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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 대성당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천국의 열쇠라고 합니다..

오늘은 성베드로 대성당 투어를 하는 날이다. 아침을 먹고 버스 타고 지하철을 타고 바티칸 투어 집결장소인 옥타비아누스역에 도착하니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지하철 밖으로 나와 젤라토 가게에서 젤라토 하나를 사서 먹고 집결장소인 지하철로 다시 내려가니 오늘의 가이드 '이송이'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가이드인 '이송이'씨는 이태리에서 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 해박한 지식을 소유했고 성실하게 가이드 임무를 수행하여 보람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이 바티칸 투어를 마친 지 약 3달 20일이 경과하여 기억이 가물가물하여 제대로 작성을 하였는지가 약간 염려됨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을 나와 약 10분 정도 걸으면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을 할 수 있는데 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듯이 입장을 하려면 때로는 약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된다고 한다. 다행히 우리는 신속 입장할 수 있는 입장권을 사전에 예약하였기에 약 20분 만에 바티칸 박물관으로 입장할 수가 있었다.
바티칸 박물관 입장을 하는 곳으로 문 위에 조각품이 있는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모형이다.
【바티칸 박물관Vatican Museum , Musei Vaticani】세계 최대의 박물관
관광객들이 바티칸 시국을 방문하는 목적이 대부분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하기 위해서일 정도로 바티칸 박물관은 바티칸 시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관광지다. 바티칸 박물관은 영국의 영국 박물관,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과 더불어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고대 로마 시대의 유물과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의 걸작들은 최고로 손꼽히고 있는 곳이다.
바티칸 박물관은 1506년 산타 마리아 마조레 궁전 근처의 포도밭에서 라오쿤상이 발견되고, 당시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이 조각상을 전시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또한 율리우스 2세는 바티칸에 당대 최고의 화가와 조각가들을 불러들여 바티칸 궁전의 건축과 장식을 맡겼는데, 이 또한 바티칸이 지금의 최고의 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가 되었다. 바티칸 박물관이 처음 일반에 공개된 것은 18세기 후반으로, 역대 교황의 궁전으로 사용되던 바티칸 궁을 박물관으로 개조하여 공개한 것이다. 소장된 유물만도 며칠 동안 봐도 모자랄 만큼 방대하기 때문에, 바티칸 박물관을 방문할 예정이라면 시간적 여유를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이 좋다.(출처 : Enjoy 이탈리아)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인 천지창조를 그린 미켈란젤로(좌)와 라파엘로 방/테피리스트를 그린 라파엘로(우)는 바티칸 박물관의 핵심이다..
약 20분 만에 신속 입장을 합니다..
이곳 솔방울 정원에서 사진을 찍을 수 없고 현장에서 설명을 들을 수 없는 '사스티나 성당'의 작품들에 대하여
약 30분에 걸쳐 가이드의 설명을 듣습니다/ 앞의 건물이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바티칸 솔방울 정원Vatican Cortile della Pigna】바티칸의 유일한 정원
바티칸 박물관에서 들어갈 수 있는 정원은 이곳밖에 없다. 정원의 정면에 솔방울이 있고 바로 뒤에 기둥이 있는 브라초 누오보 궁전이 있다. 가이드들은 이곳에서 본격전인 관람에 앞서 어느 정도 미리 이야기를 해 준다. 가이드가 없는 배낭여행자들은 공원 뜰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과 박물관 내부의 모습을 걸어놓은 판을 보면서 다른 관광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 도움이 된다. 그래서 또 뙤약볕을 맞아야 하니 모자는 필수!
거대한 솔방울은 높이가 약 4m에 육박한다. 중세 때 바티칸 대성당 앞에 있었는데 1608년에 이곳으로 옮겨 왔다. 솔방울 위 둥근 돔 형태의 내부 벽감은 판테온을 모방한 것이다. 이 솔방울 장식 아래 기단은 3세기의 것으로 운동선수의 모습이 새겨 있다. 양옆에는 2세기경의 공작이 있는데 복제품이다. 원본은 정원 맞은편의 브라초 누오보에 있다. 하지만 개방하지 않는다. 이 솔방울 조각 양옆의 계단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중세 건물의 보편적인 양식이다. 바로 앞 분수 옆에 사자상이 있는데 기원전 4세기 이집트의 작품이다. 솔방울 상은 나중에 이집트 박물관을 관람하다가 다시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출처 : Enjoy 이탈리아)
‘바티칸’이라는 이름은 ‘음유시인’라는 뜻의 라틴어 ‘바테스(vates)’에서 비롯되었다. 고대의 음유시인들은 예언자, 즉 점술인 역할도 했다. 테베레 강 너머 서쪽 언덕에 살던 이 음유시인들은 생계를 위해 그곳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미래를 점쳐주곤 했다. 네로 황제가 만든 원형경기장과 베드로를 포함한 순교자들의 묘지가 있던 이 언덕에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진 것은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에 따른 것이었다. (출처 : Enjoy 유럽)
솔방울은 높이가 약 4m/ 솔방울 장식 아래 기단은 3세기의 것으로 운동 선수의 모습/ 양옆에는 2세기경의 공작이 있는데 복제품이다.
