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
최용현(수필가)
1970년, 미국 케이프케네디를 출발하여 자동시스템으로 운행하던 초광속 우주선은 어느 정체모를 행성의 호수에 불시착한다. 계기판의 숫자는 3978년, 지구를 떠난 지 2008년이 지난 것이다.
선장 테일러(찰턴 헤스턴 扮)와 두 대원은 가까스로 물 밖으로 빠져나오고, 우주선은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이제 이들은 다시 지구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곳은 지구에서 320광년 떨어진 오리온 좌의 어느 이름 모를 행성이고, 가진 것은 3일치의 식량뿐이다.
이렇게 시작되는 프랑크 J. 샤프너 감독의 1968년 작 ‘혹성탈출(Planet of the Apes)’을 본 사람은 아마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간간이 위성방송이나 케이블TV에서 틀어주는 ‘혹성탈출’은 팀 버튼 감독이 2001년에 만든 리메이크 작이다.
원 제목 ‘Planet of the Apes’는 ‘유인원의 행성(혹성)’이란 뜻이다. 원 제목에 없는 ‘탈출’을 한글제목에 넣은 것은 뭔가 스릴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동명소설이 원작이다.
‘혹성탈출’은 80만년 후의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지 팔 감독의 ‘타임머신’(1960년)과 함께 지구의 어두운 미래를 보여주는 SF고전영화의 쌍벽을 이루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백 투 더 퓨처’ 시리즈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이고….
풀 한 포기 없는 황량한 사막을 가로질러 무작정 걷던 대원들은 밀림에서 옥수수를 따먹고 있는 원시인의 무리를 발견한다. 곧 이 원시인들은 말을 타고 총을 쏘거나 채찍을 휘두르는 원숭이들에게 쫓겨 도망을 간다. 대원들도 엉겁결에 함께 도망치다가, 한 명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테일러는 목에 총상을 입은 채 원숭이들에게 사로잡힌다.
이곳은 원숭이법전 제1조에 나와 있는 대로 만물의 영장(?)인 원숭이들이 다스리는 행성으로, 이곳에서 인간은 원숭이들의 사냥감, 즉 야생동물일 뿐이다. 과다출혈로 쓰러진 테일러는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 원시인 노바(린다 해리슨 扮)의 수혈로 깨어난다.
여류 동물심리학자인 지라 박사는 언어를 사용하는 테일러를 지능이 있는 인간으로 대우해준다. 지라 박사의 약혼자인 고고학자 코넬리우스는 원숭이법전이 생기기 전의 금지구역에서 첨단문명이 존재했음을 알아내고, 그것을 인간문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과학부 장관 자이우스 박사를 필두로 한 노회한 원로들은 이를 결코 용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위험한 사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한편, 거세당할 위기에 처한 테일러는 우리(?)를 탈출하여 한바탕 소동을 벌이지만 다시 붙잡혀 청문회에 끌려가게 된다. 테일러를 앞세워 인간문명의 존재를 입증하려던 코넬리우스 커플은 오히려 이단으로 몰려 기소 당한다.
테일러는, 총에 맞아 죽은 동료 대원은 이미 박제가 되었고, 다른 대원은 뇌수술을 받아 언어와 사고 기능을 잃은 멍청이가 되어있음을 알고 통분한다. 지능을 가진 인간 종족에게 열등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자이우스 박사는 테일러에게 ‘너희 종족이 어디에 사는지 말하지 않으면 너에게도 뇌수술을 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한다.
그날 밤, 테일러는 지라 박사의 도움으로 노바와 함께 탈출을 감행한다. 중간에 코넬리우스가 합류하자, 모두 금지구역으로 향한다. 곧이어 자이우스 박사가 이끄는 수색대가 쫓아오고, 이들은 금지구역 유적지에서 마주친다. 대치 끝에 잠시 휴전을 한 이들 일행과 자이우스 박사는 인간문명을 입증하는 조건으로 고대문명의 유적지인 절벽 동굴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여러 유물과 함께 미미인형처럼 생긴 사람인형, 그리고 안경테와 틀니가 나오지만, 자이우스 박사는 인간 문명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코웃음만 친다. 그러나 노바가 만지작거리던 미미인형(?)에서 ‘엄마’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을 보고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이 행성에 문명을 가진 인간이 살았다는 사실은 원숭이법전의 창시자뿐만 아니라 자이우스 박사도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이들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테일러처럼 지능이 있는 인간 종족을 집요하게 추적하여 말살하려는 것이다.
1960년대는 미국과 소련 간의 핵확산 경쟁이 극에 달하던 때로,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던 시기였다. 처음 불시착했을 때 한 대원이 호숫가에 미국 국기를 꽂는데, 이것은 미국의 패권주의를 비꼬는 장면에 다름 아니다.
