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씨성의 유래.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는 중국 후한 때 漢學士였던 황락(黃洛) 公의 후예이다.
그는 서기 28년(신라 유리왕 5년)에 귀화한지 2000여년의 역사와 더불어 종족사를 유래(由來)하면서 東邦의 거성(巨姓)으로서 世代를 계승(繼承).발전시켜온 黃氏의 始祖이시다.
黃姓字는 중국에서 사용하던 字를 그대로 사용하여 姓族이 되었다. 吾黃은 인간의 기본사상인 윤리와 도덕을 숭상(崇尙)하는 절의(節義)있는 宗族이며 후손들이 번창하여 본관을 달리하고는 있으나 한국에 살고 있는 黃氏는 모두 黃洛 始祖의 후손이다.
1985년 경제기획원 조사통계국에 따르면 남한에서 16번째 순위의 성씨이며 약 13만4천가구에 60여만명의 종족이 방방곡곡에 살고있다.
黃洛 시조설은 중국문명의 開祖였던 黃帝(軒轅氏)는 有能國의 임금 少典의 아들로 태어나 中原(지금의 황하유역)의 여러 부족국가를 통일하여 黃帝가 되었다. 전욱고양씨(顚頊高陽氏)는 黃帝(軒轅氏)의 자손이며 육종(陸終)은 전욱(顚頊)의 증손(曾孫)으로 黃邑에 봉해져 성을 황씨로 창시(創始)하였다고 전해진다.
그후 육종(陸終)의 후예(後裔) 중에는 해(海), 락(洛), 호(湖) 3형제가 있었고 그중 둘째인 락(洛)(한나라 光武帝 建武 4년 신라 유리왕 5년) 후한(後漢)의 유신으로 구대림(丘大林, 평해 구(丘)씨의 시조)장군과 함께 교지국(交趾國, 옛 월남의 한지방)에 사신으로 가던 중 풍랑을 만나 평해에 도착하여 청착하여 살면서 황장군이라고 하면서 우리나라 황씨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현재에도 평해(경북 울진군 평해읍) 월송(越松) 지역에는 황장군의 묘가 전해지며, 구(丘)장군이 살았다는 곳을 구미진(丘尾津)이라 부른다. 황락(洛)의 후손에 갑고(甲古), 을고(乙古), 병고(丙古) 3형제가 있었는데 각각 기성(현 평해)군, 장수군, 창원백에 봉해져서 각각 본관을 평해, 장수, 창원 황씨로 하였다고 한다. 현재 전하는 제안, 항주를 제외한 대부분의 황씨는 이 3본에서 분관되었다고 한다.
평해 월송정 도시조 휘:洛
(총55개의 본관과 564,256명 1985년 기준)
한국황씨중앙종친회 http://hwangkorea.com/in.php
黃門家 중앙종친회 http://hwa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