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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술가곡
1) 독일가곡 리트(Lied)
2) 프랑스 가곡
3) 이탈리아 가곡
4) 기타 여러 나라의 가곡
6. 예술가곡
서양음악사에서 노래를 뜻하는 말로 발라드, 샹송, 칸초네, 로망스, 멜로디, 리트 등이 있는데, 오늘날 ‘가곡’을 말하는 용어는 나라마다 그 숫자만큼이나 많다. 그리고 언어의 감각에 따라 시대에 따라서도 다르게 지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종교 음악이나 오페라와는 다른 성악곡으로 한 편의 시와 음악의 결합 형태인 가곡들 중 독립된 장르로 예술적인 가곡의 역사를 이룬 것은 낭만주의 시대부터다.
즉, 단순히 시에 얹혀진 음악의 차원이 아닌 음악과 시의 긴밀한 결합, 또는 문학적 영감과 음악적 표현의 완벽한 조화로 예술가곡의 지위는 독일 낭만주의 시대부터 비롯된다.
이런 예술가곡의 탄생에는 2가지 요건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편화 되고 일반적인 상념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 감정이 담긴 낭만주의 서정시의 발전이다.
괴테, 실러,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뮐러, 케르너 등의 주옥같은 시들은 작곡가들로 하여금 위대한 선율을 작곡할 영감을 부추겼다. 다른 하나는 과거의 현악기나 관악기가 단순히 노래를 반주하는데 그쳤지만, 피아노의 발전으로 풍부한 표현을 하게 되어 노래와 피아노의 이중주를 하게 된 것이다. 따라서 예술가곡은 피아노 반주에 개인의 서정을 갈고 다듬은 시를 가사로 하여 부르는 노래다.
물론 예술가곡 이전에도 많은 노래가 있었고, 싱어송 라이터의 조상격인 뛰어난 음유시인들이 읊은 시로 된 노래도 있었다. 대부분 카톨릭 수도사며 대학생인 중세의 음유시인들은 직접 시를 짓고 바이올린이나 하프, 백파이프, 치터(Zither) 등을 반주로 사랑의 노래나 전원시를 불렀다. 그리고 각 지방마다 구전된 민요들은 소박하고 친근한 서정으로 가곡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중세 음유시인과 작곡가들은 시대가 요구하는 종교적 노래와 오페라나 칸타타와 같은 대규모 성악곡에만 재능을 쏟으므로 상대적으로 예술가곡엔 관심이 없어 가곡의 탄생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간간이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소박한 반주악기를 동원해 자연과 사랑을 노래하는 독창 노래들이 있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오페라의 아리아나 기악곡을 작곡했다.
가곡은 시와 노래의 결합 구조에 따라 3가지 유형이 있는데, 첫째는 시의 각 절에 같은 음악을 반복하는 ‘유절가곡'이다. 시가 계속 바뀌어도 노래가 여전히 반복되는 것은 민요나 대중적인 노래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슈베르트와 슈만 등의 예술 가곡에도 흔한 형식이다. 이에 반해 어느 부분의 반복 없이 가사에 따라 음악이 바뀌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른 곡으로 된 것을 ’통절가곡'이라 한다. 즉, 작곡가가 시의 전개에 따라 가사의 뜻에 부합하도록 곡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반복구조인 운율이 있는 시에는 유절가곡을, 반복성이 없는 산문시나 괴테의 발라드 ‘마왕’ 같이 대화체 형식의 시에는 통절가곡을 많이 선택한다. 즉, 시의 형식이 음악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 2형식의 중간 유형으로 유절가곡의 형식을 하지만 시의 특별한 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중간에 다른 곡을 도입하는 수정된 유절가곡 형식이 있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중 ‘보리수’를 보면 음악적으로는 각 절마다 유사하지만 2절의 전반부가 1절과는 다르게 단조로 바뀌며, 3절이 시작되기 전에 가사의 ‘차가운 바람’을 묘사하는 극적인 부분이 삽입된다. 이 처럼 가곡의 형식은 가사에 의해 결정됨으로 연관성을 가진 가사의 가곡들을 한 묶음으로 만든 것을 ‘연가곡(독일어로 리더크라이스)’이라 한다.
연가곡으로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아름다운 물방앗간 아가씨’, 슈만의 ‘시인의 사랑’, ‘여인의 사랑과 생애’,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무소르그스키의 ‘죽음의 노래와 춤’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을 보면 연가곡의 범위가 의외로 넓은데 그 이유는 연가곡이라 해서 늘 일관된 줄거리를 갖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즉, 한 시인의 작품만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여러 시인들의 작품을 하나의 제목으로 묶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연가곡은 일정한 줄거리가 있더라도 소설이나 연극처럼 일관된 이야기가 아니라 다양한 서정성을 그려내면서 어느 정도 비슷한 인상의 곡들로 구성되지만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으로 묶인 일련의 가곡집으로 이해하면 된다.
1) 독일가곡 리트(Lied)
19세기 이후 괴테, 하이네, 아이헨도르프 등의 낭만파 서정시의 자극을 받아, 음악과 시의 이상적인 융합을 도모한 슈베르트, 슈만, 브람스 등에 의해 개척되고 오르프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었다. 보통은 고전파 이후의 예술가곡을 일컽지만, 미네젱거, 마이스터젱거시대의 가곡이나 16세기의 다성적(多聲的) 가곡까지를 포함한 독일가곡 전반을 가리키기도 한다.
예술가곡(민요, 속요와는 구별된 예술가곡)은 어원부터 ‘노래’라는 뜻의 독일어 ‘리트(lied)’로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포함한 독일어권에서 독일 낭만주의 서정시의 발달과 함께 꽃을 피웠다. 특히 괴테(1749~1832)와 하이네는 짧은 서정시를 통해 주관적인 표현 양식을 개척한 탁월한 시인들로 이들이 주로 쓴 주제는 사랑과 동경, 자연 예찬, 덧없는 인간의 행복 등이었다.
