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여행]
[탐방] 부창동성당 ‘기억의 정원’
놀뫼신문
2022-11-24
[탐방 : 부창동성당 ‘기억의 정원’]
부창동성당,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이해 ‘기억의 정원’ 설치
‘기억의 정원’ 내 공안세, 성재덕 신부의 공덕비 제막
1907년 설립된 놀뫼(논산)공소에서 1921년 6월에 본당으로 승격한 부창동성당은 2021년 본당 설립 100주년을 맞이했다.
이에 부창동성당은 <논산 부창동본당 100년사>를 편찬하였고, 2022년 6월 부창동본당 건물이 논산시 향토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또한 부창동본당의 건축 관련 문서들은 일별 목록화하여 근대문화재 등록을 위한 근거를 마련 중에 있다.
이런 와중에 ‘줄리앙 공베르(공안세) 신부와 피에르 생제(성재덕) 신부의 공덕비 제막식’이 지난 11월 20일 부창동성당 내 '기억의 정원'에서 거행되었다.
■ '줄리앙 공베르(공안세)', '피에르 생제(성재덕)' 신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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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 나라에 먼저 드신 위대하신 순교자들이여 너무나 부족하고 미흡한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당신들이 언젠가 피 흘리며 끌려가셨던 그 가시밭길을 우리는 무심코 걸었습니다. 작은 신앙의 걸림돌에도 걸려 넘어져 믿음이 흐려지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당신들이 박해의 두려움 속에서 살았던 하루하루를 우리는 아무런 생각없이 하루를 살았습니다. 오늘 하루가 주님 은총 안에서 너무나 소중한 하루였음을 깨닫도록 빌어주소서 당신들이 목숨 바쳐 지켜온 신앙과 그 유산들을 우리는 너무나 가볍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이어받은 신앙과 그 유산들이 당신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소중한 것임을 뼈 속 깊이 깨닫도록 빌어주소서 당신들이 그토록 소중히 생각하며 행했던 미사 성제를 우리는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참례하는 모든 미사 성제를 삶의 마지막 미사 성제인 것처럼 소중히 생각하도록 빌어주소서 당신들이 걸으셨던 그 순교의 길을 우리도 함께 걸으며 남겨주신 소중한 신앙의 유산들을 세상에 선포하고 신앙의 모범으로 자손들에게도 대대로 이어가도록 이끌어주소서 간절히 청하오니 마침내 우리 모두가 주님 은총에 힘입어 성숙한 신앙인으로 살다가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빌어주소서 (이하 생략, 논산지역관련 순교자들에게 드리는 기도 중에서) | |
[줄리앙 공베르 신부]
1877년 9월 7일 프랑스 캉불라제에서 출생한 공베르 신부는 1900년 6월 사제 서품을 받고 그해 10월 한국에 진출했다.
1921년 6월 부창동본당이 설립되며 1923년 6월 제2대 주임으로 부임한 공베르 신부는 새 성당 건축을 추진하여 1927년 적벽돌조 고전 양식의 성당과 서양식 사제관을 신축하였다.
공베르 신부는 카타르 신부와 함께 신사 참배 거부 운동을 벌였으며 1926년에는 유치원 과정 소학교를 설립했다. 또한 1931년 10월에는 샬트르 성바오로 논산 분원을 설치했으며, 1933년에는 논산 소화학원을 설립하고 시약소를 운영했다.
1942년 논산본당 주임신부를 이임한 줄리앙 공베르 신부는 6.25 당시 공산당에 끌려가 1950년 11월 13일 중강진 수용소에서 옥사하였다.
[피에르 생제 신부]
1910년 9월 13일 프랑스 에댕에서 출생한 생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에서 1935년 7월 사제 서품을 받았고, 1943년 12월 성가소비녀회를 창설했다.
