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장수 오는 날! (brunch.co.kr)
엿장수 오는 날!
일요일마다
동수가 사는 마을에 엿장수가 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엿장수는 언제나 가위질을 하며 나타났다.
'창 그랑!
창 그랑!'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가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엿장수가 오는군!"
일주일에 한 번씩 오는 엿장수가 마을 입구부터 가위 소리를 요란하게 냈다.
"오래된 그림!
도자기!
병풍!
찢어진 그림이랑 깨진 도자기도 삽니다.
엿은 많이 주고 돈을 원하면 돈도 줍니다."
엿장수는 예술 작품만 찾는 것 같았다.
"얘들아!
집에 오래된 도자기 있으면 가져와.
엿 많이 줄 테니!"
엿장수 말을 들은 동네 아이들은 집으로 갔다.
"아저씨!
찢어진 장화도 받아요?"
동수가 묻자
"그럼! 그럼!
고무도 받고 강철도 받으니까 가져와.
그리고
찢어진 그림도 있으면 가져와 봐!"
엿장수는 고물이라면 모든 것을 받고 엿을 주었다.
특히
예술 작품에 대해서 더 많은 엿을 주는 것 같았다.
"오래된 그림!
도자기!
병풍!
창고에 두면 썩고 깨집니다.
그러니
비싸게 값을 줄 때 가져오세요.
장롱에 넣어둔 것도 좋고 창고에 쌓아둔 것도 가져오세요.
옛날 돈도 받습니다.
여길 보세요!
달콤한 엿가락이 춤추며 기다립니다."
엿장수는 판소리 한 대목을 하는 것처럼 가위 장단에 맞춰 말했다.
'창 그랑! 창 그랑!'
가위 소리가 더 요란하게 들렸다.
집으로 간 어린이들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아저씨!
이런 그림도 받아요?"
민호가 액자 유리가 깨진 동양화 한 점을 들고 와 물었다.
"어디 보자!
유리가 깨졌구나.
유리 조각이 그림에 박혀 있다."
엿장수는 한 참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름이 없구나!
작가 이름이랑 낙관이 있어야 하는데.할 수 없지!"
하고 말하며 엿 다섯 가락을 봉지에 담아 민호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민호는 엿가락 다섯 개나 받고 기분이 좋은 지 싱글벙글 웃으며 엿을 먹었다.
"민호야!
나도 좀 주라."
석호가 민호에게 말하자
"너도 집에 가서 고물 가지고 와!
그러면 아저씨가 엿 많이 줄 거야."
하고 말한 민호는 집으로 향했다.
"치사한 자식!"
석호는 할 수 없이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 고물이 있을까!"
석호는 창고로 들어가더니 한 참이나 나오지 않았다.
'창 그랑! 창 그랑!'
엿장수 가위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것도 받을까!"
석호는 창고에서 녹슨 쟁기를 들고 엿장수에게 갔다.
"아저씨!
녹슨 쟁기도 받아요?"
하고 석호가 묻자
"어디 보자!
녹이 많이 슬었군.
강철이 이렇게 썩다니!"
하고 말한 엿장수는 엿가락 네 개를 봉지에 담아 석호에게 주었다.
"감사합니다!"
석호는 기분이 좋았다.
엿 하나를 입에 물고 논두렁에 앉아서 친구들을 기다렸다.
"석호야!
엿 먹는구나."
준수가 석호를 보고 묻자
"응!
내가 하나 줄 게."
하고 말한 석호는 봉지에서 엿을 하나 꺼내 준수에게 주었다.
"고마워!
다음에 나도 엿 생기면 줄게."
하고 고맙단 인사를 한 준수가 엿을 받아 들고 석호 옆에 앉았다.
"엿장수 아저씨!돈은 안 주고 엿만 주는 데 돈을 어떻게 벌까?
"준수는 궁금했던 것을 석호에게 물었다.
"우리가 갖다 준 것을 더 비싸게 팔겠지!
그러니까
이렇게 엿을 주고 고물을 받겠지!"
석호도 잘 몰랐다.
분명한 것은엿장수가 더 많이 돈을 벌 것 같았다.
논두렁에 앉아
석호와 준수는 엿을 쪽쪽 빨아먹었다.
"거기서 뭐 해!"
영자가 석호와 준수를 보고 물었다.
"엿 먹지!"
하고 준수가 말하자
"어디서 났어?"
영자가 다가오며 묻자
"고물!
같다 주고 엿을 받았어."
하고 석호가 대답했다.
"혹시!
보물을 같다 준 것 아냐?"
영자는 지난번에 순이가 비싼 그림을 엿장수에게 갔다 주고 엄마에게 혼난 걸 봤다.
