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 김상덕(金常德) - 플레이어: 931117 - 성별: 여성 - 생년월일: 1903년 11월 17일 - 클래스: 만주협동공화국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원수) - 민족: 조선인 - 모국어: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한어, 에스페란토어 - 능력치: 통솔(10)/체력(10)/지능(10)/지혜(11)/매력(10) - 기술: 사령(4)/지휘(4)/관리(4)/전투(2)/운신(1)/조사( )/연구( )/설득(2)/논쟁(1)/기만(1)/선동(1)/사교(1)/강압(1) - 잔여 포인트: 1 - 배경: 함경도 삼지연에서 서간도로 이주한 빈농의 여식으로 태어난 김상덕은 15세가 된 1918년 겨울 '무오년 독감(스페인 독감)'으로 부모를 모두 잃었습니다. 끈질긴 생존력으로 근근히 생계를 이어나가던 중 만난 마적단 두목 '뤄잉'은 그녀의 남편이 되었고, 그가 1925년 봉천군벌 내 분쟁에 휘말려 사망한 이후로는 상덕이 마적단의 일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조선인으로서의 민족주의적 정체성은 없었지만 동포로서의 애정은 있었고, 서간도와 심요지역 조선인촌을 보호구역으로 삼으며 해당 마을들에 대한 약탈을 엄격히 금했습니다. 대신 후원금(보호비)을 받긴 했지만, 그녀에 대한 민심은 꽤 탄탄해질 수 있었죠.그러던 도중 봉천군벌 장작림이 폭사당하고 일본군부가 폭주하며 만주 겸병을 공공연하게 주장하는 지경이 되자, 관동군은 규율이 잘 잡혀있고 규모도 있으며 민심을 얻었고 두령이 일본인(조선인)이기까지 한 상덕의 마적단을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1929년 관동군 작전주임은 그녀와 용병계약을 체결해 고용관계를 맺었고, 상덕은 여순으로 향해 뒤늦지만 학식을 채워갔습니다. 이후 만주 유신에 참여하고 조선 사태에서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활약했지만, 그녀는 만주와 조선의 현실을 보고 절망해 환멸을 느꼈습니다. 북만주 평정에 시간을 보내던 중 관동군이 친위쿠데타를 일으켰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과 부대에까지 피해가 갈것을 우려한 상덕은 뤼순으로 병력을 밀어넣었고, 관동군이 열도로 떠난 뒤 무주공산이 된 그곳을 점령했습니다. 이후 김상덕 원수는 만주국 군사혁명위원회 의장으로 취임해 만주의 독립을 굳건히 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과 같이 죽을 고생을 하는 약자가 더는 생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는 신념은 아직까지 남아있기에 군사정권의 독재자가 되는길을 피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2.
- 이름: 아나스타샤 콘스탄티노브나 리하초브나/후지와라 사쿠라(藤原咲良) - 플레이어: 카라멜 마끼아또 - 성별: 여성 - 생년월일: 1907년 6월 16일 - 클래스: 일본국 문화선전위원 - 민족: 러시아인(볼가 독일인+핀란드인 혼혈) - 모국어: 러시아어 -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에스페란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핀어 - 능력치: 통솔(7)/체력(7)/지능(10)/지혜(10)/매력(18) - 기술: 사령( )/지휘( )/관리( )/전투( )/운신(2)/조사( )/연구( )/설득(4)/논쟁(3)/기만( )/선동(4)/사교(2)/강압( ) - 잔여포인트: 5 - 배경: 아나스타샤, 또는 후지와라 사쿠라는 한때 케렌스키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콘스탄틴 리하쵸프 공작의 여식으로 태어나 매우 유복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녀가 10살이 되던 해인 1917년 '붉은 혁명'은 거의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을 앗아갈 뻔 했지만, 다행히 사회주의자들을 변호하며 친밀하게 지냈던 공작이 볼셰비키의 묵인으로 무사히 상당부분의 비자금을 챙겨 동방으로 도망치면서 유복한 삶을 이어나갔습니다. 