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봉길 선생 의거일
오늘은 사그러져가던
대한민국의 불씨를 다시 살리신
윤봉길 선생 의거일입니다.
선생은 의거 전 충남 예산의 가난한 농촌운동가였습니다.
평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계신 선생님이셨습니다.
큰 뜻을 세우고 한인애국단에 들어가 거사를 시행하기까지 아마 선생은 수많은 갈등에 휩싸였을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거든요.
선생의 마음을 잘 나타내는 유서를 보면 지금까지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선생은 일본 땅까지 끌려가
총살형을 당하셨고
유해는 상상할 수도 없는 곳에
강제로 묻히셨습니다.
박열 선생이
교도관들을 일일이 꾸짖어가며
겨우 수습한 유해는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바닥 아래
차갑게 묻혀계셨습니다.
해방 이후 1년이 지나서야
겨우 조국의 품에 안긴 윤봉길 선생...
시계를 맞바꾸며 저 세상에서 다시 만나자던 백범은 눈물로 선생을 맞았고
효창원 양지바른 곳에
고이 안장해드렸습니다.
상하이 의거 때 죽은 관동군 사령관은
시라카와 요시노리.
김원웅 전 광복회장의 말에 따르면
이 사람을 존경한다며
창씨개명도 시라카와 요시노리로
직접 개명한 백선엽이는
대한민국 육군 원수 대접까지 받으며
대한민국 군부에서 평생 떵떵거리며 살다 현충원에까지 안장되었습니다.
상하이 의거 때 중상을 입어
다리를 절던 시게미스 마모루.
일제 패망 후 미주리 호에서 다리를 절며 등장해 사인하던 그 자 맞습니다.
일본에서 이 사람의 조카 사위가 되어
사업에 성공한 사람은
대한민국 경제계에서 내노라하는
재계 총수가 되어
한국말도 서투른 자식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재벌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유서를 남기며
그렇게도 간곡히 부탁했던 후손들...
말문이 막힙니다.
.
이율배반의 역사가
90년 이상 계속되고 있지만
상하이에서 외치는 선생의 목소리는
아직도 들리는 듯 합니다.
대한민국을 살려낸
윤봉길 선생의 유훈을
다시 한 번 새깁니다.
강보에 싸인 두 병정에게
- 두 아들 모순(模淳)과 담(淡)에게
너희도 만일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반드시 조선을 위하여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태극에 깃발을 드날리고
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 놓으라.
그리고 너희들은
아비 없음을 슬퍼하지 말아라.
사랑하는 어머니가 있으니
어머니의 교양으로 성공자를
동서양 역사상 보건대
동양으로 문학가 맹가(孟軻)가 있고
서양으로 불란서 혁명가 나폴레옹이 있고
미국에 발명가 에디슨이 있다.
바라건대
너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되고
너희들은 그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