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부터 시작한 ‘강에서 띄우는 그림편지 - 한국의 5대강을 가다’ 특집기획이 12월 26일 총 23회만에 끝났습니다. 낙동강 5회, 섬진강 3회, 영산강 3회, 금강 4회, 한강 8회에 걸친 대장정이었습니다. 기획 시리즈를 연재하는 동안 가장 큰 변화는 ‘4대강 정비 사업’이 본격화되었다는 겁니다. ‘4대강 살리기’란 이름 아래 설계도면도 없는 4대강 정비사업이 착공되었습니다.
4대강 정비사업은 ‘한반도대운하의 사전포석’이란 이유로 대다수 국민들과 야당이 반대하는 사업입니다. 무려 14조의 예산이 들어가고 엄청난 생태계 혼란이 예상되는 사업이지만 정부가 말하는 4대강 정비사업의 종합 계획, 마스터 플랜은 아직 불분명합니다. ‘사전환경성검토’와 ‘환경영향평가’와 같은 환경영향조사도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4대강 정비사업을 토목공사 하듯이 진행하지 말고 녹색성장의 취지에 맞게 진행하라”고 당부했다고 합니다.
녹색성장의 취지에 맞는 4대강 정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강의 본성을 살리고, 물을 살리고, 그 물 속에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들을 살리는 4대강 정비가 되어야 합니다. 토목공사 하듯이 강물 속에 있는 모래(골재) 퍼올리고 골재 씻은 흙탕물은 다시 강으로 버리는 방식으로는 절대 강을 살릴 수 없습니다.
안동댐으로 흘러드는 맹독물질 더미 낙동강은 최상류에서부터 오염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낙동강 본류 바로 옆에서 외국에서 수입한 아연광석으로 제련을 하고 있는 영풍제련소 문제는 국가적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과제입니다.
영풍제련소 하류 낙동강변에는 언제부터 쌓였는지 정확하게 파악도 안 되는 폐광미더미들이 곳곳에 방치돼 있습니다. 맹독성 ‘비소’가 다량 함유된 이 폐광미더미들은 지금도 비만 오면 낙동강으로 흘러들고 있습니다.
낙동강의 수질 문제가 어려운 것은 중허리부터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구미와 대구의 하수처리시설은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모래여과와 자외선 소독 등 고도처리를 거쳐 배출하는 구미와 대구의 하수처리장 최종방류수는 거의 1ppm(1급수) 수준입니다. 투명한 비커에 떠서 보면 수돗물과 거의 차이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맑습니다. 그런데도 왜 구미를 지나면 낙동강이 2급수로 떨어질까요? 문제는 하수처리를 거치지 않고 낙동강으로 들어가는 오염된 지천들입니다.
대구 이남의 낙동강은 농촌지역도 매우 고밀도로 개발되어 있습니다. 특히 하천변 둔치를 가득 메우고 있는 비닐하우스 문제는 낙동강 하류를 살리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낙동강에 비하면 한강은 행복한 강입니다. 길이는 낙동강보다 짧은데 강수량은 연간 400mm 정도 더 많습니다. 게다가 유역 내 인구의 81%인 2015만명이 잠실수중보 하류에 거주합니다.
흙탕물 속에 점토 성분만 들어 있을까 한강의 관심은 온통 팔당 수질에 쏠립니다. ‘팔당호 1급수’를 위해 지난 10년 동안 쏟아부은 예산이 10조원이 넘는데 아직 이 목표는 달성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한마디로 팔당 수질 개선을 위해 10조원을 썼다면 수질을 악화시키는 각종 개발사업에 100조원을 썼기 때문입니다. 근래 들어서는 여름에 발생하는 흙탕물이 소양호에 고여 몇달씩 이어지는 것도 큰 골칫거리입니다. 흙탕물의 근원지는 고비료·고농약·고밀도로 집약적인 농업을 하는 고랭지 채소밭입니다. 흙탕물에 순수한 점토 알갱이만 들어있는 게 아니라는 얘깁니다.