"녹슨 쟁기야!"
석호가 말하자
"세상에!
쟁기는 농사지을 때 꼭 필요한 거야.
보물 중에 보물을 갖다 주었구나."
하고 영자가 말하자
"쟁기!
새로 샀어.
그러니까
아마 필요 없을 거야."
석호는 봉지에서 엿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엿이나 먹어!
너도 하나 줄게."
석호는 영자에게 엿 하나를 내밀며 말했다.
"고마워!
보물을 주고 산 엿인데 아주 맛있겠지.
나도 다음에 엿 생기면 줄게."
영자는 엿을 받아 손으로 뚝 잘라 입에 물고 집으로 향했다.
석호는 남은 엿 하나를 반으로 잘랐다.
그리고
반을 준수에게 줬다.
"다코마다(달콤하다)!"
석호가 마지막 남은 엿을 입에 넣고 말했다.
"엿장수 맘대로!
이런 말 들어봤어?"
하고 준수가 묻자
"응!
엿장수 맘속에 저울이 있을 거야."
석호는 저울에 달지도 않고 엿을 주는 게 신기했다.
"아마도!
그러니까
고물을 가져다주면 가격에 맞게 엿을 주겠지!"
준호는 엿만 많이 주면 좋았다.
"그런데!
엿장수 맘속에 있는 저울은 정말 정확한 저울일까?"
하고 준호가 묻자
"그거야!
사람 맘속을 알 수 없지!"
석호는 대답하면서도 엿장수 맘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엿장수 맘이라!
웃겨도 너무 웃겨."
준수는 엿장수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났다.
"아마도!
보물이 많이 있을 것 같아!"
준수는 엿장수 집에 가보고 싶었다.
'창 그랑! 창 그랑!'
엿장수가 마을을 떠나는 소리였다.
가위질을 천천히 하면서 엿장수는 아직 집에서 오지 못한 얘들을 재촉하는 듯했다.
"훠이! 훠이!
엿장수 이제 갑니다!
오래된 그림!
도자기!
병풍!
장롱에 넣어둔 것도 좋고 창고에 쌓아둔 것도 좋아요!
이제 가면 언제 오나!
그거야!
엿장수 맘이지!"
하고 노래하며
엿장수는 마을 입구를 벗어나고 있었다.
석호와 준수는 엿장수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 참을 지켜봤다.
"이상하지!
마을 입구를 벗어나면 가위질을 하지 않아."
석호는 신기했다.
"당연하지!
사람이 없는 데 가위질해 봐야 소용없잖아."
하고 말한 준수 대답이 맞을지도 몰랐다.
"혹시!
들판에 사는 동물들이 고물 들고 엿장수에게 달려올지 모르잖아."
석호는 가끔 엉뚱한 생각을 했다.
"맞아!
들고양이가 집에 있는 장화를 훔쳐 갔었어!"
"우리 집에도 고무장갑을 쥐가 훔쳐갔다니까!"
석호와 준수 말이 맞았다.
들판에 사는 동물들도 고물을 훔쳐다 숨겨놨다.
엿장수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엿장수는 보이지 않았다.
가위질 소리도 나지 않았다.
석호와 준수도 집으로 돌아갔다.
"담배나 하나 피울까!"
엿장수는 리어카를 끌고 가다 들판 모퉁이에서 잠시 쉬었다.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여 빨며 하얀 거품을 하늘 향해 내뿜었다.
"보석을 찾아야 하는 데!"
엿장수는 오늘 받은 고물을 생각하면서 그중에 보석이 뭘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은 값비싼 보석은 없었다.
"그림에 이름이 있어야 하는데!
그림은 잘 그렸는데 이름도 낙관도 없어."
엿장수는 민호가 가져온 그림을 생각했다.
"할 수 없지!
다음을 기약해야지!"
엿장수는 담뱃불을 끄고 리어카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그림 나오미 G
다음날 아침
석호 아빠는 창고에서 녹슨 쟁기를 찾았다.석호가 엿장수에게 준 녹슨 쟁기였다.
"석호야!
창고에 녹슨 쟁기 못 봤냐?"
석호 아빠가 아침을 먹으며 물었다.
"쟁기!
잘 모르겠어요."
석호는 갑자기 목이 메었다.
어제 엿장수에게 준 녹슨 쟁기가 눈에 선했다.
"분명히!
내가 창고에 넣어 둔 것 같은데."
석호 아빠는 밥을 먹으며 생각하는 듯했다.
"제가 찾아볼게요!"
석호는 밥을 먹은 후 아빠에게 말했다.