예로부터 작곡가들의 영감에 불을 지핀 시인이 많지만 가곡의 발전엔 괴테가 가장 돋보인다. 괴테는 성악에서 그의 생전부터 현대까지, 독일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까지 수없이 많은 작곡가들이 그의 시를 음악으로 만들었다.
괴테의 작품에 붙인 음악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가곡의 발전에 전기를 마련한 모차르트의 ‘제비꽃’은 리트 역사상 최초의 통절가곡으로 기록되며, 125곡에 괴테의 시를 사용한 라이하르트(1752~1814)와 멘델스존의 스승인 첼터(1758~1832)는 괴테의 시 작곡가로 가장 유명하다.
괴테와 친분이 있는 베토벤은 80편의 가곡 중 ‘동경’과 ‘미뇽의 노래’, 극음악 ‘에그몬트’에 나오는 ‘클레르헨의 노래’ 등을 통해 괴테와의 행복한 만남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리트 역사는 ‘가곡의 왕’ 슈베르트로부터 시작된다.
리트는 슈베르트에 의해 시와 음악, 성악과 피아노가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고 대화하는 새로운 가곡 미학을 얻게 되고 예술가곡이 음악사에 독립된 장르로 정착되었다.
이런 가곡의 탄생은 1814년 괴테의 시에 붙인 ‘물레 잦는 그레트헨’에서 시작되었는데, 이 곡은 괴테가 56년에 걸쳐 완성한 희곡 ‘파우스트’에 나오는 노래로, 파우스트를 그리워하는 그레트헨이 물레를 돌리며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진정시키려 애쓰는 초조한 심정을 탁월한 음악으로 그려낸다. 이 곡의 작품 번호는 2번이지만 1번인 ‘마왕(1815년)’ 보다 1년 앞선 것으로, 끊임없이 돌아가는 물레를 연상시키는 피아노의 음형과 감정을 고조시키는 화음을 절묘하게 사용함으로 슈베르트는 음악과 시의 완벽한 결합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괴테는 아이러니하게도 59편이나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인 음악시인 슈베르트를 무시하여, 괴테를 열렬히 존경했던 슈베르트가 ‘마왕’을 그에게 헌정하려 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슈베르트 사후 몇 년 뒤 ‘마왕’을 들은 괴테는 소박한 민요조의 노래로 여긴 자신의 시를 슈베르트가 낭만적이고 극적인 비극으로 그려낸 데에 찬사를 보냈다.
‘마왕’은 폭풍우 속에서 병든 자식을 품에 안고 달리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대화체의 시 형식에 담고 있다.
요정의 왕이 손을 댄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된다는 독일 전설을 바탕으로 한 이 시는, 열병에 시달리는 남자 아이의 곁에 죽음을 상징하는 마왕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여기서 시의 극적인 분위기는 피아노가 맡으며 셋잇단음표의 시종일관 반복되는 음형을 통해 말을 달리는 긴박한 상황을 그려낸다. 전체는 통절형식으로 작곡되어 음악은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긴장을 고조시킨다.
다음은 시의 전개에 따라 음악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열거한 것이다.
(해설자 : 단조 중간 목소리)
이렇게 늦게 어둠과 바람을 뚫고 달리는 이는 누구인가?
그는 아들을 데리고 가는 아버지, 그는 아이를 힘차게 팔에 안았네.
아이를 꼭 껴안고 따듯하게 안고 있네.
(아버지 : 낮은 목소리)
“아가, 무엇이 무서워 얼굴을 가리느냐?”
(아들 : 높은 목소리)
“아버지, 마왕이 보이지 않아요? 왕관을 쓰고 긴 옷을 입은 마왕 말이에요”
(아버지 : 낮은 목소리)
“아가, 그건 안개란다.”
(마왕 : 조성이 장조로 바뀐다)
“귀여운 아이야, 함께 가련! 나와 함께 재미나게 놀자꾸나.
아름다운 꽃동산에서 비단옷도 많이 입혀주마”
(아들 : 높은 소리, 겁에 질려서)
“아버지, 아버지, 저 소리가 들리지 않으세요, 마왕이 내게 속삭이는 소리 말이에요!”
(아버지 : 낮은 목소리로 달레며)
“조용히 진정해라 아가, 저 소린 바람 소리란다”
(마왕 : 유혹하듯이)
“자 나와 함께 떠나 볼까? 내 귀여운 딸들이 기다린단다.
너와 함께 놀아주기 위하여 너를 위해 춤추고 노래할거야“
(아들 : 높은 목소리로 소리친다)
“아버지, 아버지, 저것 보세요. 저 어둠 속에 마왕의 딸이 보여요”
(아버지 : 낮은 목소리로 애써 안심 시킨다)
“아가, 아가, 저기 저것은 늙은 수양버들 이란다”
(마왕 : 들뜨고 즐거운 음성으로)
“예쁜 아가 네 모습이 탐나는구나. 네가 원치 않으면 강제로 데려 갈 거야.”
(아들 : 높은 목소리로 겁에 질려서)
“아버지, 아버지, 그가 나를 붙잡아요. 마왕이 나를 해쳐요”
(해설자 : 중간 목소리로 나직이)
겁에 질린 아버지는 급히 말을 몰았다.
울부짖는 아이를 가슴에 안고 성급히 집에 와보니 품속에서 아이는 죽어 있었다.
이 시에는 네 사람의 화자가 등장하여 인물들은 각각 화음과 리듬, 반주 형을 변화시켜 뚜렷하게 구별되는데, 어린아이의 두려움은 불협화음과 높은 음역으로 강조되고, 아이를 진정시키려는 아버지는 낮고 중후한 목소리로 묘사된다. 이에 비해 마왕은 죽음을 상징하는 인물답지 않게 고혹적이고 부드러운 선율로 나타나며, 여기서 음악적으로 묘사되는 죽음은 어둡고 캄캄한 것이 아니라 평온한 안식처로 부각된다.
