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가 추적추적내린다.가을이라고 하기엔 좀 이른감이 있지만 여름이 저만치 물러간듯하니 가을비 라고 해도 될듯하다.
한창 잘자라고 있는 배추가 물러지고 병충해를 입을까 걱정이다.
올해도 약을 치지 않고 버텨보려고 하는데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리면 버텨내지못해 뒤늦게 피해를 보고나서야 약을 치는 불상사가 생기는건 아닐지? 약을 사다 칠까 ? 며칠더 지켜볼까? 읍내 외출이 귀찬으니 걱정만 하고있다.
비가오니 머나먼 옛기억들의 상념에 빠져든다 .
지난주에 누군가의 어린시절 얘기를 읽는데 나의 어린시절 들이 휙휙 겹치면서 나도 그랬는데 그래그래 나도나도 그랬었다.
꼬맹이시절 비오는날 학교가는 길은 빗물이 내를 이뤄 미꾸라지가 길에나와 푸더덩거렸고, 깜장고무신은 물이차 삑삑소리를냈다.
동네아이들은 너나할것없이 책보따리를 허리에질끈 동여매거나 어깨에 걸치거나 해서 비료비닐포대를 하나씩 덮어쓰고 양손은 바람에 벗겨지지않게 부여잡고 빗길을내달렸다 .
학교가는길은 항상 몇명이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출발하곤했다.
우리 마을을 지나서 한참을 가면 또다른 마을 하나를 지나고 그담엔 고개를 하나 넘어가야 하는데 고개마루에는 키큰 장승이 양쪽에 세워져 있었다.
그때는 장승이 무섭게보여 그앞을 지나갈때는 무서워서 뒤쳐질세라 바삐 뜀박질을했다.
고개 마루를넘어 가노라면 길에서 저만치 좀떨어진 외진곳에 상여집이 보이는데 상여집근처를 지나칠때도 한번더 뜀박질을 했다. 상여집 근처에서는 날벌레도 도깨비로 보이곤했으니까.. 밤에는 도깨비불이 날아 다니다가 아이들을 보면 놀자고 따라온다고도하고 상여집분위기도 괴기스럽게 느껴져서 이기도 했다.
학교근처쯤 가서는 개울을 건너야 했는데 징금다리가 있긴하지만 위태로워 작은 아이들은 바지를 걷어올리고 물속으로 들어가서 건너갔다 . 비가 더마니오면 개울물이 불어 학교를 쉬어야 하기도 했다.
내가 학교에 입학 하기전 우리집은 마을에서 좀떨어진 외딴곳 작은집에 잠시 살았었다. 논이 그곳에 있으니 오가는 시간을 줄이고자 부모님이 그곳에 오두막을 지으셨나보다.
비가 마니오는 여름 장마철이었나보다. 방에 빗물이 떨어져 그릇을 갖다놓고 받아냈는데 물받이그릇이 하나둘 늘어나고 아버지는 도롱이를 걸치고 지붕으로 오르내리시고, 똑 똑 떨어지던 물방울이 어느순간 줄줄 떨어지는데 나는 물받이 그릇을 비워내러 오가며 재미있어 했는데 부모님은 그여름을 끝으로 마을로 다시 이사를 하였는지 학교 입학을 할때는 마을에서 다녔다.
내가 입학할때는 마을로 내려왔지만, 언니는 그어린 나이에 나무꾼 한명 마주치지 않는 산길을 혼자걸어 학교를 오갔을 생각을 하니 지금은 상상도못할 아찔함이다.
학교 교실은 읍내아이들과 산골아이들 분단이 자연스레 나눠졌다 .
읍내아이들은 이미 알고지내던 사이들이 많았지만 산골아이들은 각 골골에 흩어져 사는까닭에 익숙한 얼굴들은 한두명 정도뿐이어서 텃세를 부리는 읍내 아이들에게 기가 꺽여 있고 어수룩 하기도 했다.
까맣게 탄데다가 남루한옷차림이라 읍내 아이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수업을 마치고나면 청소를하는데 읍내아이들이 빗자루와 걸레를 먼저가져가 그쪽분단 청소를 마칠때까지 아무도 이의 달지못하고 마냥 기다렸다가 그쪽분단 청소가 끝나고난 뒤에 빗자루와 걸레를 넘겨받아 청소를 했다 .
