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 실즈(Brooke Christa Shields, 1965년)
1980년대 이후 세대들은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피비 케이츠, 소피 마르소, 왕조현과 함께 당대 (주로 1970년대생) 국내 남학생들의 책받침에 모셔져 있던 외국인 책받침 여신 중 한명이였다. 아이돌 그룹이란 개념도 없던 시절 세대들의 해외 아이돌이었다고 보면 이해가 편하다. 당시 학교 근처 브로마이드를 파는 지역에서 이들의 브로마이드를 취급하지 않는다면 브로마이드 가게 맞나 의심해볼 정도였다.
짙은 눈썹과 183cm라는 아주 큰 키, 풍성한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며 아기 때부터 외모로 눈길을 끌었다. 그녀의 리즈 시절 영화를 한편이라도 감상해본다면 제2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현재는 나이+약물 문제로 인해서 외모가 역변했다. 배우로서도 90년대 재도약하지 못하면서 이후 인지도가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오히려 재도약하는건 나이가 훨씬 든 이후. 비즈한국 기사에서 세기의 미녀, 브룩 실즈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다.
뉴욕의 최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다만 상류층 혈통은 부계로부터고, 어머니 테리 쉴즈는 그냥 평범한 중산층 출신의 배우였다. 이러한 신분차이 때문에 그녀의 부모는 결혼부터 친가의 반대에 부딪혔고, 어머니의 임신으로 혼인 신고를 했지만, 브룩 쉴즈가 태어난 직후 바로 이혼하였다.
아버지쪽으로 보르자 가문과 메디치 가문의 피가 흐르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실즈의 친할머니가 이탈리아 귀족이었다. 그래서 이탈리아 귀족 및 기타 유럽 왕실 및 귀족의 후손이다. 아버지 프랭크로부터는 이탈리아, 프랑스, 아일랜드, 영국의 혈통을, 어머니 테리로부터는 독일, 영국, 스코틀랜드-아일랜드, 웨일스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이 때문에 한 때 미모, 유명세, 가문까지 좋은 실즈를 모나코 공가에서 며느리감으로 점지하기도. 물론 알베르 공 꼴에 더군다나 실즈가 아깝다며 당연히 거부했지만, 사실 알베르 공하고 잠깐의 로맨스는 있었다.(…)
브룩3
1983년 알베르 2세와 함께
마이클 잭슨과 굉장히 절친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둘은 비슷한 시기에 연예계에서 전성기를 보냈고, 유년기에 극성 부모 밑에서 일하느라 어린 시절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는 점과 젊은 시절과 나이 들어서의 외모가 매우 다르다는 공통점이 있다. 브룩 쉴즈의 경우는 약물로 인한 것이고, 마이클 잭슨의 경우는 백반증과 일부 성형, 루푸스 등이다.
5세부터 끼를 보였다고 하나, 첫 데뷔는 무려 1살 때인 1966년에 아이보리 비누 선전에 나왔다. 물론 화장품 회사의 대표였던 아버지와 여배우였던 어머니의 빽이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겠지만, 애초에 본인도 부정하지 않는다.
이후 아역 배우로 성공했고, 1978년 12살에는 성매매 소녀 역을 맡은 <프리티 베이비>라는 영화에 나와 연기력으로 호평받았다. 그러나 12살 여아의 전라를 노출시킴으로 미성년자 아동을 성적 대상화한 이 영화의 윤리적 문제는 지금도 가루가 되도록 까인다.