마지막으로 해설자는 중간 음역으로 담담하게 전후의 상황을 그려내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마왕을 들으면 가곡이라기보다 오페라 같은 느낌이 든다. 따라서 이처럼 기이함과 극적인 느낌의 노래를 부를 성악가는 탁월한 표현력을 가져야 하며 각기 다른 인물의 개성을 부각 시킬 수 있어야 한다.
리스트의 평가에 의하면 슈베르트는 700편의 가곡을 통해 가장 시인 같은 음악가며 음악이란 언어를 사용한 시인이었다.
슈베르트 가곡의 가장 큰 덩어리를 형성하는 것은 교향곡과 실내악곡, 피아노곡과 종교음악에 이르기까지 특유의 서정성이 스민 것으로, 그의 기악작품에도 항상 노래 부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근원적으로는 가장 간결하고 소박한 가곡 형식을 가지는 낭만주의 음악에 꽃을 피웠다.
슈베르트의 뒤를 이어 낭만주의 독일 가곡의 절정을 이룬 작곡가는 슈만으로, 그는 흔히 ‘노래의 해’로 불리는 1840년 한 해에만 200편의 가곡을 작곡하였다.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슈만은 그때까지 기악작품과 피아노 작곡에 몰두하다 클라라와 우여곡절 끝에 결혼한 이 해에 많은 가곡을 썼는데, ‘시인의 사랑’, ‘리더크라이스’, ‘미르테의 꽃’, ‘여인의 사랑과 생애’ 등의 연가곡들을 작곡하였다.
그는 가곡에서 ‘노래와 피아노를 위한 곡’이라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즉, 피아노의 인상적인 전주를 통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하고 간주로 앞과 뒤에 있는 시의 분위기를 연결하며 노래의 선율을 중간에서 끝나게 하고, 그 나머지를 피아노가 완성케 하는 즉, 후주 부분을 두어 시의 여운을 지속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슈만의 가곡은 때로 피아노 소품처럼 들리기도 하며 노래가 피아노에 얹혀진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시와 음악은 완벽한 하나가 되며, 세분화된 뉘앙스와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피아노 반주와 서정적인 선율의 조화를 통해 ‘목소리와 피아노의 이중주’를 실현한다.
슈베르트와 슈만의 직계 후계자인 브람스는 200여 편의 가곡을 남겼는데, 그가 즐겨 쓴 주제는 사랑, 자연, 그리고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는 늘 자신이 진정한 독일인이라면서 독일 민요와 어린이 노래를 편곡하고 가곡에도 이런 요소를 사용했는데, 그의 가곡은 민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단순한 유절 형식이 많으며 대칭적이고 규칙적인 선율을 선호하여 소박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브람스 특유의 침울하고 어두운 주제가 어우러져 독특한 가곡세계를 펼쳤다.
대표작으로 ‘아름다운 마겔로네’, ‘네 개의 엄숙한 노래’, ‘5월의 밤’ 등이 있다.
보수적 경향의 가곡을 쓴 브람스에 비해 리스트는 자유롭고 낭송적이며 반음계를 많이 사용한 화성과 피아노다운 표현들로 나름대로 가곡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다.
리스트는 그의 현란한 교향시나 피아노 작품과 달리 ‘로렐라이’, ‘꽃과 같은 그대’등 80곡 가량의 가곡에서 서정성을 강조했다.
후고 볼프(1860~1903)는 피아노 반주에 의한 독일 리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가곡사의 독특한 존재로 다른 작곡가와 달리 오직 가곡을 통해서만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였다. 정신병원에서 삶을 마감할 때 까지 그는 ‘뫼리케 가곡집’, ‘괴테 가곡집’, ‘이탈리아 가곡집’을 비롯한 7개의 가곡집을 포함하여 300곡 가까운 리트를 작곡하였다. 그의 가곡은 바그너의 영향을 받아 반음계적 진행과 자유로운 낭송, 끊임없는 조바꿈을 사용하여 한층 후기 낭만주의의 색채를 띠며, 심리를 묘사하는 피아노의 비중이 더욱 중요해졌다.
볼프와 같은 해에 태어난 말러는 피아노와 성악의 결합인 독일 리트를 관현악 반주에 의한 예술가곡으로 탈바꿈시킨 인물이다.
19세기 말 교향곡의 대가인 말러는 민요와 낭만주의 적인 시에서 영감의 원천을 받고 자신의 자전적인 체험을 관현악과 목소리의 결합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표작으로 ‘뤼케르트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 등이 있다.
말러의 관현악 반주가 붙은 가곡을 계기로 작곡가의 개성적인 양식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독일 가곡의 전통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 막을 내렸다.
그의 가곡은 가수들에겐 어려운 기교를 요구하였지만 청순한 서정이 강조되며 연주시간도 2분에서 5분을 넘지 않는 간결한 작품이 대부분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이후 독일 가곡의 전통은 제2빈음악파의 쇤베르크와 베베른, 베르크의 가곡들로 계승되는데, 여기서는 보다 개인적이고 확대된 표현이 두드러진다. 또한 말인지 노래인지 분간키 어려운 성악기법들과 무조 음악으로 작곡된 진보적인 작품들은 이미 새로운 음향 창조의 영역이 크게 확대되었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15~2012)는 독일 예술가곡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바리톤으로, 일급 오페라 가수로 활약했으며 서정적인 목소리와 위엄 있는 무대 매너, 방대한 래퍼토리를 구사하여 슈베르트를 비롯한 독일 가곡의 연주와 해석의 최고 권위자였다.
