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수록 색벽잠이 없어 진다더니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고 대.여섯시면 눈이 뜨진다 ㆍ물론 열대야로 인해서 잠을 설치는 것도 있겠지만 몸과마음으로 확신이 든다 .새벽이면 어슴프레 내려 앉는 고요는 슴슴이 눈물을 불러와 주책 없이 볼을 타고 흐른다.
그눈물 조차도 클래식으로 느껴져 멍하니 옛날 추억 속에 잠기기도 한다. 내가 나이 들 수록 떠난 부보님과 지인 친척들이 하나 둘 생각 나고 다들 갔고 가고 나 또한. 가야 되는 저 강을 인식 하면 나이가 쌓일 수록 담담해 지는 순리를 받아 들이는 마음에 감사하다.
마당이 있었다. 아침마다 비질 하는 아버지의 굵은 팔뚝에는 힘줄이 솟구쳤고 저륵저륵 마당 쓰는 소리에 잠이 깨고는 했다. 방문을 열고 나가면 반질 거리는 마루에 걸터 앉아서 두 다리를 까불까불 거리며 아버지를 바라 보는 나는 가슴에 작은 평화가 일었다. 그 마당에 가을이면 콩타작을 하고 탈탈 거리는 탈곡기에 벼를 찧기도 하고 겨울에는 마루까지 흩뿌러진 눈송이를 보며 눈 사람 만든다고 난리. 법석이든 마당 ! 놀이가 없어던 우리들은 마당에서 공기 놀이도 하고 달리기 하고 놀다 5섯 살때 마당 끝에서 아래로 떨어져. 죽다 살기도 했다 .(우리집 마당은 신작로에서 많이 높았다 ) 그 사건으로 아버지는 거금을 들여 담벼락을 쌓으셨다.
초등학교 5학년때 사춘기랍시고 학교 결석을 3번 했다. 선생님 방문으로 집에 들켜서 매를 들고 쫒아 오던 아버지를 피해서 뺑뺑이 돌던 생각도 난다.
마당은 큰 언니의 결혼식이 성대히 치러기도 했다. 온 마을 이웃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잔치 음식을 하고 마당 한 귀퉁이에는 국수가 삶기고 손님 자리가 모자라 소 마굿간까지 짚을 깔고 그곳에서 아무렇지않게 음식을 먹는 모습도 충격이었지만 그 생활을 듬듬이 받아 들이는 농부들의 모습도 신선 했다. 아버지는 장구 실력이 뛰어 놨는데 마당은 이내 흥겨운 춤과 취한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울리고 포릇포릇 일으나는 흙먼지도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나는 어린 시절 약골이었고 자주 아팠다. 죽을거라든 꼬물이는 그래도 살겠다고 용을 썼는지 부모님의 애간장을 태운 듯 했다.미신이건 아니건 엄마가 부러면 마당에 나가 앉아 있으면 엄마가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고 그안에 갖은 음식을 말아. 뭉턱한 부엌 칼을 들고 앉아 있는 내 뒤에서 머리위로 칼을 몇번이나 눌렀다 뗐다를 하다 어느 순간 칼을 휙-마당 끝을 향해서 던졌다. 칼 끝이 밖으로 나갈 때 까지 던진다.
칼 끝이 드디어 나가면 나는 방으로 들어 왔다. 그때 엄마가 꼭 한마디 하신다. (거꾸로 눕거래이 )
마당에는 늘 아버지의 바지게와 작대기가 뜰방에 놓여 있었다. 뜰방에는 작은 구멍이 있었는데 부엌에서 불을 때면 그 연기가 아궁이로 나와 마당에 스르르 가라 앉다가 하늘로 후루루 사라지는 모습도 예뻤다.
마당은 작은 오빠가 군대 가던 날 부모님께 큰 절 하고 떠난 추억도 있고, 둘째 오빠가 객지 생활 힘들어 돌아와서 차마 들어 오지 못하고 어슬렁거리다 새벽 버스로 다시 도시로 떠나기도 했다.
명절이면 아버지의 마당 쓸기는 정성을 더했는데 객지 살이 하던 자식을 반기는 아버지의 미안함과 고마움이 섞여서 마당이 닳도록 쓸었다.
그 마당을 어느 순간 나도 떠났고 시골에는 어느 시쯤부터 양옥들이 들어 섰고 우리집. 역시 그 정겨웠던 마당은 없어지고 양옥집이 들어섰다 .다행이도 아버지는 마당을 조금 남겨 놓으셨고 엄마가 좋아 하는 코스모스와 맨드라미 텃밭도 가꾸셨다. 요즘은 부모님이 떠나고 없지만 평상에 앉아서 지리산 흑돼지를 구워 먹기도 한다.
어느 가을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배경을 삼아 부끄러운 듯 수줍게 웃는 엄마의 어깨위로 아버지의 두 팔이 얹어져 찍힌 사진은 그 어느 명화 보다 아름다웠다. 올 여름 나는 또 그 마당으로 피서 간다. 흙먼지 나는 신작로서 놀다 집을 쳐다 보면 아버지는 마당을 쓸고 계셨는데 그 모습은 어린 나의 마음에 안정감을 심어 주었든 듯 하다. 어린시절 마루에서 온 식구가 밥을 먹는데 🐍 이 마당으로 기어 와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버지 뱀!!하고 고함 치자 아버지는 바지게 작대기에 뱀을 휙 감아서 신작로 건너로 휙 던진다. 그리고 한 마디 하신다. : 산짐승이 어디를 못가!!:
아버지의 철학적인 담대함이 담긴 한 마디였다 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