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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생애를 항상 선(善)을 좇게 하시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2절–15절 2023년 1월 15일 주일 오전 말씀지
데살로니가(승리) 성도들은 복음이 믿어진 후 간절한 마음으로 영적 양식을 받고 되새김으로 주신 양식대로 영적 생활이 이뤄져 1.거룩함이 2.형제사랑이 3.덕스러움의 열매와 생명역사가 나타났는데 이것이 낮의 아들로 사는 것입니다. 이제 더이상 양식 받을 것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다 된 것이 아닙니다. 섰다고 여기면 벌써 기울어져 넘어지고 있는 것이요 얼마후 꽈당 소리가 나게 됩니다. (고전10:12) 오늘은 항상 선(善)을 좇으며 살게 하시려 주시는 양식이니 간절히 사모하며 때마다 날마다 나와서 마리아같이 주의 발아래 앉아서 받고 구하게 하시고 반드시 각자의 삶에 항상 선을 행하며 살도록 그대로 이뤄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겔36:37-
12절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형제들은 복음으로 생명 살림을 받고 진리의 양식을 받기 위해 주의 발아래 앉은 형제요 자매요 모친으로 영광성의 식구들입니다. (마12:50) 그러나 게을러 양식을 받지 않는 자들은 자는 자들이요 결국 어두움에 속하게 되고 결국 밤에 취하여 육만 위해 살아가니 열매없는 사망에 떨어진 자가 됩니다. 롬8:6-
우리는 먼저 살림을 받은 사도 바울이요 협력하는 실루아노요 참아들 디모데입니다. (살전1:1) 너희는 앞선 사도, 협력자, 후계자를 통해서 살림을 받고 자라나 본이 되는 생활하는 주님의 신부감 빛의 아들들입니다. 반드시 먼저 살림을 받은 자를 들어서 또 살리는 역사가 있게 하시는 것이지 나 혼자 성경 읽고 기도함으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구하는 것은 앞으로 조심해야 할 것을 양식으로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자기 육신의 생명까지 다 바쳐 일생 수고를 하는 복음의 아비들은 너무나 적고 이름만 목사라고 장로라고 하면서 수고는 하지 않고 지식 자랑과 대접만 받기만 원하는 일만 스승들은 너무나 많습니다. (고전4:15) 지금 하나님의 일한다고 하는 자들이 많은데 1.마음 자세부터 중요합니다. 한 생명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2.포도나무-복음이 믿어진 참 기쁨, 무화과-진리로 자라난 겸손함이 보이는가? 마7:16-
3.열매인 감사와 자기를 통하여 복음으로 살리심 받은 자들과 참 아들이 있는가?
4.그 분의 희생과 말로(末老=주님의 신부감 생활인가?)를 보아야 합니다. 히13:7-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주는 가죽옷 구원으로 구원하신 성자요 정녕 죽는 자리에서 살리신 그 은혜가 깨달아져 겸손한 자들이 주안에 있는 자들입니다. (요15:4) 다스리는 것은 (롬12:8) 목사 장로의 직분을 받고 자기 자신을 높여 호령하는 것이 아니라 (딤전3:5) 잘못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말씀으로 책망하고 끝까지 듣지 않으매 결국 징계까지 하는 것이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그런 분을 더 존경해야지 억울하게 생각하면 원망만 나옵니다.
딤전5:17-
성경을 글자로 보는 천주교에는 교황이 왕의 자리에 앉아 있고 개신교는 교단마다 총회장이 있어 권세로 다스리고 있는 현실입니다. 모두 교인들 위에 군림하며 직분을 팔고 그 직분을 감투로 알고 교권을 행사하는 외식하는 서기관 바리새인 같은 자들인 것입니다. 마23:2,6-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사도와 같이 어디든 가서 생명의 양식으로 나누게 하시려 아구까지 채운 분들은 아버지께서 날마다 생명의 양식을 나누라고 세우신 자들입니다. (마24:45) 교회(성도)를 섬기는 분들에게는 그 직분에‘사’가 붙는데 목사는‘牧師’로 표기하고 권사는 ‘勸士’로 쓰며‘집사는 ‘執事’로 표기합니다. 그러니까 세 가지 직분에 붙는 한자가‘스승 사(師)’‘선비 사(士)’‘일 사(事)’로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엡4:11-
13절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직분을 주시고 세워서 일하게 하시는가? 성령이 누구에게 역사합니까? 예수님을 3년간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따르던 제자들에게 성령으로 충만케 하사 사도로 세워 일하게 하셨고 후에 다메섹 도상에서 복음의 빛을 비춰 살림을 받은 사도바울과 그를 협력하는 실루아노와 그를 통해 살리심 받은 참아들 디모데를 통해서 역사하게 하셨습니다. 앞서 자라난 자들에게 영광의 직분을 주시고 그 직분을 감당케 하시려 은사를 주시고 은혜와 복을 주셔서 마음껏 생명역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귀한 일에 쓰임을 받고 있는 자들을 잊거나 몰라보면 막대하게 됩니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나를 그 생명으로 살게 하시고 자라게 하시려 세운 일군들이 있습니다. (고전3:5) 나는 누구를 통해서 살리셨습니까? 그분이 귀한 줄 알고 있습니까? 배나 존경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떻게 귀히 여깁니까? 그를 통해서 말씀을 주실 때에 나와서 앉은 것이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눅10:39-