* 슈베르트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 중 15곡 ‘까마귀’
32년을 산 보헤미안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라고 할 수 있는 연가곡집 ‘겨울 나그네’는 슈베르트가 죽기 1년 전인 1827년 2월에 작곡을 시작하여 그해 10월 24곡 전곡을 완성했다.
같은 해 3월에 존경하던 베토벤의 죽음을 접한 슈베르트는 자신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고 이 작품을 선택했는데, 원작은 슈베르트와 같은 해에 33세로 요절한 시인 뮐러(1794~1827)의 시로,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청년이 현실과 환각 사이를 방황하며 죽음으로 향하는 심정을 24편의 노래 전편에 걸쳐 어둡게 그려낸다. 독일어 제목인 ‘Winterreise’의 정확한 번역은 ‘겨울 여행’이다. 물론 이 겨울 여행의 종착역은 죽음이다.
슈베르트는 어둡고 공허하며 때로는 극적이고 순진무구한 선율의 다양성을 통해 다가오는 죽음에의 예감과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회상을 교차시켰다.
전곡 중 15번째 곡인 ‘까마귀(Die Krahe)’는 ‘보리수’나 ‘봄 꿈’, ‘아침인사’등 유명한 선율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연주 빈도가 적지만 ‘겨울 나그네’ 중에서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선율 중 하나다. 노래와 반주가 모두 단조로운 음형으로 반복되는데, 느리며 적막한 선율에서 겨울 여행이 끝나면 죽음이 기다린다는 불길한 암시를 느끼게 된다.
까마귀 한 마리 긴 여로에 나를 따라와, 내 머리 위에 맴 돈다.
까마귀, 불길한 새여, 내게서 왜 떠나려 하지 않나, 내 몸을 먹이로 하려는가?
이제 나는 지팡이에 매달려 앞으로 갈 수도 없게 되었다.
까마귀여, 보여주려무나. 무덤까지 너의 충실함을, 무덤까지 너의 충실함을....
* 슈만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 중에 1곡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낭만주의 작곡가 중에도 가장 낭만적 정신의 소유자로 거론되는 로베르토 슈만은 음악을 감정적이고 문학적이며 자서전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장인과의 힘겨운 법정 투쟁 끝에 마침내 사랑하는 클라라와 결혼한 슈만은 생애를 통해 가장 왕성한 창작욕을 불태우며 200편이 넘는 예술가곡을 작곡했다.
이 중에 가장 깊은 영감 속에 묻혔던 5월에 탄생한 작품이 연가곡집 ‘시인의 사랑’이다.
‘시인의 사랑’은 하이네의 시에 붙여진 것으로 슈만은 뤼케르트나 아이헨도르프, 뫼리케 등 독일 낭만주의 시인 30명의 작품을 소재로 300여곡의 가곡을 썼지만 하이네의 시를 가장 선호하였다.
짧고 감각적인 16편의 연가곡으로 구성된 ‘시인의 사랑’은 곡 하나 하나가 비할 데 없는 개성을 가지면서 시인과 동일시되는 슈만 자신의 사랑의 기쁨과 실연의 아픔, 지나간 청춘에의 회상을 그려 낸다.
시의 내용에 따라 음악적 명암이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이 이 작품의 묘미지만 그 중에도 선율에 대한 슈만의 위대한 재능을 보여주는 첫 곡은 성악과 피아노의 아름다운 대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여기서 가사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이라고 표현되는 것은 독일에서는 5월이 되어야 들꽃이 피고 새가 노래하여 봄을 맛보기 때문이며, 이런 독일의 정경에 빗대어 그냥 아름답다고 하기엔 부족한 설렘으로 다가온 사랑의 미묘한 느낌이 강조된다.
이 곡에서 특히 피아노는 단순한 반주가 아닌 인간의 목소리와 대화하며 미처 표현되지 못한 시의 진정한 의미를 채우기 위해 존재한다.
피아노의 긴 전주를 통해 목소리가 두드러지고, 간주와 긴 후주를 통해 시의 여운을 지속함으로 시와 음악은 하나가 된다.
lm wunderschonen Monat Mai,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Knospen sprangen, 모든 꽃봉오리 떨어질 때,
Daist in meinem Herzen Die Liebe aufgegangen 나의 마음속에 사랑이 피어났네.
lm wunderschonen Monat Mai, 놀랍도록 아름다운 5월에,
Als alle Vogel sangen, 모든 새들이 노래할 때,
Da hab' ich ihr gestanden 나는 그이에게 고백했네.
Mein Sehnen und Verlangen 나의 그리움과 소원을.
2) 프랑스 가곡
프랑스 노래를 가리키는 대표적 용어인 샹송은(chanson)은 오늘날 프랑스의 대중가요를 지칭하는 대명사가 되었지만, 정의하면 프랑스어에 의한 세속 노래다.
오늘날의 샹송은 영국이나 미국의 대중 노래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 보이지만 20세기 중반 까지만해도 내용의 다양함과 이야기풍의 노래가 많다는 점에서 영미의 대중음악과는 확연히 구별되었다.
샹송은 슬픈 노래와 감상적인 노래, 풍자적이며 현실적인 노래, 그리고 정치적 성향이 짙은 노래까지 소재의 풍부함과 다양함을 보여준다. 이런 성향은 중세와 르네상스에 꽃피운 다성부 샹송 전통의 연장에서 이해 할 수 있다.
15세기 후반과 16세기 유럽 전역에서 유행한 샹송은 서민적 분위기와 자유로운 형식, 단순한 리듬과 가벼운 선율을 특징으로 한다. 당시 샹송은 소박한 서민생활을 반영하여 때로는 저속하며 외설스러운 내용도 있다. 이런 샹송의 전통이 19세기 예술 가곡으로 탈바꿈하기 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샹송의 역사를 보면 11∼13세기의 단선율(單旋律) 샹송, 16세기의 다성적(多聲的) 샹송이 있었고, 11∼13세기 남프랑스에서 프로방스어로, 후자는 북프랑스에서 옛 프랑스어로 십자군과 영웅들의 이야기와 세속적 사랑 등을 그려 단선율의 가곡으로 불렀다.
