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 6시 30분 푸쪼 공항 출발 다낭 공항에 8시에 도착했다. 시내까지 택시로 이동하였다. 캄보디아와는 달리 툭툭이 없어서 교통 흐름이 빨랐다. TMS 호텔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었는데 배가 많이 고파서인지 맛있게 많이 먹었다.
침대에서 손자 둘과 잠을 잤다. 아이들이 굴러 다녀서 고생 좀 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1층에 갔더니 긴 웃을 입은 관계로 반팔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더니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 직원에게 물어보니 카드를 인식시켜야 엘리베이터가 움직인다는 것, 고급호텔은 그렇다고 한다. 촌놈이라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다.
해변을 뛰어다니며 열심히 운동했는데 호텔에 들어오려고 모래를 털어내는 게 큰일이었다.
딸내미가 권하는 대로 크록스 신발을 신을 걸 그랬다.
아이들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3층에 가서 아침 식사를 했다. 뷔페인데 여러 가지 음식이 많아서 맛있게 잘 먹었다. 고급 호텔이라 그런지 잠자리와 식사 메뉴가 매우 좋다.
택시와 셔틀버스를 타고 바나 힐스로 출발하였다. 케이블카를 탔는데 얼마나 많이 올라가는지 20분 정도는 소요된 것 같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해발 1457m라고 하는데 케이블카 밑으로 보이는 계곡과 밀림이 장관이었다.
얼마나 볼 것들이 많은지 천천히 둘러보려면 하루가 부족할 것 같았다. 골든 브릿지, 러브가든, 나나 블루하우스를 훑어 보았는데 2만 보를 걸어 다리가 뻐근했다.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피곤한 하루였다.
3일 차에는 호이안 시장으로 향했다. 한 시간 마사지를 받았다. 평소 마사지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시원하게 주물러 주는 느낌이 좋았다.
그다음에는 호수 구경을 갔다.
통통배와 바구니배를 타고 놀았다. 통통배로 20여 분 간 것 같다. 바구니 배로 갈아탔는데 바구니 배 뱃사공이 대나무로 만들어 주는 메뚜기와 낚시에 걸린 붕어가 아기자기하다.
바구니 배의 유래가 인상 깊어서 적어본다.
19세기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 정부는 베트남 어부들에게 무거운 선박세를 매겼다고 한다. 배를 가진 것만으로도 가난한 어부들은 감당하기 힘든 세금을 내야 됐다. 이때 베트남 사람들이 꾀를 냈다.
그들은 대나무를 엮어 둥근 바구니 모양을 만들고 물이 새지 않게 소똥과 수지를 발라 물에 띄웠다. 서구적인 기준에서 이건 도저히 배로 보이지 않았기에 세금 징수원들을 따돌릴 수 있었던 거다. 생존을 위한 천재적인 발상의 전환이었다.
둥근 바구니 배가 유리한 것은 후이안의 좁은 수로와 울창한 야자수 숲 사이를 이동하기에는 일반적인 긴배보다 동그란 바구니 배가 훨씬 유리했다. 제자리에서 360도 회전이 가능해 좁은 공간에서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즐기는 스핀 퍼포먼스는 사실 이 놀라운 기동성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소똥을 잘 이겨서 바구니 틈에 바르면 마르면서 아주 단단하고 방수 효과가 뛰어난 막이 형성된다. 물론 지금은 현대적인 방수액을 쓰지만 그 원리는 여전히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알고 타면 신기한 베트남의 과학이다.
바구니 배와 통통배를 타고 놀다 보니 어느덧 날이 어두웠다. 밤 야경이 장난 아니기 아름답다. 작은 종이배에 촛불을 켜서 띄우며 소원 한 가지씩 말하라 했다.
" 우리 아버지 만수무강 하게 해주세요."
딸래미의 소원이 귀엽다.
여행 중 과식이 문제다. 체하여 배가 살살 아팠다. 소화제를 물에 녹여서 식사 전과 식사 후로 마셨다. 두 끼를 그렇게 했더니 체한 것이 해결되었다.
" 다음부터는 과식하지 말아야지."
4일째 되는 날은 시간 죽이기가 큰 관건이었다. 뒹굴거리다가 11시쯤 호텔 체크아웃 했다. 시내에 나가 식사를 했다. 베트남 음식이 맛이 좋았다. 과식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광어의 맛에 이끌려 과식하고 말았다. 또 소화제를 먹었다.
아이들과 함께 키즈카페에 갔다. 3시간 시간죽이기를 성공했다. 7시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고 왔더니 10시에 집에 도착했다
이번 여행은 딸과 사위 덕분에 호강했다. 초중고등학교 다니는 동안에 수학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어떤 사고 때문에 수학여행이 전국적으로 전면 금지된다고 하여 여행을 가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나라에서는 수학 여행을 금지하지 않았지만 학교 방침으로 수학여행을 금지하여 가지 못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나라에서 금지하지 않아 학교에서도 수학 여행을 갔지만 나의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수학 여행을 포기했다.
그래서 꿈 속에서도 바라고 바라던 것이 여행이었다. 여행가고 싶어 안달했는데도 현직에 있을 때 내 뜻대로 여행을 하지 못했다. 현직에 있을 때에 학교 수학여행 인솔차 갔고, 직장 연찬회때 1박 2일 일정으로 몇 번 갔었다.
50살이 될 때까지 해외 여행을 한 번도 가지 못했었다. 해외여행이 소원이었다.
10여 년 전에 가족과 함께 대만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다녀왔다. 그때 보았던 진리대학과 조개 사원이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른다. 그보다도 비행기를 타고 내린 것이 감격이었다.
작년에는 장가계를 4박 5일 일정으로 혼자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다. 회갑기념이라고 혼자 패키지여행을 다녀온 용기가 가상하다.
그 후 큰딸과 살면서 여행을 지겹도록 많이 다녔다. 캄보디아 내에서는 크롱깩 시아 누크빌 꼬롱섬을 다녀 왔고 사위네 나라인 브루키나 파소를 다녀왔다. 그리고 이번에 베트남 다낭에 다녀온 것이다. 딸이 여행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도 많은 경험을 해주고 싶어서 여행을 계획하기도 하여 같이 사는 나도 덕을 본 것일게다
글을 맺으며 그런 말을 하고 싶다.
잘 키운 딸 열 아들 안 부럽다!
오예~
핑크 성당
딸네 가족
독사진
바구니배
호텔에서 받은 화환
바나힐의 명소, 골든 브릿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