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 지역은 고인돌을 비롯한 구, 신석기 및 청동기 유적 등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까마득한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중심부분에 위치하며 속리산에서 발원되는 삼파수 등 풍족한 물과 해발 70미터의 알맞은 고도는 청명한 기후, 맛좋은 농산물이 생산되는 기름진 땅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살기에 좋았다. 경상, 전라지역에서 오기가 쉬웠고 세속을 잊고 은둔하며 살기에 좋아 특히 한양 등지 선비들도 가족을 동반하고 세거해 가문을 중흥시킨 중시조가 되기도 했다.
보은에 집성촌을 형성하며 십 수대에 걸쳐 살아 온 성씨는 대략 30여개로 집계할 수 있다. 보은문화원 김건식원장이 집필한 ‘보은의 지맥과 인맥’(1999년)을 참고로, 현대 인물 위주의 ‘보은의 성씨순례’를 취재 순으로 게재한다.
‘2명의 대통령, 2명의 국무총리 배출한’ 노씨(盧氏)
보은지역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노씨 문중의 세는 김, 이, 박, 최 가(家)등에 비해 미약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대사에서 노태우(제13대 대통령), 노무현(제16대 대통령) 2명의 대통령과 노신영(5공,18대), 노재봉(6공, 22대) 2명의 국무총리를 배출한 명문가다.
◇ 유 래 ◇
한국의 노 씨는 중국 당나라 때 안록산의 난을 피해 아들 9형제를 데리고 한반도에 정착한 범양사람 노수(盧穗)를 도시조로 한다. 그리고 아홉명의 아들은 신라에 공을 세워 광주(光州)·교하(交河)·풍천(豊川)·장연(長淵)·안동(安東)·안강(安康)·연일(延日)·평양(平壤)·곡산(谷山) 등 9개 지역에 주백으로 분봉됐다. 그 후 경주(慶州)·용성(龍城)·만경(萬頃)·해주(海州)·영광(靈光)·동성(童城)·선산(善山)·함평(咸平)·청도(淸道)·신창(新昌) 등이 전하지만, 모두 앞의 9관노씨(九貫盧氏)에서 분파되었다. 일반적으로 광주 노씨가 큰집으로 알려져 있으나 교하노씨 ·풍천노씨도 가승(家乘)에는 각기 큰집으로 나와 있고, 제9자인 곡산노씨도 족보에는 제5자(子)로 기록되어 있다.
여하튼 교하 노씨는 경기도 파주군 교하면 교하백으로 봉해진 둘째 아들 노오(盧塢)를 원조, 그의 후손 노강필(盧康弼)을 시조로 한다. 그리고 고려 말부터 거족이 된다. 노척은 딸을 원나라 황제인 순제비로 보내면서 막강한 권세를 가졌다. 노한은 조선의 태종 이방원과 동서지간으로 우의정을 지냈고, 그의 아들 물재는 세종대왕과 동서지간이었다. 또한 물재의 아들 사신은 수양대군과 이종사촌으로 조선시대 명재상이다. 사신의 아들 공필은 6조 판서를 모두 역임했는데, 조선왕조에서 다산 정약용과 더불어 가장 오랜 세월(18년) 유배생활을 했다. 이런 오랜 유배생활 탓인지 노공필 이후 문과 급제자는 나오지 않았다. 또한 교하 노씨 문중은 급격히 쇠락했고 인구센서스(85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4만5천여 명(노씨 전체인구는 19만6천여 명)이었다.
◇ 노씨 현대사 ◇
노씨 중앙종친회에는 ‘구파일원손 만동근원(九派一原孫 萬同根源)이라고 쓴 교하 노씨 자손 노태우 전 대통령의 휘호가 걸려있다. ‘9파가 모두 한 조상의 후손이고 그 후손이 여러 갈래로 뻗었으나 조상은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노 씨 종친들은 본관에 상관없이 강한 유대감을 갖고 있다. 노 씨 삼릉단 사적지 서문 격려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은 ‘우리 노 씨는 한국의 현대사에 있어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을 배출함으로서 최고의 문중임을 입증했다’고 말했다. 광주 노씨 자손 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한말 이부상서를 지낸 노식 선조가 유학을 중흥시켰고 중국 불교의 육조 노혜능 선사는 육조단경을 저술해 인류사에 공과 업적을 이룬 만큼 자긍심을 가질 만하다’고 말했다.
5, 6공 당시 노 씨들은 힘을 가진 노태우 전 대통령 때문인지 사회 각 분야에 소리 없이 진출했다. 외무장관, 안기부장, 국무총리를 지낸 노신영,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에서 대통령비서실장, 국무총리를 역임한 노재봉, 청와대 의전수석과 유엔대사 등을 지낸 노창희, 청와대 민정비서관, 충북지사, 산림청장, 교통부장관을 역임한 노건일, 초대 중국대사를 지낸 노재원, 충남 아산 둔포면 농협조합장에서 전국구 국회의원이 된 노인도, 3선 국회의원으로 국회 재무위원장을 지낸 노인환, 필리핀 대사 등을 지낸 노정기 씨 등이 정관계에서 활동했다.
◇ 노씨 보은지역 내력 ◇
전국노씨 보은화수회(뒷줄 시계방향으로) 노재수 부회장, 노인우, 노명우, 노재구,
노양우, 노진우 회장, 노태호 총무, 노문호,이석래, 서영희, 나기순 씨
교하 노 씨 보은지역 집성촌은 산외면 대원, 장갑, 길탕리 이다. 그리고 회인면 쌍암, 마로면 원정리에 일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산외면과 접경지인 청원군 미원면 어암리에도 집성촌이 있다. 또한 청원군 남일면 신송리 산 69-2에는 충북 기념물 제73호로 지정된 체화당사 및 사적비( 華堂祠및事蹟碑)가 있다. 체화당사는 조선 중기 선조 때 선비인 교하 노씨의 4형제 노계원·노준원·노종원·노일원의 위폐를 모신 사당이다.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에 따르면 영의정 유성룡이 이들 4형제의 남다른 우애와 효성이 지극한 것을 보고 선조에게 말씀드리니 선조가 친히 체화당이란 글씨를 써서 그 집에 걸도록 하였다. 숙종 27년(1701)에 후손들이 남일면 가산리에 사당을 세우고 체화당사라고 이름 하였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 그 뒤 1967년에 후손들이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짓고 사적비도 옮겨 놓았다. 미루어 볼 때 보은지역 노씨는 청주, 청원지역에서 이주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보은군에는 본관을 초월한 ‘전국 노 씨 보은화수회’가 조직되어 있으며 회장에 노진우(삼승 원남), 부회장 노재수, 노태호(태양볼링장 대표)씨가 총무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