1921년 시베리아에 출병했던 일본군이 철수하고 콜차크 제독의 전러시아 임시정부가 붕괴하면서 그녀의 가족은 만주의 하얼빈에 정착했고, 이후에는 다롄에 저택을 얻게 됩니다.한편 아나스타샤는 학업을 지속하기 위해 도쿄로 보내졌습니다. 집안도 좋고 머리도 나쁘진 않았기에 도쿄대 경제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중국 태생의 자본가 후지와라 타마히코와 만나 곧 결혼했죠. 서류상 공식 이름 또한 후지와라 사쿠라로 등록했습니다. 특유의 사교성과 매력, 학식을 통해 수많은 명사들, 외교관들, 사업가들과 연을 쌓은 아나스타샤는 남편을 따라 여순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의 사교적 재능은 곧 선전총책 아마카스 마사히코의 눈에 들게 됩니다. 아마카스가 설립한 만주영화협회는 그녀를 고문으로 영입했고, 대아시아 유신을 꿈꾸는 일당에도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반동주의적이고 제 국민 하나 관리하지 못하는 내지에 비해 만주는 막대한 가능성의 땅일 거라는 희망과 함께, 아나스타샤는 데마고그의 꿈을 꾸었습니다. 이후 선전선동과 외교협상에 힘쓰며 혁명의 성공과 범아시아연합의 성립에 기여한 아나스타샤는 혁명 일본, 즉 일본국의 문화선전위원(장관)이 되었습니다. 미래에 범아시아 연합의 입지가 더더욱 커질 것을 염원하며, 그녀는 지금도 업무에 전념하는 중입니다.
3.
- 이름: 부 숙경 (傅 肅敬) - 플레이어: dear0904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04년 11월 5일 - 클래스: 만주협동공화국 안전기획부장 - 민족: 만주인 - 모국어: 한어 -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만주어, 에스페란토, 러시아어 - 능력치: 통솔(7)/체력(7)/지능(17)/지혜(18)/매력(7) - 기술: 사령( )/지휘( )/관리( )/전투( )/운신(2)/조사(2)/연구( )/설득( )/논쟁(4)/기만(4)/선동( )/사교( )/강압( ) - 잔여포인트: 0 - 배경: 부숙경은 청말 고위관리의 집안에서 태어나 언제나 양질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가 7살이 되던 해 신해혁명이 발발했으나, 만주족 관료였던 아버지는 다행히 덕망을 많이 쌓아두었기에 무사할 수 있었죠. 북경에서 한동안 수학하던 와중인 1924년 직예군벌 소속의 풍옥상이 오패부 원수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고 봉천군벌 장작림과 결탁해 쿠데타를 일으키는 이른바 '북경정변'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본 숙경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만주인으로서의 자긍심을 키워주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동북 대학에서 문리학을 전공한 부숙경은 1928년 그곳을 졸업하자마자 만철에 입사했습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사건을 파악하는 그의 천부적인 능력은 상관들의 주목을 받았고, 1년도 되지 않아 실질적인 일을 맡기 시작했습니다. 부숙경은 동아 만민이 동등한 입장에서 협력해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흥아론의 주장에 강하게 찬동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일본 제국은 그럴만한 사상적 기반이 빈약하고 물질의 관리능력 역시 미흡해 전혀 그러한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했죠. 정보를 유려하게 다루며 범아혁명을 위해 헌신한 부숙경은 혁명동지들 간의 오해와 갈등, 대립을 해소해줄 수는 없었지만, 김상덕의 '뤼순 진군' 이후에도 일본 혁명에 나선 동지들과 김 원수 사이의 가교가 되며 만주협동공화국 안전기획부장으로서 범아연합의 방패로 자리잡을 수 있었습니다.
4.
