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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델리 계획 | |
계획주체 |
루티엔스(1869~1944) - 20세기 영국의 제국주의 건축가로 명성 - 국수주의와 제국주의 상징주의와 의식존중주의자 베이커(1862~1946) - 신생 남아공 프레토리아 철도역부터 정부청사에 이르기까지 건설 |
시대적 상황 |
도시미화운동이 전세계로 확산 1910~1935년 사이 영국식민통치의 마지막 전성기에 인도에서 가장 극적으로 나타남 식민지에 대한 새롭고 불안정한 지배권 확립을 위해 권위와 지배의 상징물 건립 1911년 대관식 접견에서 인도의 수도를 델리로 이전할 것을 발표 |
뉴델리 도시계획 |
부지선정 : 1912년 6월 건축계획위원회에서 델리 남쪽에 자리한 레이시나(Raisina) 부지 추천 도시를 압도하듯 내려다 보이는 서쪽 산등성이 꼭대기 부지 선호(총독 하딘지) 고전적 도시미화의 방식으로 다른 두 개 도로가 방사상으로 뻗어 나옴 남쪽 영국군 교회 성당과 북쪽 철도역을 연결하는 교차방사도로가 두 도로를 분할 7개의 방사도로를 가지고 대형 원형 철도역 광장은 적어도 10개의 방사도로를 가짐 주도로는 3개의 초점을 잇는 도로와 30도 또는 60도 각을 이루고 모든 주요건물은 6각형의 중심이나 모서리 또는 변 중심에 위치(랑팡의 워싱턴계획과 유사) |
인도 도시미화의 한계 |
계획주체인 베이커와 루티엔스의 분열 : 총독행정청사는 동일한 높이를 가져야 한다는데 동의 총독관저가 행정부처 사이로 계속 보일 수 있어야 한다는 전체계획 차질 인도의 전통적 배치구조와 달리 매우 영국적 방식, 비공식적으로 발전 식민시대 이후에도 과거 식민지시대의 전통이 그대로 답습, 계층·인종별로 사람들을 분리, 격리 비공식적인 무허가 주거가 양산되고 기념비적인 가로를 따라 빈 공간을 채움 |
2. 아프리카의 도시미화운동
1) 남부·동부아프리카 신생수도
솔즈베리(짐바브웨)
루사카(잠비아)
나이로비(케냐)
캄팔라(우간다)
2) 공통적 현상(도시계획)
아프리카인들은 농부로 간주되어 도시에는 존재하지 않거나 대량강제 이송
영국인 이주자의 위생(풍토병)을 고려 고지대 이주, 높은 기반시설비용, 늘어난 통근거리
유럽인 고지대에 거주, 인도인 그다음 좋은 지역, 아프리카인은 남은 땅에 거주
루사카의 공식계획(애드셰드 교수,1931) : 도시계획적 편의는 백인들을 위한 것, 아프리카인 배제
차별을 위한 세등급의 주택배치계획 수립
- 최고계층지역(Snob's Hill, 속물들의 언덕) : 산꼭대기의 관청 옆에 배치
- 저밀도 유럽인 거주지역 : 정부청사(중심결절점) 근처에 상업업무지역 배치, 중심쇼핑지구가 두 지역 인접, 원형 교차점에 배치된 도로 주변에 설계(루사카 등지에서 전원도시로 불려짐)
- 아프리카인 구역 : 상대적으로 매우 작은 규모에 철도와 같은 물리적 장애물에 의해 유럽인 지역과 멀리 떨어진 도시구석에 격리
3) 인도 뉴델리와 차이점
아프리카 수도들의 계획은 루티엔스풍(인도)의 기하학적 복잡성 추구하지 않음
정부청사의 위엄은 있으나 레이시나(델리 신도시) 풍의 거대한 구조적 정교함 없음
4) 아프리카 신생 수도의 비난/한계
신생 독립국가 통치자들
- 무허가 정착촌 문제에 직면하여 과거 식민시대 공무원과 동일한 방식으로 대응(수시로 철거 단행, 통행통제법 제안)
이전 유럽인 거주지역
- 공무원들이 식민지시대의 원래 기록을 찾을 수 없을 때조차도 과거의 건축기준을 외워서 알고 있었다.
