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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밀(周密)한 수넴 여인은 주님의 신부감
열왕기하 4장 1절-30절 2022년 11월 27일 주일 오후 말씀지
엘리야의 사역은 우상 섬기는 자들을 제거하고 왕을 바로 세우기 위한 것이요 엘리사의 사역은 선지 생도들을 양육하여 선지자로 세우는 사역이였습니다. 엘리야는 악한 아합 왕에게 쫓겨 다녔지만 엘리사는 여호람 왕에게 호령하며 지도합니다. 똑같은 목사이나 사명이 다릅니다. 어떤 이는 예배당 건물이나 세우러 다니고 어떤 분은 교단의 종이 되고 어떤 분은 한 생명을 살려 자라게 하는 일에 자신의 일생을 다 바쳐드리는 사도 바울 같은 분이 있습니다. (고전3:6) 또한 요한처럼 100세 가까이 살면서 더욱 그 사랑을 나타내게 하신 분이 있고 야고보처럼 일찍 목 베임을 당하는 사도도 있는 것입니다. 행12:1,2-
결혼도 하지 않고 일생을 다 드린 사도 바울같은 분도 있고 베드로처럼 아내 된 자매를 데리고 다니는 분도 있는 것입니다. (고전9:5) 오늘은 엘리사를 통하여 사역케 하실 때 먼저는 생도의 아내의 가정에 기름을 공급케 하시는 역사와 주밀하게 살펴 생명역사에 협력한 주님의 신부감 수넴 여인을 나타내주시는데 구경만 하지 말고 내게 주신 것으로 앞선 자를 협력하면 하늘의 상이 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도 얻게 하시고 그 어린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다시 살리시는 생명의 역사를 보게 하시는 것은 구경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들어서도 아들들을 살리는 생명역사를 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절 선지자의 생도의 아내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가로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선지자로 양육 받다가 죽은 것은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갔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신학한다고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하다가 죽는 자도 있습니다. 또한 장로 권사 임직은 받았으나 일도 하지 못하고 죽은 자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기한 전에 데려가신 것이니 너무 악했거나 너무 의(義)를 자랑했기 때문이라고 솔로몬을 통하여 답을 주셨고 (전7:17) 이사야 선지로도 의인도 화액 전에 데려가신 것이라 하셨습니다. 사57:1-
이제 채주가 이르러 나의 두 아이를 취하여 그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남편은 집을 떠나 선지 동산에 가서 훈련 중이요 아내는 아들 둘을 양육해야겠기에 빚을 진 것입니다. 큰 교단 신학교마다 고등학교 졸업장과 많은 등록금을 내야 하니 빚내어 신학하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천지에서는 무료 신학연구원을 차려놓고 미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렵게 목사가 되었지만 제대로 목사 노릇을 하지 못하는 자들도 많은데 그러면 그의 가정에 아내와 자식은 심히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돈을 앞세우는 큰 교단들은 신학생을 교단의 종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아무나 원하면 제사장을 삼은 나라입니다. 대하13:9-
2절 엘리사가 저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저가 가로되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나이다 하나님은 구원이시다 라는 뜻인 엘리사의 사역입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고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에 들이셨는데 어떻게 열매맺게 하시는 구원을 나타내주시는 것입니다. 기름은 성령의 역사인데 이제 남편 죽고 어려운 살림에 신령한 기쁨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미 엘리야 때에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역사를 엘리사를 통하여 또 이루시는 것입니다. 왕상17:16-
3절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그릇에 기름을 담아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웃에게 가서 있는 대로 빈 그릇을 빌려오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웃들이 이가정 형편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상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빈 그릇이니 그 어느 것도 담기면 안 됩니다. 가난한 심령에 성령의 역사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수 없게 하시고 역사해주시는 것입니다. 마태로는 8복을 말씀하실 때 두 번째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인데 누가로는 4복을 말씀하시면서 두 번째가 주린 자는 복이 있다 하셨습니다. 영적 양식을 구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눅6:21-
4절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이제 종으로 팔려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빈 그릇같은 자기들의 심령을 보게 하시고 그동안 받은 말씀이 믿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기름이 차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게 채워주시는 것으로 영적 삶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 기둥에 박을 새기게 하신 뜻입니다. 왕상6:18-
애굽에 식물은 수박으로 안에 것을 먹고 껍데기는 버립니다. (민11:5) 자기가 배운 것을 설교하였지만 생명역사는 없었다는 것이요 박은 안에 것을 파내어 버리고 빈 그릇으로 삼아 양식을 담아 값없이 나누어 주는 자가 됨으로 살리시는 역사가 있게 하십니다.
