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많이 알려진 청산도는 완도항에서 뱃길로 45분 거리.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푸른 섬으로 남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바다낚시로 아주 유명한 이 섬에는 또 갯돌이 많다. 이 섬의 으뜸 명소가 된 ‘서편제’의 촬영장소는 당리 언덕길. 아들 동호의 북장단에 맞춰 유봉과 딸 송화가 어깨에 흥을 얹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지나던 당리 황톳길은 지금도 영화 속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산꼭대기를 향해 임도를 따라 가다 만나게 되는 범바위에서는 맑은 날이면 제주도까지 볼 수 있다. 산과 들 뿐 아니라 바닷가에도 돌이 많은 섬인데 진산리는 보길도 예송리처럼 갯돌밭이 유명하다. 또 지리해수욕장은 은빛 모래와 백사장을 둘러싼 200여년 된 해송 800여 그루가 우거져 운치를 더하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그지없이 아름답다.
청산도에는 또한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원형이 보존된 고인돌 3기가 있으며, 고인돌 옆 하마비(문화재 자료) 뒷면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보길도
이미 사람들에게 알려질 만큼 알려진 보길도는 일찍이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살았던 곳으로 남해의 여러 섬 중에서도 풍광이 빼어난 섬이다. 짙푸른 바다와 울창한 숲, 조약돌이 깔린 해변, 깎아지른 듯한 해안 절경 등으로 섬 전체가 한 폭의 그림같다. 병자호란 당시 제주도로 가다 풍랑을 만난 윤선도가 보길도의 자연경관에 심취해 부용동이라 명명하고 이곳에 13년을 머물며 ‘어부사시사’등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보길도에는 윤선도의 유적지인 부용동과 세연정, 갯돌이 깔린 예송리해수욕장, 송시열이 글을 새긴 ‘글씐바위’ 등 볼거리가 많다. 섬 한가운데 있는 부용동에는 윤선도가 생활하며 지냈던 낙서재와 동천석실이 있다. 세연정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정자로, 인공으로 만든 연못인 세연지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낸다. 갯돌로 유명한 예송리 해변은 밤나무, 참가시나무, 광나무, 서엄나무 등 수령 200~300년 된 상록수림이 장관을 이룬다. 예송리 못 미처 샛바우재 언덕에서 굽어보는 해변이 정말 아름답다.
윤선도 유적 세연정
세연정의 연못인 세연지 유적에는 연못의 저수를 위해 판석보(板石洑)라는 개울에 보를 막아 논에 물을 대는 원리를 도입했다. 판석보는 비가 오지 않을때는 이 계원이 돌다리 역할을 하고 비가 많이 오면 폭포가 되어 수면이 일정 수위를 유지하도록 만드는 기발한 방법을 도입한 것이다. 세연지의 바닥에는 돌이 깔려있어 흙이 일지 않는 맑디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신지도
명사십리 해수욕장으로 유명한 완도 신지도는 원래 이름이 ‘지도’였으나 나주목에 속했던 지도(현재 신안군)와 혼동을 피하기 위해 신지도라 불렸다고 한다. 신지도의 으뜸 명소인 명사십리해수욕장은 더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 은빛모래밭에 파도가 치면 모래 우는 소리가 들린다 하여 ‘명사(鳴沙)’와, 백사장의 길이가 십리나 된다고 해 명사십리가 되었다 한다. 해안선의 길이가 4㎞나 되고 백사장의 너비만도 100m에 달하는 데다 수심이 아주 완만해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만족하는 곳이다. 명사십리 해수욕장과 물하태나루터 사이에 있는 송곡리 앞바다의 일몰, 신지도 동쪽 끝에 위치한 동고해수욕장의 일출도 매우 아름답다.
조선시대 유배지이기도 했던 신지도는 항일의 섬이기도 했다. 광주학생운동을 지도한 장석촌과, 완도와 신지에서 항일운동을 했던 임재갑을 기리는 ‘신지항일운동기념탑’이 명사십리가 내려다 보이는 대곡리 구릉에 있다.
신지대교
신지대교 개통과 함께 다도해의 경관과 잘 어울리는 야간조명을 설치, 또 하나의 관광명소이며 특히 자연 환경이 뛰어난 명사십리는 관광객들이 사계절 즐겨찾을 수있는 곳으로 대변신하게 될 것이다.