섬진강의 자정작용 시스템 무너져 최근 몇년 동안 섬진강의 가장 큰 변화는 최하류 ‘하동’ 지점의 수질이 예전에 비해 오히려 나빠졌다는 겁니다. 원래 섬진강은 구례에서 2급수, 하류 하동에서 1급수를 기록하는 게 정상입니다. 구례 남쪽의 풍부한 모래톱을 지나며 스스로 맑아지고 여기에 지리산과 백운산의 깨끗한 계곡물이 더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광양광역취수장이 취수량을 늘린 2003년 이후 문제가 생겼습니다. 늘 1급수 수준을 유지했던 하동 지점이 요즘 계속 2급수입니다. 이는 바닷물 역류에 의한 것으로 보입니다. 재첩을 잡는 어민들도 바닷물 역류현상이 심해졌다고 아우성입니다. 영산강의 수질은 우리나라 5대강 중에서 최악입니다. 원인의 핵심은 광주 이남의 영산강이 더 이상 상수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광주 사람들도 영산강 물을 먹지 않습니다. 섬진강 수계인 보성강 상류 동복호와 주암호에서 80%의 물을 길어서 먹습니다. 광주 이남의 영산강은 한마디로 ‘하수구’ 신세입니다. 게다가 영산강 하류는 하구둑으로 가로막혀 자연스러운 강의 흐름을 잃어버렸습니다. 영산강 살리기는 하수처리장 확충을 통해 광주 이남의 강 본류를 2급수 수준으로 회복시키고 하구둑을 터서 바닷물과 강물이 자연스럽게 만나게 해주는 방식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수도로 전락한 영산강·금강
대전 이남의 금강도 마찬가지입니다. 90%가 넘는 대전시의 하수처리율은 사실 통계치에 불과합니다. 구도심 구간이 대부분 ‘합류식’ 하수관이라 비가 조금만 많이 오면 오수가 관로를 넘어 갑천으로 그냥 흘러들기 때문입니다. 대전 직전까지 1급수를 유지하는 금강은 대전 갑천을 만나 2급수, 청주 미호천을 만나 3급수로 떨어집니다. 행복도시는 바로 그 지점에 자리합니다. 행복도시는 금강 본류 수질개선에 대한 보다 치밀한 고민을 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강을 따라가며 보면 강물은 스스로 끊임없이 맑아지려는 본성을 갖고 있습니다. 웬만큼 더러워져도 다시 맑아지고, 또 더럽혀도 흘러내려가면서 다시 맑아집니다. 1급수의 맑은 물이 하류로 갈수록 더러워지는 것은 강의 자정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오염물질이 유입되기 때문입니다. 또 강이 자정작용을 할 수 없게 ‘하상정비’라는 이름으로 강 모래를 마구 퍼내기 때문입니다. 10년 이상 골재채취를 안한 섬진강 하류를 보십시오. 섬진강에서는 중류보다 하류가 더 맑아지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강 하류의 풍성한 모래밭은 자정작용의 핵심입니다. 강물이 더럽다고 강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흐려진 강물은 그만큼 사람들의 본성이 흐려졌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들의 책임인만큼 상류와 하류 지자체의 교류가 절실합니다. 낙동강 수계도를 놓고 지난달 수질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안동과 구미, 대구, 부산이 모니터링하는 모임을 가져야 합니다. 안동을 지난 낙동강 수질이 0.5ppm 흐려졌다면 하류 상주에 미안하다는 인사라도 해야 합니다. 이런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면 한국의 강은 스스로의 힘으로 맑아질 것입니다. 남준기 기자 jknam@naeil.com
‘오랜 미래의 강’을 위하여