5절 여인이 물러가서 그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저희는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 오고 그는 부었더니 기름을 붓는 역사는 요한복음에 오병이어의 역사와 같습니다. 문을 닫은 것은 집안에 들어온 자들만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릇에 기름을 부은 것은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요 저들에게 영적 기쁨이 생기게 하신 것입니다.
6절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들이 가로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자기들의 믿음의 분량대로 채우셨다는 것입니다. 사모하는 만큼 구하는 만큼 주시는 성령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55:1-3
7절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고한대 저가 가로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빚을 갚는 것은 지난날의 생활을 청산하라는 것이요 기름을 팔아 생활하는 것은 열매맺는 생활하라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사역은 가나안에 열매맺는 생활입니다.
8절 하루는 하루는 생명 역사케 하시려 주신 하루입니다. 욥2:1-
오늘도 주신 이 하루가 참으로 귀중합니다. 하루가 모여 한 주일이 되고 더 모이면 한 달이 나아가서는 한 해가 되고 일생이 됩니다.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 한 귀한 여인이 저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한고로 엘리사가 그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수넴은 ‘동생의 땅’이라는 뜻으로 다윗 왕 70세 때에 신하들이 아비삭(아버지는 표류함)을 옆에 두었는데 수넴 처녀입니다. (왕상1:3) 한 귀한 여인은 엘리사를 통하여 살림 받은 여인으로 주시는 양식을 사모하여 신부의 믿음으로 자라난 자라는 것입니다. 간권하여 자기 집으로 모신 것은 사도바울을 통하여 살림 받은 루디아(생산)처럼 강권하여 자기 집을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기를 바란 것입니다. 행16:15-
9절 여인이 그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에게로 지나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수넴 여인은 오른 손을 먼저 내미는 자로 남편에게 허락을 받고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 때에 아비가일은 술취한 남편 몰래 음식을 준비하여 다윗에게 감으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한 것입니다. 마6:3-
10절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생명 역사에 쓰시는 분은 하나님의 일군이니 저를 대접하는 것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잇는 것입니다. 히13:2-
아직도 자기 집은 가장 좋은 것으로 꾸미고 하나님의 일에는 인색한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주신 것으로 날마다 호화롭게 사는 자들과 땅에 쌓아 놓고 기뻐하는 자들의 그 영혼을 불러 가신다는 것인데 그러면 쌓아 놓은 것이 누구 것이 되느냐? 는 것입니다. 눅12:20-
11절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서 누웠더니 생명 사역은 하루 하루 언제나 피곤합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이곳 저곳 기다리는 심령들을 생각하여 부지런히 다닌 것입니다. 예수님도 곤하여 우물 곁에 주저 앉으신 때도 있었습니다. 요4:6-
사도 바울은 생명역사로 온갖 위험은 물론이요 편안하게 자지 못함도 많았으니 얼마나 피곤했을까요? 고후11:27-
12절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곧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생명 사역자들에게는 가까이에서 협력할 자들을 붙이십니다. 베드로에게는 아내였고 바울에게는 누가였습니다. 수넴 여인은 주님의 신부감으로 단장된 자입니다. 엘리사를 통해 훈련 받는 사환 게하시의 이름의 뜻은 ‘계시의 골짜기’ 입니다.
13절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저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생각이 주밀하도다 대접을 극진히 하는 여인에게 무엇인가? 보답하려는 것입니다. 생명사역한다고 늘 받기만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실은 신부감인 수넴 여인에게 가장 기쁘게 하시는 역사입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왕에게나 군대장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여인이 가로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야는 늘 아합왕과 이세벨을 피하여 그 생명을 위하여 도망하였습니다. 왕상19:3-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와 달리 왕에게도 가까이 나아가는데 왕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겨 귀히 여깁니다. 그래서 여인을 위해서 무엇이나 구하면 왕도 군대장관도 들어주려 합니다. 그러나 여인은 그 무엇도 구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것으로는 자족하고 있는 것입니다. (딤전6:6) 때가 되면 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실 것을 알기에 자기 입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여인입니다.
