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행론 읽는 기쁨] <25> 제2편 제4장 심인공부 ①
만다라회 기획, 박희택 집필
「실행론」 제2편 교리편의 제4장은 ‘심인공부’에 관한 회당대종사의 자증교설이다. 제2장 ‘심인진리(불심인의 진리)’ - 제3장 ‘심인불교’ - 제4장 ‘심인공부’ 순으로 전개되고 있다. 장제(章題)와 제목이 같은 제1절 ‘심인공부’에서는 심인불교 신행을 심인공부로 표현하고 계신다.
“심인불교는 심인공부이니 육자진언으로써 심인을 깨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인을 믿고 행해야 한다. 하나를 깨쳐서 아는 것은 태양과 같이 밝아서 무한하고, 낱낱이 배워서 아는 것은 박학(博學)이라도 유한하다(실행론 2-4-1-가).”
심인공부는 심인을 깨치는 공부이며, 이는 육자진언으로 하여야 한다는 말씀이다. 심인을 깨치려면 우리의 청정본심인 심인을 믿고 그대로 행해야 한다. 청정본심대로 행하는 것이 무위법이 된다. 그리하여 대종사께서는 ‘하나를 깨쳐서 아는 것은 태양과 같이 밝아서 무한하고’로 무위법(無爲法)을, ‘낱낱이 배워서 아는 것은 박학(博學)이라도 유한하다’로 유위법(有爲法)을 표현하셨다.
일찍이 노자는 「도덕경」 제48장에서 “학(學)은 할수록 날로 모르는 것이 늘어나고, 도(道)는 할수록 날로 모르는 것이 줄어든다. 줄어들고 또 줄어들어서, 무위 곧 하지 않음에 이르른다.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음이 없다(爲學日益, 爲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爲. 無爲而無不爲)”고 유위법과 무위법을 극명하게 표현한 바 있는데, 이는 「주역」 계사상전 끝부분에 나오는 기(器, 形而下者)와 도(道, 形而上者)의 노자식 변용일 것이다. 대종사의 심인공부 말씀을 독송할 때마다 노자의 언어가 떠오르는 것은 아름다운 회통(會通)이 아니고 무엇이랴! 1980년대 어느 한해 진각청년 하기수련대회 교재에 대종사의 심인공부 말씀과 노자의 위학일익과 위도일손 말씀을 함께 실었던 기억이 새롭다.
주지하고 있듯이 「금강경」 응화비진분은 “일체 모든 유위법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 같으니 이렇게 관찰할지라(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로 설하고 있다. 육여(六如) 또는 육유(六喩)로 불리는 ‘몽환포영로전’은 유위법의 한계성을 설파하는 비유이다. 대종사께서 ‘유한하다’고 표현하신 바이다.
유한성의 유위법이 아닌 무한성의 무위법은 하나를 깨쳐서 아는 데서 가능하다. 대종사께서는 하나를 깨치는 것을 심인을 깨치는 것으로 설하시고, 심인을 깨치는 것은 육자진언으로 가능하다고 설하신 것이다. 그런데 육자진언 염송 수행은 생활 속의 육바라밀 실천과 상응한다. 이 상응에 관해서는 실행론 제1편 제3장 제2절에서 설하신 바 있거니와, 심인행자들은 육자진언을 염송하면서 육바라밀을 생활 중에 실천하여야 함을 교설하신 것이다. 다시 대종사의 말씀을 독송해본다.
“심인공부는 본심을 찾는 것이니 곧 육자진언으로써 심인을 밝히는 것이다. 진리는 내 안에 가까이 있으니 스스로 육행 실천하는 것이 쉬운 법이요, 이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다. 본심을 가지고 살아가면 복이 되고, 본심을 잃고 살아가면 병이 된다(실행론 2-4-1-나).”
가항에서 육자진언으로써 심인을 깨치는 것이 심인공부라 하신 것을 부연한 것이 나항이다. 육자진언으로써 심인은 밝히고 깨치는 심인공부는 결국 본심을 찾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본심진언인 육자진언을 염송하여 본심을 찾으면 그것이 바로 심인을 밝히고 깨치는 심인공부가 된다고 설하신 것이다. 본심을 찾아서 살아가면 복된 사람이요, 본심을 잃고서 살아가면 병든 사람이다.
그런데 육자진언 염송은 생활 가운데 육행(육바라밀) 실천과 짝한다. 육자진언 염송을 하면서 육행 실천을 하지 않으면 구업에 머물기 쉽고, 육행 실천을 한다고 하면서 육자진언 염송을 하지 않으면 본심을 찾기 어렵다. 이러한 본심진리가 내 안에 가까이 있음을 아는 것이 지혜라고 지혜를 정의하고 계신다. 대종사의 이러한 지혜관은 여러 차례 개진된 바 있다. 지혜란 진리를 바로 보는 것! 이 진리는 본심진리를 지칭한다.
“진리를 아는 것을 어떤 사람은 지혜라 하고(실행론 2-2-3-나),”
“모든 것은 진리 가운데 있다. 지혜는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다(실행론 2-8-5).”
“지혜 있는 사람은 진리를 아는 자이며 자성을 깨달은 자이며 본심이 있는 자이다(실행론 3-3-5-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