음유시인들의 가곡은 14세기에 이르자 다성 음악의 기법을 도입, 아루스노바기(期)의 기욤 드 마쇼 등의 다성 샹송을 낳고, 비를레, 롱도, 발라드 등 여러 음악형식의 정형이 확립되었다.
15세기 플랑드르 출신의 기욤 뒤파유, 질 방슈와 등도 이와 같은 정형에 바탕을 두고 궁정적인 전아한(典雅 법도에 맞아 아담함) 사랑을 노래하였다.
16세기에 이르러 프랑스 샹송의 성격은 일변하여 서민적 색채를 많이 띠었다. 곧 정형이 배격되고 자유로운 형식에 비교적 단선율적이고 리드미컬하며, 약간 비속한 가사로 서민적 생활감정을 여유 있게 노래하게 되었다.
클레망 잔느캥, 클로드 세르미슈 등의 합창샹송, 특히 잔느캥의 ‘새의 노래’ ‘전쟁’ 등의 의음(擬音)효과를 사용한 표제샹송은 유명하다. 이때의 샹송은 약 25년간 파리에만 1,500곡이 출판되었다하니 보급의 폭을 짐작할 수 있다.
17세기 초 파리에는 센강에 새로 가설한 퐁뇌프 다리에서 거리의 가수가 정부의 고관이나 귀족을 풍자하는 노래를 불러 갈채를 받았다. 그들은 노래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가수였고, 따라서 퐁뇌프 다리는 샹송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와 같이 노래로 풍자하는 것을 샹소네라 하며, 그 작자 겸 가수를 샹소니에(여성의 경우는 샹소니엘)라 불렀다.
샹소니에는 부르는 노래의 작곡은 다른 사람이 해도 상관없으나 가사만은 반드시 자작이어야 하고 풍자를 담아야 하며 재치가 넘쳐야 했다. 그래서 샹송가수 중에도 샹소니에는 특별히 우대받았다. 또한 샹송을 발전시킨 온상은 음악으로 인기를 끈 찻집(카페 콩세르)이었다.
찻집은 프랑스혁명 후 파리 시민의 집합장소로 번창했는데, 1850년경 샹젤리제에 있던 ‘뚱뚱보 플루리’라는 찻집이 샹송으로 성공함으로써 카페 콩세르의 시초가 되었다.
찻집은 가수의 안정된 직장이 되고 스타의 탄생을 촉진하기도 했는데, 이 때부터 노래의 테마나 가수의 스타일도 다양해졌다.
프랑스에서 예술가곡의 전통은 독일보다 한발 늦게 시작되었다.
프랑스에서 ‘멜로디’라는 이름의 예술가곡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는 슈베르트의 작품이 불어로 번역되어 출간되면서부터였는데 베를리오즈는 자신의 가곡 작품을 출간하면서 거기에다 샹송이나 로망스(Romance 멜로디 이전에 가곡을 지칭하던 용어)라는 명칭 대신 ‘멜로디(melodie)’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이런 명칭을 쓴 것은 평이하고, 단순하게 악절을 구성하는 로망스의 특징을 벗어나 시의 분위기에 맞는 과감한 화성과 리듬의 변화, 낭송하는 듯한 선율 등 이전의 프랑스 가곡의 전통과는 차이가 있는 어법을 쓰기 때문이다.
베를리오즈의 ‘여름 밤’ 이후로 오페라 작곡가인 구노(1818~1893)와 비제도 가곡을 작곡했으며, 리스트는 현란한 그의 오케스트라 작품과는 별도로 소박하고 서정적인 프랑스 가곡 ‘꿈에 오소서서’를 남기고 있다. 또한 들리브나 생상스도 훌륭한 가곡 작품을 남겼다.
시인의 서정을 피아노 반주에 담아 표출한다는 기본적인 생각은 프랑스 가곡이나 독일 가곡도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프랑스 언어가 갖는 뉘앙스와 고전적인 우아함을 살린 프랑스 예술가곡의 전통은 중세의 다성부 샹송을 노래한 음유시인들로부터 한참을 건너 뛰어 피아노 독주곡과 실내악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였던 포레(1845~1924)에 와서 전기를 맞는다.
포레는 베를리오즈나 구노의 가곡들이 후렴 부분을 같는 유절가곡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것과는 달리 시의 감정에 따라 음악도 발전해나가는 통절가곡의 방식을 취하면서 피아노의 비중을 대폭 강화시켰다. 특히 베를렌의 시를 접하면서 포레의 가곡은 한층 세련되어졌는데, 베를린의 ‘시인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가곡집 ‘다정한 노래’, ‘달빛’, ‘꿈을 꾼 후에’ 등을 통해 프랑스 시의 뉘앙스가 갖는 우아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그려내고 있다.
포레의 정신을 이어 프랑스 가곡을 발전시킨 사람은 뒤파르크(1848~1933)와 쇼송(1855~1899), 드뷔시(1862~1918) 등이다. 이 중에도 포레가 ‘프랑스의 슈베르트’였던 것처럼 ‘프랑스의 볼프’로 불린 뒤파르크는 유난히 자기비판이 강했던 사람으로, 500편 가까운 가곡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자신의 손으로 모두 파기해 버리고 16편만 남았다. 생애 절반 이상을 정신질환에 시달렸다는 점에서도 볼프와 비슷한 길을 걸어갔던 뒤파르크의 곡으로는 ‘슬픈 노래’와 ‘여행에의 권유’가 자주 연주된다. 뒤파르크 외에도 쇼송과 드뷔시, 라벨 등은 보들레르와 고티에, 말라르메 같은 프랑스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이면서 개인적인 감정의 발산보다는 음의 색채와 시적인 암시가 출렁이는 가곡들을 남겼으며 순수하게 정화된 음의 세계를 추구하였다.
