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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30일 주일대예배 설교문 /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 / 살전 5:16-18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은 교회 좀 다녔다 하시는 분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아멘.
고린도후서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7:10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후회할 것 없는 인생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을 읽다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 되는 구절을 만나시면 그 말씀을 특별히 가슴에 새기시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후회할 것 없는 인생이 될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보통 문장의 구조는 서론, 본론, 결론 이런 구조이거나 기승전결의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대부분의 문장구조는 키아스무스구조로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말로 교차대구법(交叉對句法, chiasmus)이라고 하는데요, 서로 교차구조를 이루다가 가운데에서 문장에서 결론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말 식으로 본문을 읽으면 첫째는 항상 기뻐하고 둘째는 쉬지말고 기도하고 셋째는 범사에 감사하라 이렇게 신앙생활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이 해야 할 하나님의 뜻이다! 라고 여러분이 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구조인 키아스무스 구조로 읽으면 다릅니다.
어디가 중요하다고 했지요? 가운데! 그러니까 항상 기뻐하라와 범사에 감사하라가 교차대구로 연결되고 쉬지말고 기도하라가 본문에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라는 것입니다. 알겠지요?
자, 그러면 먼저 항상 기뻐하라부터 보겠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따라합시다. 항상 기뻐하자!
대한민국은 실로 세계 약 200개 나라 중에 위대한 기적을 이룬 나라입니다.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6·25때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에 속했던 이 나라가 세계 무역 9위의 경제대국으로 올라섰습니다. 세계 수많은 개발도상국 중 유일하게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런데 올해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어떻게 될까요? 2018년 올해 세계행복지수는 57위라고 합니다. 행복지수로만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나라군에 속합니다. 한국이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세 단계 위인 54위입니다. 알다시피 일본은 2011년 쓰나미로 인해서 무려 1만 5천명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아직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문제는 해결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민란이라도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본보다는 행복해야 되는 것 아닙니까?
들리는 소리는 항상 안 좋은 뉴스고 “이게 나라냐?” 그러면서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안달인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 있으면 그냥 외국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요 한국 오고 싶어서 안달인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지요. 성지순례때 카자흐스탄 공항 비행기를 타고 한국 들어오는데 카자흐스탄 청년들이 한국에서 돈 벌려고 비행기에 가득했었습니다.
그중에 서울이 제일 살기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서울이 지옥이래요. 학생들에게는 입시지옥이요, 청년들에게는 결혼과 직장, 집을 포기한 생지옥이랍니다. 제가 지방에 20년 이상 있다가 서울 왔지 않습니까? 여기가 지옥이라고요? 지방 사람들은 서울 오고 싶어서 안달입니다.
특히 도봉구는 공기 좋고, 물가 싸고, 집값도 웬만한 지방보다 쌉니다. 좀 기뻐합시다.
도봉구 사는 것을 기뻐하고 동문교회 다니는 것을 기뻐하고. 얼마나 좋습니까? 바로 뒤에 산이고, 이렇게 좋은 성도님들만 있고...
좀 민감한 말씀을 드리자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며 살았습니다. 이제 통일의 문이 조금 열리려고 하니 “우리나라가 공산화된다. 좌경세력이 나라를 김정은에게 팔아넘긴다.”고 난리와 소문이 가득합니다. 저는 문재인주의자가 아닙니다. 저는 문재인 대통령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바라던 통일의 문이 이제 조금씩 열려 가는데 교회가 앞장서서 통일을 반대하는 반통일세력이 되면 안 됩니다. 정말 나중에 어찌어찌해서 통일되고 난다면 기독교선교가 막혀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나라가 공산화되도록 그냥 놔두겠습니까? 또한 하나님께서 공산화되도록 그냥 놔두시겠습니까? 오히려 통일을 놓고 기도했는데 기도응답이 오고 있구나, 기뻐하십시오.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계속 기도해야 될 것이고 이제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시는 길 가운데 변화를 대비할 준비, 냉철함, 통찰력을 갖게 해달라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살기 좋고, 우리가 평생 소망했던 통일의 길도 열어져 가는데 왜 우리가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있을까요?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인한 물질적인 부요함, 육신적인 부요함을 추구하는데 너무 정신이 팔려 존재론적인 부요함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어찌했던지 우리나라가 잘 살고 있는 것은 사실 아닙니까? 그러나 존재론적으로 영원히 영원히 부요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영원히 못살고, 선진국에 비해서 수준은 떨어지고, 나는 어렵고 가난하게 살 것이라고 스스로 결정 내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감사>할 인생이 아니란 것입니다.
잠언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여기서 심령의 근심은 지금 말로 하자면 스트레스입니다. 언론을 통해 들어오는 모든 정보가 스트레스입니다. 말이 긍정이지 어디하나 긍정적인 것이 없습니다. 이제는 살 소망조차 잃게 될까 두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좀 바꾸어야 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달라야 합니다. 구원받은 자의 특징은 기쁨이 충만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구원에 대한 감각이 있기 때문에 찬송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이 기쁨은 감출 수도 없고 쉽게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 무엇도 이 기쁨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세상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인생을 살지만,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삶의 가치관과 방식이 다른 것입니다. 전도하면 세상 사람들이 이런 말합니다. “교회 다니면 떡이 나와, 돈이 나와!”
예, 떡 나옵니다. 예수님이 내가 살아있는 산 떡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전도하세요.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떡이 아니라 물도 주신답니다.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떡도 주시고, 물도 주시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우리의 마음속에 샘이 솟아나듯 기쁨의 샘이 솟아납니다.
