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는 어색하기만 한 단어가 이제는 나를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이제 세상에 갓 나온 딸아이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기 위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좋은 아빠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세대가 바뀌면서 아빠의 모습도 바뀌는 것 같다. 부모님 세대의 아빠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한 몸 바쳐 일을 하지만 가정에는 다소 소홀한 가부장적인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의 좋은 아빠는 돈도 벌어오면서 가정에도 소홀하지 않아야 된다. 예전처럼 사회적 지위를 쫓아 야간에 잦은 술자리를 갖고 가정을 멀리하다가는 가정 속에서 자신이 서있을 자리가 없어지기 십상이다.
내가 신혼일 때 선배들이‘아내들은 초반에 길을 잘 들여야 한다’고 충고했던 것이 생각난다. 밀고 당기는 연예를 하는 것처럼 집안일도 계속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어쩌다 해줘야지 고마워한다며 집안일을 도외시해도 되는 환경을 만들고 경제권을 쟁취하는 것이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첫 단계라는 것이었다.
이전의 가부장적인 가치관에서 남자는 집안일을 하면 안 되는 존재였다. 나 또한 가까이 살던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그러한 가부장적인 문화를 경험하곤 했다. 집에서는 어머니의 주방일을 줄곧 돕던 나였지만 할아버지 댁에 갈 때마다 나는 안방에서 있어야 했으며 주방일을 도우려고 하면 괜히 핀잔만 듣기도 했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일상화되었으며 양성평등에 관한 사회적 가치관도 정립되고 있다. 예전과 같이 가부장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살아가기 힘든 세상이 된 것이다.
그런 세상 속에서도 사회적 지위와 회사 동료들과의 관계형성을 위해 집안에 소홀히 하고 술자리만 쫓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직장에서 퇴직하고 그동안 믿던 사회적 지위도 없어졌을 때 그들은 집안에서 설위치가 없어졌으며,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 경우의 이야기를 여럿 접한 바가 있다.
멋진 아빠의 조건도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맞물려 변화하는 것 같다. 시대가 바라는 멋진 아빠의 조건 중 하나는 요리 실력을 갖추는 것이다.‘요섹남’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똑똑한 남자를 뜻하는‘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요섹남(요리를 잘하는 섹시한 남자)’은 기성세대들의 남성들에게는 요구되지 않던 좋은 아빠의 덕목이다.
나의 경우에는 요섹남이라는 트렌드의 혜택을 본 경우다.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의 주방일을 돕던 것도 있지만, 대학생 시절 자취생활을 하며 여러 요리를 시도해보며 늘어난 요리 실력으로 인해 여느 여학우들보다 맛있는 요리를 만들었었다.
아내와 나는 연예기간이 1년이 채 되지 않는다. 어른들의 소개로 만난 까닭에 결혼까지 막힘이 없었기도 했지만, 아내가 자취를 할 때 여러 음식을 만들어 준 것이 아내의 마음을 얻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내는 내가 해준 음식들을 맛있게 먹어주었으며 나 또한 그런 아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었다. 결혼을 한 지금도 집에서 요리는 내가 거의 담당하고 있으며, 아내는 옆에서 음식을 배우거나 간을 보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성세대의 눈에는 그런 내가 탐탁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대의 주방은 아내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제는 아빠들도 주방과 친해져야 아내와 자식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을 것이다.‘요섹남’이라는 단어가 그냥 생겨난 것만은 아니라는 걸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또 하나의 좋은 아빠의 덕목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가지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간혹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잘못 해석하여, 아빠는 게임을 하고 엄마는 드라마만 보는 서로 얼굴도 보지 않은 채 같은 공간아래에서 시간만 보내서는 안 된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서로 같이 무언가를 같이 하며 교감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가족을 위하는 길이란 돈을 벌고 사회적 지위를 얻어오는 것이었다. 그 와중에 가족과 저녁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으며, 아버지는 마주치기 힘든 존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요즘은 막연히 사회적 지위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시간, 가족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이로 인해 태어난 것이‘주 52시간 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현상이다.
직업에 대해서도 가치관이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공무원 시험에 엄청난 수의 응시자가 몰리는 것을 보더라도 요즘 젊은이들이 생각하는 직업관을 알 수 있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것도 있지만 흔히 말하는‘저녁있는 삶’이 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나 또한 사회적 지위와 가족과의 삶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인 적이 있었다. 올해부터 진급시험이 응시가 가능했는데 진급시험이란 것이 응시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만약 시험에 합격을 하면 사회적 지위와 월급은 올라가지만 전국으로 발령을 받을 수 있다는 문제가 있었다.
기러기 아빠가 된다는 것이 이제 곧 태어날 딸아이에게 죄를 짓게 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지금 직장에 일하기 전, 군에 몸을 담은 적이 있다. 육군 장교로서 복무하는 동안 주변 간부들을 보건데 가정생활이 그리 순탄하진 않아보였다. 운이 나쁘면 1년을 채 못 채우고 근무지를 옮기는 일이 허다한 장교들은 나라는 지켰지만 정작 자신의 가정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 했다.
예전의 군인가족은 아빠를 따라 이사를 다녔지만 이제는 엄마들의 사회진출로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고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겼다. 전술훈련을 들어가면 한 달 동안 집에 못가는 상황도 생기는 군인들에게 기러기 생활은 가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사회 초년생으로 기러기 아빠들의 파국을 맞는 상황을 직접 본 나로서는 가정을 포기하고 사회적 지위를 쟁취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전역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과도한 업무 탓도 있지만 가족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직장의 주변인들로부터 승진시험을 보라는 권유가 잦아 아내와 진지하게 상담을 했었다. 아내는 아기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므로 경제적으로 부족하면 자신이 도울 테니 진급을 서두르지 말자고 하였다. 나 또한 그에 수긍하고 승진시험을 보지 않기로 했었다.
승진시험을 권유하는 분 중 한명은 나중에 아이들이 크면 아빠 직업과 직위를 서로 물어본다며 애들이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진급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가족과의 시간이라면 신중히 고려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냥 직위만 높다고 아이들이 자랑스러워할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 직원 중 기혼자들을 보면 진급에 목숨 걸기보다는 요즘 말하는 워라밸을 지키며 가정에 충실하고자 하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가족과의 시간까지 회사에 쏟아 부어 진급을 하고 사회적 지위를 올리는 것 보단 가족과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내가 생각하고 있는 좋은 아빠의 덕목인‘요리능력 갖추기, 가족과 시간보내기’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아빠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이라고 생각한다. 시대가 변화하는 만큼 아빠들도 사회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언젠가 길가를 거닐다 버스에 부착된 것을 보았던‘도와주는 아빠에서 함께하는 아빠로’라는 슬로건이 그 사회적 요구를 대변해주고 있었다.
딸아이를 위해 나도‘함께하는 아빠’로 거듭나려 한다. 우리 딸아이에게 행복한 기억을 줄 수 있는 그런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해보고자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도 가족에게 행복한 기억을 심어 줄 수 있는 아빠가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