여기서 반드시 언급해야 하는 부분이, 실즈의 어머니인 테리 실즈가 진짜 아주 골때리는 극성 엄마라는 점이다. 자신의 포기한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려 하는 전형적 케이스. 유치원도 아직 안 갈 나이의 아이들을 치아교정에 염색, 컬러렌즈, 스프레이 태닝과 네일아트 등으로 뒤덮어 어린이 미인대회에 내보내고 유명인이라도 나타나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성인 여성이 아주 아주 특별한 날에나 할 법한 꽃단장으로 꾸민 어린 딸을 데려가 인사시켜 인맥맺으려는 그런 극성 엄마들이 미국에서도 비판의 대상인데, 실즈의 엄마는 그보다도 한 수 위다. 사춘기도 안 온 딸에게 누드 촬영을 강요한 것. <프리티 베이비> 영화를 찍을 당시 극중 실즈의 엄마 역의 수전 서랜던이 어린 아이에게 이런 역과 포즈를 요구하는 것은 진짜 아닌데라고 촬영을 망설이는데, 막상 실즈의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고. 심지어 영화 촬영 중 극중 어린 창녀 역에 맞추어 화보를 찍자고 플레이보이와 연락을 하기도 했다. 당연히 플레이보이도 단번에 거절했다. 그나마 1970년대 미국이어서 그 아줌마는 감방에는 안 갔다. 하지만 플레이보이만 안 찍었다 뿐이지, 아동 포르노라고 욕먹어도 할 말 없는 수준의 화보를 숱하게 찍었다. 이런 탓에 브룩 실즈의 과거 영상 같은 것을 보면 코멘트에 그녀의 어머니 욕이 절반을 차지한다.
14살에는 패션잡지인 보그지의 표지모델이 될 정도로 동년배에 비해 잘나갔었다.
1980년에는 영화 《블루 라군(푸른 산호초)》(The Blue Lagoon)에 출연했는데, 15살 미성년자임에도 엄청난 수위의 노출과 적나라한 성관계 묘사가 나와 논쟁을 일으켰다. 이 영화는 많은 논란을 불렀고 의회에서 청문회까지 열렸는데, 실즈는 베드신은 대역을 썼다고 증언. 여담이지만 피비 케이츠가 주연한 《파라다이스》는 이 영화와 매우 비슷한 스토리다. 그리고 역시 미성년자 연인의 성관계를 묘사해서 큰 파장을 불렀다.
이후 《끝없는 사랑》(Endless love)라는 주제가만 유명한 동명의 영화 《끝없는 사랑》에 출연했다. 그리고 실즈는 이 영화로 최초의 골든 라즈베리 최악의 여우주연상 수상자가 되었다(…). 어쨌든, 이렇게 유명 배우답지 않게 색기있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84년에는 바다가 배경인 TV영화 《템프테이션》(Wet Gold)에서 원피스 수영복 차림으로 나와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기도 했다.
이후 명문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해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1987년에 졸업했다. 이 당시 마이클 잭슨과 공개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훗날 인터뷰에서 이 당시에 첫 섹스를 했다고 밝혔는데, 그 유력한 상대는 당시 프린스턴 동기이자 TV시리즈 슈퍼맨의 주연이던 딘 케인.
이후 출연한 《사하라》는 대차게 말아 먹었고, 그녀의 팬이던 사우디아라비아 왕자의 투자로 제작한 《브랜다 스타》(1991)는 이런 저런 제작사의 사정으로 개봉도 못했다가 나중에 몇몇 극장에서 상영하여 1,600만 달러 제작비를 날린 8만 달러 정도 수익에 그쳤다. 그리고 2차 시장으로 나온 이 영화 평가는 최악으로 골든 라즈베리 여러 후보에 올랐다. 한국에서는 1992년 초, SBS 초기 외화로 더빙 방영하고 <애니메이터>라는 제목으로 비디오가 나오기도 했다. 1989년에 그녀가 카메오로 나온 《캐논볼 3》도 거기서 거기.
아역 배우의 한계인지 더이상 정상의 자리에 있지 못하고 그저 그런 배우가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실즈의 섹시한 이미지를 이용하려는 배역 제의가 많았는데, 실즈는 자신의 이미지가 그쪽으로 굳어질까봐 계속 거절했고, 그러다보니 영화계에서 점점 출연할 기회가 뜸해진 것. 게다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연예계 활동을 한지라 이미지 소모가 너무 많아 식상감이 온 탓도 있다. 전형적인 아역 딜레마.