- 이름: 야마모토 후네스키(山本 船好き) - 플레이어: 하일레 셀라시에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00년 1월 11일 - 클래스: 일본국 국방위원 겸 범아연합함대 사령장관(대장) - 민족: 일본인 - 모국어: 일본어 - 구사가능언어: 한어, 영어, 에스페란토 - 능력치: 통솔(15)/체력(14)/지능(11)/지혜(9)/매력(9) - 기술: 사령(4)/지휘(4)/관리( )/전투(3)/운신( )/조사( )/연구( )/설득( )/논쟁( )/기만(1)/선동( )/사교( )/강압( ) - 잔여포인트: 1 - 배경: 야마모토 이치류는 어릴 적 전함 미카사를 본 이후로 전함에 성욕을 느끼는 이상성욕자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수많은 함선들을 자신의 손으로 (적진에) 가버리게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해군병학교를 차석으로 졸업한 그는 '변태성욕자', '정신질환자'라는 오명과 함께 그대로 찍혀버렸습니다. 그 덕에 내부 정치 싸움에서 밀려나 한직을 전전했으나, 하필이면 좌천 명목으로 향했던 뤼순에서 후네스키는 그의 인생을 바꾼 '에스페란토 학습동호회'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시와라 간지 등이 이끄는 이 모임은 사실 범아시아혁명을 꿈꾸는 집단이었고, 심지어 관동군을 배후조종해 일본 열도에까지 혁명을 전파할 능력이 되는 집단이었습니다. 이렇듯 천운이 닿아 니시미노미야 친왕으로부터 해군을 이끌 명분을 얻은 후네스키는 열도가 혼란한 틈을 타 휘하의 여순항 주둔 함대를 이끌고 일본 혁명에 여러 공을 세워 '혁명의 주역'이자 '해군의 실권자'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그의 이상형인 나가토와 무츠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낼 생각을 했지만 미국과 영국의 협잡질로 인해 처녀항해를 가져갈 생각이었던 류조를 미국에 빼앗겨버리고 맙니다. NTR 갱뱅을 당해버린 류조를 기억하며, 후네스키는 귀축 영미를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5.
- 이름: 나쓰메 유키오(夏目 公威) - 플레이어: 구뇽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906년 6월 8일 - 클래스: 범아시아연합 과학기술평의회 의장 - 민족: 일본인 - 모국어: 일본어 - 구사가능언어: 독일어, 에스페란토 - 능력치: 통솔(7)/체력(7)/지능(18)/지혜(10)/매력(11) - 기술: 사령( )/지휘( )/관리( )/전투( )/운신( )/조사( )/연구(4)/설득(4)/논쟁(2)/기만( )/선동( )/사교( )/강압( ) - 잔여포인트: 13 - 배경: 나쓰메 유키오는 문부성 국비유학생이었던 수학교수 아버지 '나쓰메 요시미치'를 따라 독일에서 고등교육을 받았습니다. 학자 집안의 피가 흐르는 덕분인지 그는 늘 기민하고 영특한 모습을 보였으며, 어린 나이에 학사학위와 석사학위,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등 당대의 최고 지성들에게 잠깐씩이라도 학문적 영감을 얻고 배울 수 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그는 독일에서 나름대로 행복한 세월을 보냈습니다.허나, 카이저-빌헬름-학회의 추천으로 크고작은 상까지 받고 도쿄로 금의환향한 나쓰메는 그가 그토록 그리던 조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독일 유학시절 읽은 마르크스, 룩셈부르크, 라데크의 저서들에서 지적하던 불평등과 부조리, 극소수의 지배층이 거의 모든 부와 물산을 독차지하는 모습은 정말 부당해 보였죠.그는 유럽에서 동양인들이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모습을 보며 모든 아시아인들이 협력해 서구 열강을 극복하고 각자 제가 가진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기를 바랬습니다. 기타 잇키의 서적을 다시 탐독하고, 리켄 재벌 산하의 이화학연구소에 선임연구원으로 취직해 만주 전출을 자청했죠. 이후 만주의 범아혁명주의자들과 함께하며 날개를 단 나쓰메는 이미 기라성같은 인물들이 된 '동지'들을 보며 호승심을 가지게 되었고, 범아혁명이 성공한 뒤로는 독일 등지에서 탄압을 받는 아인슈타인 등 유대계 과학자들을 데려와 공동연구를 진행했습니다. 1935년 최초의 제트엔진 개발, 나쓰메-보른 연구에 따른 2세대 양자역학이론 초석 정립(이후 아인슈타인과의 '하코네 논쟁'으로 이어짐), 그리고 결정적으로 핵분열이론을 정립하며 수상한 1937년 노벨물리학상까지, 나쓰메의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는 극대치에 다다랐습니다. 현재, 나쓰메 유키오는 전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과학자 중 하나입니다.
6.