솔방울이 상징하는 의미는 부활과 생명, 영적 깨달음, 연결과 지속성을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바티칸에 설치한 것이다..
브라초 누오보 궁전은 개방하지 않고 / 아르날도 포모도로의〈천체 안의 천체(Sfera con Sfera)〉1990년대의 작품이다..
둥근 조형물은 환경오염과 자연훼손에 의한 지구온난화와 기상이변 등으로 지구 수명이 단축되고 있다는 경고를 담은
작품으로 전세계 여러 곳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팔각정원으로 이동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의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 이 조각을 모델로 그렸다고 하는 벨레데레의 아폴로..
【벨레데레의 아폴로】
이 작품은 기원전 4세기의 그리스 청동상을 2세기경 로마인이 모사한 작품이지만, 진품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걸작이다. 15세기 말에 이탈리아 중부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인체 해부학적으로 완벽한 이 조각은 르네상스 조각가들에게 최고의 표본이 되었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최후의 심판〉의 예수님의 얼굴을 그릴 때 이 조각을 모델로 그렸다고 한다. 아폴로는 활을 쏜 후 활이 과녁에 맞았는지를 확인하려고 한 발짝 다가간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출처 : Enjoy 유럽)
라오콘 군상 /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목 졸려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을 드러내는 표정이 압권이다..
【라오콘 군상】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진 이 작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아들을 구하지 못하는 무기력함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과 놀란 근육의 표현이 압권이다. 라오쿤은 아폴로를 섬기는 트로이의 신관으로,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 군의 목마를 트로이 성으로 들이는 것에 반대해 신의 노여움을 사서 뱀에게 두 자식과 함께 목 졸려 죽임을 당했다. (출처 : Enjoy 유럽)
이 작품을 보고 미켈란젤로와 많은 조각가들이 영감을 얻었다고 합니다.
라오콘 군상은 트로이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고대 그리스 조각상이다. 이 작품은 1506년에 로마에서 발굴되어 바티칸미술관에서 대중에 공개된 이후 가장 유명한 그리스 조각 중 하나가 되었다. 이례적으로 플리니우스가 극찬한 조각상과 매우 비슷하다.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과 그의 두 아들이 바다뱀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모습을 묘사하며, 인물들의 크기는 실제 인간의 크기보다 크며, 높이는 10미터가 약간 넘는다.(출처 : 위키백과)
동물을 도살하는 데 사용되었다고 하는 동물 도살통..
벨베데레의 토르소..
【벨베데레의 토르소】
이 작품 역시 바티칸에 소장된 작품들 중에서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몸통만 발견되었기 때문에 당시 미켈란젤로에게 이 작품의 상태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이 상태 그대로 완벽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이 몸을 그림에 모델로 넣었다. 또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토르소가 모델이 된 작품이다. (출처 : Enjoy 유럽)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온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 욕조가 있는 원형의 방..
【원형의 방】
판테온의 모습을 모방해서 만들어 놓은 이 방에는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온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 욕조가 있다. 또한 바닥의 모자이크 역시 아름다운데, 아무리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모자이크를 밟아도 돌이 워낙 깊숙이 박혀 있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출처 : Enjoy 유럽)
에페소 아르테미스, 2세기경 하드리안 빌라의 그리스 극장(Greek Theatre of Hadrian's Villa)에서 출토되었다. B.C.4세기경의 원작을 로마 시대에 복제한 것이다. 1781년에 바티칸 박물관이 구입하였다. 에페소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아르테미스 여신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보인다. 에페소 아르테미스의 상체를 덮고 있는 타원형 물체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나, 전통적인 해석은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여러 개의 젖가슴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모습을 한 디오니소스와 사티에르 (Satyr with Dionysus as a child), 연도 미상 /
1854년 라테라노 성당의 스칼라 산타(Scala Santa)에서 발견되어 옮겨왔다..
루이지 메디치, 주세페 리날디, 교황 레오 13세의 문장이 새겨진 대리석 상감 바닥. 문장의 푸른색은 귀중한 청금석,
라피스 라줄리(Lapis Lazuli)를 사용하였고, 대리석은 마르모나타의 엠포리움 발굴 동안 발견된 고대 대리석을 사용하였다.
성스러운 미덕 (Holy Virtue), 4th bay 측면 / 포도밭에서 밭을 일구며 그리스도를 보려고 애쓰는 농부에게,
천사가 미덕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농부 주위에는 고결한 자비의 행동들이 그려져 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교의 선포 (Proclamation of the dogma of the Immaculate Conception)
라파엘로의 '성체 논의'로부터 영감을 받아, 천상과 지상의 세계를 구분하여 2단으로 나타내고 있다. 윗 단에는 천상에서 성모 마리아가 성부, 성자, 성령과 성인들에 둘러싸여 있고, 아랫단에는 교황 비오 9세가 성직자들 앞에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교의를 선포하고 있다.