아무런 양해나 설명도 없이 이 혹성에서 영어가 통용되고 있는 점도 미국의 패권주의와 무관하다고는 볼 수 없으리라. 언제부터 영어가 우주공통어가 된 것인지…. 물론 시나리오의 한계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둘러댈 수 있는 변명의 여지는 있다.
이 영화에서 각 원숭이들의 개성을 또렷하게 살린 분장은 1960년대 영화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다. 또 원숭이 분장을 한 배우들이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어기적거리며 특유의 원숭이걸음을 흉내 내는 등 이들의 열연도 돋보인다.
마지막 부분에, 테일러가 지라 박사와 헤어지면서 나누는 입맞춤은 인간과 원숭이와의 교감이라는 의미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장면이다. 또 테일러가 노바라고 이름 지어준, 까무잡잡하게 생긴 여자원시인은 은근히 섹시한 매력을 폴폴 풍겨 이목을 끌고 있다.
‘혹성탈출’은 우주선의 불시착을 통하여 2천년 후의 지구의 모습을 상상해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마지막 장면에서, 핵전쟁 이후에 나타날 결과에 대한 공포를 일깨우고 잘못하면 인류가 절멸하여 지구가 원숭이의 세상이 된다는 섬뜩한 우려를 충격적인 화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장면을 보자.
테일러는 노바와 함께 말을 타고 무작정 해안선을 따라간다. 얼마쯤 갔을까? 소스라치게 놀란 테일러는 말에서 내려 무릎을 꿇고 땅을 치며 절규한다. 바로 눈앞에 반쯤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이 서있었던 것이다.
“맙소사! 돌아왔어. 여긴 지구였어. 이 미치광이들이 전쟁을 일으켜 지구를 날려버렸어. 이 괴물들! 모두 지옥으로 꺼져버려.”*
첫댓글 속편이 안 나왔었다면 엄청난 화두를 던진 영화 였을텐데 이후 속편에 핵무기 나오고 하면서 역시 SF로...ㅎㅎ
당시에 나왔던 이 영화의 속편들은 대부분 이 영화의 인기에 편승한 B급 아류작들이었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중학교인가 고등학교때인가 시험 끝나고 하교에서 던체관람을 했었는데 그때는
감수성이 예민할때였고 이런 종류의 영화를 처음 접했기에 엄청난 충격이었읍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극에 치달아 핵전쟁의 위협이 고조되던 때 나온 영화였죠.
원숭이가 인간을 사냥하는 장면, 전 인류가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아..기억이 새롭습니다.챨톤헤스톤의 그 연기도 그렇거니와 원숭이들이 사람처럼 행동하며 오히려 사람들을사냥하는장면에 등골이 쫑끗했었죠.처사님이 얘기한 자라박사와의 입마쭘은 나름또 충격이었고
해안을따라 셕시한여자(풍만한 체격의 여자로 기억됨)와 무한정 길을 떠날때의 장면도 새롭고 자유의 여신상이
나오는 장면에서도 또..헉! 어린 감수성으로는 쬐금 감당하기힘든, 지금은 아니지만요..상당 오래갔었습니다.
글 잘읽었습니다..감사합니다..
저도 중학교 때 보았는데, 원숭이들이 지배하는 혹성이 지구임이 밝혀졌을 때 어린 나이였지만 엄청난 충격을 받았죠.
마지막에 해안가에 반쯤 파묻힌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문명의 종말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고
전율했죠. 요 근래에 나온 혹성탈출 프리퀄 2편을 모두 보았는데, 화면기술은 뛰어났지만 스토리의 진지성과 사건의
개연성에서는 후한 점수를 줄 수가 없더군요.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밖에...
@월산처사 맞아요.그 뒤로 나온건 그렇게 큰감흥도 않주고 전편에비해 뭐 만들은거같고 해서 아예 쳐다보지않았죠.
첫충격이 끝까지 가는거 아니겠습니까? ㅎㅎ
@영도 디지털 시대에 살면서 아날로그 시대의 영화를 그리워 하는 사람이 저 혼자만은 아니겠지요?
오래전에 본 영화지만 기억에 남는 장면중 하나는 호수에 불시착한 우주선에서 젊은 여대원 한명이 캡술침대안에서
백발의 머리에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되어 죽어있는 장면이 기억납니다...
네, 그 장면 기억납니다.
그 여자대원만 죽어서 미라가 되어있었죠.
제일 마지막장면(쓰러진 자유의 여신상)은 정말이지 , , , 쇠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랬었죠. 충격적인 반전이었죠.
원숭이들이 사람들을 사냥하는 장면, 쓰러진 자유의 여신상이 보이던 장면의 충격은 충격 전에 참으로 비탄스러웠지요.
동감입니다. 핵전쟁으로 인한 3차대전 후의 지구의 비참한 모습을 충격적으로 보여주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