청년시절 제 화실에는 졸필인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족자가 걸려 있었습니다. 물을 생활철학의 이미지로 여기던 시기였지요. 이후로 배낭 메고 산천을 떠돌면서 ‘강물의 유장함’과 ‘생명의 진원지’를 한껏 만끽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수(山水)를 좋아하는 성벽(性癖)에 하릴없이 길을 떠나오면서 마주한 애증(愛憎)의 풍광은 너무도 깊었습니다. 산은 골재 채취로 깎이고 강의 자갈과 모래, 갯벌이 사라지는 현장엔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부산한 우리 땅의 초상이었습니다. 우리 시대가 살기 위하여 미래의 역사를 훔치는 것은 아닌지? 생전의 박경리 선생님이 “우리 조상들은 물려준 자산을 지키며 이자만 따먹고 살았는데 오늘 우리는 자본을 까먹는 상황”이라고 갈파하신 말씀이 한시도 저의 가슴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런 까닭에 작가의 소임을 경책하던 중 ‘5대강 탐사와 그림순례’는 숙명과도 같은 만남이었습니다. 금년 초여름부터 숨가쁘게 달려온 강길 여정은 대운하를 염려하는 모든 이들의 바람 속에서 오늘의 실정을 확인해 드리고 싶은 연유였습니다. 또한 강과 함께 해온 문화의 현장을 살펴보는 역사인식에 기초한 것입니다. 실제 돌아본 강가엔 수많은 유·무형의 문화유산과 생태계가 존립의 위기에 처해 있기로 이를 증언하는 그림이 되길 내심 바랐습니다. 전해오는 옛 진경산수에서 오늘날 너무도 변질되어버린 국토의 회한을 새삼스레 떠올리며 붓을 들어야 했습니다. 창사 이래 최초로 전면을 그림편지로 할애한 내일신문의 이번 특집기획은 지난 십수년간 한반도의 강 탐사 경험을 가진 남준기 기자와의 동행으로 가능했습니다. 소위 남 감독(?)의 연출 아래 제가 배우로서 선택받은 것이라고나 할까요. 남 기자의 글이 우리나라 강의 실태를 추적하고 생태계의 문제점을 토로했다면 저는 좀 더 긍정적인 입장에서 우리 강의 아름다움과 지켜져야 할 문화유산, 생명의 가치를 화폭에 담고자 했습니다. 하여 오늘의 그림이 혹여 5대강을 돌아본 마지막 작가의 작품이 되는 불행한 시대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비록 부족한 붓길이지만 맞닥뜨린 시대의 운명을 온몸으로 받아 이를 외면하지 않았던 시절 인연으로 추억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결코 행운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한편 지면의 한계로 쌓여만 있을 뿐 아직 열리지 못한 5대강 화첩은 차차 강물처럼 흘러가리라 여깁니다. 그동안 독자는 물론 원근에서 지지해준 이웃들이 있었기에 그림연재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소망하건데 오랜 겨레의 핏줄로서 흘러온 강이 부디 미래의 강으로 온전히 흐를 수 있기를 … 2008.12.30 이호신 삼가
첫댓글하~아! 이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지! 한꺼번에 좌~르르 올려놓으시니 약간 숨이 차기도하고...진작에 하셨어야했는데.. 어쨌든,현석님께도 쬐끔 덜 민망해지기도하구... 국가적으로도 강이 강력한 코드로 떠오른 이때에 너무 나 큰일을 하셨습니다. 현석님! 거룩한 회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_()_
첫댓글 하~아! 이제 천천히 음미하며 읽어야지! 한꺼번에 좌~르르 올려놓으시니 약간 숨이 차기도하고...진작에 하셨어야했는데.. 어쨌든,현석님께도 쬐끔 덜 민망해지기도하구... 국가적으로도 강이 강력한 코드로 떠오른 이때에 너무 나 큰일을 하셨습니다. 현석님! 거룩한 회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소서! 나무 석가모니불! _()_
소중한 인연 감사드립니다...고생 많으셨습니다...길이 역사에 장식할 소중한 자료입니다....공덕장 합장
그림을 그리신 현석화백님도 대단하시지만 이렇게 엄청난 리플을아주신 무심님.. 당신도 진정 대단하십니다..^^
하루저녁에 대한민국의 산과강을 다 여행하고나니 환희롭습니다. 이호신화백님께 감사드리고, 스님께도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너무 많아 대충 감상하고 읽어 보았으나 다시 자세히 감상할 기회를 마련하겠습니다. - ( ) -
오랜 겨레의 핏줄로서 흘러온 강이 부디 미래의 강으로 온전히 흐를 수 있기를 소망하는 이호신님의 소망이 우리들의 소망입니다. 남준기님과 이호신님의 팬클럽이라도 결성해야 하지 않을 까요 아니 그러고보니 바로 여기가 거기네여우리 이분들 많이 많이 사랑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