마르다 같이 예수님이 드실 음식을 준비하느라 바쁜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같이 미리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양식을 주실 때 그 발아래 앉는 것이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자칫 마리아가 아무것도 드실 것을 준비도 안하고 무조건 주의 발아래 앉은 것으로 착각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누구보다 부지런히 바쁘게 자기가 할 일을 다하고 앉은 것입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루신 역사에 감사하며 양식을 받고 양식을 받은 후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생명역사가 있기를 바라며 발에 귀한 향유를 두 번이나 붓는데 먼저는 자신을 살리심에 (눅7:38) 두번째는 병들어 자는 오라비 나사로를 생명부활로 깨워 주심에 감사한 것입니다. 요12:3-
너희끼리 화목하라 사도 바울은 이미 심한 핍박으로 인하여 데살로니가를 떠났습니다. 복음이 믿어져 양식을 채워나가는 성도들이 자기가 떠난 후 행여나 도토리 키재듯 마음이 갈리워 다투지 않을까? 염려가 된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으시기 전 제자들이 흩어져 제 갈 길로 갈까 봐 더러운 발을 씻겨주시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 하셨고 택자들을 위하여 죽기까지 하시면서 ‘나를 본받으라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요13:34-
14절 또 형제들아 왜 형제입니까? 창세 전에 아들의 영으로 택함을 입었고 함께 구원함을 받았고 부르실 때에 먼저 부른 자가 있고 나중 부른 자가 있고 불러서 믿게 하실 때에도 앞서 자란 자가 있고 나중에 자란 자가 있으니 모두 다 형제요 함께 영광길을 가고 함께 영광을 받을 자들이니 참 형제인 것입니다.
너희를 권면하노니 영광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하시려고 앞선 자로 권면하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는다고 해서 권위만 앞세우고 대접받고자 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규모(規模)는 본보기가 될 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본이 될만한 것이 없는 자들을 권계(勸戒)하라고 하십니다. 잘못하는 자들을 내버려두지 말고 권면하고 안 들으면 책망하고 징계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잘못한 자를 권고해도 듣지 않으면 이제는 하나님 모르며 사는 이방인같이 여기라 하신 것입니다.
마18:15,17-
오래 믿었다 하며 말씀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그 생활이 없고 직분을 받았으나 직분에 맞는 생활을 하지 못하는 자들이 규모없는 자들입니다. 규모가 없으니 계획성도 없고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무책임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루 하루 아무렇게나 살면 안되고 목적이 분명하고 생활은 규칙적인 삶이어야 합니다. 살후3:6-
생명을 살리는 일에 쓰임을 받는 분들은 규모 없이 행하지 않으려 하나님 아버지 앞에 가장 먼저 엎드립니다. 살후3:11절에는 똑똑하여 말만 많이 하고 제대로 실행하지는 않고 일거리만 만드는 자들이 규모가 없는 자라 하셨습니다. 앞선 자의 인도따라 믿는 일을 하며 자기 맡은 일을 종용히 해야 합니다. 열매를 맺고 생명을 살리는 목적으로 가정에서 직장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일을 하게 하시려고 힘을 주시려고 생명의 양식을 주시는 것이요 나를 온전케 하시려고 주시는 양식의 말씀입니다.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누구나 처음 어린아이 때에는 마음이 약하여 좌절 걱정 불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앞선 자를 통하여 양식의 말씀을 더해 주셔서 자라나 용사같이 강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강한 자라고 자부하지 말고 지난날 자신도 마음이 약한 자의 자리에 있었던 때를 기억하여 아직 약한 자리에 있는 그들에게 편안한 마음과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영광에 합당한 신앙생활은 나혼자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들을 이끌고 함께 가는 것이요 그들이 나의 상급이요 면류관이기 때문입니다. (살전2:19) 말씀을 부지런히 받아먹었다면 영이 자라나니 마음에 힘이 있어 강해지고 함께 달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롬15:1-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주며 영광의 복음까지 받아먹고 한말씀 한말씀이 깨달아진 자가 강하고 담대한 주님의 신부입니다. 제 때에 말씀을 받아먹지 못하면 힘이 없어 약한 자가 됩니다. 로마서 15장1절에 남의 약점을 담당하라고 하신 것은 약하여 원죄를 이기지 못하고 유혹에 잘 넘어가고 거짓도 분별치 못하는 힘이 없는 자들을 보면 정죄하지 말고 기도하고 그 사람이 거기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은 입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약한 자를 기도해주고 말씀으로 붙들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태어나 사는 동안 만나는 사람은 하나같이 다 다르고 그 하는 말들도 다양한데 거기서 성질을 내거나 분노하지 말고 오래 참아야 합니다. 고전13:4-