- 이름: 호소카와 마사타케(細川 正孟) - 플레이어: 렌지파일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89년 2월 26일 - 클래스: 일본국 정부서기 겸 혁명수호청 위원장 - 민족: 일본인 - 모국어: 일본어 - 구사가능언어: 한어, 러시아어, 독일어, 에스페란토 - 능력치: 통솔(16)/체력(7)/지능(9)/지혜(10)/매력(12) - 기술: 사령( )/지휘(4)/관리(2)/전투(2)/운신( )/조사(3)/연구( )/설득( )/논쟁(3)/기만(2)/선동(1)/사교( )/강압( ) - 잔여포인트: 5 - 배경: 일본의 전통적인 명문가 호소카와 가문에서 태어난 마사다케는 가문의 승계 및 재산상속 본쟁에 휘말리며 친부모를 잃고 가문에서 쫓겨났습니다. 이후 그를 도왔던 고토쿠 슈스이 또한 어처구니 없는 누명을 쓰며 대역죄로 처형당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의 구체제와 천황제에 극심한 분노와 증오를 느끼게 된 마사다케는 그 전에 만났던 오카와 슈메이, 기타 잇키, 마쓰카와 가메타로 등과 가까워지며 투철한 국가사회주의자로 거듭났습니다. 특히 마사타케는 고토쿠의 낭만적인 아나키즘과 민중주의가 그의 실패와 안타까움 죽음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며, 러시아 혁명을 찬양하고 기타의 사상대로 일본에도 혁명전위가 이끄는 위로부터의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켜야 한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3인의 조직이 '유존사'라는 혁명 비밀결사로 뭉치자 마사타케는 유존사의 대변인 노릇을 하며 기시 노부스케와 같은 급진적인 학생과 기타에게 회의적이던 사회주의자들을 유존사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이 합작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했고, 더욱 급진적이 된 마사타케는 이윽고 군부에 투신하여 군사혁명으로라도 일본의 국가사회주의 개조를 수행하겠다는 야심을 품게 됩니다. 육군대학에서 동향 출신의 동갑이자 선배인 이시와라 간지를 만난 마사타케는 기타의 사상과 유사한 이시와라의 사상에 동의하면서도 종교적인 광신과 반러주의를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인맥을 위해 그와 친하게 지내기로 결심한 마사타케는 오히려 그의 최측근에서 혁명노선에 수정을 가해가며 만주 유신, 조선 출병, 그리고 만주를 혁명의 전초기지로 삼아 일본열도에서 황족과 화족을 사실상 몰살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범아혁명의 이데올로그로서, 그는 아시아인 전체가 민족과 종교, 언어의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공동의 번영을 누리는 이상향의 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7.
- 이름: 김필중(金弼衆) - 플레이어: mothership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98년 9월 19일 - 클래스: 조민그룹 회장 겸 동아경영인총회 의장 - 민족: 조선인 - 모국어: 조선어 - 구사가능언어: 일본어, 만주어, 영어, 에스페란토어 - 능력치: 통솔(12)/체력(7)/지능(7)/지혜(16)/매력(10) - 기술: 사령( )/지휘( )/관리(3)/전투( )/운신(3)/조사( )/연구(1)/설득(2)/논쟁( )/기만(2)/선동(1)/사교(1)/강압( ) - 잔여포인트: 19 - 배경: 김필중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가 한창 개혁 소동을 벌이던 무렵 경주에서 지주 가문의 장자로 태어났으나, 그의 부모가 1912년 신민회 105인 사건에 엮여 '실종'되고 나서는 그의 능력만을 오롯이 활용해 살아남아야 했습니다. 다만 다행히도 그에게는 적재적소에 물류와 화폐를 투자하고 배치하는 천부적인 능력이 있었고,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비롯한 크고작은 일본계 회사들에서 정체를 감추고 근무하며 실전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1920년 회사령이 폐지되자 본격적으로 부모의 유산과 여태 모은 돈을 가지고 창업에 나선 필중은 미곡, 목재, 석탄, 철광석 등을 부산항에서 하역해 만주로 실어나르는 중개무역업체, '조민양행'의 사장이 되었습니다.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가 연맹하여 사회주의 연합을 형성해야 한다는 기타 잇키의 사상을 추종한다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독립운동을 숨기기 위한 필중의 연기였습니다. 그러나 '평등한 주권국가 간의' 단일경제권 형성으로 서구 열강과 맞서자는 것은 그의 진심이었고, 의외로 범민족주의 내지 탈민족주의를 추종하던 뤼순의 이시와라 일당(에스페란토 학습동호회)은 오히려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습니다. 