"네가 찾는다고 없는 게 나오냐!"
석호 아빠는 벌써 포기한 것 같았다.
"알았어요!"
석호는 아빠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엿장수와 바꾼 게 후회되었다.
엿과 바꾼 녹슨 쟁기를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것을 석호는 알았다.
"다음에는 꼭 물어보고 엿이랑 바꿔야지!"
석호는 집에 있는 고물을 함부로 바꾸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일주일 후
마을에 엿장수가 나타났다.
'창 그랑! 창 그랑!'
마을 입구부터 엿장수 가위 소리가 요란했다.
"오래된 그림!
도자기!
병풍!
장롱에 넣어둔 것도 좋고 창고에 쌓아둔 것도 좋아요!
찢어진 고무!
녹슨 강철!
무엇이든 다 받습니다!"
엿장수 목소리가 크게 마을에 울려 퍼졌다.
"이제 엿 바꿀 고물이 없는데!"
석호는 한 참을 망설이다 빈 손으로 엿장수에게 갔다.
"석호야!"
준수가 석호를 보고 불렀다.
"엿 먹어!"
석호가 엿 하나를 주며 말하자
"뭘 주고 바꾼 거야!"
"집에!
옛날 도자기 하나 있어서 주었더니 엿가락 열 개나 주었어."
"와!
그렇게 많이."
석호는 준수 말을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응!
다음에 도자기 또 있으면 가져오라고 하던데."
준수는 엿장수가 이야기 한대로 석호에게 말해주었다.
"그거!
진짜 보물 아닐까?"
석호가 묻자
"하하하!
그 도자기!
우리 복실이 강아지 밥그릇이야."
하고 웃으며 준수가 말했다.
"정말!"
웃음을 참으며 석호가 말하자
"그래!
오래되긴 했지만."
준수는 엿장수가 속은 것 같아 좋았다.
"오래된 것이 보물 일지 모르잖아!"
석호가 다시 묻자
"그럴지도 모르지!"
준수는 대답을 하며 봉지에서 엿을 하나 꺼내 입에 넣었다.
"노또(너도) 하타(하나) 떠(더) 추케(줄게)!"
하고 말한 준수가 엿가락 하나를 석호에게 주었다.
"고마워!"
석호는 엿을 받으며아침에 있었던 쟁기 이야기를 할까 망설이다 그만뒀다.
석호는
친구들이 주는 엿이 맛있었다.
"오늘은 엿이 더 맛있다!"
석호는 준수가 준 엿이 달콤하고 더 맛있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하잖아!
무엇이든 누가 주는 게 더 맛있는 거야."
준수는 가끔 어른 같은 말을 했다.
"맞아!
남이 주는 것이 더 맛있어."
준수와 석호는 지난번처럼 논두렁에 앉아 엿을 먹었다.
멀리!
동수가 소를 몰고 오는 게 보였다.
"동수야!
엿 먹게 이리 와."
하고 준수가 불렀다.
"엿!
누가 주었는데?"
동수가 묻자
"내가
도자기 그릇 하고 바꾼 거야!"
준수가 대답했다.
"알았어!
이랴! 이랴!"
하고 대답한 동수는 소를 몰고 달렸다.
석호와 준수는 입안 가득한 엿을 먹으며 달콤한 맛을 삼키고 또 삼켰다.
'창 그랑! 창 그랑!'
엿장수가 마을 입구를 벗어나며 마지막 가위질을 했다.
"엿장수가 간다!"
석호와 준수는 엿장수가 마을을 벗어나는 모습을 보는 게 습관처럼 되었다.
'창 그랑! 창 그랑!'
엿장수는 마을 입구에서 리어카를 세운 뒤 담배를 꺼내 피웠다.
멀리서 봐도 하얀 담배연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담주에 또 오겠지!"
하고 석호가 말하자
"그럼!
엿장수는 아직도 우리 마을에 보물이 많다는 걸 알 거야.
그러니까
앞으로 몇 년은 더 올 거야."
준수는 먼 미래까지 내다보는 마음을 가진 것 같았다.
"오래된 그림!
도자기!
병풍!
장롱에 넣어둔 것도 좋고 창고에 쌓아둔 것도 좋아요!
찢어진 고무!
녹슨 강철!
무엇이든 다 받습니다!
말 안 듣는 아들!
예쁜 딸!
손자 손녀도 받습니다."
석호는 엿장수 흉내를 잘 냈다.
집에서 심심할 때
냄비 두드리며 엿장수 흉내를 냈다.
엿장수가 말하지 않은 것도 만들어 가며 노래 불렀다.
석호는 엿장수가 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