세상이 주는 기쁨은 잠깐이요 그 순간뿐입니다. 세상의 것은 우리의 가슴을 채울 수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참된 진리의 샘만이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기쁨을 줄 수 있습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세상 행복지수는 세계 57위. 그러나 우리 성도님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1위가 되길 원합니다. 따라합시다. 나는 행복합니다.
천국은 혼인 잔칫집과 같습니다. 잔치집은 항상 즐겁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가 돌아온 후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함께 기뻐하는 곳이 천국입니다. 천국은 기쁨이 있는 곳이지만 지옥은 통곡소리만입니다. 여러분, 웃음을 상실한 사람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웃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질병입니다. 어린아이들은 하루 평균 300번을 웃는답니다. 웃기만 합니까? 왜 그렇게 또 우는지요? 어른이 되어 병들면 웃음도 슬픔도 잃어버립니다.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슬픔도 알지 못합니다. 패역한 세대일수록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감정이 마비되었습니다. 모두 마음의 병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웃는데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송사리 5마리가 소풍을 갔습니다. 한참을 가다보니 송사리가 6마리가 된 것입니다. 한마리가 끼어든 것입니다. 야 넌 뭐야? 그러니까 그 송사리가 그러더랍니다. 난 꼽사리...
요즘은 세상에 웃음만 주어도 대 성공입니다.
이 16절이 어디로 연결된다고요? 예 18절 감사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인생의 동력이 되면 감사가 되고, 감사가 감사를 낳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기쁨의 샘이 솟고 그 넉넉한 기쁨으로 말미암아 “감사합니다.” 입술로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감사가 있는 곳은 천국이요 불평이 있는 곳은 지옥입니다.
성 프란시스는 감사하는 생활로 일생을 보내신 분입니다. '별빛보고 감사했더니 달빛주시고, 달빛보고 감사했더니 햇빛주시니 감사하노라'
이제 가장 중요한 말씀. 구원받은 성도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뭡니까? 17절 쉬지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는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것이 좋아서 물에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을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에게 있어서 기도는 호흡과 같습니다. 숨을 잠시라도 안 쉬면 죽듯이 우리의 영혼도 쉬지 않고 기도하지 않으면 영이 죽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있어서 기도는 필수입니다. 기도는 구원받은 성도의 특징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인가 아닌가는 기도하는가? 안 하는가?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받은 증거입니다. 어린 아기가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며 울듯이 구원받은 영혼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싶어서 늘 기도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1. 기도는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마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열쇠는 단단히 잠긴 자물쇠를 열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단단히 잠긴 삶의 고루한 운명을 여는 축복의 열쇠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엘리야의 기도는 하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기도는 홍해를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사자굴의 문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습니다. 엘리사의 기도는 사람들의 어두운 눈을 열기도 하고 닫기도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기도는 옥문을 열었고 한나의 기도는 태의 문을 열기도 했으며 요나의 기도는 물고기의 입을 열었고 여호수아의 기도는 저 하늘의 태양과 달을 멈추게도 하고 움직이게도 했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위대한 권세와 능력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2. 기도는 쌓여야 합니다.
제 신앙고백중 하나가 “한 송이 국화가 피기 위해서 봄부터 소쩍새가 운다”입니다. 미당 서정주 선생님의 시지요. 부산에 있을 때 친구목사가 목회가 너무 힘들어서 휴식차 왔습니다. 그때 제가 이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더니 오늘의 ○○○교회가 되었다고 서울에 온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눈이 쌓이면 지붕이 무너집니다. 여러분, 기도에도 양이 있습니다. 기도의 깊이에 들어가고, 응답받는 기도가 되려면 단순히 화살기도로만은 안 될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아버지니까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요. 그런데 아버지는 더 많은 대화를 원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따라합시다. 길으면 기도 짧으면 대표기도
대표기도는 모두가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짧을수록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도에 초보자들은 잠을 자거나 기도를 포기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일대일로 기도할 때는 기도가 쌓여야 합니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어요. 1:29:300 큰 재해가 있기 전에, 그와 관련된 작은 사고나 징후들이 먼저 일어난다는 법칙입니다. 이것을 기도에 적용해보면 한번의 큰 응답을 받으려면 300번의 기도가 쌓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3. 기도는 타오르는 불과 같습니다.
이 불은 굉장히 뜨겁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다락방에서 120문도가 성령세례를 놓고 기도합니다. 마침 성령이 저희들에게 내릴 때에 불의 혀 같은 것이 갈라지듯 내렸다고 합니다. 너무나 뜨거운 그 타오르는 불같은 기도. 이러한 은혜 가운데 다 들어가시기 원합니다.
야곱의 기도에서 완악한 에서의 마음이 녹았습니다. 무쇠도 녹아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의 사람은 불과 같은 사람입니다. “불속에라도 들어가서” 찬양은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다보니 세상 뜨거움은 뜨거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 뜨거움은 능히 감당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 한계가 있습니다. 한창 탈 때는 잘 타는데 쉽게 또 꺼진다는 것입니다. 불 꺼지면 불이 아닙니다. 불은 계속 타오를 때 불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불의 특성은 아무리 타도 그만 타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태우고도 더 탈 것이 없는가 부족함을 느낍니다. 기도도 이와 같습니다. 쉬면 식어버립니다. 불이 꺼집니다. 여기에 기도가 꺼진 분들이 아마도 있을 것입니다. 다시 태우십시오. 다시 기도자의 자리에 들어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시간 예배드리는 우리 모두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줄 믿습니다. 무릇 하나님의 자녀는 그 뜻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중요한 것 쉬지 말고 진짜로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사는 우리에게 이미 은혜는 충만할 줄 믿습니다. - 동문감리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