14절 엘리사가 가로되 그러면 저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꼬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아들이 없는 것은 남편이 늙었기 때문인데 사실은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것입니다. 누구나 젊어서 아들을 낳으니 다 자기가 잘해서 낳은 줄 아는데 이제 늙어서 낳아야 하나님이 주신 아들로 받게 됩니다. 오늘도 나는 연약하고 힘이 없나이다 하는 자들이 늙은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께서 화평을 주러 온 줄로만 하는 자가 많습니다. 아비, 어미, 시어미와 아들, 딸, 며느리와 불화케 하시는 것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자들이 적은 것입니다. 유다와 북이스라엘이 다르듯 복음주의와 인본주의가 같지 않음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마10:35-
15절 가로되 다시 부르라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여인에게 가장 기뻐하는 아들을 주시기로 정하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인 것입니다.
16절 엘리사가 가로되 돐이 되면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10개월 후 아들을 낳아 품에 안을 것이라는 것인데 이것이 생명역사입니다. 아브라함 때에도 이삭을 주실 때 미리 알게 하시고 주신 것입니다. 창18:10-
여인이 가로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육신의 아들이나 낳아서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저 하는 욕심으로 살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무엘 때에 한나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낳아서 하나님의 아들로 기르고 싶은 것입니다. 삼상1:11-
17절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돐이 돌아오매 엘리사의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하나님의 말씀은 기어코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18절 그 아이가 저으기 자라매 하루는 곡식 베는 자에게 나가서 그 아비에게 이르렀더니 한창 이쁠 때는 서너살이요 칠팔세가 되면 아버지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곡식 베는 자는 열매를 거두는 자요 아비는 그 열매를 거두워 창고에 쌓으려는 것입니다.
19절 그 아비에게 이르되 내 머리야 내 머리야 하는지라 그 아비가 사환에게 명하여 그 어미에게로 데려가라 하매 하나님의 아들로 보내셨지만 아직 어려서 열매맺는 세계는 모릅니다. 머리가 아픈 것은 한 알의 밀알이 뿌려져 싹이 나고 자라나 열매를 맺고 더위와 폭우를 견뎌 곡식이 되고 가을에 추수하여 실과가 되는 과정을 아비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20절 곧 어미에게로 데려갔더니 낮까지 어미의 무릎에 앉았다가 죽은지라 어미는 낳기는 낳았지만 영적으로 건강하게 길러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어미는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무릎을 꿇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자녀들은 낳았지만 커가는 과정을 보며 게임이나 마약, 도박에 빠지는 자식으로 인하여 낙담하는 부모가 많은 것은 그 자녀를 위하여 울면서 기도하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한 탓입니다. 눅23:28-
21절 그 어미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서 엘리사를 통하여 이루시는 생명역사를 밝히 보는 여인입니다. 요11:25-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를 모셔오기 위해서 죽은 아들을 다시 살리실 줄 믿고 침상 위에 둔것입니다. 이 믿음이 신부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자기 자녀가 죽은 생활을 하는데도 내버려두는 부모들이 참으로 많은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내 아들로 길렀다가 하나님의 아들로 길러갑니다. 롬4:17-
22절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컨대 한 사환과 한 나귀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죽은 아들로 인하여 지금 다급해진 것입니다.
23절 그 남편이 가로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어늘 그대가 오늘날 어찌하여 저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뇨 여인이 가로되 평안이니이다 하나님의 사람에게 아무 때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만류하나 가겠다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직 아내의 믿음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생명의 부활은 보지 못하고 육신 죽은 것만 보는 마르다 같은 것입니다. 요11:24-
생명부활을 믿은 수넴 여인 속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24절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아 앞으로 나아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의 달려가기를 천천하게 하지 말라 하고 아들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앞서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25절 드디어 갈멜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멀리서 저를 보고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저기 수넴 여인이 있도다 열매맺는 과수원에 늘 머무른 엘리사입니다.
26절 너는 달려가서 저를 맞아 이르기를 너는 평안하냐 네 남편이 평안하냐 아이가 평안하냐 하라 하였더니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급하게 오는 것을 보니 무슨 염려가 있는가? 평안한가 물으라는 것입니다. 여인이 평안한 것은 아들이 죽었지만 살리실 줄 믿기에 평안한 것입니다.
