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북교통방송 힐링 인문학 제37회(2022.8.2) "말라르메의 책론(冊論)과 열행의 5단계 독서법" 내용입니다. ((열행))
Q1. 이번 주부터는 고전명저의 빛나는 내용을 소개해 주신다고 하셨어요.
지금까지 서른 여섯 차례에 걸쳐 인문주제별로 그윽한 향기를 전해 드렸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고전명저별로 빛나는 내용을 소개해 드리려 합니다. 오늘 첫 시간이라 고전명저의 의미와 이들을 읽는 독서의 방법을 먼저 말씀드릴까 합니다.
저는 책을 형용하는 적확한 표현 중 프랑스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1842~1898)가 말한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표현을 가장 좋아합니다. 언젠가 이 표현을 접하였을 때 책의 본질을 정말 잘 포착(捕捉)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제가 재직하였던 대학교 출판부 홈페이지의 대문에 이 구절을 새겨 놓기도 했습니다. 스테판 말라르메는 19세기 후반 프랑스 시단을 폴 베를렌, 아르튀르 랭보와 더불어 주도한 시인입니다. 상징주의의 창시자라 불리고, 에드거 앨런 포와 샤를 보들레르의 영향을 받은 그는 폴 발레리와 앙드레 지드 등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가 주도한 ‘화요회’에는 릴케를 포함한 당대의 문사들이 모였습니다.
Q2. “결국 세계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이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말라르메의 표현은 음미할수록 공감을 주어요.
말라르메는 일간지 기자 쥘 위레와의 대담에서 바로 이 표현을 썼습니다. 그는 한 권의 아름다운 책과 세계를 등치할 정도로 ‘한 권의 아름다운 책’에 대한 경외심이 아주 컸습니다. 그의 초기 시 중에 <바다의 미풍>이 첫 시집 「목신(牧神)의 오후」(1876)에 실려 있는데, 그 첫 행에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모든 책’은 ‘한 권의 아름다운 책’ 같은 책을 다 읽었다는 말이고, 이런 책을 다 읽고 난 후 자신도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정녕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는 우주의 모든 것을 종합하는 ‘대작’, 단 한 권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책을 꿈꾸었습니다. 이 책은 대문자로 표기되는 책(Le Livre)입니다. 말라르메는 퇴임 후 퐁텐블로(파리 남동쪽 57km) 근처 발뱅에서 죽었는데, 죽기 전까지 발뱅과 파리를 오가면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습니다. 그의 시는 그렇게 많이는 발표되지 않았고 어려워 생전에는 잘 읽히지 않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높이 평가받았습니다.
✿ 낭송 ✿
육체는 슬프다, 아아!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구나.
달아나리! 저곳으로 달아나리! 미지의 거품과 하늘 가운데서
새들 도취하여 있음을 내 느끼겠구나!
어느 것도, 눈에 비치는 낡은 정원도,
바다에 젖어드는 이 마음 붙잡을 수 없으리,
오, 밤이여! 백색이 지키는 빈 종이 위
내 등잔의 황량한 불빛도,
제 아이를 젖먹이는 젊은 아내도. (후략)
(말라르메, <바다의 미풍>)
Q3.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역시 말라르메가 말하였듯이, 자신 이전에 나온 ‘한 권의 아름다운 책’을 두루 읽어야 하겠습니다. 저는 5단계 독서법으로 정리해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고전명저를 혼자서 두 번 읽는 단계입니다. 가벼운 책도 한 번 읽어서는 자신의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고전명저는 인간의 본질에 깊이 천착한 책이기에 적어도 두 번은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단계는 두 번 읽으면서 마음에 다가오는 것을 표시해 두었다가 초서(鈔書)를 하는 단계입니다. ‘초서’는 ‘차기(箚記)’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꼭 해야 읽은 것을 간직하고 활용할 수 있습니다. 좀 귀찮다 싶어도 그때그때 애써 초서를 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초서 독후감’이라 부르면서 하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이 다작을 한 바탕도 평소의 초서이고, 유배지에서 아들들에게 편지를 써 보낼 때 강조한 것 중의 하나도 초서입니다.
Q4. 두 번 읽고, 꼭 초서를 하라고 권하시네요, 나머지 삼사오 단계는 어떤 것인지요?
세 번째 단계는 독서모임을 만들어 함께 읽고 독서토론을 하는 단계입니다. 아무리 책을 많이 읽고 잘 읽는다고 해도 혼자서는 놓치는 것이 많습니다. 모여서 읽는 것을 토론하고 나누다 보면 구멍난 것들이 메워지는 걸 실감할 수 있습니다. 독서모임 참여를 꼭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네 번째 단계는 독서모임에서 독서토론한 것을 초서 독후감에 반영하는 단계입니다. 자신이 놓친 것을 많이 보완할 수 있기에 이 내용을 반영해서 부족한 점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강의하고 난 후에 반드시 리뷰를 하는데, 독서모임 끝나고도 꼭 리뷰를 해서 새로 파악하게 된 알맹이들을 챙깁니다.
다섯 번째 단계는 독서내용과 관련된 문화유산을 직접 답사하는 단계입니다.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고,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다”고 하지 않습니까! 독서와 답사를 합일시키면 더 말할 나위 없겠지요. 「논어」와 「맹자」를 읽고 공자와 맹자의 본향 중국 산둥성 곡부와 추성을, 「대학」과 「중용」를 읽고 이들을 「예기」에서 독립시켜 사서(四書)의 지위에 있게 한 주자의 고향 중국 푸젠성과 안후이성 등을 직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텍스트의 내용이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이렇게 5단계 독서법으로 하면 아주 원만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Q5. 원장님의 5단계 독서법은 누구에게나 좋은 독서법이 될 듯해요. 저도 책 읽기를 참 좋아하고 소개하는 플랫폼을 갖고 있기도 한데요, 원장님, 함께 읽으면 왜 좋은지를 좀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혼자 읽어서 도달할 수 없는 원만한 지혜를 함께 읽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독서운동가들에 의하면 혼자 읽은 책은 내용의 10%밖에 기억하지 못하지만, 함께 책을 읽고 나누면 내용의 70%를 기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혼자 읽으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와도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지만, 함께 읽으면 독서토론하는 동안 자연 알게 되는 알 수 없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도 늘 체험하고 있습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 현상이 있습니다.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더 효과가 있고, 혼자 책을 읽고 끝낼 때보다 여러 사람이 모여 독후감을 함께 나눌 때 더 큰 축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개미시대가 아니라 거미시대(자신을 낳아준 어미의 몸을 잡아 먹고 성장하는 거미와 같이 비인간적 상극의 시대를 말함)라 합니다. 비인간화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소속감과 친밀감이 넘치는 소모임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이영애 외, 「치유가 일어나는 독서모임」, 조이선교회, 2007, 14쪽). 소모임 중 최상은 독서모임이라 하겠습니다. 회수도 한 달에 한 번이면 족합니다.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 속으로 들어갈 것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