1949년 6월, 피에르 생제 신부는 논산본당 8대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부임 1년 후 발발한 6.25전쟁으로 성당과 사제관 건물이 인민군의 정치보위부 및 감옥으로 사용되며 성당 내 성물들이 파손되었다. 1950년 12월에서 이듬해 1월 경 성당에 주둔하던 터키 군인들의 실화로 사제관이 전소되었고, 전후 사제관 복구가 이루어져 지하 1층 지상 2층의 사제관이 완공되며 1956년에 입주했다.
생제 신부는 전교 활동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큰 관심을 가지며 1951년 8월 31일 논산 대건고등학교를 설립했고, 1953년에는 대건유치원을 설립했으며, 1961년 12월 쌘뽈여중‧고를 설립했다.
또한 사회복지에도 큰 관심을 보이며 급식소와 시약소를 운영하는 한편 양로원과 양생원(성광원)을 설립하였다.
우선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분유, 옥수수, 밀가루 등을 끓여 매일 논산 지역민들에게 급식을 시행하는 급식소를 운영해 매일 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급식을 제공했다. 1955년 당시 대전교구의 유일한 사례였다.
1952년 길에 쓰러진 할머니를 발견하여 요양 후 장례까지 치러주자, 사방에서 무의탁 노인들이 몰려왔다. 그 후 1953년 쌘뽈양로원 인가를 받아 운영하기 시작했다.
샬트르성바오로회 수녀들이 1949년 논산에 진출하면서 시약소가 시작되었는데, 전쟁 이후에도 계속 운영되었다. 또한 1957년 메리놀외방전교회의 요셉 신부가 논산을 방문하면서 한센인들을 위한 양생원이 시작되었다. 양생원(성광원)은 가톨릭 구제회의 도움을 받아 운영되었다.
피에르 생제 신부는 1955년 12월 루르드 성모동굴을 건립하였고, 1957년 3월에는 대전교구 최초로 레지오 마리애를 도입했다. 그리고 1961년 10월 11일에는 현재의 성당인 새 성전을 건립하였다.
1964년 홍산본당 제3대 주임으로 전임되었으며, 1969년 서울성가소비녀회 지도신부로 임명되어, 그곳에서 수련소로 옮겨 수녀들을 지도했다. 1992년 2월 26일, 향년 82세의 나이로 성북구 성가소비녀회 수녀원에서 선종하셨다.
■ 향토문화재로 등록된 부창동성당의 의미
1921년 설립된 논산 부창동본당은 논산지역 모든 성당의 모(母) 본당인 동시에 천주교 신앙의 중심 역할을 해왔다. 또한 사회복지와 교육사업을 통해 지역사회에 근대적 의식을 형성시키는 데에도 큰 이바지 하였다. 오늘날의 대건중‧고등학교, 쌘뽈중‧고등학교, 쌘뽈요양원, 성광원 등은 부창동본당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생제 신부는 1956년 7월부터 새 성당 건축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프랑스 건축가 '루시앙 번'에게 성당 설계를 요청했다. 1957년 7월 '루시앙 번'은 생제 신부의 의견이 반영된 새 성당의 설계안을 전달했다.
당시 부통령이었던 장면(요한)과 서울대 미대 학장이었던 장발(루도비코) 형제에게 경제적 지원과 이희태(요한) 건축가를 소개받아 부창동성당의 실시 설계를 의뢰했다.
부창동성당은 대전교구와 충남지역에서 최초로 건립된 모더니즘 성당이며 1950~60년대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한국 초기 모더니즘 성당의 한 사례이기도 하다. 이후 신합덕성당, 삽교성당 등 교구 내 성당 건축에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부창동성당 건축 관련 문서류가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특히 프랑스 건축가의 원설계도가 초기 안부터 최종안까지 남아있고 이희태 건축가의 실시설계도와 건축용 설계도 등 다양한 설계도가 보존되어 있어서 건축과정의 변화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설계도 외에도 서한과 견적서, 공문서 등의 건축 관련 문서들을 목록화하여 근대문화재 등록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
- 이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