* 로맨스(romance)
프랑스, 에스파냐의 서정적인 가곡, 독일 기악(器樂)의 소곡(小曲)으로 일정한 형식은 없다.
에스파냐의 로맨스는 주로 전설적, 역사적 제재를 다룬 4행시로 그 기원은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트루바두르와 토르베르를 통하여 각지에 퍼졌고, 15세기엔 많은 로맨스를 낳았다.
프랑스의 로맨스는 18세기 이래, 사랑을 노래한 서정적 가곡으로 루소, 케루비니 등의 작품이 유명하며, 독일의 로맨스는 18세기 이후 서정적인 기악작품으로 작곡되었는데, 하이든(교향곡 제85번), 모차르트(피아노 협주곡 쾨헬 466), 베토벤(작품 40, 50), 슈만(3개의 로맨스) 등 많은 작곡가가 다루었다.
* 발라드(ballade)
춤춘다는 뜻의 라틴어 발레(ballare)에서 유래하여, 자유스러운 형식의 소서사시, 또는 담시(譚詩), 민요, 가요로 번역되기도 한다.
교회나 궁정 중심의 문학에 대하여 민중 속에서 생긴 영웅전설, 연애비화(戀愛悲話) 등의 담시로 세대에서 세대로 전승된 것이다. 12세기 프랑스 남부지방에서 음유시인이 생겨, 이것은 얼마 뒤 영국으로 번졌고 15~16세기엔 크게 유행했다. 처음엔 춤에 맞추어 노래하던 것으로, 시 형식은 보통 3절로 이루어졌는데, 각 절은 7∼8행이며, 그 중 끝 1∼2행은 되풀이 된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14세기경엔 단순히 정형(定型)의 소서사시라는 뜻으로 굳어졌다.
이탈리아에는 단테와 페트라르카, 프랑스에서는 비용, 마로 등이 이 형식으로 작품을 썼으며, 영국에는 역사 및 전설을 소재로 많은 작품이 만들어졌고, 독일에는 헤르더에 의해 소개되었다.
18세기 말의 낭만파 문학시대엔 각국의 작가들이 민요에 흥미를 갖게 되어 독일에서는 괴테, 하이네 등이, 프랑스에서는 위고 등이, 영국에서는 스콧 등이 많은 발라드를 썼다.
음악에서는 담시곡, 이야기곡 등으로 번역되는 통속적 가곡을 뜻한다.
원래는 무도가(舞蹈歌)였는데, 14세기에 들어와 무도가의 성격이 거의 없어져 무도에서 독립하여 주로 역사적, 전설적, 종교적 소재가 담긴 가벼운 독창곡이 되었다.
16세기엔 주로 이야기 식의 성악곡으로 발전하여 영국의 헨리 8세로부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많은 발라드가 작곡되었다.
19세기엔 보통 3부 형식으로 이루어진 피아노 소품(小品)을 발레데 또는 발라드라 하였는데, 쇼팽의 ‘발라드’ 4곡과 브람스, 포레 등의 발라드가 유명하다.
오늘날엔 포퓰러송 가운데서 센티멘탈한 러브송 종류를 발라드라 하고, 재즈 연주에서는 포퓰러송 등의 원곡(原曲) 멜로디를 살리면서 애드 리브(즉흥연주)하는 것을 발라드 연주라 한다.
3) 이탈리아 가곡
이탈리아는 오페라의 나라로 예술가곡의 역사에는 이렇다 할 작품이 없으나,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답게 이탈리아 음악에서 가곡의 전통은 뿌리 깊다 할 수 있는데, 그 대표적 음악이 16세기 유럽 전역에 유행했던 중창곡 마드리갈(madrigal)이다.
사실상 예술가곡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르네상스 마드리갈에 이르게 되는 것은 마드리갈이 시에 담긴 내용을 음악적으로 일치시키려 했던 장르기 때문이다.
서민적이고 활달한 파리 샹송보다 한 세대 후에 전 유럽적으로 인기를 끌었던 마드리갈은 시와 음악 두 가지 형식 모두를 지칭하는 용어다.
음악적으로 중요한 것은 16세기의 것으로, 페트라르카의 서정적 소네트나 칸초네 등 이탈리아어로 된 시에다가 세련된 대위법적 기법을 접목시켜 만들어낸 세속 노래다.
르네상스 시대에 수천 권의 마드리갈집(集)이 출판된 것만 보아도 이 시대에 마드리갈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교양 있는 귀족들은 시와 문학을 논하는 과정에서 가사의 내용과 발음, 억양 등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고픈 욕구에서 가사 표현에 부합하는 음악적 장치들을 과감하게 도입하였다.
노래의 선율이나 화음을 중시하기보다 시의 세부적 표현을 위한 반음계나 복잡한 리듬, 분위기 전환을 위한 짜임새의 변화 등 가사 그리기(音畵, text painting, tone painting)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다. 즉 가사가 ‘죽음’이나 ‘절망’이라면 온음계보다 반음계를 사용하고, ‘하늘로 올라간다’거나 ‘추락한다’는 가사가 나오면 음의 순서로 올리거나 내리며, ‘도망가다’라는 단어가 나오면 음은 갑자기 빠른 리듬으로 전환되는 등 가사와 음악의 정교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작곡가들은 보다 생생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화가가 사물을 눈앞에 있는 그대로 묘사하듯 음악적으로 그림을 그렸다.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이러한 마드리갈 양식은 결국 극적인 표출을 지향하는 오페라 발전의 초석이 되었지만 시와 음악과의 결합이라는 낭만주의 성악 예술의 이상을 몇 세기 앞서 보여주는 좋은 예다.