1858년 교황 비오 9세(재위 1846~78)는 1854년 8월에 자신이 선포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교리 선언'의 대칙서 '인에파빌리스 데우스(Ineffabilis Deus, 형언할 수 없으신 하느님)'를 기념하기 위한 프레스코화 제작을 의뢰하였다.
프란체스코 포데스티(Francesco Podesti)는 보르지아 타워(Borgia Tower)에 위치한 이 방에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교의 선포',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에 관한 논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 제대의 성모 대관' 프레스코화를 삼면의 벽에 그렸고, 이 그림에서 유래하여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의 방'이라 이름 붙이게 되었다.
폰티안 루베리니, 성 알렉산데르의 시신을 수습하는 성녀 그라타, 1887..
프라카시니 체사레, 고루쿰의 순교 (The Martyrs of Gorkum), 1867 / 19명의 가톨릭 신자 그룹이 1572년
네덜란드의 고루쿰 마을에서 가톨릭 교회를 위해 순교한 모습을 그렸다.
신교 지역인 네덜란드 독립전쟁 중, 이 지역의 수도사들에게 성체와 교황의 수위권(Papal supremacy)을 포기하도록 강요하였으나, 이 제안을 거부하였고, 11명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1명의 도미니코회 수도사, 2명의 노베르 참사회 수도사들이 교수형에 처해졌다. 1867년 교황 비오 9세가 이들을 시성하였다.
얀 마테이코,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의 1683년 비엔나에서의 투르크족에 대한 승리, 1883..
1683년 투르크 군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오스트리아 황제 레오폴드 1세(재위 1657~1705)는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 재위 1674~1696) 에게 도움을 청했고, 비엔나 인근에서 소비에스키가 총지휘한 카톨릭 연합군은 투르크 군과 대대적인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을 계기로 얀 3세 소비에스키는 유럽을 투르크의 위협에서 지켜낸 위대한 장군이며, 이슬람으로부터 기독교 세계를 지켜낸 수호자로 불렸다.
방에 걸려있는 얀 마테이코(Jan Mateiko, 1838~93)의 대작, '폴란드 왕 얀 3세 소비에스키(Jan III Sobieski)의 1683년
비엔나에서의 투르크족에 대한 승리'에서 '소비에스키의 방' 이름이 유래되었다.
교황 최초로 개신교와 정교회를 이단이 아닌 갈라진 형제라 공식적으로 발표 레오 13세 /총리 샤크리프링 파트브사비..
태피스트리 갤러리 / Galleria degli Arazzi
아라찌(Arazzi) 는 이탈리아어로 태피스트리를 뜻한다. 태피스트리 갤러리는 한때 회화를 전시하기도 했으며, 현재는 바티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다양한 태피스트리들을 전시하고 있다.
18세기에 도메니코 델 프라테와 안토니오 마리니가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마치 입체처럼 보이나 실은 평면인 착시화이다.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태피스트리들은 교황 클레멘스 7세(재위 1523~34) 당시 라파엘로의 제자들이 그린 밑그림, 카툰(Cartoon)을 바탕으로 브뤼셀에서 직조한 플랑드르 태피스트리들이다. 이 태피스트리들은 라파엘로 생전에 만들어졌던 Scuola Vecchia (Old School's, 1513~21) 태피스트리와 구분하여, Scuola Nuova (New School's, 1524~31)이라 불린다. 태피스트리들은 원래 1531년부터 시스티나 성당에 걸려있었다. 뉴스쿨 태피스트리 12개 세트 중 현재 11개가 남아있고, 그중 9개가 1838년부터 태피스트리 갤러리에 전시되고 있다. 올드스쿨 태피스트리 12개 세트 중 남아있는 10개는 바티칸 피나코테카에 전시되어 있다.
도메니코 델 프라테와 안토니오 마리니가 그린 천장의 프레스코화는 마치 입체처럼 보이나 실은 평면인 착시화..
예수 승천 (Assumption of Jesus)
교황 바오로 5세에 의해 추기경이 된 마페오 바르베리니 (Maffeo Barberini is made a cardinal by Pope Paul V)
무고한 유아학살 III (Massacre of Innocents III)..
부활 (Resurrection)이란 작품은 좌, 우로 가면서 보면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엠마오의 저녁식사 (Supper at Emmaus)
지도의방 입니다..
지도 갤러리는 1580년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재위 1572~85)가 만들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는 지도 갤러리 위에 근대식 천문대인 '바람의 탑(Torre dei Venti)'를 만들고, 1582년에 현재 사용되는 달력인 그레고리력 개혁(Gregorian Calendar Reform)을 공표하기도 했다. 도미니크회 수도사이자 수학자, 천문학자인 이냐지오 단티(Ignazio Danti)의 지도 밑그림을 바탕으로, 바람의 탑을 설계하기도 한 오타비아노 마쉐리노(Ottaviano Mascherino)가 1580~83년 동안 120m 길이의 갤러리에 40개의 지도 프레스코화를 완성하였다.
로마시내..
근대 이탈리아(Modern Italy)..
다음은 라파엘로의 방들, 시스티나 성당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