결국 그들과 끝까지 함께 행동한 김필중은 조선이 범아시아연합 소속의 독립국이자 자주국으로 거듭나는 데 크게 기여했고, 조선 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입지를 가진 굴지의 대기업 회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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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가네다 마사이치(金田 正一) - 플레이어: 통장 - 성별: 남성 - 생년월일: 1898년 8월 1일 - 최종 클래스: 아시아개발국제유한공사 이사 - 민족: 일본인 - 모국어: 일본어 - 구사가능언어: 조선어, 에스페란토, 한어(약간) - 능력치: 통솔(18)/체력(9)/지능(9)/지혜(10)/매력(9) - 기술: 사령( )/지휘(1)/관리(3)/전투( )/운신( )/조사( )/연구( )/설득( )/논쟁(1)/기만(1)/선동(1)/사교( )/강압(1) - 배경: 가네다 마사이치(김경홍)는 구 일본제국 관동주 뤼순에서 조선인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9년 그의 생부가 공사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하고 나서, 가네다는 고아가 되었습니다. 이곳저곳을 걸식과 구걸로 전전하다 1910년 철도원 양부 니시무라 요헤이에 의해 거두어진 이래, 가네다는 양부에게 철도의 관리와 운영 등에 대한 사항들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양부 니시무라에게 친아들이 생기자, 그는 친자와 양자를 공공연하게 차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본 가네다는 극심한 배신감을 느꼈고, 오로지 개인의 성공과 명예, 신념의 실현을 위해서만 달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배경지식을 키우기 위한 각종 서적을 독파하며 혈혈단신으로 유망한 철도기술자로 거듭난 이후, 가네다는 만철 위탁 하의 조선총독부 철도국에 파견되어 함경선 건설 관리자로 일했고, 철도가 비단 이동수단만이 아닌 근대국가의 모든 성과 근저에 있는 '뿌리foundation'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기타 잇키의 범아론을 긍정하는 그에게 있어 만주와 조선의 철도를 관장하는 만철은 개인의 역량을 사회라는 허상에 가둔 채 억압하고 착취하는 '국가'를 타파, 대체할 적임자로 여겨졌습니다.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공정한 필드field 위에서 도태될 자와 끝없이 상승할 자를 결정하는 자연의 이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같은 찌꺼기는 필요 없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과정을 그 혼자 헤쳐나갈 수는 없었기에, 가네다는 그가 '이용할 만한' 협력자를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던 도중 그는 다롄에서 아시아주의 성향 군인 및 각계의 젊은 인사들이 모인다는 에스페란토 학습동호회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곳 일행들의 수장 역할을 하는 이시와라 간지의 행보를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만주 진출, 조선 출병 및 해방과정을 기획하면서 공신이 된 가네다는 만철(이후 아시아개발국제유한공사, '아공')의 이사이자 사실상 기업 휘하 준군사 사조직의 수장 역할을 꿰차는 데 성공했지만, 그의 주위에 있던 이른바 '혁명동지'들은 다분히 사회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쓰레기 사상'에 천착하고 있었습니다. 조직의 또 다른 이데올로그이자 국가사회주의자 호소카와 마사다케는 가네다가 반드시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죠. 조선 혁명의 연쇄작용으로 일본열도가 불타는 와중에 '혁명동지'들은 다시금 한데 모이게 되었고, 가네다는 권력 장악을 위한 마스터플랜을 남몰래 수립했습니다. 허나 보다 결단력있게 행동한 마사다케는 끝끝내 관동군의 중핵이라는 그의 지위를 이용해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가네다의 심장에는 어느새 8 밀리미터 구경의 납탄이 박혀 있었죠.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 가네다는 깨달았습니다. 마사다케의 이상이, 적자생존의 원칙에 따라 자신을 도태시켰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적어도 그는 '그의 방식대로' 마지막을 맞을 수 있었던 셈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