야 궁금증이 일어났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그리고 앞으로 함께하지 못할 것 같은 그 당시가 빚진 마음이라면 빚이랄 수 있겠다.
나는 오늘도 그에게 편지 같은 일기를 적는다. 수목장 소나무가지에 걸린 빨간 우체통에 편지를 넣으면서 멀리 하늘나라의 그에게 내 마음이 닿기를 소망한다.
‘함께 한 동안 고마웠으며 당신은 참 멋있는 사람이었어요. 당신 없는 세상 할 일 없어 당신 향한 그리움만 쌓이고 있다오. 하루빨리 당신 곁에 가고 싶어요. 당신이 나 잊어버릴까 봐 그것이 무서워 나 잊지 말라고 오늘도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내가 당신 곁에 가는 날 갚는다던 남은 빚 갚으세요. 그립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