거문도와 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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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여수의 거문도는 다도해해상국립공원 최남단에 떠 있는 남해의 해금강. 남해안 최고의 비경을 자랑하는 백도와 이웃하고 있는 거문도는 수많은 섬과 바위가 천하절경을 자랑한다. 고도, 동도, 서도의 3개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는 동양최대의 거문도 등대, 수백 년 묵은 동백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수월산의 동백림, 조선시대 유학자인 귤은 김유를 기리는 거문사 등의 관광지 및 역사 유적이 있다. 거문도 주변의 바다는 고기떼가 훤히 보일 정도로 물이 맑으며, 특히 성어기에는 각지에서 고기잡이배들이 몰려와 불야성을 이룬다. 거문도와 그 주변 섬들은 갯바위낚시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거문도에서 동쪽으로 28㎞쯤 떨어진 백도는 39개의 크고 작은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벽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웅장하게 솟은 바위겹겹이 세로로 골골이 파여 있어 마치 바닷속 금강산 같다. 백도 일원은 명승지 제7호로 지정되었으며, 생태계보존을 위해 일반인들의 상륙은 금지돼 있다.
영국군 묘지
거문도를 2년간 점령한 외세의 흔적 영국군 묘지.
1885년 4월 군함 6척과 수송선 2척으로 구성된 영국 해군선단이 거문도를 점령하고 기지와 항구를 구축하면서 2년간 머물렀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무시하는 도발행위로 기록되어 있지만 당시 거문도 주민들과는 아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묘지 2기는 거문도 뒤편 산령에 자리잡고 있다.
나로도
고흥읍에서 동남쪽으로 25㎞ 떨어진 섬으로 외나로도와 내나로도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는 연륙교와 연도교의 두 개의 다리가 놓여 육지와 연결된 섬이다. 내나로도의 덕흥마을과 외나로도의 나라도(신금) 염포 하반예내 등지에 해수욕장이 있다. 나로도의 여러 해수욕장은 해변의 경사가 완만하고 수백년 묵은 상록수림의 나무그늘이 더위를 잊게 해준다. 섬 곳곳에 산재한 거북바위, 금강죽봉, 꼭두녀, 사자암 등 기암괴석들은 색다른 볼거리. 특히 나로도에서 가장 외딴곳에 위치한 하반마을은 아담한 숲과 해변이 있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제격 일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우주센터가 들어설 예정.
금오도
여수만 남서쪽에 있다. 섬의 지형이 자라를 닮았다 하여 큰 자라라는 뜻으로 금오도(金鰲島)라 이름 지어졌다 한다. 한겨울에도 조선후기 왕실의 사슴목장으로 사용됐을 정도로 따뜻해 동식물의 낙원이라 불려지기도 했다. 완만한 등산코스 또한 금오도의 매력. 섬에는 산이 많은데 동북쪽의 망산과 서북쪽의 대부산이 등산코스로 잘 알려져 있다. 두모리에 직포 해송림이 볼만하다.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선녀들이 바닷가로 내려와 날이 새는 줄 모르고 목욕하다가 승천하지 못하고 소나무로 변했다 한다.
조도
조도(鳥島)는 1백54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새떼처럼 떠 있어 그렇게 이름 붙여진 조도군도의 어미섬이다. 조도군도의 맨 남쪽에 위치한 관매도는 진도군의 섬 중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상조도의 도리산 정상에 올라서면 호수 같은 다도해 위에 새떼처럼 내려 앉은 조도군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한 눈에 가득 들어온다.
관매도는 검게 그을린 기암괴석이 신비를 자아내고 울창한 송림이 아름다운 섬이다. 관매도해수욕장에는 백사장 주변 약 3만평에 400~500년 된 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차있다. 해수욕장 북쪽 끝머리에 수만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해식절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이곳에서는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 아침 일찍 관매도의 주봉인 돈대산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고, 해수욕장에서 그림 같은 일몰을 보는 코스가 좋을 듯. 관매도 선착장에서 배 타고 섬 주위를 한바퀴 돌면 관매팔경의 명승지를 모두 구경할 수 있다.
방아섬, 하늘다리
바위산 중심부를 칼로 자른듯이 똑바르게 갈라져 그 폭이 3~4m이고 바다 수면으로 돌을 던지면 물에 떨어져 닿은 시간이 13초가 걸리는 참으로 아슬아슬하고 그위에 감히 서있을 수 없이 엎드려서 머리만 내밀고 내려다 보면 산이 움직이는 듯 온몸에 찬 기운이 오싹할 정도이며 그 주변 기암절벽에 감탄을 억제할 수가 없는 절경이다. 이곳에는 그 옛날 방아섬에서 선녀들이 벗고 쉬던 곳이라는 전설을 안고있다.
출처 : 광주, 전남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