어느날은 내가빗자루를 먼저확보해 우리산골분단 청소를 시작했다. 읍내아이중 한여자애가 빗자루를 뺏으려 하고 나는 안뺏기려 하며 싸움이붙었다 . 아이때는 울지않으면 싸움에서 이기는거였는데 나는 절대 울지를 않고 기를 쓰고 싸웠다. 어릴때부터 주관이 뚜렷했는지 누구한테든 아니다싶을땐 바락바락 대들더란다.우리 손자가 화를 낼때는 어린이집 선생님 이 쩔쩔 맨다는 얘기를 듣고 웃음이 난적있다. 결국 상대아이가 울음을터뜨렸다.
선생님이 와서 자초지종을 물으니 읍내아이는 큰소리로 울며 내가 때렸다고 일러바치고 나는 말주변이없어 얼굴만 불그락 푸르락했다.산골아이들 특성이 낯선사람을 보면 도망가거나 숨는데 나도말주변만 없는 정도가 아니고 길에서 선생님을 마주치면 담모퉁이로 숨었다가 지나가고 난뒤에야 가던길을 가는 아이였으니 오죽했으랴...
너무나 이쁜 처녀 선생님 이었는데 난생 처음으로 ``커다란 꿀밤 나무아래서,,라는 노래와 율동을 가르쳐 주셔서 내게는 신세계를 맛보여주신 선생님이였다.
선생님은 안봐도 짐작하겠는지 시끄럽다며 읍내아이를 혼을 내주어 내 분이 좀풀렸다.
선생님은 열정적이었는지 반장을 다섯명을 뽑아 한달씩 반장 역활을 하라며 지명을했는데 그중에 나도 포함 되어 있었다.
읍내아이들 쪽에서 업신여기던 산골아이가 뽑히니 반감의 소리들을 질러댔고 선생님은 시끄럽다며 가장 시끄러웠던 나랑 한판 붙기도했던 여자아이를 산골분단으로 보내고 나를 읍내분단으로 옮겨앉게했다.
산골분단으로 옮겨진 그아이는 울면서 집으로 가버렸다.
지금세상은 그아이부모님이 따지러 쫓아오고 우리부모님이 고맙다며 인사를갔어야 했겠지만 그시절엔 선생님의 권한이 막강하던 시대였기 때문에 나도 집에가서 학교의 일들을 꼬치꼬치 얘기하지 않는 말이없는 아이였지만 그아이도 말을 못했겠지..
농사일로 항상 바쁘고 지쳐있는 우리 부모님은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줄 여유가 없었고 쬐끄맣고 빼빼한 단발머리 계집아이는 혼자서 잘노는 아이였다. 지금도 혼자 있는 날이 많다.
선생님이 왜 나를 뽑았는지, 왜 읍내분단 아이들속으로 나를 옮겼는지 ,그때는 알수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말없고 울지않는 산골아이에게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을까~~
3학년을마치고 대구로 이사를 왔고 대구에와서는 남자애랑 짝이 되었는데 책상위를 반으로 줄을그어 그쪽으로 책이나 공책이 넘어가면 찢거나 칼로잘라 싸움이 붙곤했다 .
남자애는 주먹힘이세서 맞으면 아팠지만 나는 끝까지 울지않고 맞서 싸웠다.
나중에 생활기록부를 보니 `고집이세다, 라고 적혀있었다 .
싸워야 할일이 생기면 싸워서 권리를 찾이야하고 스스로를 지킬줄 알아야 한다는게 나의지론이다. 하지만 어른의 세상은 법이 해결해 주는 세상이다.
올여름에도 더위와 모기와 풀과의 싸움을엄청 했는데 지나고보니 비와도 엄청 싸웠다.
작년엔 가뭄과 싸웠는데 올해는 비가와도 질리게 마니와서 물길 내느라 많이싸웠다.
해마다 반복되는 날씨가 스산해지고 낙엽이 우수수떨어지면 허무감이밀려오고 외로움이 심연 밑바닥에서 치고 올라온다
.그옛날 의 이쁜선생님 처럼 내맘을 알아주고 이끌어 주는 이가 있으면 좋겠다.
비가 줄기차게 내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배추가 걱정이 된다.
비가 그치자마자 읍내 나가 해충약을 사고 늦었지만 모종도 새로 사다 심어야 겠다.
올해 김장은 속이 덜찬 배추로 담가야 할거같다 .
김치를 대신할 먹거리로 시금치와 월동 춘재씨를 넉넉하게 뿌려야겠다
말라깽이 소녀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