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열매의 법칙 (요 15:1-2)
1.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시간에 “풍성한 열매의 법칙”이라는 제목입니다. 농부에게 열매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농부 입장에서 볼 때 열매를 얻지 못한다면 수고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면에 농부의 최고의 행복은 물어볼 필요도 없이 풍성한 수확을 거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4:7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이런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그러하십니다. 그래서 요15:8에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16절에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그 뿐 아니라 6절에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신 것처럼 버리실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풍성한 열매 맺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 제할 것을 제하시기 바랍니다.
2절에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그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여기 제거하신다는 것은 가지치기 정전을 의미합니다.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말씀도 앞의 문구와 같은 동의어입입니다.
포도는 정전을 많이 하는 나무입니다. 가지가 많으면 열매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늦가을이나 겨울에 내년에 쓸 원줄기만 남기고 나머지 가지를 다 제하여 버립니다. 무화과나무도 잘라내면 새 순이 올라오는데 그 새순도 필요한 만큼만 남겨놓고 제거해야 합니다. 방치하면 땅만 차지하지 많이 열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제할 것이 없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3절에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이 말씀에 비밀이 있습니다. 산상보훈이라고 읽고 적용해 보세요. 그 말씀대로 믿을 것은 믿고 믿지 않아야 할 것은 믿지 않고, 할 것은 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고,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래서 시119:9에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했습니다. 이것이 가지 치는 법입니다. 갈5:19-21에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했습니다.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는 것은 그 외에도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 다 쳐내야 합니다. 그 외에도 많습니다. 딤후3:1-5에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그랬습니다. 그 외에도 많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범하는 것이나 순종함에 부족한 것도 쳐내야 할 가지입니다.
그래서 ‘농사는 잡초와의 전쟁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귀농인들에게 ‘농사짓는데 무엇이 가장 어려웠어요?’ 물으면 대부분 잡초가 가장 어려웠다고 말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도 가장 어려운 것이 죄를 쳐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쳐내지 않으면 열매 맺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깨닫는 대로 변화를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 잘 붙어있어야 합니다.
요15:4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가지가 나무에 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봄에 가지가 잘 자라나도 여름에 태풍을 이겨내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바람이 불어 꺾이거나 병충해가 다가올 때 이기지 못한다면 열매 맺지 못합니다. 칼슘 비료를 쓰는 것도 가지가 튼튼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지의 할 일은 어떤 순간에도 나무를 떠나지 말고 꼭 붙어 있어서 열심히 진액을 빨아먹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란 이렇게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들 속에 있습니다.
이처럼 시험을 이기고 예수님께 잘 붙어 있으시길 바랍니다. 성도는 예수 믿음으로 예수님께 붙어 있는 유기체입니다. 고전1:30에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 했습니다. 이 관계는 그 누구도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주님을 붙잡다 놓았다 반복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열매를 맺기까지 위기의 순간이 수없이 찾아오지만 그 때마다 시험이구나 생각하고 더 굳세게 붙잡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용광로 속에서도 찬송하고 있었듯 그것이 바로 이기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시험 들지 마세요. 옷에 불냄새조차 나지 않았듯 온전히 이기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조금 믿는다 하면 또 시험 들어 울쌍이고 그러지 마세요. 불같은 시험 가운데서도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잠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매사의 삶에서 나를 넘어뜨리려는 그 유혹과 시험들에게서 믿음을 지킨다면 순교자만큼 위대합니다. 산순교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구원의 확신으로, 어떤 때는 예수의 이름으로, 어떤 때는 장소를 이탈함으로, 어떤 때는 엎드려 부르짖음으로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2-4) 했고,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약1:12) 했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지 않는 것,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3. 토양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마13:3-8에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고창에 사는 도덕현이라는 분은 4.000송이나 맺는 포도나무를 가꾸어 온 나라에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분이 하는 농법은 탄소순환농법이라 해서 탄소인 숯을 중심으로 버섯배지나 목재칲 대나무칲 나뭇잎 풀 깻묵과 같은 유기물을 넣어주면 그 단단하던 점토질이 빵처럼 부드러운 토양으로 바뀝니다. 최근에는 복분자를 심었는데 복분자도 많은 열매를 맺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텃밭이라도 그렇게 해보시기 바랍니다.
토양은 놀라운 가능성이 있습니다. 인간이 타락하기 전에는 땅을 파지 않아도 토양이 풍성한 열매를 내었습니다. 가시와 같은 잡초조차도 힘들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땅만 잘 가꾸면 하나님이 농사 짓고 우리는 심고 거두는 일만 할 뿐 남은 시간에 하나님을 잘 섬기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 유기농업의 선구자 J. I. Rodale(로데일)박사의 연구소에서 피복농법을 하는데 유기물을 한 뼘 두께로 덮어주고 쟁기질은 하지 않고 그냥 씨앗이나 모종을 헤집고 심어주기만 합니다. 그의 부인 로데일 여사는 말하기를 “나의 밭은 매우 비옥해져서 작물을 더 배게 심어도 되고 나온 것을 도로 돌려주니 지금은 퇴비도 쓰지 않는다. 밭은 원래의 넓이의 8분의 1로 줄어들었고 가을에는 정글이 되어버린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마음의 토양관리를 잘하면 100배의 결실할 수 있습니다. 어떤 마음이 옥토일까요? 마13:23에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이해하는 정도가 아니라 생명처럼 귀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골1:6에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길가와 같이 말씀을 의심하고 거부하고 무관심하고, 돌밭과 같이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 조금만 환난이나 박해가 오면 곧 넘어지고, 또 가시밭과 같이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면 결실할 수 없습니다.
눅13:6-9에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지만 열매를 맺지 않으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참 믿음의 사람이 되세요. 믿음의 냄새가 나야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 제할 것을 제하고, 어떤 순간에도 시험 들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인내로서 결실하는 옥토밭 같은 마음 가져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결실을 맺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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