마드리갈은 3성부에서 많게는 6성부와 8성부까지 확대되며, 한 성부에 한두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중창곡의 형태를 띤다. 또한 전문 음악인들이 아닌 음악을 즐겼던 귀족들이 만든 아마추어 음악이 특징이다. 마드리갈의 대표적 작곡가로 마렌치오(1553~1599), 제수알도(1560~1613), 몬테베르디 등이 있으며, 이들의 이탈리아 마드리갈은 다른 나라에도 영향을 주어 특히, 영국에서 16세기 말과 17세기 초반에 인기를 끌었다.
영국 사람들은 이탈리아의 모델을 따랐지만 선율과 화성이 좀 더 단순하며 표현도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것이 특징이다. 엘리자베스 1세와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절, 음악이 문학만큼이나 사랑 받던 당시 영국 마드리갈의 대표적 작곡가로 몰리(1557~1602)와 윌크스(1575~1623) 등이 있다.
요즘 음악회에서 자주 불려지는 이탈리아 노래 중에 바로크 시대의 스카를라티(1660~1725)나 로티(1666~1740), 마르티니(1741~1816)의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나폴리 지방에서 나폴리 방언으로 부르는 나폴레타나가 중요한 레퍼토리를 차지한다. 이 나폴레타나는 이탈리아의 민요이면서 대중가요의 성격을 지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탈리아 가곡으로 알려져 있다.
제목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오 나의 태양’, ‘푸니쿨리 푸니쿨라’ 등이 대표적인 이탈리아 가곡들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민요와 다르게 이 나폴리 민요는 작자미상의 곡보다는 작곡된 것이 대부분이며, 어느 정도 민요의 단순함을 극복한 예술적 노래에 가깝다는 점과 ‘벨칸토’창법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가곡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오페라 작곡가인 로시니나 벨리니도 가곡 분야에서 아름다운 선율을 많이 남기고 있지만, 이탈리아 가곡을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작곡가가 토스티(1846~1916)다.
토스티는 나폴리의 왕립음악원에서 배우고 런던으로 건너가서 그곳의 궁정 성악 교수가 되면서 ‘세레나데’, ‘꿈’, ‘마레키아레’ 등 이탈리아어와 영어, 프랑스어로 된 서정적인 가곡을 많이 남겼다. 이러한 토스티류의 서정적 가곡을 가리켜 칸초네(canzone)라 부르기도 한다.
칸초네라는 말 자체는 ‘노래’라는 뜻으로, 오늘날엔 이탈리아의 대중가요를 지칭하는 용어지만, 세계적으로 애창되는 나폴레타나를 포함하는 광범위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금지된 노래’, ‘불 밝던 창에 어둠 가득하고’, ‘마티나타’ 등 주옥같은 선율이 이러한 칸초네에 속하는 노래들이다. 그러므로 이탈리아 가곡은 민요와 가요적 특성, 예술적 요소들이 혼재되어 이탈리아인들 특유의 낙천성과 선율적인 아름다움을 강조함으로, 피아노의 역할을 강조하고 화성적 변화를 통해 가사의 의미를 음미하는 독일 가곡과는 상당부분 대조된다.
그러나 레스피기(1879~1936)와 피체티(1880~1968)의 근대가곡들은 예술가곡의 지위에 합당한 작품들로 피아노가 시적인 언어를 대신하고 있다.
* 칸초네(canzone)
이탈리아의 포퓰러 송으로 '노래' 또는 '가요'를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순클래식 곡은 제외하고 널리 대중이 애창하는 노래다.
전통적 칸초네의 특징은 멜로디가 밝고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으며 내용도 단순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사랑 노래가 많다.
곡의 구성도 거의 2마디· 4마디· 8마디식의 배(倍)로 멜로디가 진행된다. 그리고 곡의 처음엔 스트로파라는 이야기부분이 있고, 리토르넬로라는 되풀이하는 부분이 있어 곡을 북돋아간다. 칸초네는 예로부터 각지에 전해 내려온 향토색 짙은 민요나 일류 작곡가에 의한 격조 높은 가곡, 또 재즈의 영향을 받은 로크조(Rock 調)의 곡 등 많은 종류가 있다. 그 중에도 나폴리민요로 알려진 나폴리의 칸초네(칸초네 나폴레타나)는 독자적 장르를 형성하였다.
변천이 심한 나폴리의 역사와 항구에서 이뤄지는 동서 문화의 교류를 반영하여 나폴레타나는 동양적 곡조와 애수를 띤 것이 많고, 가사도 이탈리아어가 아닌 나폴리어로 되어 있다. 또한 18세기에 생겨난 밸칸토 창법(Belcanto 이탈리아인들의 감정은 밝고 정열적이어서 창법 또한 맑고 밝은 음색 쪽으로 발전하여, 17~18세기 바로크 시대에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벨칸토 창법은 ‘아름다운 목소리’란 뜻으로 비강 공명을 최대한 이용하여 감미롭고 아름다운 음색을 낸다)이 큰 영향을 끼쳤다.
나폴레타나를 육성한 것은 유명한 피에디그로타의 노래축제로 이 지방의 어부들이 제례(祭禮) 때에 노래를 바친 것이 시초인데, 18세기 초에 나폴리 왕에 의해 나폴리시의 음악제가 되어 ‘오 솔레 미오’, ‘돌아오라 소렌토로’ 등의 많은 명곡이 나왔다.
이 행사는 한 때 중단되었다가 1953년부터 나폴리 칸초네 페스티발(나폴리 가요제)로 부활되었다.
베네치아와 로마 등지도 칸초네가 발달하고 트렌토 등 알프스산록의 북부 도시엔 알피니스트들의 코러스가 울려 퍼진다. 로마의 칸초네는 명쾌한 곡조로 널리 애창되었으나 오늘날엔 북서부의 산레모가 그 중심지로 바뀌었다.