27절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산은 성경의 산입니다. 예수님의 발에 앉은 마리아같은 중심으로 생명살리러 다니는 그 발을 안은 것입니다. 눅7:38-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엘리사를 통하여 이루실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28절 여인이 가로되 내가 내 주께 아들을 구하더이까 나를 속이지 말라고 내가 말하지 아니하더이까 이미 자신은 가나안 땅에서 늘 감사하며 열매맺으며 살고 있는데 나에게 아들을 주신다 하셨을 때 육신의 아들을 원치 않는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들이 자라면서 감사인 열매가 없이 그저 육신에 기뻐하는 것만 할 때에 이런 아들을 원한게 아닌데 하면서 마음이 아팠다는 것입니다.
29절 엘리사가 게하시에게 이르되 네 허리를 묶고 내 지팡이를 손에 들고 가라 사람을 만나거든 인사하지 말며 사람이 네게 인사할지라도 대답하지 말고 내 지팡이를 그 아이 얼굴에 놓으라 이제 한 생명이 어떻게 살아나는가? 보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엘리사의 지팡이는 마른 막대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누가 드느냐? 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인사하지 말고 가라는 것은 사람들에게 너를 나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로보암 때에도 하나님의 사람이 인사와 대접을 받지 말라고 하셨건만 벧엘에 늙은 종의 말을 듣고 그의 집에 들어갔다가 사자에게 먹히게 됩니다. 왕상13:24-
오늘도 목사가 되어 인사와 대접받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이미 그생명역사는 끝난 것입니다.
30절 아이의 어미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리이다 엘리사가 이에 일어나 여인을 좇아가니라 게하시가 갔지만 엘리사가 함께 가기를 원한 것입니다.
31절 게하시가 저희의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는 모양도 없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가로되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엘리사의 갑절의 영감이 있었다면 살아나는 역사를 보았을 텐데 게하시는 아직 하나님께서 쓰시는 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32절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먼저 무슨 죽음인가를 봐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이셨지만 열매없는 죽음입니다. 나사로의 죽음도 육신 죽음으로 보는 자들이 많은 것은 열매맺는 생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사도로도 룻다에 다비다 여제자가 병들어 죽으매 다락에 뉘운 것입니다. 행9:37-
33절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어머니도 게하시도 내보내고 살리시는 역사를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행9:40-
만약 그들이 다보는 데서 살렸다면 저들도 생명살린다고 흉내매며 떠벌리고 다닐 것입니다.
34절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아기가 아니고 어린아이입니다. 젖을 먹고 자라나면 아이가 되고 아이는 밥을 먹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택하신 아들이요 구원의 은혜가 입혀지게 하신 것은 믿어졌지만 아직 은혜의 복음을 받지 못하여 죽은 것입니다. 입을 맞춘 것은 엘리사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아이의 입에 들어가는 것이요 눈을 맞춘 것은 눈으로 엘리사가 보는 세계를 보게 하시는 것이요 엘리사의 손은 생명살리는 손이니 은혜의 복음을 받고 일하는 손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몸에 엎드린 것은 엘리사의 생명역사가 아이에게도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살이 차차 따뜻한 것은 나사로처럼 무덤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요11:44-
35절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야로는 사르밧 과부의 여인의 아들은 세 번 기도하게 하셨고 (왕상17:21) 엘리사로는 두 번 기도하게 하신 것인데 한번 기도할 때마다 생명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다시 한번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린 것은 이미 하나님의 아들도 보내신 것이 믿어졌고 자라나 열매를 맺지 못했으니 첫 번째로 그열매맺는 생명으로 살리신 것이요 이제 또한번 엎드린 것은 영광이 복음까지 받아야 그어떤 환난도 이겨나가는 것을 나타내주신 것입니다. 일곱 번 재채기는 속에 있는 마태를 통해서 나타내주신 일곱가지 원죄의 역사를 이기게 된 것입니다. 마15:19-
그런데 마가로는 악한 생각 12가지를 나타내주셨습니다. 막7:21,22-
36절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 생명역사를 이루신 후 게하시와 수넴여인을 불러서 아들을 주게 하신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로 길려져 원죄를 이기고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일군이 되는 아들이 됩니다.
37절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이번일로 여인은 주님의 신부감으로 단장이 되고 아들은 용사의 믿음으로 자라나 힘있게 영광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안고 나가는데 길려지면 하나님의 일군으로 쓰임 받게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