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읍 하원리下元里 유래
마을의 동과 서를 반변천으로 가로 둘러서 두 자연 부락으로 크게 나누어진[다. 강물과 산의 경치가 매우 뛰어난 마을이다.
본래 영양군 동면의 지역으로서 상원리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14년 행정구역을 고칠 때에 원당동과 문현동의 일부를 따다가 하원동이라고 부르게 된다.
[마을의 특징]
하원리 마을에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조임 선생의 신도비와 사월공이 세운 숙운정이 있으며 월담헌이 있다.
신도비는 원댕이 마을 앞쪽에 있는데 조선조에 지중추부사를 지낸 사월 조임 선생의 행적을 적어 놓은 신도비가 있다.
숙운정은 사월공이 원댕이 앞에 세운 정자이며 월담헌 또한 마찬가지이다.
월담헌은 유형문화재 제 52호로 지정 보존되고 있다. 원댕이 서쪽에 있는 집으로서 사월공이 지은 것으로서 금동부처 4좌가 있었다고 하는데 1963년에 도난을 당하였다고 한다.
[자연부락의 이름과 유래]
*문고개ㆍ문현
하원리의 입구이다. 삼지리에서 대천리로 가는 길목의 고개인데, 이 고개가 문처럼 생겨 문의 기능을 한다 해서 문고개이다. 옛날 동면 사무소가 있었고 물방앗간이 있었다. 문현은 문고개를 한자로 뒤쳐서 적은 부름말이다.
*원댕이ㆍ원당
반변천 상류의 강변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안쪽을 내원당, 바깥족을 외원당이라 한다. 처음 이 곳에는 오씨들이 살았으나 조선 중종조 기묘 사화후 조원 선생이 입향하면서 지금은 조씨들이 더 많다. 큰 못이 있다하여 원당이라 하였다.
원래 대천 다리에서 원당으로 들어오는 곳에 산이 양쪽으로 이어져 있었고 강물이 삼지리로 흘러 갔으나 천지개벽이 일어나 앞산이 끊어져 물에 떠 내려가 독립되었다고 하며, 옛날 옥황선녀가 옥선대에 내려 와서 비파담에서 목욕하고 선유굴에서 놀았다 한다.
원당의 한자를 풀이하면 으뜸 가는 연못이란 말이 된다. 농사일에 가장 중요한 것일 물이고 보면 물이 모자라는 이 지역의 기후 풍토로 보아 비가 내릴 때 혹은 흐르는 샘물을 못에 가두어 놓은 일이란 먹거리와 바로 이어진다.
반변천 물이 흘러 내려서 오늘날의 임하댐의 큰 뿌리샘이 됨을 생각하면 오래전에 벌써 물 자원이 소중함을 일깨워 두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안원댕이ㆍ내원당원댕이
마주 보는 동리로서 강 안쪽에 있다하여 내원당이라 부른다.뚝넘이원당에서 뚝 너머에 있는 마을로 주민들의 협동심이 강해 단결이 잘되는 마을이다. 그러니까 뚝 너머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겠다.
[출처; 영양군지. 영양군청홈페이지]
(영양말캉 역사 알고 가시더/창태110, 186) 영양읍 하원리(下元里)가 궁금니껴?
※되집어 보는 영양말(사투리)※
그랑, 갱변, 농갈라, 댁낄, 알개, 엄체, 오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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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원리(下元里)는
큰 그랑(반변천)이 마실을 동서로 농갈라놨꼬.
그랑캉 갱변은 산캉 디게 잘 어울려
경치가 댁낄이시더.
마실 대부분이
원당(으뜸가는 오케로 좋은 큰 연못) 알게
있따꼬 하원이라꼬 카니더.
1914년 행정구역 바낄때
원당캉 문현 일부를 쬐메 엄체가
하원이라 카게 된니더.
(원당ㆍ원댕이)
으뜸으로 가는 오케로 좋은
큰 연못이 있따꼬 원당(元塘)이라 카니더.
원당 안쪼구를 내원당
밖깥쪼구를 외원당이라꼬 카니더.
지금 마실앞의 큰 그랑(반변천)은
대천쪼구로 쪽바로 흐르고 있찌만
옛날에는 상원서 흘러 와가꼬
여어서 삼지로 돌아가
국괴뜰(서부1리)캉 현뜰(현1리)을 지나
소엔당(현2리)으로 흘러 갔니더.
(안원댕이ㆍ내원당)
원댕이(원당)를 마주 보는 마실로
그랑 안쪼구에 있따고 내원당(內元塘)
이라꼬 카니더.
(문고개ㆍ문현)
하원리 입새 있꼬
삼지서 대천으로 가는 나즈막한 고개이자
길맥이시더.
고개가 문가꺼러 생겨가
대문 역활을 한다꼬 문고개라꼬 카니더.
문현(門峴)은 문고개를 한자로 쓴거시더.
(뚝넘이)
원당에서 뚝 너머가꼬 있는 마실이라꼬
뚝넘이라꼬 카니더.