사실 조디 포스터, 나탈리 포트만 등 아역 출신같이 타고난 연기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얼굴 마담역에서 벗어나기 위해 망가지는 역을 자처한 제니 매카시 같은 노력도 없었다. 한정된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짐 캐리같이 감독을 스토킹급으로 따라다니면서 흥행실패를 각오하고 새로운 이미지의 배역에 도전하지도 않았다. 애나 패퀸이나 아만다 사이프리드같이 흥행은 둘째쳐도 경력을 위해 난해하지만 작품성은 인정받을 수 있는 영화를 찾아다니는 위험도 무릅쓰지 않았다.
어찌 보면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자체로 관심을 얻고 유명인들이 꼬이다보니 노력의 필요성도 없어져서 중요한 터닝포인트의 기회를 놓친 케이스.
성인이 된 후 "지나치게 노출연기에 몸을 사린다"는 비판을 받자, 1996년에는 성인이 되고 난 후 처음으로 잡지용 누드사진을 찍은 바 있다. 참고로 실즈는 미성년자일 때 누드사진을 찍은 바 있다. 미국 아청법은 어디에?
영화 주연으로는 1990년대는 거의 출연하지 못했고, 조연으로 TV 시트콤이나 영화에만 간간히 얼굴을 내비치는 정도. 그 때문인지 우울증에 걸려서 꽤 고생도 했다고.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래도 조연이나마 꾸준히 TV와 영화에서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그녀의 제2의 전성기는 오히려 나이가 들어서였다. 물론 한창때인 1980년대 초반만큼의 인기는 아니지만, 연기력도 향상되고 비록 TV배역이지만 립스틱 정글 등의 인기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활동한다. 비슷한 사례로 한창 미모의 시기를 슬럼프로 보내고 나이가 들어 연기력으로 재승부에 성공한 사례로 제니퍼 코넬리, 다이앤 레인이 있다.
1988년에 한국에 한국계 코미디언 쟈니 윤, 유명한 코미디언 밥 호프와 함께 올림픽 기념 공연 겸 주한미군 위문을 위해 방한한 적이 있다. 쟈니 윤과 꽤 친하다고. 이때 윤과 듀엣으로 노래를 부르긴 했는데, 노래실력은 외모에 못 미쳤다는게 중론.
1997년에 테니스 스타인 안드레 애거시와 결혼한 후 2년 만에 아이없이 이혼했고(동거는 1993년부터 시작), 현재는 TV 작가인 크리스 헨치와 부부이고, 두 딸이 있다.
인공수정 및 우울증약의 부작용으로 호르몬 이상이 생겨 외모가 많이 변했다. 말단 비대증에 걸렸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호르몬제의 부작용이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실즈의 키가 웬만한 여자 농구선수랑 비슷한 183cm이다. 그래서 이런 소문이 퍼진 듯.
나루히토 일본 천황은 영국 유학 시절에 그녀의 사진을 기숙사 벽 한 켠에다가 붙여놓았던 적이 있고, 유학을 끝낸 후 일본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유학 과정에서 사귄 미국인 친구네 집을 방문했을 때 친구의 요청으로 브룩 실즈와 만났다. 그 이후 브룩 실즈의 1990년 방일 당시에 다시 만난 적이 있다.
이렇듯 나루히토가 실즈의 팬인 것은 잘 알려져서 한 외국 기자가 당시 기준으로 결혼하지 않은 나루히토에게 “쉴즈에게 청혼할 생각은 없냐”고 묻자, 나루히토는 깔끔하게 “저는 외국인과 결혼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루히토는 1986년부터 외교관 오와다 마사코에게 반해 있었고, 마사코의 거듭된 거절에도 불구하고 7년이나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1993년에 마사코와 결혼했다. 애초에 친왕도 아니고 황태자인 나루히토의 입장을 고려하면 당연히 이런 파격적인 혼담을 진행할 리가 없었다. 단순히 팬의 입장에서 좋아하는 것뿐이지 남녀관계는 전혀 다른 문제인데, 언론이 가십거리를 위해 무리수를 던진 것뿐이었다.
첫댓글 푸른산호초가 15세 때 영화였군요. 저도 그 영화를 비디오 테잎으로 중3 때 쯤에 본 것 같은데 . . 찍을 당시 이미지가 동갑일거라는 상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브룩실즈도 주제곡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