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세탁소에 잠시 들려 직원들에게 상중에 조문은 물론 맡은바 직무에 탈 없이 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뉴욕 공항을 향해 버스에 올랐다. 기계소리들이 귓전에 아물거린다. 내가 죽어도 세상은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러가겠지.
비행기 좌석은 창쪽으로 부탁해 예약했다. 혹시 어머니 혼 불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생각. 어려서 어른들은 말했다. 옆집 정희 아버지가 떠난 날 혼 불을 봤다고. 동네 앞 동산을 넘어 홀연히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 비행기 어두운 탓인지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이미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셨음이 분명하다. 며칠째 곡기는 물론 과일 한쪽도 입에 대지 못해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다시 발신인 주소가 목포 교도소로 되어있는 아우의 편지를 꺼내 읽었다.
날짜로 미루어 몇 개월 전에 부쳐진 엽서인데 어머니의 좋지 않은 눈으로 얼마나 만지셨는지 휴지처럼 너덜거렸다. 어려서부터 내겐 적수였고 자신의 잘못까지 어머니에게 고자질해
나를 끝없이 괴롭혀 왔던 아우를 나는 저주했었다. 마지막 영우의 모습을 본 것은 그가 집을 나간 지 몇 해 후인데 학교정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초췌한 모습이었다.
돈이 좀 필요하다고 했다. 내 수중에 있는 지폐 몇 장을 주면서 집으로 가자고했으나 거부의 몸짓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러한 영우를 어머니는 붙들고 매질한 기억이 내겐 없다. 분명 나의 잘못이 아니었음이 밝혀져도 나는 항시 나쁜 녀석이고 영우의 행동은 못 본 척 눈감아 주었다.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등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영우를 따뜻하게 안아주지도 않았다.
영우가 우리 핏줄이 아니라는 사실을 엽서를 통해 알았다. 생모가 어느 날 영우 앞에 나타나 그가 겪었다는 혼란만큼 나도 혼란스러웠다. 혹 나와 배다른 형제는 아닌가하는 의심도 별안간 스쳤으나 시기적으로 아버지는 지하에 계셨으니 알리바이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둥지에 뻐꾸기처럼 영우를 던지고 간 정체는 누구일까?
그 날은 강진에 있는 옛 잠실(누에 키우는 장소)로 쓰던 건물을 통째로 사서 우리 집 마당으로 날라 온 날이었다. 판자를 톱으로 잘라서 수레를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영우에게 물었다. 쾌재를 부르더니 벌써 장독근처에서 톱질 소리가 났다. 바퀴는 마부아저씨에게 부탁해 통나무를 잘라서 끌로 구멍을 파달라고 나도 로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들어온 어머니가 유심히 살피더니 그 판자를 어디서 갖다가 자르고 있느냐고 영우에게 물었다. 마당에 잔뜩 쌓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게 교회 중축할 재목인데 누가 그런 짓을 시켰는가 캐물었다. 마치 나를 범인으로 미리 지목해 놓고 심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얄미운 영우는 기다렸다는 듯 나를 향해 지목했다.
나는 술 창고로 끌려갔다. 그곳은 내게 있어서 어머니가 말하는 지옥과 같은 곳이다.
그곳에 던져지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막걸리 숙성하는 소리가 나의 분노처럼 부글거렸다. 약삭빠른 영우에 대한 불꽃같은 것이 눈에 응결되었다. 배가 고파서 덜 익은 술이라도 마시고 싶어도 큰 숫자가 씌어진 술독이 너무 높아서 어린 키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지금은 내가 아닌 영우가 갇혀있다.
비행기가 어느덧 캄차가반도의 상공에 진입할 무렵, 나도 몰래 잠시 잠결에서 깨났다.
어머니의 서랍장을 정리하면서 목이 잠긴 것은 어머니가 손수 꿰매어 입은 속옷가지들이다. 자신의 소유물에 대해서는 평생 그렇게 인색했다. 시장을 봐서 잔뜩 냉장고를 채워 넣고 다음 날 다른 일로 가보면 냉장고에 반쯤 남은 갤런짜리 우유병 뿐이었다. 이웃들에게 퍼주고 자신은 우유만 마시면서 닷새를 기다릴 작정이셨을까? 늘 용돈 때문에 막내가 독사처럼 독한 녀석이라고 막말을 서슴치 않았다. 바로 나더러 하는 소리 같아 때로는 대들었던 것이 또 목에 걸렸다. 어머니는 한국정부에서 연금 받으시지요. 미국정부에서 연금 받으시지요. 저희 형제 매월 용돈 드리지요. 도대체 돈은 어디에 필요하세요?
굳게 입을 다물고 마시던 어머니의 용처는 다양했다. 신기한 것은 어머니가 유복하게 성장한 목포엔 전혀 손길이 가지 않고 시집와서 가장 고통의 세월을 보낸 해남이 항시 무대였다.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 고향이 되어버린.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도
“너 학수라고 기억나지?”
“네 집에서 허드렛일 하시던 피난민 아저씨.”
“꼭 찾아서 도와 주거라”
50년 전 타임머신 속에서 유언을 남기셨다.
-계속-
메모 어머니의 열쇠뭉치 가운데 무디고 가장 커다란 술 창고 열쇠는 교도소 간수들이 방망이와 함께 차고 있는 열쇠와 재질이 비슷했다. 녀석은 다른 열쇠들을 얕잡아 보듯이 늘 거만하게 내 눈을 거슬리게 했다.
첫댓글 아침에 일어나 이 글을 읽으니 싱그러운 느낌이 듭니다. 조금 아까 신문에서 본 골치 아픈 세상사가 아득해집니다. 현실 외면과는 다른 산뜻한 국면 전환 같은... 글에서 은은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점점 흥미있어지네요.^^
이야기가 어째 대하소설 분위기가 납니다요.^^
술창고 속에서 배고픔과 화를 달래야했던 소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군요. 어려운 이웃을 기억하는 어머니의 따스한 마음도요.
목포, 해남 이라는 지명만 들어도 저는 아련하고 애틋한 심정이 됩니다. 저로서는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그러나 어렷을적 방학때면 가 보았던 어머니의 고향땅입니다. 그리하여 마치 내 알지 못하는, 어머니가 살던 옛시절의 숨은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플륫님, 소설이 재미있다고 말하기에는 왠지 가슴이 먹먹합니다.
영우라는 인물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네요.
그는 또 무슨 사연으로 이 생에서 어떤 역을 하러 나온 사람인지...
각별한 마음으로 읽고있습니다.
저도 분발해야겠어요... -_-
어머님이 본인과 자식에게는 엄격하기 그지 없어도 이웃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따스한 분이셨네요. 그런 어머님을 추억하시는 플륫님의 가슴이 얼마나 먹먹하실지 안타깝습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집니다.
사랑하는 님들 모두 건안하시지요?
벌써 한해가 기우는군요. 한해를 돌아보시면서, 또한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보면서 보람 있으시기 기원합니다.
글놀이님의 부군께서 재활치료 빠른 쾌차 바라옵고 좋은글찾아서님의 건강도 쾌차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