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홍매 비매 매화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일반 게시판 스크랩 임진탐매 Ⅳ 남도탐매 ② 무위사와 월남사지
눌인 추천 0 조회 27 12.03.06 22:40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임진탐매 Ⅳ 남도탐매 ② 무위사와 월남사지

 

 

 

 

오늘은 강진으로 가서 장흥 보성을 거쳐 순천으로 가기로 하였다. 먼저 찾은 곳은 무위사(無爲寺)이다. '하나하나 곱씹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절'인 무위사는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 1174번지 월출산(月出山)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22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이 절에 대해서는 2008년 3월 나의 블로거 - 눌인정사로의 초대> 불적을 찾아서 > 전남의 명찰 코너에서 13꼭지의 글을 남긴 바가 있다. 즉 Ⅰ개론 - 소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 Ⅱ 가람배치, Ⅲ 극락전(無爲寺極樂殿), Ⅳ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木造阿彌陀三尊佛坐像), Ⅴ극락전아미타후불벽화(極樂殿阿彌陀後佛壁畵), Ⅵ극락전백의관음도(極樂殿白衣觀音圖), Ⅶ극락전내벽사면벽화(無爲寺極樂殿內壁四面壁畵)①, Ⅷ 극락전내벽사면벽화(無爲寺極樂殿內壁四面壁畵) ②, Ⅸ 극락보전의 또 다른 성보유물, Ⅹ무위사선각대사편광탑비(無爲寺先覺大師遍光塔碑), ? 삼층석탑(無爲寺三層石塔), ? 명부전(冥府殿), 미륵전(彌勒殿)과 산신각(山神閣), ⅩⅢ 천불전 (千佛殿)과 천왕문(天王門), 기타 - 라는 제목으로 장황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 후 많은 미술사학도들로부터 자료 요청을 받았고, 감사의 연락도 많이 받았다.

 

 

그런데 당시는 매화에 문외한이었던지라 이곳의 매화에 대하여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미안한 마음도 들고 하여 다시 찾은 것이다. 소박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하였던 무위사도 여타 다른 사찰들처럼 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입구 주차장은 아래로 내려가 있었고, 없던 일주문을 비롯 새로운 전각들이 들어서 옛 맛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2008년 입구

새로만든 일주문

 

여하튼 이곳 무위사에는 국보 제13호 극락보전(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국보 제313호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 보물 제507호 선각대사탑비(康津 無爲寺 先覺大師塔碑), 보물 제1312호 아미타여래삼존좌상(康津 無爲寺 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314호 극락전백의관음도(無爲寺極樂殿白衣觀音圖), 보물 제1315호 극락전내벽사면벽화(無爲寺極樂殿內壁四面壁畵) 등 국보 2점에 보물이 4점이 있는 말 그대로 성보(聖寶) 사찰(寺刹)이다.

 

국보 제13호 극락보전(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2008년

 

보물 제507호 선각대사탑비(康津 無爲寺 先覺大師塔碑)

 

선각대사탑비의 거북받침돌 - 크게 웃는 듯한 거북의 얼굴이 재미있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전은 세종 12년(1430)에 지은 것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이다. 배흘림기둥을 세운 주심포양식인데,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조각한 공포를 얹어 가구(架構)를 짰는데 고려시대 팔작지붕보다 세련미(洗鍊美)가 더 있다. 이 무위사 극락전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극락전(極樂澱)은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사찰 당우(堂宇) 중의 하나이다. 극락이란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 불교의 이상향이다. 극락이 서쪽에 있는데, 서쪽이라는 개념에 별 뜻은 없다. 일명 아미타전 또는 미타전, 무량수전 등으로 불리는데, 전각은 대개가 동향으로 앉아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대웅전 다음으로 많은 전각이다.

 

 

보통 주불인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로 봉안된다. 조선 후기에 들면 대세지보살 대신 지장보살을 세우기도 한다. 이 무위사에도 지장보살이 협시보살 중의 한 분이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부처님이다. 아미타불인 불상은 석가여래상과 흡사하여 구분이 어렵지만 고려시대 이후의 아미타불상은 아미타불만의 수인인 아미타구품인을 하고 있어서 다소 구별이 용이하다. 후불탱화는 극락세계를 그린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를 주로 봉안하지만 이곳 무위사 극락전의 경우, 아미타내영도 등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그밖에 극락의 구품연화대를 묘사한 극락구품탱화(極樂九品幀畵)나 아미타탱화를 봉안하기도 한다. 극락정토왕생에 대한 믿음이 강했기 때문에 대웅전과 견줄 만큼 화려하게 꾸몄다.

 

 

아미타불을 본존으로 하는 사찰에는 해탈문이나 금강문 대신 안양문(安養門)이나 안양루(安養樓)를 둔다. 그래서 새로 지은 당우의 이름은 안양루(安養樓)일 것 같다.