1951년 시작된 산레모 가요제는 1958년에 최우수 곡으로 뽑힌 ‘볼라레’가 세계적으로 히트함으로 국제적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로크나 라틴리듬을 도입한 곡들도 내보내고 있다.
* 쿠르티스 ‘너는 왜 울지 않고’
칸초네를 들으면 나폴리의 파란 하늘과 쪽빛 바다,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이 떠오른다. 거기에서는 단순하지만 뜨거운 감정이 넘쳐난다. 칸초네는 인생의 기쁨과 슬픔의 문제를 애써 고상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직접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칸초네가 낭만주의 독일과 프랑스의 가곡에 비해 구성이나 피아노 서법에 있어 뒤떨어진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로 추구하는 이상이 다른 칸초네와 예술가곡을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칸초네에는 그 어느 나라의 노래도 대체할 수 없는 정감 어린 가사와 그윽한 선율의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작곡가로 유명한 쿠르티스(Ernesto De Curtis, 1875~1937)의 ‘너는 왜 울지 않고’(Tu ca nun chiagne)는 전형적인 이탈리아 칸초네의 감동을 그대로 전해준다. 사랑에 빠진 남자의 이 같은 절규를 듣고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여성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소리없는 저 별 오늘밤 유난히 그 은은한 자태 아름답구나!
만물이 잠든 고요한 이 밤, 나 홀로 깨어 너를 사모하네,
넌 왜 나를 위해 울지 않고, 나 홀로 울고 있는 걸까
내 눈에, 내 눈에 그리운 네 얼굴 다시 한 번만 보여다오!
4) 기타 여러 나라의 가곡
예술가곡의 역사를 나누어 갖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제외하고 가곡의 문헌을 풍부하게 한 나라로 러시아를 꼽을 수 있다. 러시아 가곡 중에도 가장 독창적 작품은 주로 무소르그스키에 의해 만들어졌다.
무소르그스키는 러시아 농민의 피폐한 생활과 러시아 민중의 정서를 있는 그대로 토로하듯 낭송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 가장 독창적인 러시아 가곡 작곡가가 되었다.
가곡집 ‘어린이의 방’, ‘햇빛도 없이’, ‘죽음의 노래와 춤’은 그의 걸작 가곡이다.
무소르그스키와는 대조적으로 차이코프스키는 선율의 아름다움과 애상적인 감상을 강조하는 130여 편의 가곡을 썼는데,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곡 중에 괴테의 시에 붙인 유명한 ‘다만 그리움을 아는 자만이’ 같은 노래들이 있다. 그에 이어지는 러시아의 가곡 전통은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같은 정감 넘치는 선율을 거쳐 쇼스타코비치로 계승되고 있다.
독일 가곡의 연장선에 있지만 고국의 언어로 작곡한 가곡 가운데 드보르자크의 작품도 값진 가곡 유산 중의 하나다. 그의 가곡집 중에 슬라브의 서정시인 헤이둑(1835~1923)의 민속적인 시에 붙인 ‘집시의 노래’는 드보르자크의 가곡 창작의 정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집시들의 풍부한 정서와 자유를 사랑하는 정신이 고스란히 녹아있으며, 일곱 개의 곡마다 개성 넘치는 선율들로 가득하다.
음악 역사에서 비주류 나라인 노르웨이와 핀란드, 스페인 등에도 리트의 영향을 받은 예술가곡이 많이 만들어졌는데, 그리그는 가곡을 130편 이상 쓸 정도로 가곡에 애착을 보였으며, 시벨리우스 역시 대규모 작품을 쓰는 사이사이에 좋은 가곡을 남겼다. 또한 민요풍 가곡들이 스페인의 그라나도스와 파야의 손에서 탄생했고 미국의 재즈를 가곡과 접목시킨 거쉰의 노래들과 아이브스(1874~1954)의 가곡들이 근래에 와서 재평가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다른 언어의 뉘앙스가 있고 발음 구조가 판이한 가사의 정감에 대한 음악적 대응물은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노래는 예로부터 인간의 감정에 가장 직접적으로 호소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되며 종교적 이유에서건 도덕적 이유에서건 인간의 목소리를 매개로 한 성악음악은 서양음악 역사에서 가장 영적인 표현매체로 최상의 수준을 부여받아왔다. 그러므로 미묘하고 섬세한 시와 피아노의 이중주인 예술가곡을 음미하고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가사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하고 들을 필요가 있으며, 비록 여러 나라의 언어를 모두 섭렵할 수 없다고 해도 그 언어가 갖는 뉘앙스와 발음과 억양 체계에서 비롯되는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번역된 가사보다는 원래의 언어로 된 성악곡을 감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 빌라-로보스 ‘브라질풍의 바흐’ 제5번
브라질 출신의 현대 작곡가 빌라-로보스(1887~1959)는 고향인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나 파리에서 활동하며 뒤카, 드뷔시, 댕디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바그너와 푸치니, 그리고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좋아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존경했던 작곡가는 바흐였다.
그는 바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프라질풍의 바흐’라는 제목의 모음곡을 9곡 작곡했다. 이 음악은 외적으로는 바흐 음악의 형식과 구성을 모방하며, 내용적으로는 브라질 음악의 다양한 측면을 추구하였다.
9개의 모음곡 중에 가장 유명한 곡은 바로 제 5번 ‘아리아 칸틸레나’다. 이것은 8개의 첼로와 한명의 소프라노를 위한 곡인데, 첼로들이 부드러운 피치카토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반주하는 가운데 고음역의 리릭 소프라노가 야상곡풍의 선율(악보)을 노래한다.
노래는 대부분 가사 없이 모음만으로 부르지만 그 어떤 가사보다 애절하면서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표현해낸다. 이 곡의 특이한 점은 박자가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5/4박자로 시작하지만 3/4, 6/4, 4/4, 5/4, 4/4, 6/4 박자로 변하며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