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17
어느새 11월의 끝자락에 서 있다.
올 한해는 여느 해와 다르게 크고 작은 일들이 나에게 많이 일어났다. 그래서일까.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 올해의 시간들이 꿈을 꾸듯 아득하기만 하다.
지난 일들을 뒤돌아본다. 시어른 기일이 정초 보름 사이로 있어 영월 본가를 두 번 다녀온 날 ‘길이 미끄럽지 않아 다행’이라는 달력 메모에 안도감이 묻어난다. 중순에는 도울기획 사장님 생일이 있어 까만 조끼 속에 우리 부부의 축하 마음도 함께 담아 잠실행 버스에 올랐던 기억이 따스했다.
1월 18일 독서토론일- 방송대 동문 일곱이서 하는 독서 모임인데 한 달에 책 한권은 꼭 읽어야 한다. 눈이 아프다는 핑계로 끝까지 읽지 못할 때도 더러 있지만, 이것마저 없었더라면 아마 난 손에서 책을 놓고 살았을 것이다. 독서는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설 명절 다음날에 에스트로겐 복용이라는 메모가 보인다. 일 년 가까이 불면증과 식은땀 그리고 골다공증까지 앓아 오다 할 수 없이 호르몬제를 복용하기 시작한 날이다. 약을 보충해 주니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말끔해졌다. 참 놀라운 일이다. 폐렴 예방접종에 초음파촬영까지 건강에 신경을 쓴 2월은 짧은날 만큼이나 빠르게 지나갔다.
춘삼월은 아들 생일이 있는 달이지만 정작 생일 날자 아래에는 ‘완도 출발’이라고 적혀 있다. 남편의 회사 동료였던 ‘언침’씨 부부와 2박3일 남도여행을 다녀 온 기억에 미소가 번진다. 청산도를 반나절에 다 돌아보기 어려울 것 같아 택시투어를 했던 선택이 탁월했다. 숙소에서 끓여 먹었던 전복라면 맛을 생각하면 지금도 군침이 돈다. 이집트 유물전을 보러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 갔던 날은,-꽃샘추위에 진눈깨비까지 내려 따뜻한 밥집을 찾아 헤매었던 기억들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딸의 혼사로 양가 집안의 상견례가 4월 2일에 있었다. 그동안 회사 동기 녀석과 삼년 넘게 만나오면서 결혼을 미루기만 하더니 여기서 날을 잡고 나니 예식준비가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그날 안사돈의 편안한 미소 덕분에 딸을 덜 아프게 보낼 수 있었다. 신작수필 ‘5학년 5반 수학여행’의 출산도 유채꽃 향기 가득했던 4월의 일이다.
그렇게 화창한 봄날처럼 끝나가는 줄 알았던 4월은, ‘사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엘리엇’의 싯구처럼 나의 사월은 지독하리만치 춥고 가혹했다. 그것은 엄마와의 영원한 이별이었다. 기침 감기로 입원하신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날아든 청천벽력 같은 엄마의 운명 소식 - 성남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엄마의 얼굴은 비통한 내 마음과 달리 주무시고 계신 듯 편안해 보였다. 지금도 심장 한구석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참 많이 아프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야 그 상흔이 옅어질는지.
엄마가 안 계신 오월 유월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참 많았다. 내가 이 일들을 그대로 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아마 웃으면서 보냈을 것이다. 맞다.
서울 조카결혼식에서 형님께 보냈던 축하 메시지도, 아들이 결혼을 약속한 ‘수아’부모와 나누었던 따뜻한 점심 한 끼도 오월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과 의암호의 물길을 가르며 탔던 카누의 짜릿한 흔들림도 유월 어느 휴일의 일이었다. 그 언저리에 남편과 호치민 3박4일 여행까지 다녀왔음에 지금 내 자신이 적잖이 놀라고 있다.
‘내가 그랬었구나.’ 아련하기만 했다.
7월 말 구인문학 동인들과 홍천 백암산에 다녀 온 메모가 보인다. 골짜기 차가운 물에 발을 담그니 올라오느라 쌓였던 피로가 다 녹아내렸다. 시원함과 푸름에 상쾌했던 기억은 바람결에 묻어 두었다.
딸의 혼사준비로 분주했던 8월이다. 보랏빛 수국이 그려진 모바일 청첩장을 다시 꺼내보니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멀리 빛고을 광주에서 하는 결혼이라 지인들에게 잔치국수 드시러 오란 말도 참 미안하기만 했다. 바쁜 중에도 친정 동생과 함께 ‘백동’ 고모님을 찾아뵌 시간은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강원지방기상청에서 근무하던 아들이 강릉에서 춘천기상대로 발령을 받고 집으로 들어온 때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9월 2일 날씨마저 좋아 더 행복했던 맏딸-은비의 결혼식, 귀한 시간 내어 먼 길 달려와 주신 친인척과 지인들 모습에 콧마루가 시큰해졌다. 고마움은 마음속 깊이 새겨 두었다. 신부대기실에서 고귀한 모습을 한 내 딸이 엄마 손을 꼭 잡는다. 뭉클했다. 이 서방이 되려고 저만치에 서 있던 듬직한 두훈이 모습에 내가 흐뭇했다. 신부를 향한 신랑의 현란했던 춤사위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난다.
감사의 인사를 다니느라 바빴던 9월과, 결혼하여 처음 맞는 딸의 추석 명절이 은근히 신경 쓰였던 시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사흘 뒤면 12월이다. 책상 앞에 놓인 스케줄 달력에는 다음 달 일정까지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결혼하여 처음 맞는 딸과 사위의 생일이 나란히 보이고, 조카 결혼에 문학동인지 출판기념식 거기에 남편 회갑도 들어있다. 얼마 후면 ‘코타키나발루’로 떠날 가족여행과 몇몇 송년 모임에 벌써부터 마음이 바쁘기만 하다.
소소한 일들로 또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은 이천사 친구들과 콘서트에 가기로 한 날, 내 남은 생生에 가장 젊은 순간이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따라 하얀 겨울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간다.
사라지는 것은 이야기만 아니다. 2017년은 내게서 엄마가 떠나가셨고 맏딸도 둥지를 떠난 새처럼 자기의 세상 밖으로 날아갔다. 이제 고독은 남겨진 자가 짊어질 몫일지니……. 2017 년이여,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