 

 

그런데 극락보전 불단 위에 모셔져 있는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보물 제1312호) 중 중앙의 아미타불상은 모셔있는데, 왼쪽에 있던 관음보살상과 오른쪽에 있던 지장보살상이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좌측(향우)에는 왼다리를 내려 반가자세를 취한 채 보병을 들고 있는 관음보살상이 계셨다. 우측(향좌)에는 석장을 짚고 오른다리를 내려 반가자세를 취하고 있는 지장보살상 계셨다. 이 두 보살상은 다소 미숙한 개금처리로 인해 표면이 거칠어졌을 뿐 보존 상태는 양호하였는데, 안계셨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성보박물관으로 달려가 보아도 역시 계시지 않았다. 극락보전이라는 당호(堂號)를 바꾸어야하나?

2008년 3월 답사시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모셔져 있었다.

이번 답사에는 아미타불만 계셨고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은 사라졌다.아미타불 뒤가 국보 제313호 극락전 아미타여래삼존벽화(康津 無爲寺 極樂殿 阿彌陀如來三尊壁畵)이다.

 

 

혹 매화도? 불길한 마음이 들어서 이곳저곳 물어보았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실망을 하고 내려오는 계단 옆에 고고한 자태를 품고 있는 한그루 매화가 보인다. 역시 철이 일러 꽃은 볼 수 없었지만 잘 계시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돌아섰다.

 

수령이 약 100년이 된다고 한다. 꽃잎이 18~22매인 중엽으로 만첩홍매화라 한다.

무위사 매화

 

 

무위사 매화는 망울만

무위사 입구에서 북쪽으로 난 포장길을 따라 올라가면 초록융단을 깔아놓은 듯 한 녹차 밭이 끝없이 펼쳐진다. 우뚝우뚝 솟은 월출산(809m) 바위봉우리를 배경으로 자락을 따라 이어지는 27만평에 이르는 녹차 밭이다. 사철 푸른 녹차 밭이 등고선을 그리며 월출산을 오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태평양화학 영암다원이란다. 서해에 인접하여 달을 제일 먼저 맞이하는 곳이라 하여 월출산이라 하는데, 정상 가까이에 있는 국보 제144호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靈巖 月出山 磨崖如來坐像)이 보고 싶어졌다. 대학생 때 답사 차 가보고 다시 찾지 않은 곳이라 퍽 궁금하다. 부처님은 그대로실텐데 나의 눈이 너무 바뀌었으니... 한국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라는 월출산 명물 구름다리도 걷고 싶고... 월출산 국립공원 입구를 그냥 스쳐 지나려니 아쉬움만 더해진다. 그러나 보아야할 곳이 너무 많이 남았지만 시간은 넉넉지 않다. 

 

다선(茶仙) 이한영(李漢永;1868~1956) 생가 복원지

복원전 모습- 자료집에서

 

다음 코스로 다선(茶仙) 이한영(李漢永;1868~1956) 생가로 정했다. 작년 11월 생가를 복원하였다는 기사를 보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과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되는 우리나라 차(茶)역사의 맥을 이어온 다인(茶人)으로 알려져 있는 이한영은 일제강점기속에서도 차의 제조기법과 차문화(茶道)의 제다(製茶)의 명맥을 이어왔으며 백운동과 옥판산 이름을 딴 '백운옥판차'라는 상표를 브랜드화 한 다인(茶人)이었다. 그의 고가에 혹 매화 한그루 쯤 있으려니 찾아보았지만 입구에 전통찻집‘월출산 다향산방’만 자리할 뿐 찾을 수 없었다.

 

 

 

이곳에서 불과 100여미터 남짓한 곳에는 보물 제298호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과 보물 제313호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가 위치한다. 이 중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이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월남사 터에는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康津 月南寺址 三層石塔)이라는 매우 중요한 석탑 1기가 남아있다. 백제탑의 정형이라 불리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9호)과 흡사한 것으로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다. 일본의 목탑들이 이곳 백제 땅에서 건너갔음을 실감나게 해 주었다.

 

 

월남사지는 목포에 소재한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었다. 토요일이 되어서인지 조사원이나 경비 한사람 보이지 않는다.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보물 제298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주변을 둘러보니 건물지들과 탑재들이 널려있다. 이로보아 보물 제298호 강진 월남사지 삼층석탑 외 또 다른 석탑이 있었던 듯하다.

탑재들

진각국사비는 고종 21년(1234)에 57세로 입적한 국사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당시의 문장가인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전해지는 비문이 있는 비석이다. 고려의 보조선사 밑에서 수도를 하였고 고종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대선사(大禪師)가 된 분이다. 비몸은 원래 매우 컸다고 하나 윗부분이 떨어져 나가고 아랫부분만 남아 있으며, 표면이 심하게 마모되어 비문은 잘 보이지 않는다. 거북받침돌의 모습이 매우 강렬하고 사실적이며, 발톱에서 보이는 현실성이나 목과 머리조각의 세부표현 또한 전체적인 균형과 잘 어우러져 한층 돋보이는 작품이다.

보물 제313호 강진 월남사지 진각국사비(康津 月南寺址 眞覺國師碑)

 
다음검색
댓글
  • 12.03.07 08:43

    첫댓글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 작성자 12.03.08 18:10

    내보다 더 가까운 곳에 계시고, 집안에도 만발해 계시니 부럽습니다. 어제 청송 눌인정사에 가서 매화를 심었습니다.

  • 12.03.08 10:47

    감사합니다

  • 작성자 12.03.08 18:10

    나도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