사랑의 제일 첫 특성이 오래 참는 것입니다. 남이 나한테 잘못을 하고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때에 내 안에 사랑이 있다면 기쁨으로 참을 수 있습니다. 기쁨없이 참으면 스트레스가 되고 병을 자처합니다. 오늘 말씀을 받으면 순간순간을 참고 또 오래 참습니다. 참지 못할 때 내가 사랑이 없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랑한다고 말은 하면서 참는 것이 왜 안 됩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래 참음은 성령의 4번째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영광의 길은 수월하지 않고 좁고 협착하기에 기가 막힌 일을 당하기도 하는데 그때에 하나님의 아가페 (무 조건적인)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다윗처럼 자신을 죽이려 하는 사울 왕의 횡포까지 오래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15절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누구에게든지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나보다 나이 많은 분들앞에서와 이성간에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자칫 구설수에 오르고 손해를 많이 보게 됩니다.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진리로 자라나면 누가 나에게 악하게 했다고 똑같이 악으로 갚지 않게 됩니다. 그것은 원수를 갚으려 하는 나는 더욱 악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못할 때에 다 용서해 주시는데 나는 나에게 잘못하는 자를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마6:14-15
마태 5장부터 너희는 팔복의 자리까지 자라난 자들입니다. 우리가 몰랐을 때에 지은 죄들은 어찌할 수가 없지만 영광의 세계까지 보이셨고 날마다 그 길을 가게 하신다면 나에게 과실을 범한 자를 용서하게 됩니다. 절대 용서가 안된다면 천부께서 나의 과실도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믿기 전에 사함을 받는 것과 믿고 나서의 사함을 받는 것은 다릅니다. 잘못했을 때 회개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남이 나에게 잘못한 것이 용서되지 않고 분노가 내 안에 가득 쌓이면 스트레스가 되고 결국 분노로 인하여 병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그 사랑이 날마다 새롭게 깨달아지는 신부의 자리에 있다면 용서하지 못할 사람이 없습니다. 더 자라면 나를 죽이려 하는 자까지도 ‘친구여! 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롬12:17-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열매를 맺고, 생명을 살리는 일이 착한 일 선한 일입니다. (빌1:6)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대할 때에 ’나를 통해서 살리심 받고 열매를 맺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게 하소서‘ 하는 중심을 가지고 강도를 만난 자를 살리는 사마리아 사람처럼 사용하는 것이 한생명 살리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눅10:37-
선을 좇으려면 먼저 선악의 근원(根源)을 알아야 합니다. 에덴 중앙에 (창2:9)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신 것은 생명 나무를 위해서요 생명 나무는 주 예수의 구원이요 그 실과는 성령의 열매와 영광입니다. 선악(善惡)을 알게 하시려 두신 것이지 따먹을 줄 모르고 두신 것은 아닙니다. 미리 아신 하나님이요 따먹음으로 정녕 죽는 자리에 떨어졌을 때 원죄가 생겨서 죄만 짓게 되는 그때가 서늘한 때입니다. 이때 찾아오셔서 (창3:8) 가죽옷을 지어 입히셔서 산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창3:20,21-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로 인해 생겨난 것은 원죄의 역사입니다. (마15:18-20) 선(善)은 영광에 합당하나 택자들이 행할 힘이 없고 악(惡)은 너무나 강하여 이길 수가 없게 됨으로 고통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 깨닫게 하시니 곤고한 자임을 고백하게 된것입니다. 롬7:24-
이제 원죄로 가득한 그 손으로 생명나무의 실과까지 따먹고 영생할까봐 (창3:22) 오직 성령으로만 원죄를 이기게 하시고 열매맺게 하시려 에덴에서 쫓아내신 것입니다. 창3:23-
이제 원죄로 말미암아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자기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려 십자가 구원(마1:21)을 부활하사 보혜사 성령을 주셔서 자라나 선한 일을 하게 하시고 환난을 통해 순교케 하사 다시 오셔서 첫째부활로 공중에 올리사 주님이 다스리시는 천년의 나라까지 얻게 하시고 영원한 영광성에 들어가 찬송케 하시는 것입니다. (엡1:6) 이것까지 믿어지게 하신 자들은 이제 모든 사람을 대할 때 ‘나를 통해 살리소서’ 하는 간절한 중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제 생명살리는 일에 쓰임 받는 것이 선(善)을 좇는 것이요 성령으로 선을 행할 힘을 주시고 선을 좇은 대로 상과 영광을 주시려는 것이 (롬2:7) 우리를 태초에 말씀으로 아들로 지으시고 구원하시고 가장 복된 성령 시대에 이땅에 보내신 뜻입니다. 엡2:10-
북음으로 살리심 받고 진리로 자라게 하셨는데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라고 하셨으니 주신 은혜와 복으로 항상 나를 통해 한생명을 살리시고 자라게 하소서 하며 깨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약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