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고, 풍부한 마음은, 마치 고무풍선처럼,
감정의 영역, 본능의 영역, 지성의 영역. 이성의 영역,
그리고 중심에 상념의 영역,
육체 행동으로 연결되는 의지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3차원을 넘어선 세계. 의식계(=영계)로부터,
이 지구상이라고 하는 환경에 태어났습니다.
육체주의 오관, 눈 귀 코 혀 몸에 사물의 판단을 맡기고,
선장인 마음을 통해서,
바른 판단을 해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환경, 교육. 사상, 습성, 자아 아욕에 의해,
바른 마음의 기준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잊어버리기 쉽게 되고 만 것입니다.
족함을 잊어버린.
갖가지 욕망, 위선, 원한, 우쭐대는 마음, 비난, 분노.
가난한 마음. 허례허식. 비방, 자기 보존, 애욕.
무자비한 상념과 행위는,
반드시 마음에 왜곡(이지러짐)을 만들어 내고 마는 것입니다.
왜곡(이지러짐)은 마음의 흐림을 만들어,
신의 자비의 빛을 막고,
괴로움을 만들어 내 버립니다.
신의 자애의 빛은,
만생만물에게 평등하게 주어지고 있지만,
사람 각자의 마음의 상태에 따라 (빛은) 변하는 것입니다.
[ 불상의 후광 --- 마음의 형태 ]
마음이 둥글고, 풍부하여,
편협되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신체로부터는
부드러운 황금색의 빛이,
마치 (온몸을 큰) 캡슐을 씌운 것처럼 나오고 있습니다.
과거세에 있어서, 넓은 마음을 만들어 내었던 사람들이,
현세에서, 더욱더 정도를 실천한 결과, 보이는 빛으로,
그것은 여래상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후광입니다.
그것도 마음과 행위의 상태에 따라 빛의 양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후광은,
머지않아 돌아가야 하는 '저 세상의 육체다' 라는 것입니다..
빛의 양에 의해, 생활의 환경이 달라집니다.
그것이 저 세상의 구조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마음이 풍부하고 넓은 사람들은,
광자량이 많기 때문에 상단계이고,
어두운 사람들은,
그 어두움에 비례한 세계가 존재한다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두, 인생에 있어서 배운 모든 학습을 통한 성과이고,
그 기준은 얼마나 올바르게 편협되지 않는 인생을 보내고,
풍부한 마음을 만들어 냈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풍부한 마음이란,
스스로의 생활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과 행위를 조화하는 것으로,
태양의 열, 빛이,
자비를 대자연 만물만생에게 평등하게 주어도
아무런 광열비를 청구하지 않는 것처럼,
사회 인류를 위해,
이 감사를 얼마나 보답하여 인류의 대조화를 위해 노력했는가.
라고 하는 것이 마음을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학습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현상계에 태어나 버리면,
우리는 표면 의식이 10%정도이기 때문에.
타인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나.
과거세의 일 등을 모르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태어났을 때는,
100% 가까이가 잠재의식으로 된,
백지의 상태로 스타트를 끊고,
서서히, 본능의 부분으로부터
표면의식이 발달해서 겉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90%가 잠재하여,
그 속에 전생 윤회의 비밀이 닫혀 버리는 것입니다.
이 보고의 문을 여는 열쇠가,
올바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팔정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견,, 바르게 본다...
정사,, 바르게 생각한다....
정어.. 바르게 말한다...
정업.. 바르게 일한다....
정명,,, 바르게 생활한다....
정진... 바른 길로 정진한다....
정념,,, 바르게 염원한다....
정정... 바르게 선정에 든다.
(주; 선정에 들기 전, 먼저 반성을 한 후에....
자기 전에 그날 하루를 바르게 보았는지,
바르게 생각했는지,
바르게 말했는지,
바르게 일했는지
바르게 생활했는지,
바른 길로 정진했는 지,
바르게 염원했는지를
반성한 후에 선정에 드는 것이 정정(正定)
부처님께서 하루 일과를 마치시고 반드시 하셨던 수행.)
이것을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이,
마음을 둥글고, 풍부하게 하고,
일체의 집착으로부터 떨어져 족함을 알고,
대자연의 혜택에 감사하고,
윗사람을 존경하고, 양친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효행을 하며, 생활할 수 있는 환경에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 고 하는 것입니다.
법을 알고, 감사의 마음을 얻으면,
사람은 보은이라는 행위에 의해 나타내는 것이
당연한 길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구조를 보았을 때,
거기에는 부모와 자식의 부조화, 노사의 투쟁,,
스승과 제자의 단절 등.
어디에, 감사의 마음이 있고,
어디에 보은의 행위가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생활의 지혜로서 만들어 낸 물질문명,
그리고 경제기구 때문에. 자기 자신이 노예로 영락해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마음”의 존엄이 없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도 마르크스주의도,
물질과 경제가 근본이고, “마음”을 볼 수 없습니다.
그 결과 부조화한 공해를 만들어내어 육체의 보존조차 어려운 현상입니다.
마음을 잃은 물질문명은,
인류 스스로의 살아가는 길을 닫아 버리겠지요
신이 주신 대자연에는, 스모그는 없었을 터입니다.
이 스모그가, 광화학 스모그를 만들고,
태양의 바른 열광을 혹은 변하게 하고,
혹은 막아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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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야,
너는 오고,
나는 간다.
너는 천사로 오고,
나는 마귀로 간다.
나도 너처럼 올 때는 천사로 왔는데,
어찌하여 마귀로 돌아 가는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