3. 캔버라 : 예외적인 도시미화
1) 연혁
캔버라 도시계획 : 수많은 역경 속에 45년 후에나 형태를 갖추고 70년 이상 지난 후 완성
시기 |
내용 |
1901년 |
호주 새 연방정부 출범, 신수도 작업 시작 |
1908년 |
캔버라 수도로 결정 |
1911년 |
캔버라 도시계획 국제 현상공모 추진, 그리핀(Walter Burley Griffin)작품 선정 |
1913년 |
그리핀 연방수도설계·건축국장으로 임명, 캔버라 착공 |
1920년 |
그리핀 직위 해지 |
1955년 |
계획, 건설, 개발을 위한 중앙기관 만들자는 움직임(상원 조사위원회) |
1988년 |
캔버라 도시건설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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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캔버라 계획 |
Griffin Walter Burley(1914) |
2) 내용
관람석에서 분지(Basin)를 내려다보고 이는 무대가 됨
무대의 정점은 국회의사당
중앙시장과 군사시설, 시청으로 연결되는 삼각구도
안작퍼레이드(중앙행렬로)
3) 비판
아버크롬비 : “기초적인 원칙부터 다시 배워야 할 아마추어의 작품”이라 비판
그리핀 : “불규칙한 원형극장처럼 여겨질 수 있다”
전원도시 캔버라
- 마지막 도시미화운동이자 가장 큰 전원도시 중 하나라는 위업 달성
- 하워드의 다중심 사회도시로 실현되어 현존하는 소수의 사례 중 하나
- 숲이 우거진 수도(Bush Capital)
4. 계획의 변화(1912~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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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축(Land axis) : 광장과 가로배치로 강력한 조망 형성 공공기관축(municipal axis) : 수상축과 평행 수상축(water axis) : 벌리 그리핀 인공호 |
1912년 |
1918년 | |
캔버라 계획 구상 |
도시와 그 주변, 호반도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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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
1973년 |
1959년 |
현재 |
홀포드의 계획변경 권고 - 러셀지역에 직각으로 만나는 Kings Avenue, 교차로 지하도 모습) |
NCDC(국가수도개발국) 계획 |
Civic Centre 확장, 교차로는 로터리로 해결 |
웅대하며 위엄있고, 우아하지만 차분한 도시 기념비적 수도로 자리매김 |
● 도시미화와 독재자들
1. 독재자의 도시미화
도시미화운동은 재정자본주의의 시녀, 제국주의의 대리자로서, 전체주의의 도구(나치즘, 파시즘, 스탈린체제)
전체주의 : 개인의 모든 활동은 오로지 전체, 즉 민족이나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 및 체제
광범위한 목적으로 계획하는 것이 아닌 권력의 상징으로서 기념비적인 것, 외관적인 것, 건축에 집중
보여주기 위한 계획, 연극으로서의 건축, 인상을 주기 위한 설계
1) 독일
국가 |
나치 독일 | |||
독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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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
베를린 도시미화 계획(안) | |||
사상 : 나치즘 |
파시즘(전체주의)의 하나로 히틀러의 권력아래 모든 것을 통제하며 반민주주의, 반자유주의, 반자본주의, 반마르크스주의, 민족적 전체주의와 아리아 인종 우월주의, 조직적 반유태주의(Antisemitismus)를 주창 | |||
나치의 시각 |
1920년대 말 나치당의 이론적 방향 “반도시적” 대도시 : 매춘, 술집, 질병, 영화, 마르크스주의, 유대인, 스트리퍼 등의 집결지 나치주의자들은 기계적, 비인간적인 과시용 거대한 볼거리의 도시를 만들려 함(거대도시 비난과 모순됨) 히틀러는 기념비적인 것에 대한 강박관념으로 거대한 것을 추구 | |||
나치의 도시계획 |
나치의 베를린은 도시미화의 궁극적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대부분 실현되지 못함 거대한 공공의식을 위한 집합장소, 심리적·준 종교적 기능, 산업인구는 교외생활권으로 이주시키고자 함 |
2) 이탈리아
국가 |
이탈리아 | |
독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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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솔리니 : 파시즘의 수석건축가로 비유 |
파시스트 도시계획 포스터 | |
사상 : 파시즘 |
이탈리아어 파쇼(fascio)에서 유래. 본래의미는 '묶음’이었으나, '결속’ 또는 ‘단결’의 뜻으로 전용됨 | |
무솔리니의 지시 (1929년 주택위원회, 도시계획연합 |
“나의 견해는 명백하다. 나의 지시는 정확하다. 5년 안에 로마는 세계의 모든 이들에게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처럼 광대하고, 정연하고, 강력한 모습으로 틀림없이 멋지게 나타날 것이다. 여러분들은 마르켈루스 극장과 카피톨 언덕, 판테온 신전 주변에 광대한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 쇠퇴의 시기에 그 주변에서 성장해온 모든 것들은 사라져야만 한다.” | |
파시스트 도시계획 |
1928~1940년 13개 도시와 60개 이상의 시골 정주지 건설 대도시 : 노동소요와 사회주의를 포함하는 모든 악의 근원 로마의 평면 위에 중세적 스카이라인 건설(상징적 목적의 탑) |
3) 소련
국가 |
소련(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
독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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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탈린 |
모스크바 대학 | |
사상 |
사회주의, 공산주의 | |
스탈린의 언급 |
“앞으로 건축은 표현적이고 사실적이며, 웅변적이어야 한다. 모든 건물은 그 기능이 아무리 수수하더라도 기념비가 되어야 한다.” | |
스탈린 양식 |
거대한 돔을 갖는 스탈린만의 사회주의식 건물지향 모스크바 전역, 겉모습만 화려한 건축 : 스탈린의 취향과 변덕 | |
모스크바 5개년 개발계획(1935년) |
1917년 이후 혼란의 시기 동안 인구 급증, 물리적 구조와 시설이 비참할 정도로 부족 모스크바 5개년 개발계획, 도시미화가 모스크바에 도래 가시적인 대규모 프로젝트에 노력 집중, 계획가들은 지배자를 기쁘게 하려 노력 워싱턴, 시카고, 파리와 똑같이 새로운 건물을 전면에 건설하여 오래된 슬럼들 은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